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납치당한 북한 민간인에게 남한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납치 사건 이후 67년 만이다.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7민사부(박석근 부장판사)는 북한 민간인 납치 피해자 김주삼(86)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초 김주삼 측은 위자료 15억 원을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일부 금액인 10억 원을 인정했다.

남한 첩보대에 의한 북한 민간인 납치 피해자 김주삼 ⓒ셜록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김주삼은 남한 군인에 의해 납치된 유일한 북한 민간인이다.

1956년 10월 10일 밤, 김주삼은 황해도 용연군 용연읍 바닷가 외딴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갑자기 군인 복장을 하고 총을 든 남자 3명이 집으로 들어왔고, 그들에게 납치된 김주삼은 백령도와 인천을 거쳐 서울 구로구 오류동 소재 공군 첩보대로 끌려왔다. 당시 북파공작원들에 부여된 임무는 북한 땅에 상륙해서 ‘아무나 납치해오라’는 것이었다.

한국군과 미군은 김주삼에게서 군사정보를 빼내려고 약 1년간 신문했지만, 중학생에 불과한 민간인이 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후 김주삼은 수송대에서 강제로 잡일을 해야 했다.

약 4년이 지난 어느 날 김주삼은 갑자기 부대 밖으로 쫓겨났다. 빈털터리에 외톨이로 남한 사회에 내던져진 김주삼은 평생을 가난과 싸워야 했고, 당국의 감시에도 시달려야 했다.(관련기사 : <남한이 납치한 북한 소년… 대한민국은 그를 지워버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주용성

김주삼이 ‘잃어버린 인생’을 되찾기 위한 싸움에 나선 것은 납치 사건으로부터 무려 64년이 지나서였다. 2020년 김주삼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약 3년의 시간이 지나, 법원은 대한민국에게 배상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

소송을 대리한 이강혁 변호사는 14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 청구사건에서 주로 걸림돌이 됐던 것이 소멸시효 문제였는데, (위자료 청구 금액 15억 원 중) 일부라도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또한 피고인 대한민국 정부의 항소 여부에 대해 “국가도 최소한 책임감을 느낀다면 고령의 원고(김주삼)가 생전에 최소한 어떤 배상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항소를 통해) 상황을 지연시키는 걸 포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주삼은 202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그 결과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8월 김주삼 납치 사건의 진실을 규명했고, 대한민국 정부에 ▲공식 사과 ▲피해 및 명예 회복 조치 ▲가족 상봉 기회 제공 등을 권고한 바 있다.(관련기사 : <이유 없이 납치했고 사과 없이 방치했다… 비정한 대한민국>)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