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간병청년’ 강도영(가명)의 잘못을 읊는 재판장의 목소리가 법정에 퍼질 때 얼굴이 화끈 거렸다. 특히 이 대목에서 그랬다.

“(피고인은) 5월 1일부터는 아예 마음을 굳게 먹고 아버지를 죽일 생각으로 아버지가 있는 방에 들어 가지도 않았으며, 그 시간에 술을 먹거나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였는데, 멀쩡하게 대화를 하고 친구들이랑 술 약속을 잡고, 여자 이야기를 한 것이 지금 자신이 봐도 너무 후회스러우며,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강도영 선처’를 구하는 기사 쓸 때는 몰랐던 그의 행적을 법정에서 알게 돼 당황한 게 아니다. 대구고등법원 제2형사부 양영희 재판장이 지난 10일 선고 때 읽은 저 내용은 강도영의 진술을 검찰이 정리한 것으로 새롭지 않다. 취재를 통해 이미 알았던 내용이다.

나를 당혹스럽게 한 건 따로 있다.

서사가 거세된 채 묘사된 가난의 풍경, 맥락이 잘려나간 청년 간병인의 사연. 이를 통해 강도영은 아버지가 굶어 죽어가는 동안 친구들과 게임, 카톡을 하며 술 약속이나 잡는 패륜아로 다시 태어났다. 재판장이 각인시키 듯 대신 읽은 자기 멘트를 통해서 말이다.

’22세 간병청년’ 강도영은 소리 내어 우는 법을 몰랐다. ⓒ오지원

강도영 스스로 “너무 후회스럽고,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설명한 그 시간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법정에서 나온 직후 강도영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신 친구들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사실 강도영은 자기 친구들 접촉을 원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친구들 연락처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아르바이트 했던 편의점이 어디인지도 쉽게 말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심 선고 직전인 11월 8일에야 도착한 편지에 강도영은 이렇게 적었다.

“친구들에게 비밀로 한 이유는, 친구들한테 손을 벌리기 싫었어요. 그래도 제게 다 과분한 친구들이라 조금씩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 저보다 착하고 좋은 애들뿐이네요. 그런 친구들한테 실망을 줘서 너무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당장 굶어 죽을 듯한 그의 가난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비밀이었다. 전화기가 끊겼다고, 입원한 아버지에게 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다고, 가스가 끊겼다고, 이제는 쌀과 라면마저 떨어져 먹을 게 없다고… 그는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쓰러진 뒤에 힘들다는 건 알았는데, 그 정도인 줄은 몰랐죠. 도영이가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일부러 말 안 한 거 같은데.. 친구로서 섭섭하지만 이해는 되죠. 어릴 때부터 그런 문화를 경험했잖아요. 가난하면 놀리고, 아버지나 엄마 없다고 하면 더 놀리고…”

지난 16일 대구광역시 수성못 인근에서 만난 강도영 친구 A 씨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는 강도영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깝게 지냈다고 했다. 그와 함께 나온 친구 B 씨도 덧붙였다.

“도영이가 말하지 않아서 저희 친구들은 평소와 똑같이 살았어요. 인터넷에서 만나 같이 게임하고, 단톡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셜록> 기사 보고서야 자세한 사정을 알았죠. 카톡을 보내면 도영이가 왜 그렇게 늦게 메시지를 확인하는지 답답했는데, 기사 보고서야 알았어요. 휴대전화가 끊겨 그랬다는 걸…”

두 친구에 따르면, 강도영과 함께 게임 등을 하며 가깝게 지낸 친구는 약 6명. 이들은 모두 강도영의 처지를 자세히 몰랐다. 다만 친구들이 공유한 사실은 하나 있다.

“아버지께서 입원한 뒤부터 월세 밀렸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어요. 큰돈이 없다는 건 알았는데, 설마 쌀이 없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뇌출혈로 쓰러져 누워 생활한 강 씨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부를 때까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지원

가난의 역설이란 게 그렇다. 100만 원 빌리기보다 10만 원만 꾸어 달라고 말 하는 게 더 어렵고, 가까운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친밀하기 때문에 더 입이 안 떨어지고… 극한의 가난일수록 드러나지 않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강도영과 가장 친하다는 친구 C 씨는 지난 3월 제대해 지금은 제주도에 산다. 그의 어머니가 귀촌하면서 대구에서 살던 그도 함께 떠났다. 그는 편의점에서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전에 잠을 잔다. 구속되기 전 강도영이 그랬듯이 말이다. C 씨는 최근 전화통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군대에 있을 때 도영이가 몇 번 연락을 했거든요. 아버지 쓰러지신 뒤였는데… (잠시 말을 멈추고 침묵) 돈이 하나도 없다고, 5만 원만 빌려달라고. (한숨) 얼마나 힘들면 군에 있는 제게 연락했을까 싶어서 5만 원을 보내줬어요. 그렇게 의지했던 저에게도 아버지 퇴원 이후의 어려운 사정 이야기는 안 했습니다. (침묵) 오히려 제가 미안해요. 그런 걸 하나도 몰랐다는 게…”

C 씨는 강도영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깝게 지냈다. 강도영은 많은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자기에겐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은 C에게 털어놓았다. 강도영은 다른 친구에게 하지 않은 말도 C 씨에게는 털어놓았다.

“지난 봄에 제가 술을 한 잔 사줬는데, 도영이가 그러더라구요. ‘오래 못 사실 거 같은데, 아버지를 위한 노래를 빨리 만들어야겠다’고요. 도영이는 음악을 만들고 작곡을 하는 친구잖아요. 어쩌면 곡을 완성했을 수도 있어요.”

강도영과 친구들이 생각이 짧아서 사람이 죽어가는 동안 게임을 한 게 아니다. 강도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고, 친구들은 아무 것도 몰랐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직후, 아들 강도영은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집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쓰레기 더미와 함께 살았다. ⓒ오지원

무엇보다 마지막 순간에 강도영은 자포자기 상태였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는 듯이 그는 집 청소도 하지 않은 채 쓰레기더미와 함께 살았다. 그는 “아버지 사망한 뒤 자기도 함께 죽으려고 했다”고 경찰서에서 자백했다.

강도영의 사연을 접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되묻는다. 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강도영 역시 경찰에게, 검사에게, 판사에게 여러번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지난 10월 13일 대구고법에서 열린 2심 첫 공판 때 재판장은 이렇게 물었다.

  • 주위에 도움 요청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
  • 주민센터에는 왜 찾아가지 않았습니까?
    “전화로 한 번 물어봤습니다. 도움 받으려면 장애진단서 있어야 한다고 해서, 병원에 물의했더니… 장애진단서 받을 때도 돈이 든다는 걸 알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그것도 포기했습니다.”
  • 삼촌에게는요?
    “삼촌이 먼저 연락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삼촌은 이미 많이 도와줘서 또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말만 하면 다 들어줄 것처럼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묻지만, 어려운 처지에 몰린 사람들에겐 가난을 입증하거나 설명하는 건 무척 피하고 싶은 일이다. 몰라서 복지 신청을 안 하기도 하지만, 가난 입증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도 많다.

가난이 공인되는 순간, 사회적 모멸이나 차별이 마치 빚쟁이처럼 찾아온다는 걸 경험한 사람들은 본능처럼 입을 닫기 마련이다. 강도영의 침묵은 그만의 유별난 점이 아니다. 대구시의 한 주민센터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가난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하지 그랬어요?’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발굴해서 사회복지공무원이 찾아가 문을 두드려도 문도 안 열여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분들의 자존심 문제도 있고, 사회적으로 이상하게 보는 눈도 있으니까요.”

가난한 자의 침묵은 모멸과 무시를 넘어 엄벌과 질책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2심 재판부는 강도영이 검찰에서 한 진술을 그대로 가져와 이렇게 되돌려 주기도 했다.

“아버지가 입원 중일 때 삼촌 강○○이 생계지원, 장애지원 등을 받으라며 관련 절차를 알려주었지만, 기본적으로 게으른 성격이라 주민센터 등을 방문하거나 지원을 받기 위한 노력을 한 적이 없다.”

대구고등법원은 10일,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가명)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4년의 원심을 유지했다. ⓒ셜록

이렇게 모든 건 강도영의 책임과 잘못이 됐다. 가난한 주제에 주민센터를 찾아가지 않은 것도, 금방 죽어도 어색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친구들에게 부담주기 싫어 자기 처지를 숨긴 것도, 모두 그의 그의 잘못이 됐다.

소리 내어 우는 법을 몰랐던 것, 강도영의 진짜 죄는 그것인지도 모른다.

근데, 그가 소리쳐 울고 떠들었다면 우리 사회는 제대로 경청이나 했을까? “친구들과 카톡 할 시간에 울고불고 가난을 입증했어야지!” 하며 질책하는 건, ‘가난한 사람 다움’을 요구하는 또다른 폭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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