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는 기말고사가 끝나면 곧장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 전쟁’에 돌입한다. 전장은 보통 교무실이다. 학생이 직접 쓴 셀프 학생부를 들고 선생님 뒤를 쫓으면, 선생님은 웬만하면 이를 받아 키보드로 옮겨 적는다.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학생부를 만져주는 것이다. 이 전쟁의 암묵적인 룰을 정리하면 이렇다.

학생들은 최대한 부풀리고,
선생님들은 적당히 눈감아 준다

김석홍(가명) 선생님 또한 이런 사정에 빠삭했다. 김 선생님이 근무했던 경남의 A 자율고등학교에서는 아예 학생들에게 선생님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알아서 학생부에 들어갈 평가 기록을 작성해오도록 한 것이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김 선생님 메일함에는 자신이 가르쳤던 수학반 학생들의 자전 기록(?)이 속속 전송됐다.

자기소개서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사실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반드시 ‘선생님 시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3자가 관찰한 것처럼 묘사해야, 자기가 썼다는 사실이 탄로 나지 않으니까. 어쩌면 국어 실력만큼은 향상됐을지도 모른다. 1인칭 시점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꾸는 연습을 한 격이니.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자신의 학생부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 허란

김 선생님은 차마 부실한 내용을 그럴듯하게 꾸며주는 ‘마사지’까지는 할 수 없었다. 그냥 학생들이 써오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편이었다. 김 선생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5~6반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과목 선생님의 경우, 백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과목별 특이사항을 상세히 기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서울대에 수시 합격한 ㄱ학생의 학생부가 김 선생님이 최종 마감한 것과 다르게 기록된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우연히 확인한 것이다. 누군가 이전 기록을 지우고 학생부를 새로 쓴 격이었다.

애초에 ㄱ학생이 메일로 보내온 학생부도 ㄱ학생이 쓴 것이 아니었다. ㄱ학생 아버지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ㄱ학생의 수학 평가는, 아이에게 수학을 단 한 번도 가르쳐 본 적 없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었다.

서울대 입학생 학생부,
담당 교사 모르게 수정돼

하지만 김 선생님은 제 손으로 가르친 학생을 고발해 서울대에서 낙방시킬 수 없었다. ‘학생이 무슨 죄인가, 학교와 제도가 문제지’ 한탄하며 ㄱ학생의 입학을 멀리서 축하해줬다. 언론은 서울대 합격자 수를 점점 늘어나는 A학교를 모범사례로 치켜세웠지만, 김 선생님은 A학교의 민낯을 잘 알고 있다. A학교는 교육기관보다는 결과만 좋으면 그만인 입시공장에 가까웠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꼴이죠. 학생은 자신이 포장되기를 원하고, 학교는 좋은 입시 결과를 얻어 유명해지면 좋은 거고. 나쁜 마음만 먹으면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은 너무 좋은 먹잇감이에요. 교육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초·중등교육법 제25조에 따르면 학생부는 선생님이 쓰는 것이 옳다. 교육부가 낸 ‘2017학년도 학생부 기재요령’만 봐도 ‘학생부는 학생의 성장과 학습 과정을 상시 관찰·평가한 종합 기록이어야 함’이라고 적혀 있다. 임의 조작은 불법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5조(학교생활기록) ① 학교의 장은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人性)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평가하여 학생지도 및 상급학교(<고등교육법> 제2조 각 호에 따른 학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학생 선발에 활용할 수 있는 다음 각 호의 자료를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작성·관리하여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광주의 수피아여고에서는 학생부를 임의 조작한 혐의로 교장과 교사들이 경찰 수사를 받았다. 학생부 수정 권한이 없는 선생님이 성적이 우수한 10명의 학생 학생부를 수정한 것이 수사결과 드러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근원은 학생부 종합전형의 확대에 있다. 학생부가 입시 성패를 결정짓는 열쇠가 되면서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 모두 거짓말을 일정 부분 용인하고 있다. 학생부 한 줄 한 줄이 대학 입시에 영향을 주는 탓에, 수업 시간에 늘 엎드려 자던 학생도 학생부 상에서는 ‘노력형 인재’가 되기도 한다. 학생부 내용을 알아서 윤색해 주는 선생님은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인기가 좋다. 이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까지 떠돈다.

학교생활’기록’부가 아니라
학교생활’소설’부다

학생부 작성 요령이 적힌 안내문. © 셜록

학생들 손으로 넘어간 ‘학생부’

김석홍 선생님이 서울대를 찾은 날은 때마침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캠퍼스는 학과 잠바를 입고 공부하는 학생들로 분주했다. 김 선생님이 자신의 모교이자, 제자들에겐 꿈의 학교인 서울대를 찾은 건 졸업 후 처음이다. 1980년대 학번이니 근 30년 만이다. 지금은 자신이 다니던 과의 이름이 생소하게 바뀌었지만, 바늘구멍 같은 경쟁률은 지금도 여전하다.

김 선생님 시절의 대학은 책보다 최루탄 냄새가 더 잘 어울렸다. 서슬 퍼렇던 그 시절, 김 선생님은 사회 정의를 포기한 채 학업을 좇을 수 없었다. 거리로 나가 민주주의를 몸으로 배우고 일궜다. 졸업 후 선생님이 된 이후도 마찬가지다. 학원가에 있다가 뒤늦게 학교로 온 것도, 자신이 기득권 집안 자녀들을 다시 기득권에 올리는 데 일조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김석홍(가명) 선생님이 자신의 모교 서울대학교를 둘러보고 있다. © 허란

어느덧 김 선생님의 머리는 하얗게 변했지만 그때의 열정과 정의감은 여전하다. 내부자 입장에서 학종의 이면을 고발하고 싶다며 직접 <셜록>을 찾았다. 학종은 학생의 잠재력과 성장 과정을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전형이지만, 부모의 경제력이나 정보력에 따라 대입 결과가 차이나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이라는 오명이 붙어 있다.

학생부 종합전형,
‘깜깜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별명 지녀

학생부 종합전형은 복잡하고 모호하다. 대입 지원자의 교과 성적, 교내 수상, 교과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창의적 체험활동(동아리 활동, 탐구 활동 등), 자기소개서, 교사 추천서 등 10개에 달하는 항목을 정성적으로 평가해 합격자를 뽑는다.

해를 거듭할수록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2018년 대입 기준 4년제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비율은 23.6%, 주요 8개(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KAIST 포스텍) 대학만 따지면 54.3%에 이른다. 올해 서울대는 전체 정원의 무려 79.1%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뽑는다. 학생부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대, 올해 전체 정원
79.1% 학종으로 뽑아

© 셜록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김 선생님에게 자신의 10대 시절 학생부에 대해 회상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선생님은 입가에 웃음을 띠며 그때의 기억을 꺼냈다. 김 선생님이 기억하는 학생부는 ‘담임선생님의 엄준한 평가’였다.

담임 선생님은 보충수업을 땡땡이치고 근처 냇가로 물놀이를 하러 간 그를 혼내며 이 일이 학생부에 적힐 것을 예고했다. 여기서 성적은 변수가 되지 못했다. 당시 학생부는 아이들 손이 닿을 수 없는, 선생님만의 고유 영역이었다.

“(웃음)저는 모범생보다는 문제아에 가까웠어요. 학생부에 ‘준법정신이 부족하고 산만함’이라고 적혀 있어서 서울대 면접 때 교수님께 관련 질문도 받았습니다.”

“지금 같으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떨어지셨겠어요. 지금 서울대 수시는 100%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뽑는데…”

“오히려 그때 교수님이 솔직하다며 칭찬하셨어요. 교수님이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학문은 진실이잖아. 나는 네가 진실을 말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다시 곱씹어 보면 선생님들께서 ‘이 부분은 고치며 살아라’는 조언을 하신 것 같아요. 미사여구로 꾸며 놨으면 제 역사가 없어진 거겠죠.

김석홍(가명) 선생님이 재직한 A 고등학교에서는 학종 전형이 확대된 이후 ‘상위권 밀어주기’가 암묵적으로 행해졌다. © 허란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다. 애초에 나쁜 얘기가 학생부에 실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김 선생님이 교직에서 경험한 학생부 작성은, 학생들이 초고를 쓰고 선생님이 고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웃으며 이야기하던 김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제자들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표정이 굳어졌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제자들 학생부에 뒤에 감춰진 거짓과 온갖 편법에 대해 고백하기 시작했다.

‘밀어주기’ 성행 1:1 과외에 점수 올려주기까지

지방 학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될 만한 학생들’을 밀어주는 거죠. 온갖 상을 다 만들어서 주고, 학생부도 만져 주고, 내신 성적 올리는 일도 최대한 도와줍니다. 그런 게 싫어 학원가에서 학교로 왔는데, 학원보다 더한 곳이 학교입니다.

김 선생님의 고백은 놀라웠다. A학교는 학생부 내용을 윤색해 주는 것을 넘어 최상위권 학생들의 내신까지 관리했다. 사실 학생부 종합전형은, 말 그대로 학생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전형이지만 첫 번째 문턱은 교과 성적이다. 선생님, 부모, 사교육이 합심해 학생부를 화려하게 꾸민다 해도 학교 성적이 나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김석홍(가명) 선생님이 재직한 A 고등학교에서는 학종 전형이 확대된 이후 ‘상위권 밀어주기’가 암묵적으로 행해졌다. © 허란

이런 사정에 A학교 교장은 ‘될 만한 학생’ 리스트를 만들어 직접 관리했다.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 높은 학생들을 ‘밀어주기’ 한 것이다. 관리 대상 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지면 교장은 때때로 선생님들은 교장실로 불러 문책하기도 했다. 수학을 가르치는 김 선생님의 경우 관리대상 학생이 문과에 있다며, 이과에서 문과로 수업을 옮겨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교장, 선생님에게
특별 관리 대상 학생 위해
반 옮겨 수업하라고 지시

“(녹취를 들려주며) 교장이 교무회의에서 얘기한 내용이에요. 입학사정관에게 직접 들었다면서, 내신 원점수가 높아야 학교 평가가 좋다며 무조건 원점수를 올리고 했습니다.”

1:1 과외도 했다. 교장은 주요 과목 선생님에게 관리 대상 학생을 방과 후에 따로 불러 맞춤형 수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업료는 줬다. 학교에서 책정한 시간당 방과 후 수업료에 맞춰서 말이다. 그 돈이 학생들 등록금에서 나왔는지, 교육부에서 지급된 세금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모든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 ‘한 학생’을 위해 쓰였다는 점이다.

주관식 답안지 점수를 암암리에 올려 주기도 했다. A학교는 수학 주관식에 대한 명확한 배점표가 없어서 학생들 간 점수는 들쭉날쭉했다. 김 선생님은 그중에서도 관리대상 학생의 점수가 이상하게 높은 것을 보고 수학 부장에게 따져 물었지만, 부장의 대답은 말문을 막았다. 수학 부장은 “김 선생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답하고 김 선생님과 눈 맞춤을 피했다.

최상위권 학생 1:1 과외,
주관식 답안지 점수 올려주기도

“문제의 답안지를 쓴 학생은 결국 OO 대학에 입학했어요. 학교는 학생들이 자신의 주관식 답안지를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없게 되어 있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중하위권 학생들만 피 보는 거죠.”

김석홍(가명) 선생님이 재직한 A 고등학교에서는 학종 전형이 확대된 이후 ‘상위권 밀어주기’가 암묵적으로 행해졌다. © 허란

‘될 만한 학생’은
사실 입학 때부터 가려졌다

A학교는 입학생 정원의 일부를 지역균형 선발로 뽑는다고 공지했지만, 지역균형 선발자 수를 낮추려고 부단히 애썼다. 상대적으로 지역 학생들 성적이 전국단위 선발 학생들 성적보다 낮기 때문에 지역 입학자 수를 줄이려 한 것이다. 교장은 지역균형 선발의 지원자가 부족하면 전국 단위 지원자로 부족분을 채울 수 있는 점을 이용했다.

수법은 지역 학생의 성적표를 미리 파악해 거르는 것이었다. A학교는 지역 중학교에 공문을 보내 A학교에 원서를 쓸 학생의 학부모들을 상대로 설명회 개최해, 성적이 낮은 학생의 학부모에게만 “우리 학교에 지원해봤자 어차피 떨어질 것이다”라며 지원을 만류했다. 문제를 의식한 일부 학부모가 경남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해 뒤늦게 지원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아이들에게는 잊기 힘든 상처로 남았다.

거짓과 편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저는 고1 때, 1000명 중 800등 안에 겨우 들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태어났으면 서울대에 입학하지 못했을 겁니다. ‘될 만한 학생’으로 선택받지 못하기 때문이죠. 들어갈 때부터 싹이 잘려나갔을 겁니다.”

김 선생님은 교직에 들어온 후 자신과 같은 대기만성형 학생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학교 과정인 인수분해조차 못 하는 제자들을 제쳐 두고,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해 과외 수업을 해야 하는 신세였다.

자신처럼 뒤늦게 수학에 재미를 붙여 문과에서 이과로 전향하는 제자에게는 ‘대학 입학을 위해 그냥 문과에 남으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었다.

ⓒ 허란

혹자들은 그럼에도 학생부 종합전형이 생긴 이후 지방에 있는 학생들이 그나마 상위권 대학에 수월히 입학하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 정권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이준식 서울대 초빙교수는 “학종이 미래사회 대입의 주요 전형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선생님이 보고 느낀 학생부 종합전형은 부작용이 컸다. 애초 취지와 달리 ‘학생부 날조’, ‘상위권 학생 밀어주기’가 내부적으로 성행하고 있었다. 거짓과 편법, 부풀리기를 학생들에게 은밀히 가르친다고 우려했다.

대기만성 인재 불가능,
오히려 ‘거짓과 편법’
은밀히 교육하는 격

과연 서울대에 입학한 제자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편법을 써도 좋으니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다? 과장이더라도 나를 잘 포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학생부 전형은 너무도 많은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 고등학교에서 학생부를 정정한 건수는 모두 18만 2405건. 이 중 몇 명의 또 다른 ㄱ학생이 존재할까. 누구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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