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를 고의로 안 주는 ‘나쁜 부모‘의 얼굴 사진과 신상(이름, 나이, 주소 등)을 공개한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에 대해 법원이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 사진과 직업 정보를 삭제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따라 양육비를 안 주는 부모들의 유사 소송이 예상되는 등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폐쇄 위기에 놓였다.

서울중앙지방법 제51부민사부(재판장 한경환)는 15일 배드파더스 자원봉사자 구본창 씨에게 사이트 게시글 중 양육비 미지급자 김OO(51)의 얼굴 사진과 직업정보(김OO어학원 원장)를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다만, 이름과 나이, 거주지, 학력 등의 정보는 계속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김 씨는 지난 9월 1일 구 씨와 전 부인을 상대로 법원에 ‘게시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가처분은 법원의 재판을 통해 어떤 행위를 임시로 요구하는 걸 뜻한다.

김 씨는 가처분 청구서에서 “경쟁학원이나 학부모들에게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일부 노출되는 피해가 발생하여 경력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양육비 미지급자 김OO 씨의 신상은 올해 2월께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됐다. 김 씨는 2017년 5월 아내와 이혼하면서 두 아이에 대한 양육비 100만 원을 매달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김 씨는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다. 2020년 12월 기준, 김 씨가 안 준 양육비는 약 2000만 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부는 양육비 미지급자인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2019년 11월 15일, 구본창 <배드파더스> 자원봉사자가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 이행 촉구를 위한 시위를 하고 있다. ⓒ셜록

재판부는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공익성을 띄고 있지만,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무제한적으로 공개할 권한은 없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사회 전반적으로 이혼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이혼 후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및 그들의 미성년 자녀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가, 사회적으로도 해결하여야 할 공익적인 문제“라고 전제한 뒤 “그렇다고 양육비 미지급 대상자에 대한 무제한적인 신상정보 공개가 모두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이름, 나이, 거주지, 학력 외에 얼굴 사진과 구체적으로 특정이 가능한 직업까지 공개한 건, 피해의 최소성과 법익 균형성을 갖추지 못하여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이름과 나이, 거주지, 학력, 추상적인 직업 정보를 공개하는 정도만으로도 양육비 미지급자를 충분히 특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법원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성범죄자나 고액, 상습체납자의 신상 공개 제도와 배드파더스를 비교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아닌 사인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닌 양육비 미지급을 이유로 얼굴 사진과 직업정보까지 공개하는 건 양육비 미지급자의 인격권, 명예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로 배드파더 사이트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앞으로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유사 소송으로 얼굴 사진과 특정 직장 정보가 삭제되면,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더 이상 양육비 지급 압박 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본창 배드파더스 자원봉사자는 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그동안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 구체적인 직업을 공개해서 양육비 문제를 해결해왔다“며 “(양육비를 안 주는 부모의) 얼굴 사진을 내리라는 건 ‘사이트를 운영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고 밝혔다.

구 씨는 “보통 양육비 미지급자는 위장전입, 해외도피, 잠적 등으로 거주지조차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얼굴 사진을 내리면 동명이인 문제 등이 생겨 신상공개 효과가 없어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손민희 양육비총해결연합회 부대표는 “양육자들은 양육비를 받기 위해 수년간 여러 소송 끝에 마지막으로 절박한 심정으로 배드파더스를 찾는 경우가 많다“면서 “양육비 미지급자가 정확하게 누구인지 특정을 해야 양육비를 받아낼 수 있는 상황에서 얼굴 사진은 그동안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됐다“고 말했다.

손 부대표는 “배드파더스 사이트 존재 이후 미흡한 양육비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 21대 국회에서 양육비 이행강화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법원이 배드파더스 사이트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무시한 채 양육비 미지급자의 명예를 보호하는 결정을 내려, 결국 아이들의 생존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씨의 법률대리인 남성욱 법무법인 진성 대표변호사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대해 “법원이 고액, 상습체납자의 명단 공개 제도와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비교를 했는데, 양육비 미지급도 미성년 아동에 대한 유기범죄로서 그에 상응하는 죄가 아닌가 싶다“며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출국금지, 신상공개, 형사처벌로 양육비 미지급자를 강하게 제재하는 법안이다.

양육비 미지급자는 내년 7월부터 가정법원의 감치명령 결정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1년 이내 자녀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는다.

여성가족부는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있다. 신상에는 실명, 나이, 직업과 양육비 채무액, 주소, 근무지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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