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경찰이 우르르 몰려오자 교회에 사는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람들 행렬은 상가 계단 복도까지 이어졌다. 불법 영아 양육 및 아동학대 혐의로 서초구 ‘생명의 샘’ 교회가 폐쇄되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현관 쪽에서 퍼졌다.

“재인이 엄마예요, 재인이 엄마!”

재인이 엄마 정지원 씨(가명)는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다”는 구청 전화를 받고 곧바로 교회로 달려왔다. 정 씨는 교회에서 사는 재인이(3세, 가명)를 한 손으로 끌어안았다. 다른 손으론 아이 기저귀와 옷이 담긴 쇼핑백을 들었다.

아동 학대 현장에서 내 아이가 자랐다니. 정 씨는 당장 어딘가로 가야 했는데,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재인이 아빠와 살던 그때처럼 말이다.

결국 정 씨는 아이를 집에 데려가지 못했다. 미신고 불법시설 교회에서 살던 재인이는 지금 서울의 한 공동생활가정에서 지낸다. 아이와 다시 이별, 둘은 왜 이런 생활을 이어가는 걸까.

생명의 샘 교회가 폐쇄된 10일 늦은 오후, 정지원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너무 미안하죠.”

정 씨는 금방 울 듯했다. 재인이는 교회에서 ’요주의 인물’로 통했다. A 목사는 고함을 치며 재인이를 혼냈고 엉덩이나 등을 때리기도 했다. 재인이의 아동학대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교회에 오기 전, 재인이는 친부에게 학대를 받았다.

정 씨는 재인이 임신 사실을 2019년 2월 처음 알았다. 그때 정 씨 나이는 스물. 엄마와 다투고 집을 나온 뒤 함께 살던 남자의 아이였다. 남자는 정 씨에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다.

“당장 서류에 사인해.”

혼인신고도 그렇게 진행됐다. 가진 것 없던 어린 정 씨는 낙태를 결정했다.

“너 애 지우면 그거 살인이야, 살인자라고!”

남자는 낙태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낙태 수술이 가능했다.

“네가 내 인생 망치는 거야!”

정 씨의 호소에도 남자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남자는 정 씨를 거의 집에 감금하다시피 했다. 정 씨와 잠깐이라도 연락이 되지 않으면 남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찾으러 왔다.

남자가 일터에 있을 때, 정 씨가 잠시 집을 나가도 금방 잡혀 끌려왔다. 정 씨의 휴대전화, SNS, 메신저 모두 남자가 관리했다.

남자는 정 씨 명의로 핸드폰을 개통해 기깃값을 받고 팔아 돈을 챙겼다. 통신비는 정 씨 빚으로 쌓였다. 남자는 정 씨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어 카드빚도 안겼다.

수도, 전기요금도 못 내는 생활이 이어졌다. 통신사와 은행이 연체금을 내라고 정 씨에게 독촉할 때, 뱃속의 재인이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했다.

그해 가을, 재인이가 태어났다. 원치 않은 임신이었지만 정 씨는 재인이를 보며 다짐했다. 적어도 재인이가 안전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낙태를 반대했던 남자는 정작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우는 재인이에게 욕설을 하고 젖병을 던졌다. 신생아가 자주 우는 건 당연한데, 남자는 그걸 못 견뎠다. 폭언도 심해졌다.

“너 자꾸 울고, 잠 안 자면 수면제 먹여서 재운다!”

재인이가 잘 때 남자는 정 씨에게 칼을 들이밀기도 했다. 정 씨는 경찰에 신고를 시도했다. 남자는 전화기를 빼앗으려 했고, 정 씨는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경찰이 세 가족이 사는 집으로 출동했다. 정 씨는 경찰에게 분리조치를 원한다고 했다. 경찰은 남자와 현관문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더니 ‘가정 싸움’으로 결론 지었다.

정 씨는 “계속 같이 살 테니, 법적으로만 이혼해 달라”고 애원했다. 이혼해도 남자의 폭력과 아동학대는 멈추지 않았다. 정 씨는 아이와 함께 피신하듯이 거처를 서울로 옮겼다. 경찰서를 찾아 그간 일들을 구구절절 털어놨다. 얼마 후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 멍 사진 하나로는 학대를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영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남자)에게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하네요. 물증도 없으니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사건은 고소 취하로 마무리됐다. 남자가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 엄마 정 씨의 걱정과 달리 재인이는 그새 많이 자랐다. 혼자 기고 엎드리는 나이가 됐다.

남자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자에선 벗어날 수 없었다. 남자가 정 씨 이름으로 만든 통신비 빚과 카드빚 이자가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남자는 정 씨 명의로 게임 머니를 약 190만 원 결제하기도 했다.

여기에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미처 예상 못한 일까지 생겼다. 재인이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정 씨가 자기 인생을 망친 사람으로 꼽는 그 남자. 재인이의 손발, 골격, 얼굴을 보면 그가 종종 떠올랐다. 분명 재인이를 사랑하지만, 아이를 보면 마음이 힘들곤 했다.

정 씨는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조울증을 진단했다. 계속 병원에 다니며 마음을 살피면 좋을 텐데, 그마저도 진료비가 없어 중단했다.

정 씨는 아이 입양을 알아봤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거절 이유도 각각이었다. 기혼 가정에 태어난 아이는 입양이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위험해서 당장은 입양 진행이 어렵다는 답도 들었다.

입양을 포기하고 이번엔 시청, 구청에 전화했다. 시청 홈페이지의 대표번호는 대기자가 많아 민원 전화 연결이 어려웠다. 통화가 간절했던 정 씨는 담당자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악착같이 말을 이어갔다.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좀 도와주세요!”

그렇게 “관련 부서로 안내해 드릴게요”라고 전화가 넘어가다 보면 결국 “부서에 담당자가 없다” 식으로 통화가 끝나곤 했다. 정 씨는 ‘아기 입양, 입양기관, 보육 시설, 미혼모’ 온갖 검색어로 아기 맡길 곳을 검색했다.

“한국 아동기관에는 정말이지 전부 전화한 것 같아요.”

아이 위탁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정 씨는 ‘아기를 버린 엄마’로 자기를 보는 듯한 시선을 받았다. “키우지 못하는데 왜 아이를 낳았느냐”고 묻는 기관도 있었다. 수 없는 거절을 거쳐 마지막으로 전화한 곳은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베이비박스 측은 정 씨에게 생명의 샘 교회를 소개했다. 그 유명한 베이비박스가 ‘미신고 불법 양육 기관’을 연결해 주다니, 정 씨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정 씨는 아기 양육수당 통장, 초본, 등본을 가지고 교회에 갔다. 재인이가 10개월이 된 작년 5월이다. 교회에서도 처음에는 “아이를 맡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정 씨는 A 목사에게 사정했다.

“받아주신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해요. 저희 애는 어디로 갑니까?”

호소가 먹혔는지 A 목사는 재인이를 받아줬다. 안도감은 오래 못 갔다. 며칠 뒤, 정 씨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연락을 교회로부터 받았다.

“재인이한테 사고가 난 것 같아요.”

정 씨는 정신없이 교회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하니, 재인이는 살아서 놀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알고 봤더니 재인이랑 같이 지낸 하늘이(가명. 당시 생후 2개월)가 죽은 거였어요. A 목사가 이름을 착각해서 저에게 잘못 연락을 했던 거예요.”

내 아이가 안 죽어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어쨌든 함께 살던 아이가 죽은 거 아닌가. 교회의 한 돌보미 교사가 정 씨를 한쪽 구석으로 데려가 은밀하게 말했다.

“하늘이 죽은 거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일 커져요, 큰일 나.”

그날부터 정 씨는 교회에서 사는 재인이가 마음에 걸렸다. 한 달 뒤 재인이가 가와사키병을 앓았을 때도 이상했다. 의사는 원인이 영양부족이라고 진단했다.

“아이가 못 먹어서 생긴 병입니다. 아이 밥은 잘 챙겨주시나요?”

정 씨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자칫하면 내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라고 설명했다. 영양부족으로 재인이가 아팠던 이후로 정 씨는 재인이를 보러 교회를 찾을 때마다 아이들이 함께 먹을 간식을 사 갔다.

교회의 양육과 학대가 의심스러워 일부러 기습방문도 했다. A 목사가 우는 아이를 혼자 방에 두고 문을 닫는 모습을 목격했다. 목사에게 직접 말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조심스러웠다. A 목사가 “재인이 당장 데려가라”고 할까 봐 걱정됐다.

정 씨는 주5일 아르바이트를 한다. 함께 사는 친엄마도 매일 일을 나간다. 재인이를 당장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 씨는 A 목사 몰래 재인이를 맡아줄 다른 시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1년 만에 다시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과거와 비슷한 답변을 들었다. 구청 직원이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럼 구청은 뭘 하시나요? 나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그럼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떡하라고요?”

제발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구청은 민간이 운영하는 한 아동복지기관을 연결해줬다. 여러 조사 단계를 거쳤지만, 실질적 도움을 받진 못했다. 구청은 가정위탁 대신 공동생활가정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동안, A 목사는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당했고 생명의 샘 교회는 폐쇄됐다. 구청은 일사천리로 재인이를 공동생활가정으로 보냈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낳은 변화, 이걸 다행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지금 재인이가 지내는 곳도 언제까지 맡아줄지 모르겠어요. 벌써 아이가 두 번 상처를 받았는데,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정 씨는 한숨을 쉬면서도 공동생활가정에서 보내온 재인이 사진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정 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어색한 침묵이 몇 초간 이어졌다.

사실 그동안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지금은 더욱 그런 걸 짜기 어려운 실정이다. 아이도, 엄마도 당장 급한 불을 끄는 게 급해 보였다.

“당분간은 재인이가 지금 지내는 곳에 있을 테니, 저는 조울증 이겨내려고 노력해야죠.”

도대체 일은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정 씨는 “손 내밀 곳 없어 미신고 시설을 찾는 다른 부모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꼬일 대로 꼬인 본인 삶을 들려줬다.

미신고 시설 생명의 샘 교회는 저마다 어려운 사정의 부모와 아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여기에서 누군가는 죽고, 아프고, 다시 상처를 받았다. 공적 아동보호 우산은 분명 존재하고 펼쳐져 있지만, 그 누군가는 우산 밖으로 밀려나 있다.

문제를 똑바로 봐야 꼬인 매듭을 풀 수 있는 법. 미신고 시설이라는 수렁에 빠진 부모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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