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꾸고, 우연히 마주한 충격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삶을 바꾼 두 장면은 미국 뉴욕 빈민가의 허름한 벽과 번화한 거리에서 펼쳐졌다.

치안이 좋지 않아 어두운 길을 나서는 게 주저되는 뉴욕 브루클린의 밤이었다. 흡연 욕구는 높았으나 하필이면 담배가 떨어졌다. 영화를 공부하던 이하 작가는 용기(?)를 내 거리로 나갔다.

얼마쯤 걸었을까. 큰 총을 든 거대한 남자가 당당한 모습으로 허름한 벽에 나타났다. 길 건너편 2층 집에서 누군가 빔 프로젝트로 쏜 이미지였다. 담배를 잊고 한동안 이미지를 바라봤다. 벽에 새겨진 남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어이, 거기 깡패. 당신 여기에서 허튼 짓 하지마. 이 거리 안전은 내가 지킨다.”

이하 작가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저 사람이 지키고 있으니 이 거리에서는 별일이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빔 프로젝트를 쏜 사람이 의도했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게 바로 세상과 소통하는 예술이구나’ 하는 성찰도 얻었다.

그 이후, 이하 작가는 삶의 방향을 틀었다. 영화 공부를 접고 그림을 시작했다.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건지도 모른다. 이하 작가는 대학원에서도 미술을 전공했으니까.

두 번째 충격은 뉴욕 번화가에서 펼쳐졌다. 미국 대선이 한창이던 2008년 겨울이었다. 키 작은 미국인 꼬마들이 이하 작가를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뭔가를 건넸다. 오바마 얼굴이 새겨진 배지였다. 왜 이런 걸 나눠주느냐고 이하 작가가 꼬마들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오바마를 지지합니다.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요. ‘오바마 배지’는 저희들 돈으로 제작했어요. 오바마 지지를 부탁합니다.”

주변을 보니 음악에 맞춰 춤 추면서 오바마 선거운동을 하는 또래 아이들이 보였다. 선거연령에서 한참 모자란 10대 청소년들이었다. 누구나, 나이와 상관없이, 거리에서 정치 견해를 밝히고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

ⓒ 이하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하 작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청소년의 정치적 활동을 불경스럽게 여기는 곳이 한국이니까. 대선이든 총선이든, 모든 선거에서 시민은 ‘닥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곳이 한국이니까.

이하 작가는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로 오바마, 푸틴, 후진타오, 카다피, 빈 라덴, 김정일 등을 그렸다. 일종의 풍자였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도 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하 작가는 나치 옷을 입은 ‘독재자 이명박’ 그려 2010년 12월 서울 종로에 붙였다. 종로가 뒤집어졌다. 지난 2017년 4월 17일 서울 우이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하 작가는 그날의 기억을 풀어냈다.

“포스터를 붙이니까 사람들이 ‘와, 쥐박이다’ 하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사진을 찍더라고요. 시민은 그림을 보면서, 나는 환호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죠. 계속 이런 예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어요.“

이하 작가는 남쪽의 박정희, 북쪽의 김일성을 몸은 하나되 머리가 둘인 샴쌍둥이로 그리기도 했다. 이걸 거리에 붙였더니, 한 노인이 곧바로 찢어버렸다. 이하 작가는 전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다는 전두환을 그림으로 풍자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짜 큰 문제는 박근혜를 풍자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제18대 대선을 약 6개월 앞둔 2012년 6월이었다. 이하 작가는 당시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를 백설공주로 그렸다. 백설공주가 든 독사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얼굴을 새겼다.

ⓒ이하

이하 작가가 이 그림을 부산의 한 버스정류장에 붙일 때였다. 길을 달리던 택시 한 대가 멈췄다. 택시에서 내린 기사가 백설공주 그림과 이하 작가를 번갈아 바라봤다. 잠시 뒤 택시기사가 한마디 했다.

“좋은 일 하시네요! 이거 직접 그렸어요? 참 훌륭한 분이십니다. 이번 대선에선 박근혜를 뽑아야죠!”

그는 이하 작가를 당시 새누리당 당직자, 혹은 박근혜 지지자로 여겼다. ‘독사과를 든 백설공주’ 그림을 박근혜 지지 표현으로 본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한 중년 여성이 백설공주 그림을 찢어버리기도 했다. 박근혜 지지자로서 그림을 불쾌하게 여긴 것이다. 같은 그림을 두고도 이렇게 반응이 달랐다.

얼마 뒤, 이하 작가는 공직선거법을 어겼다며 수사기관에 고발 당했다. 시민이, 예술가가, 권력자 풍자 그림을 그려 게시할 수도 없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박근혜 풍자 그림을 거리에 붙였다고 선거법 위반이라니, 그런 법이 있다는 걸 누가 알겠습니까? 민주주의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놀라운 법이에요. 미국에서는 꼬마들이 오바마 얼굴이 새겨진 배지를 시민에게 나눠주는데, 왜 우리는 그런 게 다 불법입니까?”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선거법 제93조 1항은 이렇게 규정돼 있다.

“누구든지 선거일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이하 작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참을 수도 없었다. 표현의 자유를 막는 법과 제도에 순응하는 건 예술가에겐 치욕이었다. 대선을 코앞에 둔 2012년 11월, 이하 작가는 두 번째 작업을 시작했다.

이하 작가가 2012년 대선 때 그린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하 작가는 두 그림을 외부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법정에 섰다. ⓒ 박상규

이번 주인공은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의 얼굴을 반씩 합쳐서 한 인물로 그렸다. 선거법 위반이란 걸 알면서도 이 그림을 서울과 광주에 붙였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두고 기싸움을 할 때였잖아요. 내 정치적 지향과 양심대로 그림으로 표현을 했어요. 두 후보 모두 허튼 짓 하지 말고 시민의 뜻에 따라 단일화를 하라, 그런 마음을 표현한 그림이에요. 비슷한 머리카락 색깔, 같은 나비넥타이.. 단일화를 촉구한 그림이에요.”

박근혜를 풍자한 ‘독사과를 든 백설공주’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를 촉구한 그림을 외부에 붙인 행위는 모두 선거법을 어긴 불법행위가 됐다. 이하 작가는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국민참여재판 법정에도 섰다.

작가로서 권력자 얼굴을 그려 외부에 게시했는데, 이걸 법으로 심판하겠다니. 참담하고 슬펐다. 이하 작가는 A4 여섯 장에 이르는 최후변론문을 준비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이 문서를 끝내 읽지 못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하 작가는 눈물을 흘리며 판사와 배심원들에게 참담한 심정을 말했다.

“사막 한가운데 나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모래폭풍이 몰아치는데, 도망칠 곳도 없고. 약 5분 동안 미친놈처럼 말을 쏟아냈어요.”

눈물로 호소한 뒤에야 이하 작가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배심원들은 박근혜 후보 풍자한 그림을 게시한 행위에는 1대8로,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한 그림 게시 행위에는 4대5로 무죄를 결정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다. 2014년 6월 12일, 대법원은 이하 작가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어린이도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하는 미국에서는 대선 때만 되면, 후보를 소재로 한 다양한 상품(굿즈)이 쏟아져 나온다. 각 후보 캠프에서 굿즈를 팔아 후원금을 모으기도 한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민주당 후보 측은 연설하는 힐러리 입 부분을 병따개로 만들어 팔았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가 새겨진 강아지용 스웨터를 내놨다.

미국 시민은 ‘힐러리를 지지한다’는 글을 적어 자기 집 앞에 내걸거나, 트럼프 지지를 상징하는 모자를 자유롭게 쓰고 다녔다. 일상에서 자유롭게 정치 견해를 표출하고,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해도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이하

한국에서 이 모든 행위는 수사기관에 불려가기 딱 좋은 것들이다. 뜨거운 촛불집회가 만들어낸 대선이 이토록 차갑고 조용하게 치러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파란을 일으키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의 선전물을 집 앞에 붙이면, 양팔을 높이 치켜든 안철수 후보의 포스터를 출력해 베란다에 붙이면, 모두 선거법 위반이다.

홍준표 지지’가 적힌 붉은색 모자를 써도 ‘유승민을 청와대로’가 적힌 하늘색 점퍼를 입어도, 심상정 지지를 표현하는 ‘러블리, 심블리’가 새겨진 셔츠를 입어도 마찬가지다. 선관위에 등록-신고된 선거운동원 외에, 한국의 유권자는 닥치고 가만히 있다가 5월 9일 투표만 해야 한다.

5년 전, 이하 작가가 단일화를 촉구했던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오늘날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펼치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 달라졌는데, 유권자의 입을 막는 선거법은 여전하다. 뉴욕의 꼬마처럼 누군가 ‘문재인 배지’를 거리에서 나눠주면 그는 곧 법정에 설 수도 있다.

5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은 선거법, 정말 충격이다.

(*2017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