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안타까워서 (소송을) 돕게 됐어요. 안타까워가지고….”

진주 방화・살인 사건 일부 유가족 및 피해자들은 지난해 10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은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조현병 환자 안인득이 2019년 4월 17일 자기 집에 불을 내고, 대피하는 아파트 주민들을 칼로 찌른 사건이다. 안인득은 5명의 주민을 죽였다. 유가족 측은 경찰이 사전에 안인득이 자・타해 위험성이 높은 중증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지만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소송을 돕는 단체 중에 사단법인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가 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는 조현병 등 중증정신질환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환자의 가족이 모인 단체다.

“작년에 유가족분들을 찾아갔을 때가 기억납니더. 소송에 대해 운을 떼러 찾아갔습니더. (그분들은) 분에 차 있지 않겠습니까, 분에, 막 분에 차 계셨어요. 국가에, 안인득 관련 신고를 받고 아파트로 출동했던 경찰들에, 그리고 안인득에. 갈 땐 고민이 컸지요. 그분들이 우리 (중증정신질환자) 가족들이 달가울 리가 있겠습니까. ‘오지 말라 카면 우짜노・・・‘ 했는데, 우리 백종우 교수님이 많은 설득을 해주셨어요.”

당시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소송을 돕는 또 다른 단체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였다.

“제가 가서 그랬어요. ‘우리가 끝까지 같이 함께하겠다. 아픈 마음도 함께하겠다・・・’ 우리 협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변호사 수임료를 지원했습니더. 협회에 속해 계신 분 중에서 저를 포함한 몇 사람이 힘을 보탰지예. 또, 변호사님께 안인득 사건과 유사한 사례의 정보도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더.”

조순득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회장의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 사진은 첫째인 아들(1977년생)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다. 아들에게 조현병이 발병한 지 25년째다. 아들의 병을 알게 된 순간부터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회장으로 일하는 지금까지, 그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환자 가족 입장에서 바라본 우리나라 정신 건강 시스템의 문제는 무엇일까. 지난달 23일, 조순득 회장을 서울 서소문동 진실탐사그룹 <셜록> 사무실에서 만났다.

조순득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회장 ⓒ셜록

조현병의 옛 명칭은 정신분열증이다. 병에 대한 편견 및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2011년 병명 개정이 추진됐다. 조순득 회장은 1998년 병원에서 정신분열증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제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이었냐면, 의사 선생님께 우리 아(아이) 진단명을 듣고 뇌가 갈라진 병인 줄 알았지 뭡니까. 그래서 수술하면 낫는 줄 알았습니더.”

‘하늘이 무너진다‘는 옛 속담이 온몸으로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병에 대한 이해가 낮았던 그때는 의사의 말이 ‘아들이 미쳤다‘는 얘기로 들렸다. 누군가는 귀신 들린 병이랬다. 아들이 미친 것도, 귀신 들린 것도 아니란 걸 안 이후부터는 치료에 매달렸다.

“뉴질랜드, 일본에 가서 치료시켜봤지 않습니까. 특히 일본에는 ‘자이프렉사‘라는 신약이 개발됐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갔습니더. 지금은 그 약이 우리나라에도 있지예. 한국에서 다른 환자 가족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됐습니더. ‘아, 이 병은 낫는 병이 아니라 관리하는 병이구나.”

목표가 ‘완치‘에서 ‘관리‘로 바뀌었다면 방법도 달라져야 했다. 치료에만 매달리지 않고 재활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주치의가 가장 좋은 건 직업재활이라고 귀띔해줬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인 아들의 취업은 쉽지 않았고, 결국 조 회장은 직접 나섰다. 1999년 세탁업체 ‘늘푸른‘을 설립했다.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나온 환자복, 수건 등을 수거해 세탁하는 업체였다. 직원은 대부분 조현병 환자였다.

“제 목표는 하나였습니더. 환자들도 일을 해 봐야 한다 아입니까. 돈 많이 벌기 위해서보다는 (조현병 환자들을) 일단 집에서 끄집어내기 위해서입니더. 아(아이)들이 밖으로 나와야 일상생활을 하면서 병을 관리할 수 있다 아입니까. 회사에서 통근버스를 운영했습니더. 일단 아침에 약 먹고 기운 없는 아(아이)들을 깨워서 출근 시킬라꼬 그랬습니더.”

약 16년간 업체를 운영하면서 조 회장은 ‘정신장애인도 일할 수 있다‘는 걸 직접 확인했다.

“처음부터 쉬웠겠습니까. 와서 하루 종일 조는 아(아이)들도 있었습니더. 처음 1, 2년간은 제가 생돈을 투자한다고 생각했습니더. 월급을 그냥 내 돈에서 주는 거라고 생각했지예.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아(아이)들이 변하데요. 일 욕심 있어서 열심히 하는 친구도 있고, 처음엔 힘들어서 엄마랑 같이 출근하다가 나중엔 혼자 출근하게 된 친구들도 많습니더. 회사에서 서로 연애하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직원들도 생겼습니다.

우리 정신장애인들도 조금만 뒤에서 뒷바라지해주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만 만들어지면 이 사회에서 하나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친구들이에요.”

그사이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와도 연을 맺었다. 

“2000년대 초에는 조현병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길이 많지 않았습니더. 답답한 마음에 직접 협회나 모임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를 알게 됐고, 지금껏 왔습니더.”

조 회장은 울산지부장, 경남지부장을 거쳐 2018년부터 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경남지부장 시절인 2015년, 협회 일로 바빠지면서 세탁업체는 다른 사람에게 운영을 맡겼다.

조순득 회장은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는 일자리다”고 말했다. ⓒ셜록

일자리 외에 정신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건 또 뭐가 있을까.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경남지부장으로 일하던 2017년, 조 회장은 창원 지역에 정신장애인 주간보호시설 설립을 추진했다. 주간보호시설에선 정신장애인에게 직업훈련 등 활동 서비스와 보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경남대학교 인근 건물에 마련하려고 했어요. 인테리어도 다 했어요. 그런데 설립 소식이 알려지니까 지역 주민들이 다 들고일어났지 뭡니까. ‘정신질환자 들어오면 다 같이 죽는다. 장사도 안 되고 집값도 떨어진다’ 막 이렇게 민원을 넣어갖고 결국 제가 물러섰다 아입니까. 이게 불과 5년 전 일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인식 개선 멀었습니다.”

올해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는 인식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보건복지부 예산을 지원받아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 <F20, 그 이후>는 탐사보도 전문매체 기자 ‘이보미‘가 진주 방화・살인 사건을 취재하면서 아버지 ‘영철‘을 이해하는 이야기다.

<F20, 그 이후>는 KBS가 2021년에 공개한 영화 <F20>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F20> 개봉 이후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은 KBS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는 조현병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며 상영 중단을 촉구했다.

“<F20>이 KBS에서 제작한 거라 기대를 많이 했어요. 근데 보다가 우리 아(아이)는 중간에 뛰쳐 나갔습니더. 조현병 환자의 증상이 너무 무섭게 묘사된 기라. 그걸 보니까 (아들은) 환청이랑 환시 증상이 다시 막 올라와서 다 못 보겠다 캤습니더.”

남은 가족들은 결말까지 지켜봤다. 영화가 끝나고 가족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주인공 엄마는 아들의 조현병을 숨기려고 계속 이사를 다닙니더. 또, 자기 아들이 조현병인 걸 소문낸다고 생각한 또 다른 조현병 환자 엄마를 결국 죽입니더. 그 시체를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죽은 사람의 아들이자 조현병 환자에게 보냅니다. 죄를 뒤집어씌울라꼬 말입니더. 우리 가족들은 숨어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또, 내 아들 병 알렸다고 사람 죽이지 않습니다. 영화가 현실이랑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더.”

<F20> 제작진 측은 개봉 전 간담회에서 영화 제작 배경에 대해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 배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그 방식엔 한계가 없다. 그러나 조순득 회장은 영화가 조현병 환자나 그 가족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영화가 환자와 그 가족을 그리는 방식이 오히려 기존의 편견을 유지 및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 영화 본 사람들은 환자와 가족들이 숨어야 하는 존재거나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조순득 회장이 지난달 28일 영화 <F20, 그 이후> 촬영장에서 NG를 낸 뒤 민망함에 웃고 있다 ⓒ<F20, 그 이후> 제작팀

영화 <F20, 그 이후>은 출연진 대부분은 배우가 아니다. 주인공 ‘이보미’ 역은 기자인 내가, 아빠 ‘영철’ 역은 정신과 전문의인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이 맡았다. 극에 출연하는 두 명의 의사는 모두 현실에서도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다. 조순득 회장 역시 실명으로 이 영화에 출연했다.

“연기는 처음부터 자신이 없어서 ‘안 한다, 안 한다’ 캤는데(웃음)・・・. 환자 가족이 실명으로 출연하는 게 의미가 크다는 말에 설득됐지예. 집에 대본을 벽에 붙여놓고, 딸이랑 역할극 하듯 읽어봤는데도 결국 다 못 외워서 현장에 폐 끼쳤어요(웃음).”

조순득 회장은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영화 <F20, 그 이후>에서 위로를 받길 바란다고 했다.

“조그마한 단편영화지만 우리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이 (영화를 통해) 작은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또, 의료기관 인프라 문제, 지역사회 정착 및 관리 시스템 등 제도적 문제를 제대로 아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들의 발병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신건강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과 사업을 해온 그가 말하는 우리나라 정신 건강 시스템의 문제는 무엇일까.

“재작년 코로나가 막 시작됐을 때, 가장 처음 집단감염이 발생한 의료기관이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경북에 있는 한 병원 정신병동이었습니다. 그때 집단감염의 원인으로 지목된 게, 폐쇄적이고 열악한 병원 환경이였지예. 저도 뉴스 화면으로 병원 내부를 보면서 경악했습니더. 환자들이 평소에 그런 곳에 입원한다는 소리니까 말입니더. (예를 들면) 50명이 정원인 공간에 100명을 욱여넣었다 안 합니까. 이런 환경 때문에 환자들이 입원을 꺼리는 것도 있습니더.”

조 회장이 언급한 병원은 코로나19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조 회장은 정신병원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고 말했다.

“입원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현재 치료 문화에도 개선이 필요합니더. 물론 응급환자에게 입원은 필요합니더. 하지만 다른 시도나 과정 없이 입원만 고집하는 건 환자들에게 좋지 않습니더. 우리가 ‘강제입원’이라고 하는 비자의(非自意) 입원 과정에서 환자들은 또 다른 상처를 입습니더. 독방에 갇히기도, 손발이 묶이기도 합니더. 또, 심한 경우엔 인권 탄압 문제가 발생한 적도 있지예. 그게 싫어서 입원을 꺼립니더.”

2016년 서울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서 진정제 계통 약물을 과다 투여받은 10대 남성 환자가 사망했다. 당시 병원 의료진은 환자의 저항을 막기 위해 허용된 범위를 넘은 강박 및 폭행을 행사한 혐의도 받았다.

2019년 경남 합천에 있는 또 다른 정신병원에서는 한 정신장애인이 남성 간호사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고 8일 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를 비롯한 장애인 단체들은 2020년 5월 18일 창원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장애인 폭행·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 달라“고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도 함께했다.

‘경남 합천고려병원 정신장애인 사망사건’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조순득 회장 ⓒ조순득 제공

“제가 직접 가보니까요, 뉴질랜드에는 입원을 우선시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먼저 관리를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입원시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정신과 전문의가 상주해서 자・타해 위험도가 높은 환자가 발견되면 전문인력이 투입됩니더. 주기적으로 환자 집에 방문해서 상태를 체크하고 그래도 안 되면 입원을 시킨다 아입니까. 이런 제도를 시행할라카면 돈이 있어야제. 제가 협회에서 보니깐 예산, 예산, 모든 게 이 예산 문제드만요.”

OECD의 경우 보건 관련 예산 중 5%를 정신건강 예산으로 편성하도록 권고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 약 2.6%만이 정신건강 예산으로 반영됐다.

조 회장이 무엇보다 강조한 제도적 변화는 ‘보호 의무자제도 폐지‘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민법에 따른 후견인 또는 부양의무자가 정신질환자의 보호 의무를 지닌다.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가족이 지게 돼 있습니더. 바로 보호의무자 제도 때문이지예. 환자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거나 재산상 손해를 입히면 그 책임을 가족이 지는 경우가 많습니더. 아직 경찰이 나서서 응급입원을 시킬 정도의 비상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입원 치료는 필요한데 환자가 거부하는 상황에선 가족이 환자를 설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 설득이, 쉽겠습니까?

이러다 보니 병식(병에 걸렸다는 인지)이 없거나 자・타해 위험이 높은 환자가 자기를 입원시킨 가족에게 공격성을 표출하는 경우도 생깁니더. 환자가 가족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 중 하나입니더. 사법부에서 입원 결정을 하는 ‘사법입원 제도’ 등의 대안을 찾아야 합니더.”

아들이 조현병을 진단받은 후 엄마의 삶은 변했다. 세탁업체 사업에 뛰어들었고,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비영리 단체를 이끌게 됐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각종 정신건강 관련 회의에 참여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연기에도 도전했다.

“요즘 우리 아(아들) 증상이 심해졌습니더. 조현병에 공황(장애)까지 겹쳐서・・・. 아(아이)가 아픈데 제가 요새 마이 바쁩니더. 내년도 우리 협회 사업계획서를 마련해야 한다, 아입니까.”

오늘도 아들은 병과 싸운다. 엄마는 아들을 위해, 또 아들과 같은 중증 정신질환자를 위해, 또 자신과 같은 환자 가족들을 위해 ‘편견’이란 가장 큰 벽에 맞선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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