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살 최준이 남긴, 한 번도 신지 못한 운동화

검은 옷을 입고 문밖을 나섰다. 망인을 만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최명희(58세) 씨의 카페. 10분쯤 카페 앞에서 기다리자, 크로스 가방을 메고 종이 가방을 손에 든 명희 씨가 보였다.

“아이고,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지. 꽃집에 들렀다 오는 길이에요. 아들한테 주려고 어제 미리 꽃집에 부탁했었는데….”

명희 씨는 오늘 납골당에 잠든 아들을 만나러 간다.

유골함 앞에 도착하자 명희 씨는 가방에서 꺼낸 손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유골함에는 어린 아들과 명희 씨가 어느 여름, 계곡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에서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아들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계곡을 향해 팔을 뻗는 중이다. 엄마는 그 뒤에서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아이를 붙잡고 있다.

엄마는 오래도록 유골함 앞에 머물렀다. 유골함 윗부분을 손으로 수없이 쓰다듬으면서 어깨를 들썩이는 명희 씨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런 기자의 마음을 아는지 명희 씨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맨날 엄마 혼자 왔는데, 오늘은 기자님들이 이렇게 와주셔서 아이가 좋아할 거예요.”

아들은 1995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6월에 태어난 아이라, 엄마는 6월(June)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 성은 자기 성을 주었다. 한국식 이름은 최준(사망 당시 21세). 엄마와 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아들이 떠난 날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울증으로 보충역 복무 판정을 받은 최준 씨는 2015년 9월부터 서초1동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했다. 문제는 우울증으로 대인기피증까지 있었던 준 씨에게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업무가 주어진 것. 2016년 6월 22일, 그날 민원인의 폭언에 노출된 준 씨는 주민센터를 뛰쳐나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준 씨는 13살 무렵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한 국제중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에는 학교생활이나 교우 관계에까지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울증이 깊어진 건 폭우가 모자의 삶을 할퀴고 간 뒤다. 2011년, 서울 서초구 일대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지금도 ‘우면산 산사태’로 기억되고 있는 그때의 재난. 최명희 씨가 운영하던 카페가 물에 잠기고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준 씨의 병은 깊어졌다. 

이때부터 준 씨는 서초구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방문 상담 등 사례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증상은 대인기피증이었다. 준 씨는 평소 방에서 혼자 생활했다. 학교에서는 친구가 없었고, 집에서는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렸다. 당시 통원 치료를 받던 정신과 병원의 권유로, 2013년엔 입원 치료도 받았다.

대인기피증과 함께 준 씨가 앓던 대표적인 증상은 ‘무기력’이었다. 입원 당시 준 씨는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었다. 삶에 대한 의욕마저 사라지기 전에 입원 치료가 진행됐다.

준 씨는 2014년 용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해 3월 처음으로 병역판정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2급, ‘현역병 입대’. 명희 씨는 아들이 부대 안에서 집단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했다. 준 씨는 담담하게 반응했다.

준 씨는 2015년 4월 강원 춘천시 102보충대 훈련소에 입소했지만, 일주일도 다 채우지 못하고 집으로 귀환했다. 군이 준 씨가 다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봤기 때문이다. 재신체검사 결과는 4급. 준 씨는 이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해야 했다. 2015년 9월부터 서초1동주민센터에서 복무하기 시작했다.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9월 4일, 준 씨는 주민센터 측에 신상명세서를 제출했다.

장기간 우울증을 앓아 사람과의 교류를 힘들어하는 사람이 주민센터에서 민원인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당시 서초1동주민센터는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주민센터 측은 사회복무요원들에게 팩스민원 보조업무를 맡겼다.

준 씨가 혼자서 민원 업무를 수행하게 된 건 2016년 3월경. 선임 요원이 소집해제하면서부터다. 준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엄마 최명희 씨가 가장 사무치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바로 이때다.

“준이가 평소엔 그런 적이 없었는데, 민원 업무를 시작하고서는 두 번 정도 ‘엄마, 나 힘들어‘라고 말했던 때가 있어요. 한 번은 제가 부엌일을 하고 있을 때, 어깨에 얼굴을 묻으면서 그러더라고요. 또 다른 날은 제 방 침대에 누워 품에 파고들면서 힘들다고 그랬어요. 아이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면서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고 했는데, 그러는 게 아니었어요. 괜찮을 거라고 하는 게 아니었어요. 무슨 일인지 캐물을걸…. 다그치기라도 해서 무슨 일인지 들을걸….”(2023. 7. 20. 인터뷰)

경고 신호는 어김없이 울렸다. 2016년 4월 12일, 준 씨가 복무 중에 근무지를 이탈한 것.

그날은 제20대 국회의원선거 하루 전으로, 준 씨도 선거 관련 작업에 동원된 날이었다. 오후 4시경, 준 씨는 사회복무요원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당시 윤혜정(가명) 주임에게 “몸이 불편하니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양해를 구했다. 이날 준 씨는 주민센터에 복귀하지 않았다.

이틀 후인 4월 14일, “왜 복귀하지 않았냐“고 묻는 윤 주임에게 준 씨는 “그날 한강에 가서 자살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오전 10시쯤, 탕비실에서 윤 주임과 이틀 전 복귀하지 않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준 씨는 이야기 중에 갑자기 주민센터를 뛰쳐나가 버스를 탔다. 놀란 윤 주임은 준 씨를 쫓아 같은 버스에 동승했고 버스에서 경찰서, 최명희 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준 씨가 내린 곳은 한강 인근. 윤 주임의 신고로 한남파출소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윤 주임과 경찰들이 준 씨를 설득해 파출소로 데려갔다. 준 씨는 파출소 의자에 누워 잠에 들었다. 그 사이, 최명희 씨가 파출소에 도착했다.

잠에서 깨어난 준 씨는 평소 진료를 받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가서 진료를 봤다. 이때 준 씨를 진료한 의사는 진단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 사건으로 주민센터 측은 준 씨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를 민원 업무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준 씨는 두 달 뒤 다시 같은 업무에 투입된다. 당시 주민센터에서 주임으로 일했던 정지창(가명) 씨는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울증이 심하고, 자살 충동까지 느껴서 복무 중에 한강으로 뛰쳐나간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민원 업무를 맡겼다는 거다. 주민센터는 최 준 씨를 살릴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골든타임에 울렸던 경고 신호를 무시한 결과는 처참한 비극으로 돌아왔다. 준 씨가 민원 업무에 다시 투입된 바로 그날, 한 50대 남성 민원인이 준 씨에게 고함을 질렀다. 욕설도 내뱉었다. 이때 민원인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직후 준 씨는 주민센터를 나가 한강으로 가는 144번 버스를 탔다. 그로부터 이틀 뒤, 반포대교 북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애초에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민원 업무가 말이 되나요. 저는 아직도 생각만 하면 너무, 너무… 아이가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왜 아무도 그때 아이를 보호해 주지 않았던 건지…”(2023. 7. 20. 인터뷰)

준 씨는 처음부터 죽음을 계획하지 않았다. 일본어 공부를 하고자 2016년 4월, 그해 11월까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수강권을 끊었다. 옷장엔 엄마가 그해 겨울에 입으라고 사준 새 패딩 점퍼를 넣어 뒀고,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의 새 운동화도 사뒀다. 진료기록지에 나타난 사회복지사와의 대화 중에는, 학비 문제, 입대 등으로 멈춘 대학 생활을 다시 이어가 무사히 졸업도 하고 싶다는 내용도 있었다.

준 씨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일본어 수강권은 만료됐다. 엄마는 아들에게 사준 겨울 점퍼를 친한 동생의 아들에게 줬다. 사놓고 한 번도 신지 못한 운동화는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남아 있다.

“누구라도, 예쁘게 잘 입으면 좋잖아요. 그리고 (옷을) 보면 자꾸 아이가 생각이 나고…. 사실 저는 아직도 아들의 마지막 출근길 뒷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아마 평생 못 잊겠죠. 지금도 아이가 방문을 열고 ‘엄마’ 하고 저를 부를 것 같아요.”(2023. 7. 20. 인터뷰)

당시 최준 씨의 죽음은 사회적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엄마는 아들이 죽은 뒤 1년 동안은 방 안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다. 1년 후에는 방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다. 아들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아들과 같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였다.

2017년 최명희 씨는 서초구청에게 책임을 묻는 민원 글을 올렸다. 당시 조은희 구청장(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이렇게 답했다.

구청장의 답변에는 구청의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이 한 줄도 없다. 최준 씨의 죽음을 ‘개인 질병에 의해’ 일어난 일로 인식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 그의 죽음에 어떤 사회적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선 오래도록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2018년 엄마는 아들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국가보훈처에서 최준 씨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싸움은 올해까지 이어졌다. 지난 6월 22일,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과 함께 국회 앞에서 ‘故 최준 사회복무요원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복무 입법대안 발표 기자회견’에 나선 것. 기자회견에서 최명희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 아들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가 바뀌고 현실이 바뀔 때까지 계속해서 힘내서 싸워가겠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엄마는 7년 만에 한강으로 향했다. 그동안은 아들을 집어삼킨 물살을 보는 게 두려워서 한강을 찾지 못했다. 엄마가 용기를 낸 이유는 아들의 시신이 떠오른 장소에서 추모문화제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추모문화제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했거나, 복무 중인 사람들이 만들었다. 추모연대굿은 사회적협동조합 ‘살판’이 맡았다. 한강변에 준 씨를 추모하기 위한 간이 분향소가 차려졌다. 최준 씨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주인 잃은 준 씨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였다.

“아들아. 이제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극락으로 가자.”

소리꾼이 목청을 높이고 북, 장구 등 악기 소리도 커지자 엄마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7년 동안 포기하지 않은 엄마의 싸움 끝에 이제 최준 씨의 이야기가 세상에 조금씩 알려졌다. 사회복무요원 안전 복무를 위한 입법이 추진되는 등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복무 중에 자살하는 사회복무요원은 한 해 13명 꼴이다. 병무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5~2022년 복무 중에 자살한 사회복무요원은 매년 9~19명에 이른다. 그러나 모든 죽음이 최준 씨처럼 알려지진 않는다. 죽음의 원인이 규명되는 경우도 흔치 않다.

스물한 살의 최준 씨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또 다른 청년들은 지금도 벼랑 끝에서 ‘소리 없는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셜록은 어쩌면 지금 삶의 ‘골든타임’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사회복무요원을 만나고 왔다.

 

취재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