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중학교 교무실에 들어서자 3학년 부장교사의 호통소리가 귀를 때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십니까! 당장 나가세요! 앞으로 그 학교에 학생 보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와 함께 해당 중학교를 찾은 선배 교사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어쩔 줄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도 선배를 따로 고개를 숙였다.

“학생을 데리고 간다고 했으면 책임을 져야죠! 이제 ○○공고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가세요, 가! 두 번 다시 오지 마세요!

교무실의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우리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분노에 찬 부장교사의 거친 숨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망부석처럼 한참을 서 있던 선배 교사는 허리를 숙여 교무실 바닥에 대고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초임 교사 시절에 겪은 이 모욕적인 일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사건은 우리 공고 진학을 지원한 A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불합격하면서 벌어졌다. 해당 중학생이 성적이 안 좋아 벌어진 일. 그럼에도 우리 학교의 고참 교사가 중학교로 달려가 머리를 조아린 일대 사건.

여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르는, 어쩌면 교육당국이 감추고 싶어 하는 살벌한 특성화고교 입시 문제가 있다. 성적 하위 20% 학생을 ‘모시기’ 위한 교사들의 양보 없는 치킨게임은 해마다 11월에 벌어진다.

입시철이 되면 교사들은 영업사원이 돼 중학교를 찾아다녀야 했다 ⓒpixabay

이 시기에 중학교 3학년들은 진학할 고교를 선택한다. 성적순으로 소수의 학생이 과학고-외국어고 등 특목고, 민족사관고등학교와 같은 자율고와 영재고에 지원하고, 대다수의 학생은 일반고(인문계고) 진학을 결정한다. 에둘러 가지 말자. 절대 다수 한국 사람들이 ‘일반고’라는 표현을 쓴다.

나는 대구의 ○○공업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 해마다 차이가 있지만, 중학교 성적 80% 안쪽 아이들이 일반고에 진학하고 그 외 학생들이 공고 등 특성화고교에 들어온다.

대구에는 20여 개의 특성화고교가 있다.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에 지원하고, 학교가 이를 수용하면 아무 일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단, 간절한 꿈을 위해 특성화고에 오는 학생은 거의 없다.

공고에 진학해야 하는 여러 학생과 학부모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명 ‘충격 흡수’ 시간을 거친다. 현실 인정을 마치면 다음 고개를 넘어야 한다. 집에서 가깝고, 취업 잘되고, 대학 진학까지 되는 ‘명문 공고’의 문은 넓지 않다. 여기에서도 밀리면 학생과 학부모는 다시 큰 상처를 받는다. 학교 서열화가 주는 고통은 공고 쪽도 예외는 아니다.

중학교에서 곤욕을 치른 그해 어느 날, 우리 학교 입시를 담당하는 교무부장이 교무실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선생님들, 수업은 적당히(?) 하고 중학교로 나가세요. 가서 3학년 담임샘들과 어떻게든 친해져야 애들을 한 명이라도 더 보여줍니다. 혹시 중3 담임샘 아시는 분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학연, 지연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미달을 막아야 합니다!”

학교는 입시를 담당하는 TF팀을 꾸렸다. 당시 우리 공고에는 교사가 약 120명이었는데, 절반이 TF팀에 배정됐다. 교사 한 사람당 두세 개의 중학교가 일괄 배정됐다. 수업보다는 학생을 모집해오라는 일종의 ‘영업’ 지시였다.

중학교에서 학생을 면담하도록 허락한다면 좋겠지만, 그런 학교는 많지 않았다. 수십 개의 특성화고 소속 교사들이 영업을 위해 밀려드니, 중학교의 인색함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교무실 구석 작은 의자에 앉아 부장교사를 기다리며, 내 마음도 농구공만 한 의자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pixabay

원서 접수를 한 주 앞둔 어느 날, 출근시간 전에 우리 학교는 전 교사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부터는 학교에 들어오지 마세요. 모두 중학교에 나가서 사활을 걸고 학생들을 모아 오세요. 확보되는 자원(학생)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세요.”

대구지역 100여 개 넘는 중학교 전체에 담당 교사가 배치됐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어떻게든 중3 학생을 확보하는 게 내게 떨어진 임무였다. 영업 실적은 실시간 보고가 원칙이었다. 나는 혼자 중학교에 가는 것이 무서웠다.

“저… 여기 3학년 부장님 계신가요?”

나를 환영하는 중학교는 없었다. 내가 찾는 3학년 부장교사는 1시간째 오지 않았다. 교무실 구석, 농구공 크기의 동그란 의자가 내게 주어졌다.

보기 민망했는지, 내게 “다음에 오라“고 말하는 교사가 많았다. 그럴 순 없었다. 스마트폰을 보면 이 끔찍한 시간이 빨리 갈까 싶었지만, 그건 영업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었다. 멍하니 허공을 보며 견디고 또 견뎠다.

한 교사가 A4용지 상자를 나르기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약 20분간 A4용지 30상자를 옮겼다. 내친김에 복합기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고쳐줬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세 시간을 기다렸지만, 3학년 부장교사를 만나지 못했다.

다음 날에도 같은 중학교에 가서 같은 의자에 앉았다. 마음은 농구공만 한 의자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그 다음 날에도 역시 그 의자에 앉았다. 3일간, 학생 면담 한 번 못했다. 네 번째로 그 학교를 찾은 날, 내가 A4용지 상자 나르는 걸 도와준 교사가 조용히 교무실 밖으로 날 불렀다.

“선생님이 일하는 공고랑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 한 명이 있는데, 만나보실래요?”

그렇게 중학생 한 명을 겨우 면담했다. 모든 교사가 영업을 뛰어도 입학 정원 미달은 피하기 어려웠다. 교장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도대체 뭐하는 겁니까! 학교 망하면 당신들이 책임집니까? 교무부장, 최근 3년 치 중학교별로 지원 현황 파악해서 보고하세요. 선생님들은 무조건 목표치를 달성시키세요!”

입시 기간이 싫었다. 수시로 중학교 집단 홍보에 불려나가고, 마지막 2주 정도는 교실에 아예 들어갈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시간이 생겨서 수업을 하면 “입시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질책을 받았다. 그렇게 공고의 교실이 무너졌다.

영업을 나가지 않고 교실에서 수업을 하면 “입시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질책이 돌아왔다 ⓒpixabay

배정된 중학교에서의 ‘영업’ 강도는 매우 높았다. 중학생과 면담할 기회를 얻으면, 어떻게든 아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온갖 애를 썼다. 사비를 털어 과자, 햄버거, 초콜릿 등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도 했다.

신제품을 발표하는 왕년의 스티브 잡스처럼, 나는 우리 학교의 성공 스토리를 끌어모아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유토피아처럼 학교를 홍보했다. 나의 홍보와 설득이 먹히면 그 학생과 새끼손가락도 걸고, 손도장도 찍고, 우리 학교에 지원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또 받아냈다. 이 모든 게 성공하면 나는 학교의 ‘입시본부’에 보고했다.

그렇게 중학교 영업에서 성과를 내고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누군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처럼 영업을 뛰는 다른 공고의 교사였다.

“이보세요, 샘! 방금 샘께서 면담한 그 학생은 우리 학교에 지원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빼가면 어떻게 합니까! 이게 지금 뭐하는 겁니까!”

학생 한 명 한 명은 모두 특성화고 교사의 실적이었다. 나의 실적은 그에겐 타격이었다. 나는 더없이 서글펐다. 중학교에서 나오는데, 내면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너는 교사가 아니야. 너는 영업사원이야. 너는 오늘 많은 실적을 올려야 하고 그래야 월급을 받을 수 있어. 다른 생각 말고 입시 끝날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 좋은 아이들을 데려와야 수업하기도 편하고 학교도 안 망하지.’

학령인구는 해마다 줄고, 공고 기피는 그보다 더 빠르게 느는 상황. 학생 미달로 반 하나가 줄면, 교사 2~3명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 해고 통보는 기간제 교사부터 받는다.

내면에서 다른 소리도 들렸다.

‘너 지금 뭔 짓을 하는 거냐? 아이들에게 합리적인 정보를 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지. 네가 뭔데 아이들의 선택에 관여해. 방금 그 중학생에게 한 말, 네 자식에게도 똑같이 하고 권유할 수 있어?

괴로웠다. 객관적으로 우리 학교보다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는 학생을 우리 학교에 지원하라고 설득한 날. 나는 그 아이를 차에 태워서 우리 학교 교무실로 데려 갔다. 학교에서는 마치 귀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격한 환영을 해줬고, 학생은 우리 학교에 지원할 결심을 굳혔다. 학교는 나의 전략을 크게 칭찬했고, 칭찬이 반복될수록 양심의 가책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실적 좋은 교사, 학생을 속였다. 위선자.

나는 우리 학교의 성공 스토리를 끌어모아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유토피아처럼 학교를 홍보했다 ⓒ셜록

입시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나는 하필이면 모교인 중학교에 배정됐다. 20년이 지나 교사 신분으로 돌아온 모교에서 나는 영업을 뛰어야 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괴감을 느낀 나는 영업을 포기했다. 실망한 학교는 곧바로 나를 TF팀에서 제외했다.

원서 접수 당일, 모든 교사가 다시 중학교에 배정됐다. TF팀에서 제외된 나는 교무실 정상 근무를 명받았다. 할 일도 없고 갈 데도 없던 나는 공허한 교무실에서 투명인간처럼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두가 간절하게 신입생 충원율 100%를 달성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을 때, 어떠한 역할도 없이 지켜보게만 만드는 것, 아주 잔인하고 효과적인 형벌이었다. 원서 접수 마감 10분 전, 교무부장님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다 찼습니다! 가집계 결과, 충원율 100%입니다! 아직까지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은 원서를 쓰면 떨어질 수 있으니 모두 다른 학교에 지원하도록 안내하세요.”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의 박수 소리도 들렸다. 100% 충원만 되면 학급이 감축되지 않으니, 관리자로서는 성공이었다. 사고는 이 환희의 순간에 터졌다.

당근과 채찍을 동반한 학교의 영업 전략은 가집계 오류를 불렀다. 충원율 100% 초과, 결코 좋은 게 아니다. 애써 설득해 우리 학교에 지원한 어느 학생은 ‘공고 불합격’이라는 반전의 결과를 받아야 했다.

그 학생은 다시 입학 정원이 미달 난 곳을 찾아, 길게는 꽃피는 봄날까지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해야 했다. 그 형벌의 아픔은 오롯이 그 학생과 가족의 몫이었다.

서두에 묘사한 모욕적 상황은 중학교가 우리 학교에 가한 처절한 복수였다. 사실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 우리 학교가 취한 입시, 아니 영업 전략은 몇 년 뒤 처절한 성적표로 돌아왔다.

학교의 입시, 아니 영업 전략은 실패했다. 몇 년 뒤 대규모 미달 사태를 피할 수 없었다. ⓒpixabay

근본적인 변화 없는 무리한 영업에 의한 ‘신입생 충원율 100%’ 실적은 학교의 혁신을 가로막았다. 결국 우리 학교는 몇 년 뒤 대규모 미달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학교”라는 교훈은 단기 영업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5개 학급이나 감축됐고, 20명 넘는 교사가 학교를 떠났다. 가장 약한 기간제 교사가 말이다.

몇 번의 큰 상처를 겪은 뒤, 비로소 학교는 변화와 혁신에 나섰다. 억지 홍보가 아닌, 학생이 먼저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많은 교사가 나섰다. 최근엔 6개 학과 중 절반을 재구조화해 교육부로부터 승인도 받았다. 큰돈을 투자받아 시대와 미래에 맞는 학과로 개편했다.

우리 학교는 대구교육청 ‘2023년 공간 조성 사업’에 응모해 당선됐고, 교실 80개를 리모델링할 수 있게 됐다. 교실당 3000만 원씩 약 24억 원이 지원된다.

중학교에서 영업하며 학생들에게 한 말을 종종 복기하곤 한다. 나는 정말이지 우리 학교를 유토피아처럼 묘사하곤 했다. 그 말빚을 갚으려면, 나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해야만 한다.

영남공고 지한구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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