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어느 늙은 라이더의 죽음’ 첫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고인과 유족의 처지가 딱한 것에는 공감하나, 교통법규를 위반한 것이 명백한 이상 산재는 인정받을 수 없는 일이다.”

독자들은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듯하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다 사망한 라이더, 남편을 대신해 식당에 취직한 아내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교통법규을 어겼으니 산재 불승인은 당연하다는 댓글이 많았다.

독자들의 생각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과 맞닿아 있다. 해당 법률 내용은 이렇다.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일하다 사망한 배달 라이더 주희재(가명. 당시 54세) 씨의 교통법규 위반은 정말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에 해당할까?

주 씨는 2018년 6월 20일, 김밥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다 잡월드사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진입이 금지된 좌회전 차선 쪽으로 이동하다가 뒤에서 달려오던 차와 충돌했다.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은 주 씨의 불법 차선 변경이 사고의 원인이라며 산재 불승인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는 보편타당한 합리적 결정일까?

라이더유니온의 조합원들이 4월 2일날 열린 배달 라이더 노동권 보장을 위한 집회에 참석하여 쿠팡과 배달의민족 회사 측에 안전배달료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셜록

다른 사례를 보자.

한 주식회사 영업부 직원 A 씨는 자주 출장을 갔다. 2018년 10월 11일 그날, A 씨는 서울에서 출발해 경북 의성군과 안동시에 있는 업체들을 갔다가 울산으로 이동했다. 날씨 맑은 낮 12시 45분이었다.

A 씨는 오토바이로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있는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의 오토바이가 진입한 고가차로의 끄트머리는 내리막과 우측 급커브 구간이었다. 오토바이 속도는 빨라졌고 A 씨는 중앙선을 침범했다. 도로는 왕복 2차로. A 씨는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차와 충돌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 씨의 중앙선 침범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12호에 해당하는 중과실이고, 이것이 사고의 원인이라며 산재를 불승인했다. 결과는 법원에서 뒤집혔다.

“망인은 이 사건 회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출장 중 발생한 이 사건 사고로 인한 망인의 사망은 망인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망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망인의 사망은 산재보험법상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사실 해당 사건은 사고가 난 그 시점을 찍은 블랙박스나 CCTV가 없다. 고인이 어떤 이유로 중앙선을 침범했고, 어떤 속도로 오토바이를 운전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A 씨가 중앙선을 침범해 교통사고가 발생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법원은 사고의 구체적인 경위가 밝혀지지 않았고, 해당 도로 구조가 위험하다며 사고 책임이 오로지 A 씨의 중과실에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A 씨의 사례처럼 ‘교통법규 위반 = 산재 불승인’이 늘 성립하는 건 아니다. 법원 판결문대로 사건 사고 발생이 “오로지” 또는 “주로” 망인의 범죄행위로 발생해야 산재가 불승인 된다.

불법으로 차선을 변경하다 사망한 라이더 주희재 씨와,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당한 A 씨. 둘은 모두 일을 하다가 교통법규를 위반해 변을 당했지만, 법원의 판결은 정반대였다. 주목할 점은 같은 재판부가 두 사건을 다르게 판단했다는 점이다.

A 씨에게 산재를 인정한 재판부는 9개월 뒤에 라이더 주희재 씨에겐 산재를 불승인했다. 둘 모두 교통법규를 어겼는데, 무엇이 산재 승인과 불승인을 갈랐는지 명확한 이유와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다음 사례를 보자.

이번 사건은 오토바이나 차량 운전자가 아닌, 보행자 과실로 인해 발생한 교통사고다.

깜깜한 새벽 3시, 주식회사 영업소에서 과장이었던 B 씨는 3차 회식을 마치고 거나하게 취했다. 부서 이동한 사원의 환영식 겸 팀 회식을 겸하는 자리였다.

1차에선 7명이서 소주 10명에 맥주 5병, 2차에선 4명이서 소주 6병, 마지막 3차에선 팀장과 B 씨를 포함한 3명이서 맥주를 마셨다.

B 씨는 과장으로서 만취한 팀장을 숙소까지 데려다 줬다. 무사히 팀장을 숙소에 데려다준 뒤 B 씨는 횡단보도를 건너 본인의 숙소로 가려 했다.

팀장 못지않게 만취한 B 씨는 편도 3차로의 도로에서 무단 횡단을 하다 1차로에서 달리던 차에 치였다. 그는 비장파열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로 2019년 3월 15일 새벽 3시에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사고가 발생했던 2, 3차 회식이 “사업주의 지배 관리 하에 있는 회식”으로 보지 않아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팀장을 데려다주고 숙소로 향하던 길 역시 업무의 연장선으로 보았다.

업무와의 연관성은 인정되지만, 어쨌든 B 씨는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B 씨가 회식 자리에서 만취하여 주의능력이 흐려졌다고 보아 사고와 업무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배달 노동자 중에서도 법을 위반하여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산재를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C 씨는 중국집 배달 노동자였다. 더운 6월, 배달하느라 고생하는 배달원들을 위해 사장이 치킨과 맥주를 샀다.   

밤 10시쯤, 사장은 한 명당 맥주 500cc 한 잔을 주문했고 술자리는 1시간 30분간 이어졌다. 술자리는 자정 즈음에 끝났다. C 씨는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강서구 마곡역사거리를 지났다. 신호등은 ‘빨간색’이었다. 그럼에도 C 씨는 그대로 직진했고, 오른쪽에서 오던 승용차에 충돌해 사망했다. 2016년 7월 18일 새벽에 일어난 일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술자리 자체를 회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과속으로 운전하다 신호위반으로 사망한 건 출퇴근 재해 법리로 인정할 수 없어 산재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결과는 법원에서 뒤집어졌다. 

사장이 당시 주간 업무를 마친 모든 배달 직원들에게 제안한 술자리는 ‘사업자가 주관한 행사’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의 음주 운전. 각자 맥주 500cc 한 잔을 받은 것까진 확인되지만, 당사자가 사망한 관계로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은 이루어지지 않아 C 씨가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는 알 수 없다. 술자리에 있던 사장은 이렇게 진술했다.

“C가 이 사건 모임에 오토바이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설령 가져왔어도 술을 먹으면 두고 갈 줄로 알았습니다.”

음주 측정은 안 됐지만, 어쨌든 C 씨의 신호위반이 사고 원인인 건 분명하다. 법원은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인한 “범죄행위”는 중과실에 의한 교통사고 등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했다. 즉, 신호 위반을 중과실로 보지 않았다. 

정리를 해보자.

배달 라이더 주희재 씨는 배달을 마치고 가는 길에 불법 차선 변경을 하다 뒤에서 오던 차와 충돌했다. A 씨는 오토바이로 출장을 가던 길에 중앙선을 침범하여 사고를 당했다. B 씨는 회식 끝나고 본인 숙소로 가는 길에 무단횡단을 하다 차에 치였다. C 씨는 회식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신호를 위반하여 사고를 당했다.

네 사건 모두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명백하다. 그런데 주희재 씨의 차선변경만 범죄행위로 간주되어, 그의 죽음은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주희재 씨 사건 판결문 중 한 대목을 보자.

“이 사건 사고는 망인의 업무 수행 중에 발생한 것이기는 하나 망인이 좌회전차로로 진로변경이 금지되어 있는 도로에서 위법하게 진로변경을 하다가 발생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사고가 업무수행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주희재 씨의 차선 변경은 범칙금 2만 원에 해당하는 불법 행위다. 안전운전의무 위반까지 합쳐도 그가 납부해야 할 범칙금은 5만 원에 불과하다. 이런 주 씨의 좌회전은 정말 산재도 인정받지 못할 만큼 용서받기 힘든 범죄일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2.5 단계 방역 조치’가 시행된 2020년 8월 30일 서울의 한 도로에서 배달 라이더가 잠시 정차해 있다. ©연합뉴스

사실 관계를 파악해야 하는 국가기관은 그가 급하게 진로를 변경했던 이유를 조사하지 않았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에 소속된 근로감독관이 현장을 나가 조사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교통사고 등 재해 형태만으로 재해조사 생략 여부를 판단하지 않도록 유의하란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음식점 고용 배달노동자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재해조사를 진행한 사례는 단 두 건에 불과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 참고)

국가가 확인하지 않은 사실관계를 <셜록>이 대신 알아봤다. 유가족의 양해를 구해 고인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사고 나기 30분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곳은 분당 찜닭 음식점. 그 뒤에 주문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을까. 하지만 해당 음식점에 확인한 결과, 이후 주문은 없었다. 사고 나기 전 유의미한 문자나 메신저 기록은 없었다.

이번엔 디지털 포렌식 업체에 핸드폰을 맡겨 주희재 씨가 사고 현장에서 좌회전이나 유턴한 경향이 파악되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오래된 핸드폰 기종이 문제였을까. 그렇게 분당의 음식점과 주택가, 아파트를 누비고 다녔지만 그의 과거 흔적은 전화기에 남지 않았다.

산재심사위원회는 주희재 씨의 산재를 불승인하면서 그가 “다른 배달을 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근거를 들었다. 라이더의 노동은 배달할 때만 인정되는 것일까? 지난 3월, 분당 정자동 일대에서 만난 라이더는 이렇게 반박했다.

“배달할 때만 일입니까?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도 노동의 과정이고, 다른 콜을 받기 위해 식당가로 이동하는 것도 일이죠. 고인이 왜 좌회전 차선으로 붙었겠어요. 잡월드사거리에서 유턴을 하면 식당가로 빨리 돌아올 수 있거든요. 그래야 또 배달을 나가죠.”

그렇다고 배달 라이더들이 법령 위반으로 인해 산재가 발생할 경우 100% 보상해달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아래는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의 말이다.

“산재는 기본적으로 무과실책임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즉, 노동자가 실수를 저질러서 사고를 당해도 노동자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산재는 사보험과 달리 노동자와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로가 작업장인 배달 라이더들에게 교통 법규 위반 행위를 엄밀하게 따질 경우, 무과실책임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산재의 의미가 퇴색된다.”

이어 박 위원장은 “공무원연금법에서 중과실로 질병, 부상, 장해가 발생했을 경우 급여액의 50%를 지급하듯이 라이더들도 중과실 책임이 있을 경우 똑같이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이 늘고 배달 라이더도 늘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에만 전국에서 활동하는 라이더는 13만 명이 넘었다.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영향평가 결과발표 자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라이더들이 도로를 달린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배달 라이더가 없으면 밥도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려운 시대.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라이더는 점점 늘고 있다.

2017년엔 퀵서비스 기사 가운데 교통사고로 산재를 신청한 221건 중 11건이 불승인되었고, 2018년엔 318건 중 8건, 2019년엔 570건 중 58건, 2020년엔 1,047건 중 130건 불승인되었다. 즉, 산재 불인정 비율이 2017년엔 5.0%였는데, 2020년엔 12.4%로 증가했다. (근로복지공단, 2017~2020년 퀵서비스 관련 산재 현황)

4화는 고용노동부 내부에서도 문제가 제기된 ‘법령위반 시 발생한 사고의 재해 인정 기준’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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