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문재인 정부 1호 간첩 사건’의 주인공이 6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2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남북경협사업가 김호(51) 전 HB이노베이션 대표에 대해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전 대표는 앞서 1심에서 유죄,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2018년 8월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김 전 대표의 집을 압수수색하며 시작된 기나긴 싸움. 구속과 석방, 재구속과 재석방….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치열한 공방을 이어온 김 전 대표의 싸움은 대법원 ‘무죄’ 판결로 종지부를 찍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지난해 4월부터 보도한 ‘국가보안법 마지막 인터뷰’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 김호 전 HB이노베이션 대표 ⓒ셜록

김 전 대표는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자 남북경협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2007년부터 IT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얼굴 인식 프로그램 개발에 연구에 매진했다. 중국 법인을 통한 제삼자 무역 방식을 취해, 북측 인력을 고용해 남북 간 협력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갔다.

오랜 연구 끝에 2018년부터 본격적인 투자 유치에 나섰다. 그해 남북 정상은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았고, 그의 남북 경협 사업 역시 순풍을 타고 나아가는 듯했다.

2018년 8월의 어느 새벽, 김 전 대표의 옥탑방으로 경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실에서 작은딸을 안고 잠들어 있던 그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검찰은 2018년 9월 김 전 대표가 북한 프로그래머와 개발한 프로그램이 사이버테러의 위험성이 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했다.

▲북측 인력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회합통신’(국가보안법 제8조) ▲기술자들에게 하청을 주고 개발비를 건넨 것과 개발 관련 자료를 제공한 것은 ‘편의제공’(국가보안법 제9조)과 ‘금품수수’(국가보안법 제5조) ▲기술적 문의를 하는 과정에서 이메일을 주고받은 것에는 ‘자진지원’(국가보안법 제5조, 제4조)이 적용됐다.

사건 초기 언론은 ‘IT 흑금성’, ‘문재인 정부 1호 간첩’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김 전 대표에 대한 보도를 연일 쏟아냈다 ⓒ셜록

“제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교류를 한 것도 아니었고요, 경제적인 교류 협력을 했기 때문에, (만약 문제를 삼는다 해도) 남북교류협력법(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정도는 생각했지, 국가보안법으로 이렇게 조작할 줄은 상상도 못했죠.”(이하 김호 전 HB이노베이션 대표 인터뷰, 2023. 4. 1.)

김호는 떳떳했다. 그는 통일부에 공식적으로 접촉 신고를 하고 북측 인력을 만났다. 또한, 국정원과 교류하며 사업 동향을 보고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언론 보도에 그의 목소리는 묻혔다. 언론은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아직 입증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공공연하게 전한 것. 김 전 대표가 구속되고 2022년 1월 1심에서 유죄 판결까지 나오자, 언론은 그를 ‘간첩’, ‘북의 지령을 받은 자’로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년 뒤 원심을 완전히 뒤집었다. 서울고등법원(이원범 형사2부 부장판사)은 지난해 3월 김 전 대표에게 내려진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이라는 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김호)이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인 박○○, 양○○을 ‘지원할 목적’으로 군사상 기밀을 제공하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2023. 3. 23. 서울고등법원 판결문 일부, 2022노266)

재판부는 김호의 사업이 ‘특수한 목적성’을 띤 것이 아니라 적법한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이른바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사람들을 사업 파트너로 생각했을 뿐, ‘어떠한 목적’을 가진 사업을 추진했다고 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관련기사 : <“국가보안법 무죄!” 나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

지난 25일 김호 전 HB이노베이션 대표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주용성

대법원의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은 지난 25일 항소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6년간의 싸움이 끝났다. 결국은 ‘무죄’였다.

김 전 대표가 자택에서 체포된 2018년 8월 9일부터 검찰의 기소가 있었던 9월 5일까지 약 한 달 사이, 언론은 85건(30일 현재 네이버 검색 기준)의 기사로 그의 소식을 보도했다. 이 사건을 “문재인 정부 1호 간첩 사건”, “IT 흑금성 사건” 등으로 부르는 보도는 김 전 대표가 1심 유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 25일부터 5일이 지난 현재(30일)까지 김 전 대표의 대법원 무죄 판결에 관한 기사는 단 한 건도 보도되지 않았다.

“사람이 사실 배고파서 죽는 건 아니고, (제일 크게 잃어버린 건) 비전 상실이죠, 비전 상실. 제 나름대로 목표를 가지고 이렇게 한길을 걸어왔는데….”(김호)

그가 피고인 신분으로 있었던 시간은 자그마치 6년. 김 전 대표가 빼앗긴 건 6년이라는 시간만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매진했던 10년과 그 사업으로 꿈꾸던 미래까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과연 그가 잃어버린 평범한 일상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6년 만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벗은 그의 소감은 어떨까 ⓒ셜록

지난 26일 김 전 대표와 전화로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 우선 근황이 어떠십니까?

“여전히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죠. 그리고 곧 <니체 대 문재인>이라는 책이 출간될 예정이에요. 국가보안법 피해자가 됐지만 ‘남북 교류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았어요. 문화, 관광 등 교류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이쪽으로 새로운 일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는 순간을 너무 기다리셨을 것 같은데요.

천국과 지옥을 사이에 두고 있는 기분이었죠. 무죄를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진실이 있다면 무죄 판결이 떨어질 거라고 믿었어요. 재판 결과는 곧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몸소 느껴본 국가보안법이란 존재는 어땠습니까?

“국가보안법은 이런 거죠. 북한이라는 가공의 적을 만들어서 한미동맹이 무조건 선이다, 북한은 위험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자체적인 판단, 분단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 결단 같은 걸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 프레임을 조성해서 공포를 조장하고 횡포를 부리는 거죠.

솔직히 검사가 무슨 국가를 알고, 안보를 알아요. 그러니까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조가 없어지면 걔들이 말하는 안보라는 게 우스운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 명분이 되고, 장막이 되는 거죠.”

– 지난 9월, 국가보안법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은 다시 한번 좌절됐습니다. 과연 국가보안법은 폐지될 수 있을까요?

“국가보안법 폐지는 더 어려워질 겁니다. 민주당 하는 모습을 보세요. 여전히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희망고문만 하고 있잖아요. 이제는 우리가 달리 봐야죠. 그들이 바꿀 의지가 있었다면 진작 바뀌었을 거예요. 민주당조차도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인정을 해야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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