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세력의 ‘검은 의리’는 끈끈했고, 이들의 ‘검은 수법’은 꼼꼼했다.
이들은 담합을 하기로 마음을 모으고, 서로의 이윤을 정하는 합의서까지 은밀하게 작성했다. 이들이 담합을 성사하기 위해 공공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 ‘검은 세력’의 정체는 상수도관 납품업체.
이들이 상수도관을 납품한 일부 지역에선 ‘검은물’이 흘러나왔다. 경기 시흥 은계지구에서는 2018년 4월 ‘검은물’에 대한 민원이 제기됐다. 상수도관이 녹슬지 않도록 내부에 코팅한 플라스틱 계열의 물질(액상에폭시 등)이 떨어지면서 가정의 수도에서 ‘검은물’이 흘러나온 것. 당시는 아파트에 입주한 지 5개월밖에 안 된 때였다.
‘검은물’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면, 업체들의 부정한 담합, 그리고 공공기관과의 유착 문제로 줄줄이 이어진다. 하지만 담합 업체와 공공기관 등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 모두 ‘부정 청탁’ 문제로는 아직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상수도관인 ‘폴리에틸렌 피복강관’ 업체들은 2012년부터 ‘중소기업자 간 경쟁구도’를 본격화했다. 중소기업법에 따라,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하고자 중견기업 및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한 조치. ‘폴리에틸렌 피복강관’은 물을 수송하는 강관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내외부에 폴리에틸렌(PE) 등으로 코팅을 한 제품이다.
수요기관은 ‘폴리에틸렌 피복강관’을 구매하려면 조달청 자재구매 시스템을 통해 직접 구매해야 했다. 여기서 수요기관은 LH, 한국수자원공사 및 지자체 등 공사 계약을 체결한 공공기관을 말한다. 2014년 기준 ‘폴리에틸렌 피복강관’ 시장 규모는 약 1150억 원 상당이다.
하지만 상수도관 업체들은 중견기업 및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정부의 배려만으로는 만족이 어려웠던 걸까. 이들은 담합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수도관 업체 임직원들은 2012년부터 ‘검은 약속’을 모의했다. 이들은 경기 의왕시, 부천시에 있는 식당과 사무실 근처에서 종종 만났다. 그러곤 이런 약속을 했다.
“입찰에서 가격 경쟁 하지 말자”
“피고인 A, B, C와 D의 영업 관련 임직원들은 같은 폴리에틸렌 피복강관 사업자인 E,F,G의 영업 관련 임직원들과 함께 2012년 초순경부터 의왕시에 있는 OO식당, 부천시에 있는 OO식당 등 식당과 위 법인사업자들 사무실 등지에서 부정기 모임을 가지면서 ‘폴리에틸렌 피복강관 입찰에서 가격 경쟁을 하지 말자’고 동의했다.”(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21고단910 판결문 발췌)
2012년 7월경엔 함께 담합을 도모한 상수도관 업체끼리 아예 이윤 배분 합의서를 작성했다.
“수요기관을 상대로 영업에 성공한 영업추진업체가 낙찰예정업체가 되고, 그 외의 지명업체는 형식적으로 입찰에 참가하는 들러리 업체가 된다. 낙찰 예정 업체는 가격제안서 총액이 3억 원 이상일 경우 낙찰물량을 입찰참가업체에 일정 비율로 배분한다.”
즉, 어떤 업체가 낙찰이 되더라도, 사전에 합의된 기준에 따라 담합 업체 전체가 물량을 배분해 이윤을 나눠갖자는 취지다.
상수도관 업체 총 13개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2012년 7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총 230건의 입찰에서 부정하게 담합했다. 문제의 업체들이 230건의 입찰을 통해 편취한 이익은 약 1300억 원.
결국, 업체들의 부정한 입찰 담합으로 상수도관이 품질에 상관없이 뒤섞여 납품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낙찰받은 업체의 상수도관 외에, 다른 담합 업체의 물품이 공급된 건 사실상 ‘허위 납품’으로 볼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0년 3월 상수도관 담합 업체 10개(폐업 3곳 제외)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61억 9000만 원 부과를 결정했다. 이후 각 업체들을 직접 형사고발까지 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지난해 4월 27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수도관 담합 업체 8개에 대해 유죄를 판단했다. 각 업체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적게는 15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에 처했다.
공정거래법은 양벌규정을 두어 위법행위에 대해 행위자 외에, 그 업무의 주체인 법인도 함께 처벌할 수 있다.
수요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수자원공사도 공정위의 발표를 근거로 각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두 기관 모두 지난 8월 24일, 담합 업체들을 상대로 일부 승소했다. 담합 업체들은 공동으로 LH와 수자원공사에 각각 약 1억 8000만 원과 8억 6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공정위의 시정명령 결정, 법원의 유죄 판단, 수요기관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하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지점이 있다. 바로 ‘부정한 청탁’을 주고 받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공정위 조사 당시, 공공기관과 업체 사이의 유착을 유추할 수 있는 증언이 나왔다.
“영업추진업체들은 수요기관을 통해 누가 입찰 참여사로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거나, 적어도 자신들은 입찰 참여자에 포함되도록 수요기관에 영업을 하는 것입니다.”(건일스틸(주) 이○○ 이사 2018.7.11 발언, 공정위 의결서 2019입담1496 발췌)
한마디로,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담합을 성사하기 위해 사전에 수요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해왔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더 이상의 조사도, 징계나 처벌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이에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는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상수도관 업체 임직원을 사기 혐의로, 그리고 이들의 부정한 청탁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공공기관 등 성명불상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을 뇌물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관련기사 : <[액션] ‘검은물’에 숨은 검은 의혹… 셜록이 검찰에 고발>)
이들 담합 업체들이 공급한 상수도관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230건의 입찰 건 중에는 이미 ‘검은물’ 문제가 불거진 시흥 은계지구 외에도 ▲7개 시·군(세종, 청주, 천안, 아산, 서산, 당진, 예산)에 급수하는 대청댐 계통 광역 상수도사업 시설공사 현장 ▲대단위 농업개발사업지구인 영산강지구 일대 ▲각 지역의 정수장, 배수지 등이 포함된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