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나이의 의리는 끈끈하고 끔찍했다. 민중의 지팡이가 되자고 다짐했던 두 경찰관은 나라 곳간을 좀먹는 민중의 곰팡이가 됐다.
한 사람이 경찰에서 해임되고 옷을 벗은 뒤에도 둘의 의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전직 경찰은 ‘불법’ 병원을 개설해 돈을 벌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직 경찰에 남아 있던 동료는 알뜰살뜰 그의 뒤를 챙겼다. 일부러 담당을 자원하더니 사건을 방치하고 수사를 뭉갰다. 그리고 수사 기록들을 본인의 캐비닛에 몰래 숨기고, ‘내사종결’ 취지의 결재 서류를 허위로 꾸며냈다.
그 기간이 무려 5년. 동료 경찰이 안에서 ‘쉴드’를 쳐주는 동안, 전직 경찰은 밖에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불법 병원을 운영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취한 부당이득이 최소 100억 원에 이른다. 건보공단이 두 사나이의 끈끈한 의리도 모른 채 ‘수사를 왜 안 하냐’ 항의하자, 경찰에 남아 있던 동료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우리 식구입니다.”
어느 범죄영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도 스토리도 모두 ‘실제’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해당 사건의 판결문을 통해 두 경찰들의 ‘엇나간 의리’를 파헤쳤다. 그리고 그들이 부당하게 받아 간 건강보험 급여는 얼마인지, 그중 얼마가 환수됐는지 추적했다.
2001년 9월 해임된 전직 경찰 서혁진(가명). 그는 2011년 11월 22일 참사람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참사람의료생협)을 설립했다. 주사무소는 부산 북구에 뒀다. 참사람의료생협은 개설부터 불법이 동원됐다. 이사장 서혁진은 허위로 일부 조합원을 모집했다. 또 본인 돈으로 출자금을 납부하되, 서류상으로는 조합원이 납부한 것처럼 조작했다.
참사람의료생협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부산에서 ‘사무장병원’ 개념의 요양병원 두 곳을 운영했다. 사무장병원은 주로 의료인이나 의료법인을 바지사장으로 앉혀두고 비의료인이 개설·운영하는 불법 개설기관을 말한다.
이사장 서혁진은 2012년부터 2015년 6월까지 요양병원 두 곳을 운영하며 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 약 75억 원을 편취했다.
비밀은 오래 가지 못했다. 건보공단은 2014년 8월 참사람의료생협이 거짓으로 조합을 설립한 사실을 적발했다. 건보공단은 곧바로 부산북부경찰서에 수사의뢰를 준비했다.
당시 부산북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 이금치(가명)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금치는 전직 경찰인 서혁진의 과거 동료. 그는 서혁진과 같이 전투경찰로 복무하고, 경찰공무원 임용 이후엔 부산북부경찰서에서 함께 재직했다. 이금치는 건보공단 과장 마동식(가명)에게 이렇게 요청했다.
“1~2개월 후 부산지방경찰청으로 인사발령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때 맞춰 부산지방경찰청으로 수사의뢰하면, 제가 사건을 처리하겠습니다.”
이금치는 2015년 2월 부산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로 이동했다. 건보공단은 이금치의 요청에 따라 그를 담당자로 지정해 서혁진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참사람의료생협 사건에 대하여 이 씨보다 먼저 수사의뢰 했던 다른 경찰관들은 전부 수사대상자(서혁진)가 전직 경찰관이어서 수사를 못하겠다고 거절한 반면에, 이 씨는 수사대상자가 전직 경찰관이라도 수사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수사의뢰서를 보내라고 하여 이 씨에게 수사의뢰를 하였다.”(마동식 건보공단 과장 수사기관 진술 중)
이금치가 담당 수사관을 자청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이며 담당 수사관이 된 이금치는 사건을 맡은 뒤 태도를 싹 바꿨다. 되레 사건을 방치한 것. 내사 사건 등록과 관련자 조사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실상 직무유기였다.
하루는 이금치가 건보공단 과장 마동식에게 전화를 걸어 짜증 섞인 말투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과장님, 서혁진은 우리 식구입니다.”
이금치가 한창 사건을 ‘뭉개고’ 있었던 2016년 12월, 건보공단은 그에게 사건 진행 경과에 대해 문의했다. 이때부터였다. 이금치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 시작했다. 그는 사건 은폐에 적극 가담했다. 2016년 12월 23일, 이금치는 사건 방치 사실을 숨기고자 건보공단에 보낼 전자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했다.
“내사 착수의 실익 없기에 내사종결하면서, 관련자료 일체를 별도 인편으로 송부한다.”
이금치는 허위로 작성한 공문서를 건보공단에 발송까지 했다. 하지만 당시 그에겐 내사종결 취지의 전자공문을 결재하고 발송할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서류를 숨기는 데도 열심이었다. 이금치는 수사 관련 기록을 ‘내사사건 기록철’에 편철해놓지 않았고, 2017년 인사발령 이후에도 사건을 인수인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련 기록을 몰래 갖고 나와, 새롭게 발령받은 팀 캐비닛에 보관했다.
사건 방치를 넘어 허위 공문서 조작과 서류 은닉까지. 이금치가 전직 동료 경찰의 불법을 뭉개고 은폐한 기간만 약 5년이다. 당시 그는 ‘대포폰’도 사용했다.
이 사건은 2019년 감사원의 감사로 밝혀졌다. 감사 당시에도 이금치는 발뺌만 반복했다.
“(수사 관련 서류)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본 적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발뺌은 법원에선 통하지 않았다. 부산지방법원은 2020년 2월 6일 공전자기록 등 위작, 공용서류 은닉, 직무유기 혐의를 받는 피고인 이금치에 대해 징역 2년에 벌금 2000만 원, 추징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20년 10월 15일 이금치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전직 경찰 서혁진도 법의 판단을 받았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2021년 1월 21일 불법 사무장병원 개설 운영 혐의를 받는 피고인 서혁진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은 현재 3심이 진행 중이다.
불법 사무장병원을 개설해서 건강보험 급여를 빼먹은 전직 경찰. 그리고 그의 뒤를 ‘식구’처럼 봐주고 사건 은폐에 적극 가담한 현직 경찰. 이들은 모두 법의 단죄를 받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요양급여비 환수 문제, 이들이 부당하게 빼먹은 돈을 되찾아오는 막중한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현행 의료법 제33조 2항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 ▲비영리법인 등에 해당하지 않는 자는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 불법으로 개설한 의료기관, 즉 사무장병원은 개설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추후 적발되면 그동안 지급받은 요양급여비를 건보공단에 반납해야 한다.
셜록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건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참사람의료생협이 운영한 사무장병원 두 곳의 환수결정 요양급여비를 확인했다.
참사람의료생협이 설립한 병원 두 곳 중 A요양병원에 대해 환수 결정한 요양급여비는 올해 4월 기준 104억 9100만 원이다. 건보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와 환자들이 낸 본인부담금을 합친 비용.
하지만 환수율은 거의 ‘0%’에 가깝다. A요양병원이 현재까지 납부한 비용은 단돈 2만 원. 징수율로 환산하면 0.0002%다.
참사람의료생협이 설립한 또 다른 병원인 B요양병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건보공단이 환수를 결정한 요양급여비는 올해 3월 기준 16억 8600만 원이다. B요양병원은 현재 행정소송으로 징수 집행정지가 인용된 상황이다.
건보공단은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사무장병원에 대한 요양급여비 환수결정처분 법이 2013년 5월 22일에 신설돼, 그 이전에 발생한 부당이득에 대해선 건보공단이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해 비용을 받아내야 한다.
건보공단은 이사장 서혁진을 상대로 2012년 2월부터 2013년 5월까지 발생한 부당이득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이 이를 그대로 인용해, 서혁진은 총 16억 8000만 원을 건보공단에 배상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서혁진이 해결해야 할 요양급여비 채무는 현재 총 138억 5700만 원이다.
기자는 참사람의료생협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달 12일 부산 북구에 위치한 서혁진의 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지난달 17일 그의 집으로 서면 질의서도 보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3주가 지난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건보공단은 A요양병원 요양급여비 환수 문제에 대해 “채권압류 중이며 분합납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B요양병원에 대해서는 “행정소송 승소 시 건보법에 따라 징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3심 재판을 받고 있는 서혁진은 불법 사무장병원 운영에 손을 뗀 상황이다. 그는 2015년 대출금 3억 원을 승계하고 1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참사람의료생협과 A요양병원을 이○○ 씨에게 넘겼다. A요양병원은 2018년 7월 3일 폐업했다. 이○○ 씨 또한 해당 사무장병원을 불법적으로 운영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서혁진은 2013년 개설한 또 다른 의료법인 ○○○의료재단을 통해, 사무장병원 개념의 B요양병원을 계속 운영해왔다. 그는 2017년 9월까지 부인과 함께 B요양병원을 운영하다가 타인에게 양도했다. 병원은 현재 다른 사람에 의해 정상 운영 중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