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듣기 좋은 말을 할 자유’가 ‘표현의 자유’의 핵심이 아니라 ‘타인이 듣기 싫어하는 말도 할 수 있는 자유’가 ‘표현의 자유’의 핵심이다.

 <진실유포죄>를 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의 말이다.

참말을 해도, 최악의 경우 감옥에도 갈 수 있는 형법 제307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꼬집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00% 진실을 얘기해도, 그로 인해 누군가의 명예가 실추됐다고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이 법을 ‘진실유포죄’라고 부르는 이유다.

분명 헌법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상충한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①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실 미국,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OECD 국가들의 3분의1 정도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법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 우리나라처럼 개인의 명예를 최상의 권리인 양 떠받들지 않는다.

2018년 3월 23일 성차별 성폭력 끝장문화제 모습 ⓒ주용성

형법 제307조 1항을 피해갈 유일한 방법이 있긴 하다.

오로지 ‘공익 목적’임을 인정받으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 공적인 사안이나 공인을 고발할 경우에 법원은 대체로 ‘공익성’을 인정해 준다. 언론의 ‘보도자유’는 바로 이 공익성에 기초한다. 하지만 그 ‘공익성’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 문제다.

언론이 아닌 개인의 고발은
좀처럼 ‘공익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사례는 많다.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피켓에 적어 행인들에게 알린 노동자에게 법원은 ‘대표이사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판결한 적이 있다(2004도3912). 제약회사의 갑질을 고발하는 글을 외부에 알린 대리점 판매상에게도 같은 이유로 유죄가 선고됐다(2004도1497).

<제약회사 갑질을 고발한 대리점 운영자에게 명예훼손 유죄를 선고한 판결문의 일부>

위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인들이 볼 수 있는 정치인이나 언론사 또는 위 공소외 주식회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제약회사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위와 같은 내용의 글을 게재한 것이 형법 제310조 소정의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는바…
– 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4도1497 판결

성폭력 사건에서 ‘진실유포죄’는 특히 더 문제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 ‘진실유포죄’를 악용하곤 한다.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든 거짓말이든 일단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면, 피해자는 사실 입증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피고인으로 신분이 바뀐
피해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해치고, 우리 사회의 감시와 고발 기능을 무력하게 만들 소지가 크다.

<셜록>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기본권을 침해당할 위기에 놓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긴다. ‘진실유포죄’로 입에 제갈이 물려진 사례를 소개하면서 ‘진실유포죄’의 허점을 짚고자 한다.

2018년 3월 23일 성차별 성폭력 끝장문화제 모습 ⓒ주용성

‘촌지’ 선생님, 학생을 명예훼손 고소하다

2002년 유정호 씨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고 아토피에 시달리는 유 씨는 친구들에게 자주 놀림을 당했다. 유 씨는 담임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주의를 줬다.

며칠 뒤 상황이 달라졌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아닌 유 씨를 혼냈다.

“고자질은 나쁜 거야.
이제 선생님한테 말하지 마.”

유 씨의 엄마가 이른 아침 학교를 찾왔다. 담임 선생님의 부름 때문이었다. 자양강장제를 들고 학교로 온 엄마는 곧장 담임 선생님을 따라 교실 맞은편 과학실로 들어갔다.

유 씨도 소환됐다. 엄마와 10살의 유정호 씨, 담임 선생님이 탁자에 앉았다.

“정호 어머니, 정호가 너무 산만하고 고자질을 해서 힘들어요.”

“우리 정호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그건 아닌데, 지도하기가 힘들어요.
다른 아이보다 질문도 많고요. 어머니가 도와주셔야 해요.”

쭈뼛거리며 자리를 지키던 10살의 유 씨를 교실로 돌려보낸 선생님은 그때부터 엄마에게 촌지를 바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돈을 달라’는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정호가 시계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 “분수 문제를 빨리 풀지 못한다”면서 “힘들다”는 말을 반복했다.

연거푸 선생님이 뱉은 말은 ‘성의 있게’라는 표현이었다.

엄마는 ‘성의’가 바로 ‘촌지’라는 것을 시간이 조금 흘러서야 알아챘다. 일하던 이불 공장에 어렵게 부탁해 학교로 찾아왔지만, 촌지를 요구하는 담임선생님에게 엄마는 화가 났다. 부당한 부탁에 엄마는 응할 수 없었다.

“우리 애 학교 안 보내겠습니다.
지금 선생님 하신 말씀 교장실에 다 말하겠습니다.”

촌지 요구를 거부한 뒤
선생님의 보복이 시작됐다

칠판에 낸 문제를 풀지 못하면 실내화를 꺼내 유 씨의 뺨을 때렸다.

반에 유행병이 돌고 있으면 “유정호처럼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애들을 조심하라”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 “유정호 같은 기초생활수급자가 공부까지 못하면 인생 망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15년 세월이 흘러도 그 때의 일은 잊히지 않았다. 그 사이 유정호 씨는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밤이면 종종 그때 담임선생님이 자신을 괴롭히는 악몽을 꿨다. 초등학교 시절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유튜브에서 채널을 운영하던 유 씨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고발하는 영상을 찍기로 결심했다.

선생님을 비방할
목적은 없었다

그 선생님이 아직도 현직에 있다면, 자신과 비슷한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싶었을 뿐이다.

대구광역시 교육청에 15년전 그때의 일을 정리해서 알린 것도 혹시 모를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교육청에서 그 선생님에게 주의라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다.

교육청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선생님의 소재를 직접 알아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선생님은 현직에 있었다. 유 씨의 집 근처에서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쳤다.

유 씨는 지금이라도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겁이 났다. 엄마와 누나가 대신 그 학교를 찾아갔다.

“ㄱ 선생님을 찾아 왔습니다.
혹시 만나뵐 수 있을까요? 연락처라도 알 수 있을까요?”

“원치 않는다는 개인 입장이 있어서 연락처를 알려드릴 수는 없어요.”

동영상 고발 후
선생님의 첫 대응은
‘명예훼손’ 고소였다

유 씨는 선생님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니 경찰서에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유 씨는 마음 한 편이 쓸쓸했다. 이 사실을 동영상으로 공유해 알렸다.

영상을 본 해당 선생님의 다른 제자와 당시의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피해사실을 증명해주겠다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유 씨는 변호사를 곧장 선임했다. 사실 변호사는 처음에 법적 다툼을 만류했다.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고 했다. 수백 만 원의 변호사 선임료를 내느니 그 돈으로 벌금을 내라고 했다. 하지만 유 씨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일이 사실이라는 걸 입증할 자신이 있다.

다른 피해를 막으려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수사 과정에서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걸 밝힐 겁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면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악법도 법이니까요.”

(유정호 씨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

강간 포토그래퍼, 모델을 명예훼손 고소하다

모델 김보라 씨는 잡지사로부터 “ㅇ작가와 작업을 해보자”는 연락을 받고 기뻐서 펄쩍 뛰었다. 2015년 11월의 일이다. ㅇ작가는 유명 포토그래퍼였다. 한국에 내로라하는 잡지사와 작업을 했다.

첫 촬영을 잘 마치고 ㅇ작가는 김 씨에게 개인작업을 같이 하자고 했다. 무명의 신인 모델인 김 씨는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ㅇ작가는 날짜와 장소를 김 씨에게 알렸다. 장소가 조금 이상했다. 서울 신사동의 모텔로 오라고 했다.

‘작업실도 있는 유명한 작가가 왜 모텔로 오라고 할까.’

의아했지만, 유명한 이가 허튼 짓을 하지는 않을 거라 믿고 모텔로 향했다.

촬영은 작가가 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ㅇ작가는 김 씨에게 준비된 샤워가운을 입고 나오라고 하더니 차츰 수위가 높은 자세를 요구했다. 미국의 유명 포토그래퍼 테리 리차드슨의 사진을 내밀면서 “이런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가가 내보인 것은
성관계 사진이었다

작가는 포즈의 일환이라면서 자신의 ‘바지 위에 손을 얹으라’ ‘바지를 벗겨보라’고 하면서 다양한 표정을 요구했다. 예술은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나중에는 자신의 성기를 내보였다. 

“보라 씨, 내 성기에 가까이 얼굴을 대봐요.
표정을 이렇게 지으면서.”

“그건 불편해요. 작가님.”

“잠깐만, 잠깐만 해봅시다.”

기어코 ㅇ작가는
김 씨를 강간하고 나서야
촬영을 끝냈다

예술을 가장한 성폭행이었다.

김 씨는 당시에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사진작가와 모델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존재했고, 특히 사진이 외부에 유출될까봐 두려웠다. 집에서 숨죽여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괴감에 자신을 원망했다.

2년 반이 흐르고, 김 씨는 그때의 일을 자신의 SNS 계정에 폭로하기로 결심했다. 미투 운동에 용기가 났다. 이니셜로 작가를 명시하고 그때의 일을 공개했다. 김 씨가 올린 SNS 글은 파장이 컸다. 똑같이 당한 피해자와 연락이 닿았고, 다른 피해자를 아는 이와도 대화를 나눴다.

업계도 술렁였다. ㅇ작가가 다니는 에이전시에서 김 씨가 올린 글에 대한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ㅇ작가가 해고됐다. 김 씨는 피해자가 더는 양산되지 않을 거라며 자신을 위로하고 아픔을 달랬다.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ㅇ작가는 김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ㅇ작가는 당시 작업한 사진을 증거로 내밀어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민사소송도 걸었다.“김 씨의 글 때문에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탄날 위기에 처했다”면서 정신적 손해배상 1000만 원과 전속계약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 2000만 원 가량을 포함해 총 3100만 원을 김 씨에게 청구했다.

김 씨는 해바라기센터와 용인성폭력상담소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와 함께 경찰조사를 받았다. 같은 피해를 당한 여성의 진술을 토대로 ㅇ작가의 상습 성폭행 혐의를 밝혀내려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김 씨는 SNS에 올린 글을 지울지 않을 계획이다. 사실이기 때문에 지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포토그래퍼들이 예술을 빌미로 모델들을 성폭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폭로 글을 쓴 겁니다.”

2018년 3월 23일 성차별 성폭력 끝장문화제 모습 ⓒ주용성

진실은 면책되어야 한다

<진실유포죄>의 작가 박경신 교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갖는 맹점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진실유포죄’를 존치시키면 다음과 같은 피해를 떠안게 된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첫째,
제대로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점

둘째,
익명 보도로 선한 피해자가 되려 피해입을 수 있다는 점

셋째,
익명 보도로 ‘모범을 보일 동기’가 없어진다는 점

서울 종로구 재동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주용성

왜 공익을 위한 진실만이
허락되는 걸까?

유정호 씨와 김보라 씨가 사실을 뒤늦게나마 폭로한 목적은 하나다. 두 사람은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진실유포죄’ 폐지에 대한 논의는 오래됐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2011년 이미 우리나라에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를 권고했다. 지난해 11월에도 같은 내용을 권고했다. 공익을 위한 진실만 면책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진실이 면책되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법전에 남겨둘 필요가 없는 이유를 박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진실유포죄’를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생활 보호는 사생활 침해가 명백한 행위를 규율하는 통신비밀보호법이나, 대규모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이 높은 행위를 규율하는 개인정보보호법 또는 사생활 침해에 대한 민사소송으로 달성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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