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자기 방으로 초대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사건을 맡은 재판장과의 독대, 역시 변호사가 된 후 처음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판사가 말했다.   

우리도 참 난감합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빈말이 아닌지 판사 얼굴은 정말 난처해 보였다. ‘법관의 꽃’이라 불리는 차관급 고법 부장판사의 고민을 경력 12년 차인 변영철 변호사가 해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차피 법원에서 꼬여버린 사건, 법관이 풀어야 했다. 

“어떻게 하긴요. 재판부에서 문제를 바로 잡아 주셔야죠”

변 변호사의 말에 부장판사 얼굴은 더욱 난감해졌다. 그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대법원 쪽에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끝 무렵, 겨울의 일이다. 

부산지법 앞에 선 변영철 변호사. 그는 정도곤을 대리해 김용덕 전 대법관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셜록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사법부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 왜 대법원은 같은 사건을 두고 상반된 두 판결을 했는지, 그 부장판사는 설명하지 못했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 선고 날짜가 잡혔다. 

“원고 정도곤이 청구한 국가배상청구를 기각한다.”

고법 재판부는 문제를 바로 잡지 않았다. 그들은 ‘윗분’들인 대법관의 판결을 그대로 따라 갔다. 법관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의문을 남긴 사건은, 시민 정도곤에겐 “어떻게 이런 일이!” 하는 한으로 남았다. 

갈등을 풀어야 하는 법원이 오히려 판을 키워 시민 가슴에 한을 남긴 사건. 이야기는 정도곤의 아버지 죽음에서 출발한다. 

정도곤(1948년생)의 아버지 정재식은 1949년 5월 경찰에 끌려가 재판도 없이 총살됐다. ‘대구 10월사건’의 여파다. 

정도곤은 2011년 4월 7일 부산지방법원에 국가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그의 어머니이자 정재식의 아내였던 이외식도 2012년 5월 24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두 모자의 주장에 피고 대한민국은 이렇게 맞섰다. 

“정재식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949년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이외식-정도곤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는 사라졌다.”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이런 피고 대한민국의 주장을 배척하고 “국가는 이외식에게 8800만 원을 배상하라”고 2014년 5월 16일 판결했다. 

이런 대법원이 태도를 180도 바꾼 건 1년 5개월 뒤다. 

아들 정도곤의 사건을 맡은 대법원 제3부(주심 김용덕)는 “국가는 배상금을 줄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2015년 10월 29일 판결했다. 이번엔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같은 사건(정재식 사망)에서 엄마와 아들이 전혀 다른 판결을 받은 상황. 배상금을 먼저 청구한 아들 정도곤에겐 “너무 늦었다”며 패소를 안기고, 그보다 1년여 늦게 배상을 요구한 어머니 이외식에겐 승소를 확정한 대법원의 자기모순. 

파기환송심을 맡은 고법 부장판사가 “우리도 참 난감하다”고 한 이유다. 누구보다 엄중해야 하는 대법관들은 왜 이런 모순된 판결을 했을까. 

정도곤과 그의 변호인 변영철은 해명이든 변명이든 법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설명 자체가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앞뒤가 안 맞고, 말도 안 되지만 대법원 판결이니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참고 살라고요? (한숨) 그렇게는 못 합니다. 오히려 대법원 판결이니 더 참기 어렵죠!”

차라리 오류나 실수가 1,2심에서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급심에서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라도 있으니 말이다. 근데 하필이면 문제 교정이 어려운 대법원에서 사고가 터졌다. 정도곤이 더 분노하는 이유다. 

경찰은 제 아버지를 재판도 없이 산골에서 총살했습니다. 이런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로하는 게 사법부 역할 아닌가요? 세상이 좋아져 과거사위원회가 진실 규명을 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데, 이젠 사법부가 엉터리 판결로 유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겁니다. 이걸 어디에 하소연해야 합니까?”

어디에 속 시원히 하소연도 못하는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엉터리 판결의 원인을 설명하는 듯한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발견됐다. 

김용덕 전 대법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정도곤(왼쪽)과 변영철 변호사. ⓒ셜록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재판거래 문건이 쏟아져 나온 2018년 봄. 변영철 변호사는 이 문건에서 낯익은 숫자 조합을 보고 눈이 커졌다. 

‘2014다234155’

변호사는 자신이 맡은 사건을 잘 잊지 못하는 법. 저 사건번호, 정도곤의 아버지 정재식의 죽음과 관련 있다. 정재식 형제의 자녀들이 부모를 대신해 국가손해배상을 청구한 건이다. 역시 변영철 변호사가 대리했다.  

‘이 사건이 왜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나오지? 그것도 재판거래 문건에서.’

변영철 변호사는 문건 내용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해당 문건의 제목은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방안’.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음. (중략)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그 요건을 정립함.’

국정운영을 뒷받침 한 실제 사례로 정재식 사망에 따른 국가배상청구 건이 적시돼 있다. 

‘대법원 2015. 4. 17. 선고 2014다234155’

그랬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4월 9일 “국가의 배상 책임이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재판거래 문건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그동안 사법부가 VIP(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

변영철 변호사의 머리에서 드디어 의문의 퍼즐이 맞춰졌다.  

‘경찰이 재판 없이 산골에서 총살한 정재식. 그의 죽음을 이번엔 사법부가 밀실에서 거래했구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유가족의 국가배상청구를 이용했구나!’

결국, 공권력이 정재식을 두 번 죽인 셈이다. 경찰이 산골에서 한 번, 법원에서 밀실에서 또 한 번. 게다가 그의 아들 정도곤은 재판거래 피해자가 아닌가. 

되돌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법원 확정 판결은 이래서 무겁고 무섭다. 밀실의 법관들은 누군가의 삶과 죽임이 걸린 이 무서운 걸 흥정하고 거래했다. 변영철 변호사는 뭐라도 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변영철 변호사는 2018년 재판거래 사법농단 피해자 구제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부산지법 앞에서 진행했다. ⓒ변영철 제공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원인 변 변호사는 일단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곧바로 김용덕 전 대법관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 전 대법관은 정도곤과 그의 어머니 이외식 판결에 모두 관여한 인물로,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의견을 낸 당사자다. 

법관도 명백한 잘못을 범했으면 책임져야 한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여기에 더해 제가 전직 대법관 상대로 소송을 걸면서 진정으로 원한 건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뭘까?

“후배 법관들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선배 대법관의 문제를 바로 잡는 용기, 원칙.. 뭐 그런 거요. 재판거래 문건이라는 명백한 증거까지 있지 않습니까. 선배들의 재판거래를 부끄럽고 치욕스럽게 생각해야지! 대법관의 오판을 후배들이 들이받아야 세상이 좋아지죠. 그게 정의 아닌가요? 법관들이 법과 양심, 시대 정신을 따라야지, 안전하게 선배들의 판례만 ‘복사해서 붙이기’ 하면 문제가 해결 됩니까?”

날이 한창 뜨거워지지 시작한 6월 8일 오후 부산의 식당, 변 변호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목이 타는지, 속이 타는지, 그것도 아니면 식당에서 목소리를 높인 게 멋쩍어서 그런지 변 변호사는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선고는 그로부터 이틀 뒤인 6월 10일 나왔다. 전직 대법관을 향한 한 시민과 변호사의 도전, 후배 법관들은 이렇게 응답했다. 

“원고(정도곤)가 당사자인 사건(대법원 2014다234155)이 과거사정리위원회 사건 중 하나로 기재되어 있더라고 위 재판과정에 피고 김용덕이 관여한 사실이 없을뿐더러, (중략) 피고 김용덕이 대법원 기획조정실 지시하에 원활한 국정 운영에 협조하기 위해 소멸시효 완성 항변에 관한 의견을 번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 김용덕이 원고의 위 사건(대법원 2014다234155)을 판결함에 있어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하여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 한다는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거나 법관이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그 권한을 행사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재판부는 초등학생은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 시민 거의 모두가 사용하지 않는 긴 문장을 구사했다. 짧게 요약할 수 있다. 

‘피고 김용덕이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 하려는 부당한 목적으로 재판을 한 게 아니다. 그러니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

서울중앙지법 제33민사부(재판장 정철민, 판사 오지애, 김진하)는 선배 판결을 들이받지 않았다.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난감하다”면서도 정작 문제를 바로 잡지 않은 고등법원 부장판사처럼, 이들 역시 판례만을 따랐다. 

재판부는 그동안 다른 법관들이 수없이 ‘복사해서 붙이기’로 활용된 문구를 또 빌려와 선배 대법관에게 면죄부를 줬다.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거나 법관이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그 권한을 행사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한 법원 직원이 법원 출입문을 청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시민은 부당한 목적이 없더라도 과실로 타인에게 위법한 피해를 주면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근데, 법관들은 재판거래 문건을 작성해도 오판으로 살인누명을 씌워도 책임지지 않는다. “부당한 목적으로 현저하게 명백히 어긋”난 잘못을 입증하지 못하면 말이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하는데, 법관은 예외라는 논리죠. 자기들은 법 위에 있다는 겁니다. 청와대에 협조한 사례로 명확하게 사건번호가 적시됐고, 대법관은 엉터리 판결을 했는데… 도대체 무슨 증거를 더 갖다 줘야 판사들은 책임을 진답니까?”

많은 재판거래 피해자처럼 정도곤 역시 구제받지 못한 피해자로 남아 있다. 판사의 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에서 법관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한 판례가 ‘복사해서 붙이기’로 계속 이어지면 피해자 구제는 앞으로도 난망한 일이다.

정도곤과 변영철 변호사는 포기하지 않고 항소했다. 판사도 자기 잘못에 책임을 지는 사례를 남겨야 시민들이 더 좋은 재판을 받는다는 게 변 변호사의 생각이다. 

“되든 안 되든, 계속 온몸으로 들이 받아야죠. 그래야 뭔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안 된다고,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면 세상이 좋아집니까? 내가 누구처럼 판례만 따르는 사람도 아닌데… (웃음)”

전직 대법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 과연 2심 재판부는 판례를 따르지 않고, 선배들의 재판거래를 들이받는, 이전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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