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교수의 공유 폴더는
대학원생들의 알림장이었다

교수의 심부름은 마르지 않았다. 벽에 핀 곰팡이를 제거하고 오면 냉장고를 비워야 했고, 중고 텔레비전을 처분하고 오면 국세청 업무를 대신 봐야했다.

바느질도 시켰다. 자신의 양복 단추가 뜯어지자 단추를 달도록 했다.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이 집사인지, 학생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사적인 업무지시는 H교수의 오랜 악습이었다. 특히 자동차 관련 업무와 안 한 게 없을 정도다. 시동을 미리 걸어 놓는 것은 일상이었고, 자동차 정기점검과 내비게이션 업데이트까지 대학원생 몫으로 돌렸다. 교수 부인이 사용할 선불 폰을 대신 개통하기도 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라는
타이틀에 숨어
H교수는 갑질을 일삼았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성희롱과 성추행이었다. 종강 후 뒤풀이에서 H교수는 여학생들을 자주 만졌다. 술자리 참석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래방에서 듀엣 곡을 부르고 싶다면서 여학생에게 몸을 밀착했다.

어떤 여학생은 원치 않는 귓속말을 강제로 들어야만 했다.

“내가 너한테 관심과 애정이 있는 만큼 너는 나한테 별로 애정이 없는 것 같아.”
“선생님이 너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지?”

여학생들 외모에 대한 품평은 기본이었다.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도 반복적으로 했다.

“너도 네일을 받아라.”
“남자 없이는 못 사는 여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쟤가 딱 그 케이스구나.”

따져 묻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교수는 대학원생의 생사여탈권을 쥔 존재였다.

“쓰레기”, “육갑을 떤다”, “미친 X”과 같은 인격모독적 폭언을 들어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꾹꾹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 바닥에서 못 해먹는다”는 교수의 협박은 학생들의 입을 단단히 막아버렸다.

서울대 본부 앞 천막 농성장 모습 ⓒ 주용성

인권센터, 고작 ‘정직 3개월’ 처분

어렵게 용기를 낸 시점은 2017년 3월이었다. 자신들이 졸업해도, H교수가 떠나지 않는 한 피해는 거듭될 거라는 확신이 용기를 줬다.

한두 명이 겪은 일이 아니었다. 피해 사실만 모으는 데 1년이 걸렸다. 학생들의 피해 사실은 유사했고, 증거는 쌓여갔다.

학생들은 경찰 등 외부 기관보다는 서울대학교 내부 제도를 통해 처리되길 기대했다. 자정작용을 믿은 점도 있었다. 규정과 절차에 맞게 움직였다. 학생들이 절차상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학교 내 인권센터였다.

인권센터는 말그대로 학내에서 인권침해가 벌어질 경우 이를 신고 받아 해결하는 곳이다. 서울대에는 다행히 인권센터가 존재했다. 대부분의 대학에는 성폭력 피해를 비롯한 교수 갑질 피해를 전담해 맡는 신고 처리 센터가 없었다. 학생들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2017년 7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237개 대학을 상대로 인권센터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140곳은 응답을 하지 않았고 조사를 응한 97개 중 19곳만 인권센터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확인 됐다.

서울대 본부 앞 천막 농성장 모습 ⓒ 주용성

기대는 더 큰 실망을 불러왔다

2017년 6월 15일, 인권센터는 H교수에 대해 고작 정직 3개월을 권고하는 처분을 내렸다. 교수가 일삼은 인권 탄압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처분 수위는 너무 미약했다.

3개월이라는 기간은 방학에 며칠을 더하면 채워지는 기간이었다. 잠깐 쉬고 복귀하면 그만인 기간이었다.

학생들의 폭로가 이어지는 사이, H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물을 쏟아냈다. 영화 포스터와 소설 표지를 잇따라 올리며 억울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영화 <터널>이나 소설 <어톤먼트> 등 무고한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이 게재되기 시작했다. 일종의 하소연이었다. 반성의 기미는 없었다.

인권센터 결정 후, 공은 징계위원회로 넘어갔다. 학생들은 징계를 최종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쥔 징계위원회에 모든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해를 넘겨도 징계위 결정은 나오지 않았다. 원칙은 3개월 안에 결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는 “기다리라”고만 했다.

학교는 규칙을 무시하고
징계를 연장했다

<서울대학교 직원 징계 및 징계재심 시행세칙>에 따르면 직원 징계의 경우 의결을 요구 받고 60일 이내에 징계를 의결해야 하고 3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교원 징계 규정은 따로 없었다. 하지만 유사 규정인 <사립학교법 시행령> 따르면 교원 징계 또한 연장 기한을 고려해도 3개월 안에 무조건 징계 결정을 내야 한다.

서울대 본부 앞 천막 농성장 모습 ⓒ 주용성

‘1500만원 횡령’ 발표에도, 징계위도 ‘정직 3개월’ 결정

학생들은 절박함에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2018년 3월 21일, 이날의 결정도 쉽지 않았다. 살을 애는 꽃샘 추위가 힘든 것이 아니었다. 천막농성 20시간 만에, 학교는 철거 계고장을 천막에 붙였다. 교수 징계는 7개월을 끌었지만, 철거 계고장이 붙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학교의 황당한 대응은 또 있다. H교수의 파면을 촉구하고 늑장대응에 사과하라는 요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붙이려고 하자 학교는 “면학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에 허락해줄 수 없다”며 승인해주지 않았다. 담당자가 내린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다행히 교육부의 감사 결과는, H교수의 파면 당위성을 한층 높였다. H교수는 연구비와 인건비 명목으로 지원 받은 1500여만 원을 몰래 챙긴 사실이 교육부 조사 결과 밝혀졌다. 그 돈은 학술지 제작을 맡은 대학원생의 인건비와 인쇄비 등에만 사용 가능했지만 교수는 꼼수를 부렸다.

H교수는 매달 45만원을
부치라고 시켰다

교육부는 형사고발까지 의뢰했다. 파면, 혹은 최소한 해임과 같은 중징계를 권고한 것이다.

그러나 5월 1일, 학교가 내놓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천막농성까지 벌이며, 인권센터의 경미한 처분에 항의하던 학생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징계위는 ‘정직 3개월’
징계 결정을
학생들에게 통보했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마저 징계위 결정에 문제제기 하고 나섰다. “교육부 감사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결정”이라면서 재심의를 촉구했다.

이 총장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권의식에 미달하는 결과”라는 이유도 덧붙였다. 학생들도 모두 수긍했다.

논란 끝에 징계위는 이례적으로 재심의를 결정했다. 내부적으로 2차 결과일을 5월 15일로 잡았다고 서울대 총학생회 측에 전달했다.

신재용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5월 8일 ‘새로운 봄을 맞이하겠다’는 의지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많은 학생들이 릴레이 단식에 동참했다.

신재용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은 단식 14일 차에 실시해 병원에 실려갔다 ⓒ 주용성

박사과정생 10명, 결국 자퇴서 제출

신 회장이 실신한 것은 단식 14일차였다. 5월 15일 재심의 결정이 또 미뤄지면서 받은 충격 등 건강문제로 결국 5월 21일 병원으로 이송됐다.

징계위가 밝힌 징계 지연 사유는 많은 학생들을 충격에 휩싸이도록 했다. 징계위는 근 1년간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연장합니다.”

5월 21일, 비로소 징계 결과가 확정됐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결과 발표를 연장까지 했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또 다시 ‘정직 3개월’의 징계 결정이 떨어졌다. 징계위 결정 과정을 전해들은 한 교수가 밝힌 판단의 배경은 이러했다.

“징계위 재심에서 무기명 표결 결과 정직 4표, 해임 4표가 나왔습니다. 징계위는 과반의 결론이 없어서 5월 1일에 결론 낸 ‘정직 3개월’을 그대로 확정합니다.”

이 결정을 받아들일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5월 1일에 있었던 1차 징계 결과는 성 총장이 “교육부 감사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판단”이라고 해서 엎어진 결과였다.

“1500만원을 횡령하는 일은 징계수위를 올릴 만큼의 대단한 일이 아닌 건가” 학생들은 학교를 질타했다.

ⓒ H교수 사건대응을 위한 학생 모임

학생들은 결국 자퇴를 결심했다

사회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 10명은 집단 자퇴서를 작성해 성 총장에게 제출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학생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절차를 다 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대학원생은 물론이고 학부생들까지 같이 촛불을 들고, 동맹휴업까지 하며 문제제기에 나섰지만 싸움의 끝은 자퇴였다.

“저희는 오늘 자퇴서를 제출합니다. 이것이 저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이기 때문입니다. H교수가 복귀하게 된다면, H교수의 복귀를 저지하기 위해 이제까지의 저희의 노력과 존재 전체가 부정당할 것입니다.” – 2018년 5월 24일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대책위원회 일동

사회학과 교수들은 징계위 결정을 거부하는 성명서를 썼다.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낀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의 슬픔은, 대학이 고등 교육의 도량으로서, 여타 사회조직에 비해 한 차원 높은 윤리적 감수성과 사회적 책임감이 관철되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그 평범한 상식조차 지켜지지 못한 현실 앞에서의 자괴감이다. – 2018년 5월 24일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진 일동

ⓒ H교수 사건대응을 위한 학생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징계 과정에서 학생 편은 아무도 없었다

왜 교수에 의한 성폭력, 갑질 피해는 사라지지 않는가?

대다수 가해 교수들은 학생들의 고발 이후에도 버젓이 근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숨는 건 되려 피해 학생들이다. 솜방망이 징계가 끝나면 행해질지 모를 보복 때문에 피해 학생들은 두려움에 떤다. 주요한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
정직 3개월 다음엔
곧바로 해임, 파면이다

학생에게는 1년 이상의 유기정학과 무기정학이 가능하지만, 교수에게는 ‘정직 N년’이란 징계는 없다. 해임, 파면까지 하기엔 죄가 중하지 않다는 이유로 가해교수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교원 징계양형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해임과 파면의 차이는 퇴직금과 연금을 받는 비율에서 갈린다. 해임은 퇴직금에 불이익이 없지만 파면은 퇴직금이 깎인다. 파면은 해임보다 연금도 덜 받는다. 파면은 5년 동안 공직 재임용이 제한되지만, 해임은 3년간만 제한된다.

둘째,
징계위원회에
학생의 참여가 배제된다

H교수 징계 결정 과정에서 학생의 목소리는 빠졌다. 사립대 기준으로 볼 때 현재의 교원징계위원회 구성은 전적으로 총장이나 이사장에게 맡겨진다. 징계위 구성이 대부분 교수 위주로 구성되기 때문에 ‘봐주기식 징계’가 내려지는 경우가 생긴다.

<사립학교법 제62조 3항> 교원징계위원회의 위원은 해당 학교법인이나 사립학교경영자 또는 학교의 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교수 등의 교원이나 이사, 법조인, 교육 전문가 등이 위촉 대상이다.

셋째,
인권센터는 힘이 없다

교수에 의한 갑질 피해가 발생하면 학생들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인권센터지만, 지도교수 변경 등 2차 피해를 막아 줄 어떠한 조치도 하지 못한다.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성도 없다. 해당 대학 교수진과 기간제 계약직으로 인력을 배치하는 편이 많다. 성평등센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가 2015년 전국 95개 대학의 성폭력 전담기구 상담원을 설문조사한 결과, 종사자 53.7%가 기간제 계약직이었다. 성폭력 상담 전담 인력이 배치된 곳은 13.7%에 불과했다.

ⓒ H교수 사건대응을 위한 학생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H교수 파면과 관련해 서울대학교에 입장을 물었다. 서울대학교의 답장은 다음과 같았다. 학생들처럼 기자가 던진 수 많은 질문 또한 공염불로 끝났다.

“징계위원회 논의사항은 규정상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징계위원회 결정에 대해 최종 인사권자인 총장께서 고심 중인 상황입니다. – 서울대학교 홍보팀”

징계위원단, 징계 과정, 징계 배경,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딱 하나는 분명하다. 

H교수는 3개월 뒤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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