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이어진 비대면 줌(Zoom) 수업은 점심 무렵에 집중력을 떨어트렸다. 노트북 왼쪽에 놓인 아이폰이 경고 사이렌처럼 요란하게 진동했다. 어젯밤 영화 예매 알리미를 구독하려 설치한 텔레그램 앱이었다.

장예진(가명, 30대 초반) 씨는 텔레그램 대화창을 열었다. 장 씨는 얼굴을 노트북 화면 쪽으로 고정한 채 두 눈동자만 왼쪽으로 내려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봤다. 도착한 메시지는 모두 동영상, 사진 파일. 장 씨의 몸은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 성관계 하며 짓는 어색한 미소, 윤간당하는 듯한 피해자… 이 모든 피해자의 얼굴은 장예진 본인이었다. 심장 박동수는 빨라졌으나 숨은 쉬어지지 않았다.

장 씨는 왼손 검지로 스마트폰 화면을 천천히 내렸다. 장 씨 얼굴에 겹쳐진 발기된 남성 성기, 장 씨 얼굴을 태블릿PC에 띄워놓고 자위하는 남자…. 심장이 터질 듯해 동영상 파일은 열어보지도 않았다. 

“안녕.”

대화창에서 ‘미확인 표시’가 사라지자마자 상대방은 친구마냥 메시지를 보냈다.

“얘(사진 속 남성 성기의 주인을 지칭) 알아?”

오래전부터 기다렸다는 말투. 장 씨는 대꾸하지 하지 않았다.

“빨리 대답해봐. 내가 누군지 알려줄게.”

장예진(가명) 씨는 텔레그램으로 디지털성범죄 파일을 받았다. 장 씨 사진을 활용한 딥페이크 파일, 일명 ‘지인능욕’이었다. 일러스트 오지원 ⓒ셜록

발신자를 확인했다. 아이디는 @tttttttttyyyyyyu. 상대방은 철저히 자기를 숨겼다. 도대체 누굴까.

“누나, 연구하지 마요.”

녀석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듯 말했다. 설마… 장 씨는 노트북 화면 위 카메라를 노려봤다. 강사는 화면 안에서 여전히 강의 중이었다. 노트북 카메라는 분명히 비활성화 상태였다.

“어차피 나 못 잡는다니까!”

뒷목이 서늘해졌다. 고개 돌려 창밖을 살폈다. 아파트 12층, 창밖은 뜨거운 여름이었다. 장예진 씨는 자기 방 곳곳을 살폈다. 사방에서 안을 볼 순 있어도, 안에선 밖을 볼 수 없는 출구 없는 유리 감옥에 갇힌 듯했다. 노트북을 닫고 강사에게 조퇴를 신청했다.

정신을 차리고, 녀석이 대화방을 폭파하기 전에 화면을 차례대로 캡처했다. 상대방은 사진, 영상 파일을 계속 보내며 장 씨를 조롱했다.

“너도 이런 거 좋아하지? 뭐라 말 좀 해봐. 누나 사진 이미 다른 채팅방에도 올렸어.

녀석은 장 씨 사진을 보며 “맛있겠다” 등의 음담패설을 나누는 다른 대화방 화면을 인증샷으로 보냈다. 이어 “대화방으로 들어오라”고 장 씨를 재촉했다. 장 씨는 응하지 않았다. 녀석은 다시 대화방 인증샷을 보냈다.

“이번 시즌 먹잇감이 저×인가요?”

정체 불명의 무리들이 장 씨 사진을 띄워놓고 지껄이고 있었다. 장 씨는 울렁거리는 속을 참고 녀석이 보낸 파일을 살폈다. 얼굴은 장예진 본인이었으나, 몸은 처음부터 아니었다. 딥페이크(Deepfake), 지인 여성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한 성착취물. 말로만 들어온 일명 ‘지인능욕’이다.

‘갑자기 어떻게 이런 일이….’

장 씨는 낯선 여자 몸에 붙은 자기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무단 합성에 이용된 사진 수는 많지 않았다. 장예진 씨는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 셀카 사진 등을 낯선 사람이 볼 수 있는 ‘전체공개’ 상태로 SNS에 올린 적 없다.

녀석은 소수의 사진으로 수십 개의 음란 합성물을 만들어 인터넷 곳곳에 뿌린 듯했다. 자기 얼굴을 살피던 장 씨는 뭔가를 알아차렸다. 녀석이 이용한 사진은 모두 장 씨가 카카오톡 프로필로 썼던 것들이다.

‘이 사진을 내가 언제 프로필로 썼더라….’

정체를 숨긴 그놈은 텔레그램으로 디지털성폭력 파일 수십 개를 장예진(가명) 씨에게 보냈다. 일러스트 오지원 ⓒ셜록

장 씨는 연도를 추적하다 스마트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시간은 무려 2년 전으로 올라갔다. 장 씨는 프로필 사진을 교체할 때마다 이전에 쓴 것을 비공개 처리한다. 녀석은 2년 전부터 장 씨를 지켜보며 프로필 사진이 바뀔 때마다 꼼꼼하게 수집했다는 뜻이다. 몸에 소름이 돋았다.

용의자는 분명 장 씨 주변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카카오톡 앱을 열고 친구 목록을 살폈다. 수백 명의 얼굴과 이름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까운 지인을 의심해야 하다니.

비대면 수업 중에 잠시 딴 짓을 한 형벌 치고는 가혹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 중에 잠시 한국에 왔는데 고국의 환영인사 치고는 고약했다.

곧바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연락해 도움을 청했다. “지금도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면 112로 연락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112 쪽은 “최대한 증거를 수집해 가까운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라”고 알렸다.

무섭고 떨린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장예진 씨는 엄마와 함께 서울 서대문경찰서로 향했다.

“신고하게? 신고해도 나 못 잡아!”

녀석은 다 지켜보고 있다는 듯 다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은 장 씨는 몰래카메라가 붙어 있는 건 아닌지 자기 몸을 쓰다듬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린 기분이었다.

“대답 좀 해봐. 그러면 나 잡을 방법 알려줄게.”

녀석은 계속 장 씨를 조롱하며 대답을 유도했다. 서대문경찰서에 도착해 고소장을 쓰는 순간에도 녀석은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연구하지 말라니까! 어차피 나 못 잡는다고!”

공포스러우면서도 답답하고, 화가 치솟으면서도 무기력해 고개가 푹 떨어졌다. 고개를 들었을 때 경찰과 눈이 마주쳤다.

“혹시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텔레그램 성범죄는 실시간으로 이어지는데,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고소장 접수 절차만 진행했다. 경찰서를 나와서도 숨이 막혔다. 섭씨 30도를 넘는 기온 탓만은 아니다.

경찰서에 있는 동안에만 그놈은 수십 개의 파일을 보냈다. 장 씨가 끝내 대답하지 않자 녀석은 합성한 음란사진과 메시지를 모두 삭제했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이어졌다.

“너 진짜 세다. 너 보고 발기됐던 첫날을 잊을 수가 없어. 너무 예뻤어. 가끔 ×치려고 한 거니 너무 걱정 마요.”

녀석의 올가미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당장 눈에 보이는 길은 하나. 약 15년간 써온 전화번호를 버리는 것. 가까운 통신사 매장에 들어가 미련 없이 전화번호를 바꿨다.

2021년 7월 12일, 그 더운 날에 그놈에게 걸려들었고, 겨우 올가미를 풀었다. 녀석에게 더는 메시지가 날아오지 않았다.

곧바로 두 개의 전쟁이 터졌다. 장 씨 가정에서 한 번, 주변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그땐 몰랐다. 녀석은 계속 장 씨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놈은 장 씨의 모든 것을 지켜본다는 듯 텔레그램으로 디지털성범죄 파일 수십 개를 전송했다 ⓒpixabay

(*2화 <꼬리를 무는 딥페이크 피해자, 그들은 모두 ‘서울대’였다>로 이어집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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