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옆 ‘1’은 사라졌는데 친구 A에게 답장이 오지 않았다.

A에게 보낸 건 기사 링크였다. “내가 쓴 기사야. 한번 읽어봐!” 공들인 결과물을 친구가 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때 나는 진주 방화·살인 사건을 다룬 프로젝트 <여름은 오지 않았다>를 연재 중이었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은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조현병 환자 안인득이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아파트 주민을 칼로 찌른 사건이다. 기사에는 안인득이 범행 전 전조증상을 보였을 때 경찰이 응급 및 행정 입원을 추진했다면 끔찍한 비극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란 내용을 담았다.

몇 분 뒤, 답장이 도착했다.

“공들인 기사가 나왔구나. 그런데 난 안인득 이야기가 읽기 힘들어. ‘멘탈이 약하거나 안일했으면 어쩌면 나도…’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나는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투병하는 중이거든.”

A는 조현병 초기 증상을 앓았던 적이 있다. 어느 날엔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토로했다. “너무 무서워. 어떤 남자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어.” 친구가 현관문 근처로 가서 소리를 들려줬지만 수화기 너머는 조용했다. A가 병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애쓰던 시절을 떠올리자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래, 읽기 힘들겠다. 배려하지 못해서 미안해.”

답장을 보내고 생각했다. 안인득이 되지 않기 위해 치열한 하루를 보내는 조현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여름은 오지 않았다>를 한창 연재하던 지난 6월의 일이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42)이 병원을 가기 위해 2019년 4월 19일 경찰차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때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9월이었다. 코로나19에 걸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던 날,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센터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님, 저, 조금 갑작스러울 수 있는데요,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서요.”

이 센터장은 지난여름, 진주 방화·살인 사건을 취재하다 인연을 맺은 정신과 전문의였다.

“네? 제가 영화배우요?”

그의 제안은 정말 갑작스러웠다. 기자인 나보고 단편영화 주인공을 해달란 내용이었다. 영화 제목은 <‘F20’ 그 이후>, 조현병 환자를 아버지로 둔 기자가 정신질환 이슈를 취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을 예정이라고 했다.

제목에 언급된 ‘F20’은 조현병을 의미하는 질병코드이기도 하지만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제목이기도 했다.

스릴러 영화 <F20>은 KBS가 처음으로 제작한 영화로, 아들의 조현병을 숨기고 싶어하는 엄마 ‘애란’이 사는 아파트에 같은 병을 앓는 아들을 둔 ‘경화’가 이사 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영화를 연출한 홍은미 PD는 개봉 전 간담회에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 배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들의 생각은 달랐다. 영화가 개봉한 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전국 19개 장애인단체들이 서울 KBS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영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해당 영화는 조현병을 가진 당사자의 삶을 고려하거나 존중하지 않았다. 영화 장르는 스릴러이고 영화의 내용은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반영, 유지, 강화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국민청원과 KBS 시청자청원 게시판을 통해 상영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KBS는 TV 편성을 우선 보류했다가, 방영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20일 정신장애인연합회 등 단체들은 KBS 신관 앞에서 ‘F20’ 방영을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마인드포스트 제공

이영렬 센터장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담기지 않은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했다.

“어… 검토해보고 다음 주쯤에 연락드릴게요.”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한창 취재 경험을 쌓아야 하는 1년 차 기자인 내가 연기를 하는 데 시간을 쓰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 비슷한 것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절차상 편집국에 이 센터장이 보내온 영화 출연 제안서를 전달했다. “기사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올 줄 알았건만, 최규화 <셜록> 콘텐츠총괄매니저는 눈을 반짝였다.

“오, 재밌겠는데요?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봐요.”

그 말을 듣고 정말 진지하게 생각했다. 여름에 A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영화에는 내가 다뤄보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었다. 바로, ‘살인자‘가 되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이야기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 ⓒ셜록

‘안 한다’에 완전히 기울어 있던 마음의 추가 ‘한다’로 움직인 건 6월의 또 다른 순간이 떠올랐을 때였다.

2019년에 일어난 진주 방화·살인 사건이 다시 주목받은 건 지난해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서면서다. 유가족들의 소송을 도운 단체 중 하나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로,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 심해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신장애인들의 가족이 모여 만든 단체였다.

지난 6월 취재 차 조순득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회장을 만났다. 그는 마흔 살을 훌쩍 넘긴 조현병 환자 아들을 둔 어머니다. ‘안인득‘이란 이름이 나오자, 그의 이마엔 굵은 주름이 잡혔다.

“정신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우리들은 그 일 났을 때 정말 오금이 저렸지예. 너무 슬프고, (안인득에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피가 맺히는 기분이었지예. 사건 나고 한 일주일 뒤인가, 협회에 소속된 다른 (정신장애인) 당사자 가족들과 현장에 갔지예. 아파트 입구 주변에 그, 폴리스라인이 쳐 있는 기라. 그 앞에 준비한 국화를 내려놓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사죄하는 마음으로 절을 했지예.”

그 자리에는 마음 한구석에서 익숙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협회 소속) 가족들은, 특히 진주에 사는 경남 가족들은, 혹시라도 그 주위에 사람들이 볼까 두려워했지예. ‘저 집에도 또라이 자식이 있나 보다’ 하고 지역사회에서 손가락질 당할까 무섭다꼬….”

하지만 조 회장은 움츠리고 싶진 않았다고 했다.

“움츠리고 있기만 해선 안 된다 아입니까. 그럴 게 아니라 당사자(정신장애인)를 가족으로 둔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더.”

100명 중 1명. 조현병 환자의 발병률은 1%다.

“지가 우리 아(아이) 치료한다꼬 뉴질랜드도 다녀왔고, 일본에도 다녀왔다 아입니까….”

이들 중에선 조 회장과 그의 아들처럼, 어떻게든 병을 치료하고자 애를 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조 회장의 이야기를 들을 때 역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조현병 환자들을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의 이마에 잡혀 있던 굵은 주름이 떠오르자, 마음의 추가 조금 더 움직였다.

<여름은 오지 않았다>에서는 응급 및 행정 입원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또 있었다. ⓒ셜록

<여름은 오지 않았다>에서 강조했던 건 ‘제2의 안인득을 막기 위해선 응급 및 행정 입원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또 다른 중요한 선행조건은 바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이었다. 이들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인식이 환자들을 더욱 숨게 만들고, 그 결과 이들의 병은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창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지난 6월,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18년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오랜 친구다.

“안인득 사건처럼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범죄가 나오면 편견이 확 늘어납니다. 그러면 재활시설, 지역사회 커뮤니티 등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환자들은 더 숨어버리죠. 이렇게 되면 병은 더 나빠지게 되고, 또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영화 <‘F20’ 그 이후>를 만드는 가장 큰 목적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안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부족한 연기력? 어쩌면 노력으로 메꿀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센터장님, ‘발연기’ 논란 생기면 어떡하죠?”

이영렬 센터장에게 전화해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기자님, 잘하실 겁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주보배 기자가 배우로 참여한 영화 ‘F20, 그 이후’ 대본 ⓒ셜록

꼭 ‘펜’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란 법은 없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살 만하게 바뀌는 것이고, 비록 내 본분은 기자지만 필요하다면 <셜록>의 본령을 기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기자인 나는 배우가 돼보려 한다. ‘발연기’ 논란은 두렵지만.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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