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경찰서 세 곳은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수사를 중지한다“고 밝혔다. 텔레그램 성폭력 피해자 장예진(가명) 씨는 본인이 직접 범인을 추적하기로 했다. 서울대 A학과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 강력한 용의자로 구태우(가명)를 지목한 순간, B학과에도 피해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 추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훨씬 강력한 두 번째 용의자가 등장했다….

두 번째 용의자의 얼굴은 텔레그램 성폭력 피해자 장예진(가명) 씨에게 익숙했다.

‘너라고…. 정말 너라고?! 어떻게 이럴 수가….’

서울대학교 A학과로 입학한 후 B학과로 전과해 졸업한, 최우성(가명, 남성). 장 씨의 1년 후배다. 눈을 감아버린 장 씨 귀에 오래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누나, 편하게 말 놓고 친하게 지내도 되죠?”

친화력 좋은 최우성은 입학 직후부터 장 씨와 유정희(가명), 주진희(가명), 강소윤(가명)을 “누나”라 부르며 잘 따랐다. 최우성은 큰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누가 봐도 매력적인 후배였다.

약 10년 전 대학 시절의 기억이 텔레그램 메시지 “누나 연구하지 마요”, “너 보고 발기됐던 첫날을 잊을 수가 없어”와 겹치자 몸에 소름이 돋았다.

대학 시절의 기억이 ‘그놈’의 텔레그램 메시지와 겹치자 몸에 소름이 돋았다 ⓒunsplash

이 와중에도 그놈은 구태우에게 ‘서울대 능욕방’ 링크를 텔레그램으로 보냈다. 썸네일은 한 여성의 몸에 서울대 마크가 새겨진 사진. 이런 설명이 붙었다.

‘책상에서만 아니라 침대에서도 끝내주는 여자들.’

그놈은 갈 데까지 갔다. 최우성에 비하면 구태우가 범인일 가능성은 훨씬 낮았다. 많은 피해자가 나온 서울대 B학과와 구태우는 관련이 없다. B학과 출신 피해자들 역시 최우성은 알아도 구태우는 모른다고 했다.

의심은 쉬워도 입증은 어려운 법. 자, 이젠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할 시간이다. 장예진 씨는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총알은 하나야. 명중 못하면 그놈은 진흙탕 속으로 다시 사라질 거야.”

빠져나올 수 없는 바늘과 확실한 미끼가 필요했다. 최우성은 대학 졸업 후 블록체인 관련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IT 분야 고급 기술을 가졌거나, 그쪽 전문가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이번 기회를 못 잡으면,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게 뻔했다.

장 씨와 친구들은 고심 끝에 ‘카카오톡 멀티 프로필’ 기능을 선택했다. 그놈은 피해자의 모든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가져갔다. 그것도 장기간에 걸쳐 꼼꼼히 수집해서 말이다. 만약 피해자가 프로필 사진을 바꾸면 그놈은 또 그걸 몰래 가져가 허위 영상물은 만들겠지?

장 씨의 친구 유정희가 나섰다. 유정희는 자신이 아니면 알아챌 수 없는, 사실 같은 사진이지만 머리카락 한 올만 다르게 편집한 사진 두 개를 준비했다.

유정희는 머리카락 한 올만 다른 사진을 ‘카카오톡 기본 프로필’로 설정했다. 오직 최우성에만 보이게 말이다. 반대로 최우성을 제외한 모든 카카오톡 친구들은 ‘멀티 프로필’이 보이도록 설정했다.

유정희(가명) 씨는 카카오톡 멀티프로필 기능을 이용해 용의자에게 ‘미끼’를 던졌다 일러스트 오지원 ⓒ셜록

최우성에게 ‘기본 프로필’을 노출하기로 한 건 그가 복수의 전화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가정한, 역발상 조치였다.

함정 파기를 끝냈다. 최우성에게 신호가 올지, 온다면 하루이틀이 지나서일지 그보다 한참 뒤일지, 모든 게 불확실했다. 장 씨와 친구들은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벌써 1년을 추적했으니, 며칠 참는 건 힘들지 않을 터였다.

신나고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대학 2학년 때 잠시나마 가깝게 지낸 후배를 상대로 덫을 놓은 거니까. 최우성이 강력한 용의자여도, 100% 확실한 게 아니니 가슴 한쪽이 불편하고 찝찝했다.

경찰이 나서 수사해주면 좋으련만, 그건 난망한 일이었다. 서대문경찰서·강남경찰서·세종경찰서는 한결같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수사를 중지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는 “피해자들이 용의자를 특정해서 오라”는 뜻이기도 했다.

어색하고 불편한 기다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미끼를 던진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입질이 왔다.

그놈은 이른바 ‘n번방 사건’을 해결한 ‘추적단불꽃’의 ‘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단은 디지털성폭력 영상물을 즐기는 남성으로 위장한 채 그놈과 텔레그램 비밀방에서 신뢰를 쌓은 상태였다.

단에게 도착한 파일은 유정희 사진이 들어간 허위 영상물. 단은 이 파일을 곧바로 장 씨에게 전달했다. 장예진 씨는 숨죽여 친구 유정희의 얼굴을 살폈다. 잘 보이지 않아,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확대해 ‘머리카락 한 올만 다른 사진’인지 확인했다.   

최우성이 미끼를 물었다. 그놈이 보낸 건 ‘머리카락 한 올만 다른’, 오직 최우성만 볼 수 있는 사진이었다. 이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있을까.

이로써 후배에게 덫을 놓았다는 불편한 마음은 싹 사라졌다. 그동안 겪은 공포와 우울, 수많은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올라왔다. 이젠 모든 걸 끝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다시 없을 듯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텔레그램 디지털성폭력을 겪은 지 1년 만에 피해자들은 강력한 용의자를 직접 잡아냈다 ⓒunsplash

장예진, 유정희, 서연우(가명) 등은 ‘카카오톡 멀티프로필 증거물’을 토대로 최우성을 용의자로 특정해 2022년 7월 20일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장 씨가 처음 메시지를 받은 지 1년, 최우성이 미끼를 문 지 이틀 만이다.

피해자들이 알아서 용의자를 특정해 오길 정말로 기다렸는지, 경찰도 그제서야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건은 관내에 서울대를 두고 있는 관악경찰서에 배정됐다.

8월 9일 경찰은 최우성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8월 14일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8월 18일 오후 4시께 최우성을 서울 강남 소재 직장에서 체포했다.

자신을 1년간 괴롭힌 그놈이 정말 대학 후배 최우성이 맞는지, 장 씨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장 씨는 추적단불꽃의 ‘단’을 통해 그놈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도록 했다. 단은 평소처럼 연속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먹고 싶다. 추릊.” “요즘 좀 뜸했지?”

시각은 오후 7시 33분. 평소 즉각 반응하던 그놈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이때 최우성은 관악경찰서에 체포된 상태였다. 몇 시간 뒤, 단은 메시지 두 개를 다시 연속으로 보냈다.

“오늘 × 고?” “지금 가능???”

그놈은 또 읽지 않았다. 여전히 최우성은 경찰서에 있었다. ‘그놈은 최우성이 확실하구나.’ 장예진 씨는 생각을 굳혔다. 수사권 없는 자신이 이 정도 했으면, 최종 확인은 경찰의 몫이었다.

관악경찰서에서는 밤 10시 47분부터 피의자 최우성에 대한 신문이 시작됐다.

경찰 : “유정희가 당신만 볼 수 있게 카카오톡 기본 프로필을 설정했는데, 곧바로 그 사진이 (음란물로) 전송됐습니다. 이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우성 : “저는 카카오톡 프로필 화면을 확인하지 않습니다. 업무가 굉장히 바빠 그럴 시간도 없구요. 최근까지 유정희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모두 인스타그램을 사용했습니다. 카카오톡으로 유정희와 연락한 적 없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하 2022. 8. 18. 최우성 신문조서 인용)

경찰은 피해자 얼굴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며 추궁했다.

경찰 : “피해자 얼굴을 전자기기로 띄운 후 불상의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갖다대거나 자위하는 영상이 있는데, 아는 바가 있나요?”
최우성 : “전혀 모릅니다. 처음 봅니다.”

경찰 : “피해자가 텔레그램 대화로 전달받은 (성폭력) 표현들에 대해 아나요?”
최우성 :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저는 해당 표현들을 평소에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최우성은 모든 걸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예진 씨 등 일부 피해자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장예진, 유정희, 주진희, 강소윤은 A학과 ○○학번 여학생인데, ○○학번 중에서 매력 있는 인물들로 유명했습니다. 이를 볼 때 범인은 아마 A학과를 눈여겨본 사람이 아닐까요?”

조사 끝 무렵, 최우성은 자기의 스마트폰이 해킹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제가 지인들을 연락처에 등록할 때 학번/학과/이름 이런 식으로 등록을 합니다. 아마 (범인은) 제 핸드폰을 해킹한 후 피해자들의 전화번호와 학번, 학과, 이름들의 정보를 파악해 범행에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피해자들은 용의자를 1년간 추적해 경찰이 그를 체포하도록 했다. 하지만 반전은 또 일어났다. 일러스트 오지원. ⓒ셜록

조사가 끝난 이튿날인 8월 19일 새벽 6시께, 최우성은 자기 발로 걸어서 관악경찰서를 빠져나갔다. 수사관이 전화로 장예진 씨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물증도 없고… 최우성 씨 석방했습니다. 피차 모른 척 하세요. 괜히 최우성 씨한테 연락하지 마시구요.”

최우성의 스마트폰, 노트북 등에선 범행을 뒷받침할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머리가 하얘졌다.

‘피차 모른 척하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내가 잘못 짚어서 애먼 사람 잡아 고생시켰다고 경찰은 지금 내 탓을 하는 건가?’

믿기 어려웠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전화기를 대지 않은 반대편 귀에선 최우성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했다.

“누나 연구하지 마요. 어차피 나 못 잡아.”

(*6화 <경찰이 풀어주고 검찰이 봐준 ‘그놈’, 결국 법정에 선다>로 이어집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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