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물을 찾기 위해 길이 4cm 금속 열쇠를 들고 서울 서대문우체국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과거로 향하는 느낌이 든다. 고지서가 아닌 흰색 편지봉투를 우편함에서 꺼내 확인하는 일은 이젠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시대에 뒤쳐졌거나 쓸모없는 일을 한다는 감정은 아니다.  이미 누군가는 공익감사청구서를 출력해 이름, 연락처, 주소, 직업 등을 자필로 적고, 그걸 편지봉투에 넣은 뒤, <셜록>의 사서함 주소를 써서 우체국이나 빨간 우체통까지 갔을 테니 말이다. 

<셜록>은 금융감독원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기 위해 사서함을 개설했다. 우편물을 찾기 위해선 저 열쇠로 사서함을 열어야 한다. ⓒ셜록

이메일, 문자메시지가 공기처럼 익숙한 오늘날, 이런 과정을 복고주의나 아날로그 감수성이란 말로 포장하기도 좀 그렇다. 사실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그런 일을 <셜록> 유료구독자 ‘왓슨‘과 독자들에게 부탁하고선, 일주일에 한 번 우체국 가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다.

<셜록>은 은행권 채용비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 금융감독원에 대한 공익감사청구를 추진한다고 지난 1월 19일 밝혔다. 왓슨, 독자와 함께 하기 위해 사서함도 개설했다.

<셜록>이 개설한 ‘사서함 250호’는 서대문우체국 지하 1층에 있다. 버스에서 내려 우체국까지 걸어가던 첫날,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그렇지 그 귀찮은 일에 과연 몇 명이나 참여했을지, 다른 사서함은 우편물이 가득한데 250호만 텅 비어 있는 건 아닌지… 여러 걱정이 들었다.

우체국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으나, 은색 금속 열쇠로 사서함을 여는 손맛은 의외로 좋았다. 물론 그 손맛은 사서함을 열고 수북하게 쌓인 우편물을 직접 확인하는 ‘눈맛‘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 귀찮은 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서울 마포우체국 ‘사서함 250호’에서 우편물을 찾아온 첫날, 셜록 구성원과 함께 편지봉투를 개봉했다. ⓒ셜록

사서함에서 우편물을 찾은 첫날, <셜록> 구성원들이 모여 함께 편지봉투를 개봉했다. 우리는 이런 말을 연발했나.

“세상에나!”

온 가족이 참여한 우편물이 있는가 하면, 수원의 한 왓슨은 포스트잇에 응원의 메시지도 적어줬다. 취업준비생만 은행권 채용비리 문제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공익감사청구서를 보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한 왓슨은 포스트잇에 짧은 응원 메시지를 적어 공익감사청구서와 함께 보냈다. ⓒ셜록

제주도의 어떤 주민은 ‘익일특급’ 우편으로 참여했고, 경북 의성에선 투명 플라스틱 파일에 담긴 청구서가 도착했다.

대구 영남공업고등학교에선 공익감사청구서 40장이 한꺼번에 날아왔다. 겨울방학 시기란 걸 감안하면 높은 참여 수치다.

영남공고는 <셜록>과 인연이 깊다. <셜록>은 영남공고 재단의 전횡과 비리를 2019년 약 6개월간 보도했다. 여러 교직원, 학생의 노력으로 비리 재단은 물러났고 학교는 제 자리를 찾았다.

제주도에서 ‘익일특급’으로 날아온 공익감사청구서. ⓒ셜록
영남공고에선 교직원 40여 명이 참여한 공익감사청구서가 날아왔다. ⓒ셜록

영남공고 교직원뿐만 아니라, 백제병원 공익신고자와 취재원, 배드파더스와 동물권단체 <케어> 취재원 등도 이번 공익감사청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한때 탐사보도 대상이자 취재원이었던 당사자들이 다른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선순환이 진행되고 있다.

벌써 200여 장의 공익감사청구서가 쌓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청구서 한 장 보내기 위해 우체국까지 왕래했다는 건, 그만큼 공정한 사회와 자기 책임을 다하는 공공기관을 기대한다는 뜻일 거다.

어쩌면 감사원은 “설마 <셜록>이 공익감사의 최소 요건인 ‘자필 감사청구서 300장’을 모을 수 있겠어?“하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부정입사자들을 정리하지 않는 은행,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금융감독원은 “설마 감사원이 우릴 감사하겠어?“하며 <셜록>의 시도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셜록>이 추진하는 일, 은행권 부정입사자 문제 해결에 가만히 있는 금융감독원에 대한 공익감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 바꾸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곤란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1차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 감사원, 금융감독원, 채용비리를 저지른 은행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감탄사가 나오게 하고 싶다. 이렇게 말이다.

“세상에나…. <셜록>이 정말 공익감사청구 요건을 채웠네!”

<셜록>은 공익감사청구 최소 요건인 ’300장’을 훨씬 초과하는 청구서를 모을 예정이다. 요건을 채운다고 금융감독원에 대한 감사가 100% 진행된다고 보장할 수 없지만, 최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싶다.

어려운 일에 자꾸 도전해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한 일이 된다. 요즘 일부 은행에서 부정입사자를 내보내고 있다. “그게 되겠어?” 했던 일이, 정말로 되고 있다. 

<셜록>은 2021년 2월 말일까지 왓슨과 독자 여러분의 공익감사청구서를 받을 예정이다. 될 때까지, 가는 거다. 아래 ‘공익감사 청구 참여하기’에서 청구서를 다운 받은 뒤 아래 사서함 주소로 보내면 된다. 꼭 자필로 쓴 뒤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공익감사 청구 참여하기

<셜록> 사서함 주소

(04156)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89 서울마포우체국 사서함 250호 진실탐사그룹 셜록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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