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걸 물어도 최성수(가명)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성적인 아이라는 생각에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교사의 질문에 머리가 하얘져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던 경험은 나에게도 있으니까.   

성수의 무응답, 무반응은 정도를 더해갔다. 출석 확인 시간, 이름을 몇 번 불러도 성수는 대답하지 않은 채 멀뚱히 나를 바라봤다. 당황한 나는 반 아이들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샘, 성수 중학교 때에도 말을 안 했어요. 성수 목소리 한번 들어보는 게 소원이에요.”

반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해도 성수는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날 빤히 바라보더니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말하기 싫으면 “패스”를 외치면 되는데, 성수는 그 두 글자마저 귀찮은지 외면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 수업 중반에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어깨를 다독여 깨워도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아무리 일으켜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밀리면 수업 분위기는 완전히 망가진다.

“최성수, 일어나. 졸리면 뒤로 가서 서서 수업 들어.”

단호한 어조 말했다. 책상에서 고개를 든 성수는 한마디 저항도 없이 교실 뒤로 걸어갔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1개월, 아직 목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성수는 교실 뒤에서 날 바라봤다. 건조한 눈빛이 수업 내내 부담스러웠다.

공업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 지 15년, 이런 아이는 처음이다. 수업 중 졸거나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깨우면, 보통 적극적인 항변이 돌아온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수업이 듣고 싶지 않고, 저한테 별 도움도 안 되는 거 같아요.”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하지만 성수는 달랐다. 교사의 지도에 순순히 응했고, 졸음 사건 이후 수업도 비교적 열심히 들었다. 다만, 말은 하지 않았다.

교실 안 누구도, 성수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없었다 ⓒunsplash

책을 읽는 수업 시간.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들고 와서 읽으면 된다. 새 학기 첫 시간부터 신신당부를 했기에 아이들 대부분이 책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성수는 아니었다. 책상 위에 아무 것도 펼치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역시 부담스러웠다. 쉬는 시간, 성수를 복도로 불렀다.

“책을 안 가져온 이유가 있을 텐데… 성수야, 혹시 무슨 일이 있니?“
“…….”

“책을 구했는데, 깜빡 잊고 안 가져온 건가?”
“…….” 

성수의 무반응에 오히려 내가 무안해졌다. 다그쳐서 될 일이 아닌 건 분명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성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음 시간에는 꼭 가지고 와. 우리 잘해보자. 파이팅!”

다음 시간에도 성수는 또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고, 부탁하고, 엄한 척 말을 해도 성수는 역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목소리마저 들려주지 않았다. 무시당한 듯한 모욕감마저 들었고, 화병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수업을 마치고 성수와 면담을 시도했다.

“성수야, 혹시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데가 있어? 말을 못할 사정이 있으면, 아니 말을 하기 싫으면 글로라도 표현을 해볼래? 선생님이 말이야… 음, 뭐랄까… 네가 빤히 보기만 하고 말을 안 하니까 무시당하는 기분이 든다. 네가 어떤 신호라도 보내야 선생님이 그에 맞춰서 반응이라도 할 텐데….”

그렇게 혼자 약 10분을 떠들었다. 성수는 답답해하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었다. 면담 후 성수의 담임교사를 찾아갔다.

“성수가 저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걔 입학하고 목소리를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혹시 성수 부모님과 통화해보시겠어요?”

담임 선생님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날 밤, 성수 어머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성수가 집에서는 아주 조금 말을 하긴 합니다. 근데, 학교에서는 통 입을 안 열어요. 중학교 때에도 그랬는데… 너무 윽박지르지는 말아주세요.”

성수는 수면처럼 고요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 안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을 거라 나는 믿었다. ⓒpixabay

어머니 역시 성수가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다. 본인도 많이 답답하다면서 “말을 안 한다고 억지로 강요하지는 말아달라”고 몇 번을 당부했다. 성수가 집에서는 아주 약간이나마 말을 한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다음 책 읽기 수업 시간, 성수는 책을 가지고 왔다.

“우와, 성수야! 책을 가지고 왔네. 대박! 무슨 책이야? 이거 재밌는 거냐?”

나는 아이들 앞에서 호들갑스럽게 성수를 칭찬했다. 성수는 별 반응도 없이 책장을 넘겼다. 책 첫 페이지에는 작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우리 멋진 아들 성수야.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책 재미있게 읽어.”

찰나에 본 메모는 머리에 깊이 박혔다. 성수 부모님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교사의 전화를 받았을까. 좀처럼 신호를 보내지 않는 아들의 내면에 닿기 위해 엄마는 여러 방법을 썼다. 기다림도 아들에게 가는 길 중 하나였다.

나는 성수의 책을 잠시 빌려와서 엄마의 메모 아래에 짧은 글을 썼다. 

“성수야, 나는 네가 참 좋은 아이인 것 같아. 우리 학교, 좋은 학교야. 처음에는 조금 어렵겠지만, 한 해 동안 즐겁고 재미있게 지내보자.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샘을 찾아와!” – 국어샘

성수는 메모를 확인하고, 잠깐 나를 바라보더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나의 위치를 살피거나, 이따금 옆을 지나갈 때는 책을 얼굴에 더 가까이 붙이고 열심히 읽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성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책을 들고 왔다. 거기에도 엄마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나도 메모를 남겼다. 그 뒤, 성수가 가져오는 모든 책 첫 페이지에는 엄마와 나의 메시지가 적혔다. 그것이 성수와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독서 후에는 꼭 일지를 써야 했는데, 성수의 문장은 한두 줄을 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한 문장이라도 쓴 게 어딘가 싶어 나는 성수의 그 짧은 표현에 최대한 긴 피드백을 남겼다.

‘책 일지’에 적는 성수의 글은 한 문장에서 두 문장으로, 두 문장에서 다섯 문장으로 점점 늘었다. 어느 순간엔 열 문장을 쓰기도 했다. 일지를 적는 시간엔 일부러 빨리 쓰고는 나의 반응을 먼저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녀석과 나 사이에 아주 좁은 소통의 길이 열렸다.

책 읽기 수업이 잘 진행되자 다른 수업에서도 길이 열렸다. 나는 성수만의 특별 과제를 줘서 참여를 유도했다. 발표수업 때는 시나리오 쓰기 과제를 내주었고, 토론수업에서는 요약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다. 모둠별 수업에서는 정보 검색 혹은 자료 정리 등의 역할을 성수에게 맡겼다. 우리는 조금씩 말 대신 글과 눈빛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익혔다.

책 첫 페이지에 손글씨로 남긴 짧은 메모를 통해, 우리만의 가느다란 소통의 길을 열 수 있었다 ⓒpixabay

한 해 동안 성수를 열심히 지도했지만, 나는 끝내 성수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학교의 다른 누구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성수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다가가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수업에서 성수에게 말했다.

“성수야, 처음에는 선생님이 답답해서 안달이 났다. 말 많은 국어샘이 말로 소통 못한다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거든.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누구보다 네가 가장 힘들었을 거 같다. 학기 초반에 말 하라고 강요한 거, 미안하다. 샘이 사과할게. 샘은 늘 학교에 있으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문자나 쪽지 해라.“

국어 수업에서 말 한 번 안 하고 진급한 학생은 성수가 처음이다. 때로는 말하기보다 잘 듣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니 성수가 큰 어려움 없이 고교를 졸업하기를 바랄 뿐이다.

학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성수. 특별한 아이일까?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만, 내가 일하는 공고에서는 그리 놀라운 사례가 아니다. 우리 학교에는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다닌다.

경계성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고, 한글 외에는 별다른 지식을 습득 못한 아이도 있다. 부자 부모님 밑에서 사고뭉치로 자란 녀석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 얼굴을 모르거나 부모님이 계셔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혹은 일부러 알려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벌써 3월,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됐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올해에도 우리 공고에는 여러 모범생과 함께 ‘역대급으로’ 개성 강한 아이들이 입학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수업을 거의 들어가지 않았던 아이,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된 아이,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우울증을 앓는 아이 등.

누군가는 공고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을 ‘문제아’, ‘낙오자’라 부르곤 한다. 이런 가혹한 차별과는 상관없이 나는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처음부터 수업을 시작한다.

모범생이 있으면 사고뭉치가 있고, 1등이 있으면 꼴등이 있으며, 비장애인이 있으면 장애인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 이들이 한데 섞여 공부하는 곳, 그게 바로 학교니까. 

나는 다시 아이들과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정희성이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표현한, 날 저물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의 이미지를 떠올려볼 것이다. 누군가는 책상에 엎드릴 테고, 나는 다시 깨우고, 반항하고, 달래고, 답답해하고, 화해하고…. 하지만 어떻게든 다시 길을 찾으리라 본다. 성수와 내가 그랬듯이.

영남공고 지한구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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