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거래’ 의혹을 보도한 기사에는 유독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얘기가 없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자료에 ‘통진당’이 들어간 문건은 무려 9개나 존재함에도 관련 보도는 거의 전무하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레드 콤플렉스’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정당해산심판 때 통진당을 대리했던 당시 이재정 변호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례를 보자. 소송대리인단에 합류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결정이었는지, 이 변호사는 제18차 변론기일 때 그 심정을 밝혔다.

저는 통합진보당 당원이 아닙니다. 그저 진보적 소수정당의 역할을 지지하면서 마음만 보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스컴을 통해서 대리인단에 함께 한 제 모습을 발견한 지인들이 전화를 해오기 시작합니다. ‘다친다’, ‘위험하다’고 얘기합니다.

이번만큼은 이 일에 휘말리면
다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돌을 던질 때, 같이 돌을 드는 건 쉽다. 하지만 남들이 다 손가락질할 때, 홀로 용기 내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일은 어렵다. 통진당은 그렇게 ‘죽일놈’이 됐다. 2013년 8월, 당시 이석기 통진당 의원이 내란음모 관련 기사가 나오자마자 진보와 보수는 하나가 되어 ‘통진당 죽이기’에 나섰다.

언론이 선봉에 섰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서 23년간 편집국장을 지낸 벤 브래들리가 정의한 신문의 역할은 ‘알아내고, 취재하고, 검증하고, 보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국정원이 흘린 가짜 정보를 검증없이 받아 적기 바빴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272개나 있는 공정원 녹취록을 그대로 옮겼다. ‘파수견’이어야 할 언론의 모습은 사라졌다.

어쩌면 무수한 일반인들도 돌을 던진 가해자일지 모른다. 통진당이 ‘내란을 모의했다’, ‘지하조직 RO를 구성했다’, ‘사제폭탄을 만들려고 했다’라고 생각한 이들 모두가 여기에 해당한다. 양승태 대법원마저 통진당이 내란을 모의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RO의 존재에 대해서는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사제폭탄 의혹 보도는 가짜였다.

통진당은 어떻게 박근혜 정부,
양승태 사법부에
이용당했나

이 얘기에 도달하기 위해 시계의 추를 2012년 18대 대선 때로 돌려야 한다.

2018년 7월 3일 열린 ‘사법농단 고발대회’에서 발언 중인 김재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주용성

‘국정원 개혁’ 움직임 일자, 통진당 내란 음모 의혹 터뜨린 국정원

“저는 박근혜 후보를 반드시 떨어뜨릴 것입니다.”

2012년 12월 4일, 제18대 대선 TV 토론회는 전국을 들썩이게 했다. 당시 이정희 통진당 대통령 후보는 박근혜 후보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충성 혈서를 써가며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라고 칭했다. 이 후보는 “친일과 독재의 후예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공언했다. 파장은 컸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고 ‘국정원과 기무사에 의한 불법선거 운동’ 실체가 점차 모습을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세훈 체제 국정원장은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돕는 여론전을 펼쳤고,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관련 수사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3년 3월 19일,이정희 통진당 대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고발했다. 자신을 종북으로 낙인찍는 댓글을 써서 국정원법을 위반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2018년 6월20일, 서울중앙지법은 ‘원 전 원장은 이 전 대표에게 모욕적 표현과 글로 인격권에 중대한 침해를 끼쳤다’며 2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때부터 국회와 여론을 집어삼킨 화제는 ‘국정원 개혁’이었다. 국정원이 순수한 대북 활동과 해외정보 수집전문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정원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 안팎으로 일었다. 마침 그때 국정원이 ‘3년 전부터 내사한 사건’이라며 통진당 내란 음모 의혹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13년 8월 28일 오전 7시, 국정원 수사관들은 이석기 의원의 오피스텔을 압수수색했다. 국정원은 “2013년 5월 10일과 12일에 열린 이석기 의원 강연 자리가 내란 음모를 위한 모임이었다”면서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례적으로 법원은 이 의원 신체 수색에 대해서도 영장을 발부했다.

2013년 8월 29일부터 <한국일보>는 이 내용을 ‘진보당 녹취록 단독 입수’라는 이름으로 보도했다. 이틀간 <한국일보>가 보도한 제목을 나열하면 이렇다. <해외자금책, 유로화를 RO에 혁명자금으로 송금>, <이석기 “전쟁 준비하자… 군사적 체계 잘 갖춰라>, <폭동 계획 정황 상당수… 국정원은 자신감> 등이다.

검찰이 당시 이석기 의원을 압수수색하면서 법원에 내민 혐의는 살벌했다. 이 의원이 2013년 5월 서울 합정동 종교시설에서 비밀조직 RO 소속원 130여 명을 모아 놓고, 통신·유류시설 등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모의하고 대규모 인명살상 방안을 협의했다고 본 것이다. 검찰과 국정원이 제시한 증거는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제보자의 증언과 당시 녹취록이
유일한 증거였다

2018년 7월 3일 열린 ‘사법농단 고발대회’ ⓒ주용성

녹취록 제보자, 국정원 직원 150여 차례 만날 때마다 돈 받아

통진당 짓밟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면서 여러 사람들을 거치며 통진당은 이미 간첩 집단이 됐다.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 사실공표 금지’ 원칙은 사치에 불과했다.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 국정원과 검찰을 통해 흘러나왔고, 언론은 이를 열심히 퍼 날랐다.

하지만 의혹의 핵심 증거인 녹취 파일을 국정원에 제공한 이성윤 씨는 재판이 거듭되자 말을 번복했다.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2013년 검찰 조사에서는 ‘RO’가 조직명이라고 진술했지만, 2010년 초기 진술조서에서 “조직명이 ‘내일회’다”라고 진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순간 RO로 조직명이 바뀐 것이다. RO에 대한 아무 물증이 없는 것은 바로 이 씨 법정 진술로 확인됐다.

재판 과정에서 이성윤 씨가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아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 씨는 국정원 수사관 문필주에게 2013년 8월까지 매주 10만 원~20만 원 준비자금을 받았다. 국정원이 녹음기 5대도 주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이 씨를 약 150차례 만나면서 세금으로 활동 자금을 찔러줬다.

언론 보도와
사실 사이의 차이는 컸다

재판과정에서 지하조직 RO의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고, 내란 음모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33만 원어치에 불과한 러시아 돈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공작금’으로 둔갑해 대서특필됐지만, 그 돈은 이 의원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러시아 갔을 때 환전했다가 남은 돈으로 밝혀졌다. 압수수색 현장에서 발견된 나머지 돈의 출처도 확실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언론은 의혹 키우기 보도에 여념 없었다. (지금까지 정정보도나 사과는 없다. 여전히 사실과 다른 기사들이 버젓이 검색된다.) 근거 없이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는 식의 보도마저 나왔다. 국정원은 그런 언론을 이용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272개나 적힌 녹취록을 언론에 풀었다. 가짜 녹취를 보도한 <한국일보>는 한국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까지 받았다.

<국정원이 왜곡한 이석기 녹취 내용과 본내용>

“전면전이야 전면전!” (국정원 측) -> “전면전은 안 된다.” (실제 발언)
“전쟁을 준비하자.” (국정원 측) -> “구체적으로 준비하자.” (실제 발언)
“폭력적인 대응.” (국정원 측) -> “통일적인 대응.” (실제 발언)
“실탄이 있어도 연락을…” (국정원 측) -> “시 단위에 있어도 연락을…” (실제 발언)

언론은 국회의
‘체포동의안’ 통과에
큰 공헌(?)을 했다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일주일 동안 “북한과 연계됐다”는 식의 언론 보도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수사당국’ 혹은 ‘수사관계자’를 출처로 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하지만 2013년 9월 4일,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자 ‘북한 연계’ 기사는 쏙 들어갔다. 이후 검찰 수사발표나 공소장에 ‘북한 연계’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검찰은
‘북한과 통진당은 관계가 없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검찰이 밝힌 양형 이유 중에 하나가 ‘북 연계가 없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였다. 2013년 11월 4일, 정당해산청구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해외 순방 중이었다.) 바로 다음날인 2013년 11월 5일대한민국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1987년 6월항쟁의 산물로 탄생한 헌재는 설립 이래 처음으로 정당해산심판을 했다.

2018년 6월 28일 대법원 앞에서 옛 통합진보당 의원 및 당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

김기춘이 통진당 재판을 뒤에서 조종했다

2014년 2월 17일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1심 선고가 나왔다. 수원지법은 내란음모와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유죄를 인정해 이 의원에게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이 선고됐다. “혁명조직의 총책은 이석기 의원이며 RO의 회합은 ‘일반적, 추상적 합의를 넘어 폭동의 실현 가능성과 실질적 위험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재판에서
칼자루를 쥔 사람은 판사가 아닌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통진당 정당해산 사건’의 운명이 사법부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뒤에는 김 실장이 있었다. 뒤늦게 언론에 공개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서 통진당 관련 언급은 45차례에 이른다. 김 전 실장을 지칭하는 ‘長’(장)이란 글자와 함께 통진당 관련 재판 동향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재판과 조사 일정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법원과 내통하지 않았으면 모를 ‘서울고등법원이 언제쯤 재판 기록을 헌법재판소에 송부하는지’를 청와대는 알고 있었다. 핵심 증인 4명에 대한 증인신문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언제 통진당 해산 선고가 이뤄질지’도 청와대는 2014년 10월 4일 이미 파악했다.

김 실장은
항소심 판결 직후
칼을 빼 들었다

2014년 8월 11일, 서울고등법원이 1심보다 적용 혐의를 줄인 것이 화근이 됐다. 2심 재판부는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범죄를 실행시킬 구체적인 준비행위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RO 실체도 증명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을 적용해 피고인들은 1심보다 평균 3년 가량의 형량이 줄었다.

이 때부터 숨 가쁘게 움직였다. 김기춘 실장은 선고 일자 지정, 유무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평가 심의 결과를 미리 챙겼다. 재판부 이외 외부 유출은 엄격히 금지된 내용인데도 그랬다. 2014년 12월 17일 자 김영한 업무일지에는 정당해산 결정이 내부적으로 확정됐으며,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과 지역구 의원 상실을 두고 재판부가 이견을 보인다고 적혀 있다.

언론과 여당,
종교와 시민단체를
주무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정부는 통진당을 옹호하는 언론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압박했다. 2014년 11월 5일, JTBC가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직후 통진당 김재연 대변인을 출연시키자 ‘당 입장이 편중됐다’는 이유로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조치를 내렸다. ‘과징금 부여’ 다음 가는 중징계였다. 청와대가 언론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방통위를 이용한 것이다.

반대로 친정부 성향의 보수 언론과 단체에는 통진당 해산의 필요성을 두둔하는 자료를 제공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포착됐다. 극우단체를 동원해 여론전을 펼치면, 보수 언론이 이를 받아 적도록 유도했다. 2014년 11월 25일, 26일 자 김영한의 업무일지에는 ‘헌재재판-여론전’, ‘통진당 해산 찬성 쪽 여론 변화 효과’라고 적혀 있다.

2013년 12월 10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비상대책위원을 비롯한 지도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입장을 밝히자, 청와대는 ‘여당 새누리당이 반박을 준비해야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이날 최고위원회를 중심으로 문 대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군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통진당의 원내 입성에 새정치연합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말했다.

<고 김영한 수석 업무일지 속 주요 ‘통진당’ 언급 정리>

2014. 8. 25 통진당 사건 관련 지원 방안 마련 시행, 재판진행상황 법무부 TF와 접촉. 홍보. 여론.

2014. 9. 19. JTBC 통진당 해산청구 관련 편향 보도 -방심위의 징계에 대한 행정소송

2014. 11. 25. 헌재 재판- 여론전, 활동방향정립(시민사회 활동)

2014. 11. 26. 헌법학자 칼럼 기고 유도-법무부와 협력 종북토크 → 통진당 해산 찬성 쪽 여론변화 효과

2014. 12. 11 새정연(새정치민주연합), 통진당 해산 반대 – 새누리 반박 준비

2014. 12. 17 정당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 지역구 의원 상실 이견 – 소장 의견 조율 중(금일) 조정 끝나면 19일, 22일 초반(?)

2014. 12. 19 총리 담화문 – 풍부하고 정서적으로!

2014. 12. 20 지방의원. 독 헌재 → 독 판례 → 이후 검토 헌재 결정 – 홍보 ‘분단국가의 특수성’ 휴전 상황, 한국적 현실 point로 하도록 국고보조금 재산 몰수 과정에서의 부도덕성 → 부각 활동상 – 이면적 극렬성, 과격성 국민 동정여론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

2014. 12. 21 통진당 해산 핵심 논리 → 종편 등 제공(법무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석방되던 2018년 8월 6일, 통진당 지지자들이 김 전 실장의 석방을 반대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

양승태 법원행정처, ‘통진당 사건’ 대응 문건 작성

헌재의 통진당 해산심판이 다가오자, 양승태 사법부는 내부적으로 대응문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이 나오고 이틀이 지난 2014년 8월 13일‘내란음모 사건 항소심 선고 관련 보고’라는 이름의 문건을 작성해 항소심 판단을 주요 지점을 정리했다. 항소심에서 박근혜 정부에 유리한 판결은 어떤 부분인지 추렸다.

그 문건의 관점은 박근혜 정부에 맞춰졌다. 1심 판결에 비하면 2심 판결이 상대적으로 통진당 측에 유리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정부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고 평가했다. ‘내란선동에 유죄 선고된 점’, ‘RO의 실체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상명하복에 의한 조직적인 구성이 인정된 점’을 미루어 보아 정부입장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 선고 결과 분석’ 문건을 통해서는 여론과 정치권, 언론의 동향을 세세하게 보고했다. 세월호에 비해 언론에서 화제가 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내비치며, 법원을 출입하는 기자들이 생각하는 항소심 판결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아울러 항소심 판결이 헌재의 정당해산심판 사건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해산 결정은 박 대통령
당선 2주년에 나왔다

2014년 12월 19일, 헌재는 통진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 전원 의원직 상실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 당선 2주년 당일에 결정 나서 “혹시 선물이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헌재가 일부러 서둘러 선고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제기한 정당해산심판청구가 13개월 반도 안 돼 결정났기 때문이다.

모든 게 고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 나온 청와대 지시대로 착착 진행됐다. 현재의 결정을 두고 학계에서 여러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8명의 헌재 재판관이 발포한 12월 유신이다. 헌재는 최고법인 헌법의 최종 해석권을 휘둘러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성’이 없는 정당을 강제 해산하고 ‘비상상황’을 공표했다.” –홍윤기 교수

3심이 남았는데도 헌재가 해산결정을 해버리고, 지역구 건 전국구 건 막론하고 전부 의원직을 박탈하고, 어마어마한 조처를 취한다는 게 이상하잖나. 권력의 의지에 충실하게 복종한 것도 있지만, 대법원과 헌재의 라이벌 의식에서 강행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청와대는 결정 하루 만에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을 밝혔다. 2014년 12월 20일, 박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평가했다면서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례적으로 주말에 대통령 입장을 내놓았다.

통진당 해산 결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를 견인했다. 취임하고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던 지지율은 헌재의 통진당 해산 선고가 이뤄지고 반등했다. 대구 경북과 보수층, 50대 이상과 30대를 중심으로 지지층이 다시 결집한 여론조사 통계가 공개됐다.

2015년 1월 22일대법원은 헌재의 해산 선고가 내려진 지 34일 만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내란 음모는 무죄,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를 판결한 서울고등법원의 원심을 확정했다. RO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그대로 뒀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석방되던 2018년 8월 6일, 통진당 지지자들이 김 전 실장의 석방을 반대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

구청장 시켜서, 통진당 지역구 의원 자르자?

통진당 해산 결정 이후,
청와대는 통진당 의원
퇴출 작업을 벌였다

헌법재판소는 통진당 해산 결정문에서 지방의회 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해 주문을 내지 않았는데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4년 12월 22일, 통진당 소속 비례 지방의원 6명에 대해 공직선거법에 따라 퇴직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국회의원과 비례대표들은 곧장 선관위를 상대로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헌재에 ‘의원직 상실결정’ 권한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법원행정처가 2015년 1월 7일에 작성한 ‘통진당 행정소송 검토보고’ 문건을 보면 “의원직 상실 결론도 현행 헌법과 법률 해석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더 크다”고 나온다. “헌법적 근거가 부재”하고 “국회의원의 국민대표성을 희생시킨 결정은 정당성이 부족하다”며 헌재 결정을 분석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비판은 비판에서 그쳤다.)

당시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들은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자 법원은 남몰래 다른 작전을 짰다. 지방자치단체장을 시켜서 ‘지방의회 의원지위 부존재확인소송’을 내도록 계획했다. 쉽게 말해서 구청장에게 소송을 내라고 지시해, 해당 지역의 구의원들을 자를 수 있게 작업을 시작했다. 제소할 때 어떤 식으로 글을 구성하면 좋을지 예제문까지 만들어서 배포하려고 했다.

이를 맨 처음 추진할 지역구도 물색했다. 법원행정처는 여론의 반발을 대비해서 보수 색체가 강한 지역부터 실시하려고 했다. “여당이 단체장인 지역 우선 검토”라며 울산과 경남을 거론하면서 “경남 지역 중 한 곳이 가장 적절해 보임”이라고 밝혔다. “법원이 개입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감당하기 힘든 파장이 있을 수 있음”이라고 지적했는데, 결과적으로 들통났다.

이 모든 건 상고법원
추진을 위한 발판이었다

2015년 4월 20일 작성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법무부 설득방안’을 보면 ‘통진당 해산결정’을 사법부가 해줘 청와대와 공고한 신뢰관계를 확보했다고 나온다. 2015년 7월 31일에 작성된 ‘정부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에는 “박근혜 정부의 자유민주주의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이석기 전 의원에게 중형을 선고했다“고 적혀 있다.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5분 발언으로 5년간 감옥에서 살라니요”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를 벌였다는 증거가 불문명한 상황에서 강제수사를 시작했다. 언론은 국정원과 수사관들이 흘리는 이야기를 실황으로 중계했다. 국회는 ‘통진당 죽이기’ 여론을 등에 업고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곧장 통진당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고, 결국 통진당은 공중 분해됐다.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있었다. 사법부에게 듣지 않으면 모를 재판 일정과 재판부 평가 심의 결과를 손에 쥐고 있었다. 김 전 실장의 지시사항은 대부분 실행으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지하혁명조직 RO의 실체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였다. “1회적인 토론의 정도를 넘어서 내란을 실행 행위로 나아가겠다는 확정적인 의사와 합치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대법원 판결문에 써 있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주도세력’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근거로, 이석기 의원 강연에 참석한 130명을 지하혁명 조직원이라고 판단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했다’고 주장하고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다. 헌재가 일부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정당 해산을 선고했다는 의심은 여전히 제기된다. 대법원에서 ‘내란음모 무죄’ 판결을 내렸을 경우 해산 결정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여겼다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진당 해산의 시작점에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있다

대법원은 이석기 의원 강연에 모인 사람들의 ‘말’과 ‘생각’이 틀렸다고 보고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이석기 전 의원의 발언이 참석자들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실제로 참석자들은 발언에 호응하면서 전쟁 발발시 북한에 동조하여 대한민국의 체제를 전복할 물질기술적 준비방안으로 구체적인 장소까지 거론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런 법원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다. ‘KT 혜화지사’를 습격하자는 말은 참석자 개인 발언이었을 뿐이고 당시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분명하게 이견을 보이는 대목이 녹음파일에서도 나온다. 폭탄제조법을 PC에 저장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건강상의 이유로 심장병 치료약물에 대해 알아본 것”이라고 공판과정에서 이미 소명했다.

말과 생각에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과연 옳은가

대법원 판결에서 ‘내란선동 유죄’에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들(이인복, 이상훈, 김신)의 판단은 이러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방안은 내란과 관련된 범죄의 성립을 완화하거나 확장해 인정함으로써 불온하거나 불순하다는 사상, 태도, 행동을 쉽게 처벌하는 데 있지 않다.
헌법상 보장된 양심과 표현의 자유 등이 부당하게 위축되지 아니하도록 하여, 헌법 전문이 천명하고 있는 것처럼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하는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이를 수호하는 합당한 길이다.”

이석기 전 의원을 빼고 가장 무거운 형을 선고받은, 김홍열 전 통진당 경기도당 위원장의 부인이 대법원 선고가 있었던 날 방청석에서 외친 말도 같은 선상에 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이석기 전 의원의 5월 12일 강연의 사회를 봤다. 발언 시간은 총 5분이었다.

“5분 발언한 내용을 가지고 5년을 감옥에 살라니요.”

Keywor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