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이금수(가명)는 성폭력 사건에 연루됐다. 2017년 10월 26일, 피해자들은 이 씨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온·오프라인에서 성소수자 운동 등을 해온 인물이다.

고진희(가명)는 친구 이금수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고 씨는 2017년 1월경 한 모임에서 이 씨를 처음 알았다. 그는 이 씨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글에 대응하기 위해 사과문을 작성하는 일을 도와줬다.

이 씨는 고 씨가 도와준 사과문을 2017년 10월경 해당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회원 강수진(가명)과 관련해 동의를 구하지 않았던, 심지어는 불편하고 수치스럽게 느끼는 스킨십을 억지로 했었던 것 같습니다. 김민혜(가명)와 관련해 제 스킨십으로 인해 불쾌했다거나 불안하게 느꼈다는 말씀을 들은 이후부터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밖에도 제가 지정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같은 침대에 눕거나 손목을 잡는 등의 행동이 부적절한 스킨십을 시도했던 것이었고, 이로 인한 수치심을 느꼈다는 지적에 대해 현재 깊이 반성하며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해자 이 씨의 반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인터넷에 게시한 사과문을 돌연 삭제했다. 고 씨는 화가 났다. 친구로서 성폭력 가해자의 사과문 작성을 도왔는데, 이 씨가 이를 일방적으로 삭제했기 때문이다.

고 씨는 추가 피해를 우려했다. 다수의 성폭력 사실을 부인하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 씨의 모습이 신경쓰였다. 고 씨는 2017년 11월 10일 닉네임 ‘아자'(가명)을 이용해 이 씨의 SNS 게시글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이금수 = OOO =이금수 = OOO = OOO =성폭력 가해자다”

이후, 고 씨는 이 씨가 올린 게시글에 동일한 내용의 댓글을 총 44번 남겼다. 고 씨의 폭로는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그는 2017년 11월 11일 본인 SNS에 게시글을 올렸다.

“OO대 의과대학 본과 4학년 이금수 학생은 성폭력 가해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심판’ 청구인 <셜록> 이명선 기자. ⓒ주용성

의대생 이 씨는 친구 고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허위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 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방법원(법관 이진용)은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 씨에게 2019년 1월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허위인지, 사실인지 여부는 검찰이 증명해내야 한다는 근거를 무죄 이유로 들었다.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그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다. (대법원 2009도12132 판결 등 참조). (중략)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 고 씨가 적시한 사실이 허위라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한 증거가 없다.”

검찰은 곧바로 항소했다. 동시에 ‘공소장 변경 카드’를 꺼냈다. 공소장 변경은 검찰이 법원의 허가를 얻어 공소장에 기재한 공소사실 또는 적용법조 등을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검찰은 2심에선 이금수의 성폭력을 사실로 보았다. 검찰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고 씨의 범죄사실에 추가하는 내용으로 공소장 변경했다.

결국 2심에서 고 씨의 운명이 갈렸다. 법원은 고 씨의 행동을 유죄로 뒤집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최규현)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적용받는 고 씨에게 벌금형 100만 원에 집행유예 1년을 2019년 8월 22일 선고했다.

“피고인 고 씨가 게시한 글은 오로지 이 씨가 성폭력 가해자라는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피해자에게 사과나 해명을 요구한다든지 글을 게시한 이유나 배경에 관한 내용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 고 씨가 글을 게시한 주요 목적이나 동기는 공공의 이익이라기 보다는 피해자 이 씨를 비방하는 데 있다고 판단된다.”

법원은 1심에선 거짓을 퍼트린 게 아니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했으면서, 2심에선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고 씨의 행동을 유죄를 판단했다. 이렇게 사법부는 성폭력 사실을 알린 고 씨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진실을 말해도 죄로 인정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쉽다.

실제 피고인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함정에 빠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먼저, 앞서 살펴본대로 검찰이 ‘허위사실 명예훼손’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한 경우다.

피고인이 거짓을 말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재판 과정에서 사실을 알린 걸로 밝혀져도,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따라, 진실을 알렸음에도 충분히 유죄가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직권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인정하는 경우 역시 피고인이 유죄를 선고 받을 확률은 높아진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심판’ 청구인 <셜록> 이명선 기자. ⓒ주용성

최근에 나온 판결들만 봐도, 검찰의 공소장 변경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례는 흔하다.

A와 B는 아파트 이웃이다. B는 윗층 1004호(각색)에, A는 그 아래층에 살았다. 이들은 평소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로 자주 부딪혔다. 아래층에 거주하는 A가 한국환경공단에 층간소음 상담을 신청할 정도였다.

A는 결국 참지 못했다. 그는 2017년 6월 1일경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게시판에 글을 써 게시했다.

“1004호(각색), 정말로 늦은 시간까지 밑에 (층에) 있는 사람한테 배려 좀 해줄 수 없나요. 아이가 10시 넘도록 뛰지를 않나, 어른이 쿵쿵 걸어다니질 않나, 정말로 인간답게 살자구요.”

B는 본인과 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A를 고소했다. 의정부지방검찰청은 허위사실 명예훼손죄 혐의로 A를 기소했다.

하지만 의정부지방법원(법관 김성래)은 2018년 10월 25일 “피고인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다거나, 허위를 인식하고 게시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면서 A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검찰은 항소와 함께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검찰은 A의 범죄사실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추가했고, 법원은 이를 허가했다.

결국 2심에서 A는 유죄로 인정됐다. 2019년 9월 27일, 의정부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신명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A에게 벌금 30만 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두 번째 사례도 마찬가지다. C와 D는 중·고등학교 동창 사이다. C는 고등학교 때부터 반장을 해 졸업 후 30년 동안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반창회를 주도했다. D도 이 모임에 종종 참석했다.

C는 2016년 동창회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친구 E가 본인의 남편과 D가 불륜 사이라고 털어놓았다. 당시 D와의 불륜을 이유로 E가 남편에게 제기한 이혼 및 재산분할 등의 조정신청이 진행 중이었다.

C는 다음날인 2016년 12월 31일, D가 운영하는 제과점을 동창들과 함께 찾아갔다. 그는 제과점 밖으로 D를 불러낸 후 이렇게 소리쳤다.

너 때문에 친구네 부부가 이혼하게 되었으니 그만둬라. 다 알고 왔다. 그렇게 살지 마라.”

제과점 직원들과 D의 아들 등이 C의 외침을 들었다.

D는 본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C를 고소했다. 의정부지방검찰청은 허위사실 명예훼손죄 혐의로 C를 기소했다.

하지만 의정부지방법원(법관 탁상진)은 2018년 7월 4일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적시된 사실이 허위라는 걸 피고인이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C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고, C의 공소사실 중 ‘허위’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공소장 내용을 변경했다. 죄명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바꿨다.

무죄 판결은 2심에서 뒤집혔다. 의정부지방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박사랑)는 2019년 8월 23일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C에게 벌금 3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C의 상고로 재판은 대법원까지 갔다. 그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관련 유죄 판결은 2019년 11월 14일 결국 확정됐다.

헌법재판소 ⓒ주용성

이렇게 같은 범죄사실을 두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따라 상급심에서 유무죄가 뒤바뀌는 사례는 많다. ‘명예훼손 피의자’들도 이를 근거로 헌법재판소에 ‘사실적시 명예훼손’ 위헌 소송을 청구했다.

거짓을 말하지 않아 무죄로 판단한 1심, 상급심에선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하는 사법부의 결정. 이 모순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걸까?

고 씨와 같은 ‘명예훼손 피의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유다.

(본 기사는 김보경, 최유진 기자가 함께 작성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