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고 있다 보니까 인생에 미래가 없어요. 그게 제일 답답하고 힘들어요. 마음의 병이죠. 몸에 칼질을 한 게 아니라 마음이 찢어진 건데, 이걸 ‘한’이라고 하잖아요. 한은 풀어야 하는데, 근본적인 걸 해결 안 하고 다른 걸 아무리 한다고 100% 풀 수 있겠어요?”

최홍범(50, 남)은 2년 3개월째 경기 포천시의 한 ‘캠핑장’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그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한두 달에 한 번, 고양시에 있는 병원으로 ‘약’을 타러 갈 때뿐이다. 그가 종일 지내는 텐트 안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약 봉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서 운전원으로 일했던 그는, 2017년 소장의 관용차 사적 사용을 폭로한 공익신고자다. 감사 결과 소장의 비위는 사실로 확인됐지만, 징계는 ‘감봉 1개월’뿐이었다. 반대로 최홍범에게는 업무배제와 개인사찰, 징계 시도가 돌아왔다.

새 소장 취임에 기대를 걸었지만, 업무배제는 계속됐다.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운전원. 종일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날이 길어졌다. 자존감은 무너졌고 모멸감이 쌓여갔다. 2018년 10월 “중증의 우울에피소드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관련기사 : <공익신고 이후 5년… 나는 ‘캠핑장’에 갇혔습니다>)

육아정책연구소 공익신고자 최홍범. 그는  2년 3개월째 경기 포천시의 한 ‘캠핑장’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셜록

2020년 봄에는 잠깐의 기쁨도 맛봤다. 육아정책연구소를 상대로 제기한 초과근로수당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것. 최홍범은 교회로, 마사지숍으로, 골프연습장으로, 동창회로 소장을 ‘모시고’ 다녔던 날들을 포함해, 3년 동안 미지급된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 약 3000만 원을 받게 됐다. 5월 26일 결정된 최홍범의 승소 판결은 다음달 4일, 방송 뉴스로도 보도됐다.

일주일 뒤인 6월 12일 금요일 오후 7시, 직원 대부분이 퇴근한 시간에 ‘임시 월례회의 소집’을 알리는 이메일이 발송됐다. 날짜는 바로 다음 주 화요일인 16일. 원래 정기 월례회의는 매달 초에 해왔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열리지 않고 있었다.

전 직원이 임시 월례회의에 모였다. 최홍범도 참석했다. 회의 주제는 ‘예산’. 구체적으로는, 법원 판결에 따라 최홍범에게 줘야 할 3000만 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소송의 상대방이었던 최홍범이 참석한 자리에서 최홍범에게 ‘물어줄’ 돈을 논의한다니…. 그 자체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현장에서 나온 경영진의 발언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일단은 총액 인건비 내에서 이 금액을 지급해야 됩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현재까지는 직원들 급여에서 나가야 된다는 사실을 말씀드릴 수 있고요.”
(회의 중 녹음, jtbc <수당 안 줘 소송 진 연구소…”인건비로 주겠다” 공개 엄포> 신아람 기자, 2020. 6. 23.)

급여에 영향이 있다는 소리에 놀란 직원들의 질문와 불만이 최홍범을 향해 쏟아졌다.

직원 : “(근로조건에 대해) 원하시는 게 뭔지 여쭤봐도 되나요?”
최홍범 :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공식석상에서 지금….”
(회의 중 녹음, 위 기사)

공개적인 회의에서 직원들의 항의의 표적이 된 최홍범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주용성

최홍범은 이날 상황이 “부당한 갑질”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반면 육아정책연구소는 “(최홍범의 승소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뒤) 부정확한 정보와 오해들이 회자되어 직원들의 불안감이 가중”됐다며, “(임시 월례회의는) 근로환경․조직문화의 안정이 절실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개최한 회의”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설명했다.

2020년 10월 6일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이뤄졌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에게 “인권침해 행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육아정책연구소에 대해 ‘기관경고’ 할 것을 권고했다(20진정0426800). 육아정책연구소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기관이다.

“진정인(최홍범)에 대한 직원들의 비난성 공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아 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정인이 비난을 받는 상황을 초래하게 하였으며 (…) 심리적 충격과 압박을 주어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게 한 것으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진정인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중)

‘기관경고’는 반년이 지난 2021년 4월에야 이행됐다. 기관경고 이후 육아정책연구소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자체개선계획(안)’을 보고했다. 그 문서는 육아정책연구소가 ‘인권침해 재발 방지’보다 ‘초과근무 분쟁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네 부분으로 이뤄진 개선계획의 첫 항목은 “초과근무 관련 제도 정비완료”다. 구체적 내용은 “유연근무제 확대를 통한 근로시간 적용의 탄력성 확보”. 아예 초과근무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제도를 바꾸겠다는 거다. 두 번째 항목도 “노무 현안 사전 점검 및 예방조치 마련”으로, 분쟁의 소지가 있는 현안에 대해 노무 컨설팅으로 제도를 개선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항목인 “동일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한 기관 차원 개선 노력” 부분에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문제 발생 요인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이유로 ▲기관장 출퇴근 시 기관 차량 미운행 ▲기관 업무용 차량 매각 ▲업무용 택시 제도 도입 등이 대책으로 나열돼 있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격권 침해’ 결정에 따라 기관경고를 받고도,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인권침해 사건의 재발 방지 대책을 고민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초과근무 수당 분쟁을 막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를 연구했다.

인권위의 “인격권 침해” 결정에 따른 기관경고를 받은 뒤, 육아정책연구소가 마련한 ‘자체개선계획(안)’ 일부. 재발 방지 노력으로 “기관장 출퇴근 시 기관 차량 미운행” 등을 나열했다. ⓒ육아정책연구소 제출 문건 캡처

그사이 육아정책연구소는 초과근로수당 청구 소송 1심 결과에 불복해, 2020년 8월 7일 항소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29일 확정된 2심 판결에서도 법원은 최홍범의 손을 들어줬다.

최홍범의 정신건강은 점점 더 나빠져 갔다. 2020년 8월 5일에는 “우울, 불면, 자살사고, 긴장성 두통” 등의 이유로 “6개월 정도의 병가 및 입원치료 등의 적극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2주간 정신병동에 입원했고, 그해 10월부터 ‘캠핑장’ 생활을 시작했다.

의사가 입원을 권한 단 하나의 이유는 그거였어요. 나쁜 생각(자살사고)을 덜할 수 있다는 거. (캠핑장에 와서) 처음 몇 달은 텐트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주말에는 사람도 많고 시끄럽고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만 갔다가 계속 텐트 안에만 있었어요.”

최홍범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인정을 신청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재해사실을 ‘불인정’한다는 열 쪽짜리 의견서를 2020년 9월 18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

의견서에 묘사된 최홍범은 “공익신고자 보호라는 명목아래 방만한 태도로 근무하면서, 성실하게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건전한 직장문화를 저해하는 직원”이었다.

그리고 재해사실 인정 여부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최홍범이) 민원과 소송, 언론제보를 지속·반복 제기함으로써 담당부서에서는 관련 업무 대응 등으로 기본적이고 정상적인 업무수행에 곤란을 겪고 있”다는 식의 내용도 의견서에 담겨 있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최홍범의 정신질병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됐다.

2021년 7월 21일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신청 상병 이전 정신과적 치료력이 없는 신청인(최홍범)의 우울, 무기력, 자살사고, 불면, 분노감 및 예민함 등의 증상이 있는 신청 상병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서울-2021-0001546). 재해 발생일은 2018년 10월로 인정했다. 공익신고 이후 업무배제를 겪으며 처음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때다.

육아정책연구소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의견서 일부 ⓒ육아정책연구소 제출 문서 캡처

육아정책연구소에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공익신고 이후 5년 반, 2000일의 시간이 흘렀다. 소장도 두 번이나 바뀌어서, 2021년 2월 박상희 소장이 취임했다. 질문이 아니라 ‘설득’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15일 전화와 이메일로 박 소장 인터뷰를 요청했다.

▲박상희 소장 취임 이후 최홍범의 복귀가 논의된 적이 있나 ▲최홍범이 언제라도 건강을 회복한다면 운전직으로 복귀시킬 계획인가 ▲전 소장 당시 일어난 유감스러운 일들에 의해 기관장으로서 포괄적으로 사과하고 화해할 의사가 있나 등 열한 개 질문들을 같이 전달했다.

하지만 하루 뒤 ‘거절’ 메일이 돌아왔다. 다시 이메일로 다른 책임자 인터뷰나 서면 답변이라도 요청했지만, 답이 없었다. 12월 20일 대외홍보팀에 전화를 걸어서 “연구소 차원에서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들었다. 서면 답변도 “어렵다”는 답변. 기자가 취재의 목적을 더 설명하려 했지만 담당자는 “우리도 취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며, “전화를 끊어달라”고 완강히 거절했다.

결국 국민신문고를 통해 다시 요청했다. 메일로 보낸 것과 같은 열한 개 질문들을 민원으로 접수했다. 일주일 뒤인 지난 6일 답변이 왔다.

육아정책연구소는 먼저 “민사소송 최종 패소에 따른 법원행정처분을 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발방지를 위한 초과근무 관련 제도 정비” 등의 조치들을 열거했다. 앞서 언급한, ‘자체개선계획(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또 “최홍범씨가 신청한 휴직에 대해 승인하여 적절한 치료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올해 7월까지 휴직을 승인한 사실을 언급했다. 그리고 “향후 최홍범씨가 연구소 복귀를 요청하면 즉시 복귀할 수 있도록 조치 예정”이라며, “최홍범씨가 원활하게 복귀하여 차량운행을 하도록 하기 위해 별도의 인력을 채용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최홍범씨의 적절한 치료와 복귀가 조속히 이루어져 다른 직원들과 같이 연구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구소는 관련 법률 및 규정 등에 따라 최홍범씨의 질병 치료 및 요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육아정책연구소의 민원 답변)

‘취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말과 ‘최홍범의 조속한 복귀를 바란다’는 말 사이, 그 온도 차 때문에 당황스러운 기분이 없지 않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진심’이 후자 쪽에 좀 더 가깝게 있기를 바랄 뿐이다.

최홍범은 2020년 가을부터 경기 포천시의 한 캠핑장에서 지내고 있다. 캠핑장의 가을 풍경은 아름답지만, 다음 계절이 오기 전에 이곳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셜록

지금 최홍범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에게 사과하는 사람이 없었다. 국무조정실이 공익신고를 사실로 인정해도, 법원이 미지급 수당을 인정해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를 인정해도,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해도, 아무도 그에게 사과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과’는 모든 것을 끝낼 수는 없어도, 많은 것을 시작할 수 있게 한다.

박상희 소장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바로 박 소장 자신이 2년 전에 한 말이다.

“저는 조직의 책임자로서 이 갈등을 수습하고 국책연구기관으로서 개인의 인권과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대외적인 위상을 제고할 책임이 있습니다. (…)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에 있는 말씀을 빌어 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베이비뉴스 <“아동이 행복한 권리 지키는 국책연구기관 되겠다”> 소장섭 기자, 2021. 5. 6.)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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