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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도 김기춘에겐 ‘무좀’에 불과했나
그런 차원에서 보면 김기춘의 ‘무좀론’에서 ‘세월호 죽이기’ 공작과 블랙리스트 문제를 떠올리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극우 반공주의에 근거한 ‘공안통’ 김기춘에게 세월호 문제는 박멸해야 할 또 다른 “무좀”으로 비치지 않았을까?
김덕련2018.03.19 -
“살인 누명, 우리한테 왜 그랬어요?”
그때 사과 한마디 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국가가 외면하는 사이, 진범이 나타나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국가가 살인범보다 비양심적이라니, 이 나라의 국민은 언제까지 비참함을 느껴야 하나.
박상규2018.05.12 -
그는 1만 원이 절실했다
임명선은 교도소에서 나온 뒤 고향 삼례로 가지 않았다. 대전에 있는 동생 집에서 몇 개월을 보냈다. 괜히 고향에 있으면 또 경찰의 조작에 휘말릴까봐 두려웠다.
박상규2018.05.10 -
살인자를 위한 사건 피해자의 눈물
목에 흉기를 댄 강도의 목소리는 작고 차분했다. 캄캄한 새벽,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도에게 제압된 어미는 어둠을 더듬어 새끼를 끌어 안았다. 5살 아들을 보호해야 했다. 다행히 아들은 잠에서 깨지 않았다.
박상규2018.05.12 -
잘 나가는 변호사의 수상한 과거
‘범죄적 지능’을 논하는 C검사. 변호사로 변신한 지 약 15년이 됐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당연히 가짜 살인범 3인조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자신의 과거를 뉘우친 적이 없다. 어떤 점에서 그는 진범 3인조보다 독하다.
박상규 -
‘오보 면책 특권’ 종편 북한 기사
퇴사 후 만난 동료의 표정은 밝았다. 호탕한 웃음소리도 그대로였다. 심신이 힘들어 여러 병원을 다녔던 과거와 비교하면 그는 확실히 행복해 보였다.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식사 메뉴를 재빨리 주문하고 그간 못다 한 얘기를 풀어놓을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화기애애함 속에서 몇 분 대화가 오갔다. “요즘도 힘드세요?” “아니요. 퇴사하지 않고 견디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 순간 젓가락질을 멈췄다. 그는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내가 알던 그가 맞나‘ 싶었다. 불과 1년 전과 비교하면 그는 많이 달라졌다. 회사 보도 방향에 늘 불만을 토로했던 그다. 울기도 했다. 각자 퇴사 후 ‘플랜 B’를 서로 논의할 정도로 ‘퇴사가 답’이라는 말도 자주 했었다. 갸우뚱거리는 머리를 애써 고정했다. 안 본 지 1년 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혹시 나의 퇴사가 회사에 충격이라도 줬나? 의아함을 참지 못했다. 견디길 잘한 그 이유를 되물었다. “왜 견디길 잘했다고 생각하세요?” “예전보다 일에 많이 적응됐고, 이전 부서에 비해 일찍 퇴근하는 편이예요.“ 그의 말 곳곳이 불편했지만, 말꼬리는 잡지 않았다.⋯
이명선2018.02.26 -
김용덕 대법관님, 이게 재판입니까?
자기 이름 석 자 적은 필체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을 보면 해당 사건의 주인공들은 대개 이런 사람들이다.
박상규2018.07.24 -
“지금의 학종 개선안은 틀렸어요”
10대의 끝자락은 치열한 경마판이나 다름없다. 경주마가 되어 ‘학벌 트랙’ 위에 세워지면 학생들은 너나없이 ‘대학 입학’이라는 결승점으로 달려야만 하는 숙명을 안게⋯
이명선2018.02.23 -
민주투사의 보상받지 못한 34년
동대구역에서 내려 강창덕 선생님을 뵈러 가는 택시 안. 택시기사는 걸쭉한 사투리로 지난 대선을 회상하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이명선2018.02.26 -
검찰, <자백> 김승효에게 무죄 구형
검찰의 무죄 구형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검찰은 재심 사유가 분명하고 무죄가 명백해 보이는 과거사 사건에 대해서도 관행적으로 “법원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백지 구형을 해왔다.
박상규2018.08.28 -
검사가 살인범에게 하지 않은 질문
황상만을 한 번도 안 부른 검찰. 당연히 익산 택시기사 살인범 김OO도 부르지 않았다. 이들은 살인범에게 마땅히 해야 할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진실을 추궁하지도, 반성을 촉구하지도 않았다.
박상규2018.04.21 -
아버지는 ‘고문실’에서 죽었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아버지 나경일(1930년 생)은 2009년 8월 국가배상금 12억 7,000여만 원을 받고 얼마 안 돼 몸져누웠다. 숱한 고문도 끈질기게⋯
이명선2018.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