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교사로부터 온 제보. 그는 부산광역시교육청이 ‘한 기업’의 고교 현장실습생 모집 공문을 일선 학교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게 왜 제보까지 할 만큼 특별한 일이었을까.

“독성물질을 사용하고, 그 사용 사실을 숨기고, 젊은 20대 노동자의 산재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는 ‘부도덕한 기업’에 여러 학교, 학생들이 속아서 아무 것도 모른 채 학생들을 보낼 게 염려됩니다.”(제보자 메일 중)

문제는 ‘그 기업’의 정체였다. 기업의 이름은 스태츠칩팩코리아. ‘그 기업’의 현장실습생 출신 20대 청년 김선우(가명) 씨는 간이 녹았다. 그리고 지금도 산재 인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선우 씨는 산재 ‘불승인’ 통보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셜록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해 9월,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간이 녹은 김선우 씨 사례를 보도했다. 마이스터고 재학생이었던 그는 2020년 10월, 열여덟의 나이에 학교 대신 작업장으로 향했다. 모교에서 스태츠칩팩코리아로 처음 입사한 ‘1호’ 취업생이라는 타이틀은 그의 자부심이었다.(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입사 1년 만에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멍이 들었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못해 속을 게워냈다. 그리고 그를 늘 괴롭히던 극심한 피로. 하지만 이 모든 것을 3교대 근무 탓으로 여겼다.

황달 증세가 눈에 띌 정도로 악화되는 동안에도 사회초년생은 요령 없이 버텼다. 눈자위가 누렇게 변하고, 피부가 갈색빛으로 변했을 때 비로소 병원을 찾아갔다.

간 수치는 정상의 약 56배 이상. 간이 거의 다 녹아 없어진 수준이었다. 간 이식 대기자 ‘0순위’가 됐다. 장기 기증자가 나타나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이식받아야 할 정도로 생명이 위태로운 수준. 그는 운 좋게 나타난 기증자 덕분에 수술을 하고 의식을 되찾았다.

겨우 눈을 뜬 김 씨 앞에는 더 높은 문턱이 있었다. 산재 인정 싸움이었다. 김선우 씨는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현재 그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부산광역시교육청이 지난 4월 일선 학교에 전달한 공문 ⓒ셜록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지난 4월 부산교육청에 2025년 1차 직업계 고교실습생 모집 전형을 안내하는 홍보물을 보냈다. 직업계고 3학년 졸업예정자 등을 대상으로 한 실습 안내였다. 교육청은 이 자료를 부산 지역에 있는 직업계고 고등학교에 공문으로 전달했다.

교육청이 기업 홍보물을 일선 학교에 공문으로 전달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담당자와 소통한 결과, 부산교육청 외에 스태츠칩팩코리아의 홍보물을 관내 학교에 전달한 사례는 없었다.

한 교육청 담당자는 “기업이 각 학교에 홍보물을 보내지, 교육청으로 공문이 오지는 않는다”며, “받은 자료가 없으니 일선 학교로 공문을 보낸 바도 없다”고 설명했다. 부산을 제외한 다른 시도 교육청 담당자들은 같은 취지의 답변을 했다.

“선우한테도 그때(현장실습 지원할 기업을 정할 때) ‘반도체(공장)는 삼성전자나 백혈병 같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조심해야 된다’ 했는데, 학교에서 스태츠칩팩코리아는 후공정이고 위험 노출 없고, 안전한 물질만 쓴다 했다고 안심시키더라고. 아이들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어요.”(김선우 씨 아버자 통화 2025. 7. 9.)

학생들은 학교가 제공한 정보를 신뢰한다. 제보자 역시 부산교육청이 보낸 공문 때문에, ‘간 손상’ 사건으로 논란이 된 기업에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이 배치될 것을 우려했다.

부산광역시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전달한 스태츠칩팩코리아 실습생 모집 홍보물 표지 ⓒ스태츠칩팩코리아

“남들처럼 대학을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차라리 돈을 빨리 벌고 싶었어요.”(김선우 씨 인터뷰 2024. 7. 15.)

가계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직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김선우 씨. 엄마는 아들이 아픈 게 꼭 자기 탓 같았다. 아이가 일찍 철든 것도, 집과 멀리 떨어진 공장에서 일한다는 아이를 붙잡지 못한 것도, 안색이 좋지 않은 아이를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것도 후회로 남았다.

부모는 죄인이 됐지만, 회사는 말을 아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오히려 ‘김선우 씨의 음주습관’을 지적하며 병과 연결 지었다. 사업장을 의심하는 김선우 씨의 주치의 소견과 사뭇 달랐다. 동시에 김선우 씨와 가족들의 상처를 들쑤시는 일이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2024년 12월 11일. 선우 씨 부모님과 노동 활동가들이 스태츠칩팩코리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날. 회사가 기자들에게 뿌린 입장문에는 ‘유감’이란 말만 들어 있었다. ‘사과’나 ‘책임’이란 단어는 없었다. 그리고 ‘법적 대응’을 경고하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

실제로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사건을 최초 보도한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를 고소하고 민사소송을 걸었다가 나중에 취하했다.

지난해 12월 스태츠칩팩코리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선우 씨 아버지가 직접 발언했다. ⓒ셜록

‘문제적 기업’의 현장실습생 모집 홍보물을 일선 학교에 공문으로 전달한 부산교육청. 부산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지난 5월 20일 공문 발송 경위를 확인하고 취소를 요청하기 위해 교육감 면담을 진행했다.

김석준 부산광역시 교육감은 이날 “교육청 담당자의 감수성이 부족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불승인됐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며, “추후 해당 업체에 대한 공문을 발송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공문을 직접 발송했다고 밝힌 장학사 A에게도 연락했다. 그는 “기업(스태츠칩팩코리아)에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학생들의 근무 만족도가 나쁘지 않게 나오는 상황이고, ‘급여’ 조건이 괜찮아 관심 있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교육청이 스태츠칩팩코리아의 홍보물을 공문으로 전달한 것은 “홍보 목적이 아닌 진로 제시의 개념인데,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며, “향후 사기업에서 오는 공문은 별도로 안내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부 협의를 마쳤다”고 전했다.

“교육청과 학교에도 바랍니다. 아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고통을 받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연락 한번 없었습니다. 취업률에만 신경 쓰지 마시고 실습생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모니터링을 통해 학생들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지난해 12월 김선우 씨 아버지 기자회견 발언 중)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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