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가워지는 이맘때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그날의 사건은 여전히 꿈에 등장해 날 고함치며 일어나게 만든다.

기간제를 끝내고 공업고등학교에서 정식 교사로 첫 담임을 맡은 그해 3월, 제자 김양훈(가명)을 만났다. 양훈이의 인사는 반 아이들과 달랐다.

“안녕~ 나는 수성구에서 왔어. 내 꿈은 서울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는 거야. 잘 지내보자.”

공고에 입학해 처음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아이들은 대개 어느 중학교에서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양훈이는 수성구를 강조했다. 대구광역시에서 수성구는 서울의 강남처럼 최고의 학군과 높은 집값을 자랑하는 곳이다.

양훈이는 ‘나는 다르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듯 했고, 교실의 아이들은 이런 의도를 금방 간파했다.

“수성구에서 전교 꼴찌를 해서 공고에 왔나보네!”
“연세대학교에 갈라믄 공고에는 왜 왔노. 공부 못해서 와 놓고 무슨 연대를 간다고 난리고.”

거친 피드백이 여과 없이 쏟아지자 양훈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뽀얀 피부에 동그란 얼굴, 다소 왜소한 체격의 양훈이 몸이 더 작게 보였다. 자리로 돌아간 양훈이는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다른 아이들의 소개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자신을 “수성구 출신”이라고 소개한 양훈이는 고시생처럼 공부에 매진했다. 자료사진 ⓒpixabay

3월부터 5월까지, 양훈이는 마치 고시 공부하는 학생마냥 중간고사를 준비했다. 원하는 인문계고 진학에 실패하고 공고에 입학한 스스로 대한 분노를 해소하는 길은 공부밖에 없는 듯했다.

수성구의 비싼 아파트에 살고, 수성구 소재 학원에 다니며, 점심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에도 공부에 매진하는 양훈이. 반 아이들은 중간고사 1등은 보나마나 양훈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이 끝나고 성적이 발표됐다. 양훈이가 받은 결과는 참혹했다. 16등. 반 전체 학생 28명 중 중간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이들의 빈정거림은 만류와 단속을 뚫고 쏟아져 나왔다.

“야, 수성구~. 니 공부도 못하는 게 괜히 설쳤네. 앞으로 찌그러져 있어라잉.”
“맨날 지 생각만 하고 살두만, 꼬시다.”
“연세대는 무슨, 전문대도 못 가겠구만. 하하하.”

양훈이 어깨는 더 움츠러들었다. 어느 날 아침, 양훈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오늘 조퇴해도 될까요? 제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조퇴가 어려우면 외출해서 씻고 오면 안 될까요?“

아이에게서는 물론이고 교무실에서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냥 제 몸에서 뭔가 썩는 냄새가 나요. 일단 화장실에 가서 씻어볼게요.”

양훈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제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셜록

20분 넘어서야 돌아온 양훈이는 많이 불안해 보였다. 며칠 후, 더 절박한 얼굴로 양훈이가 다시 찾아왔다.

“선생님, 저 자리 좀 바꾸어 주실 수 있어요? 몸에서 계속 이상한 냄새가 나서 뒷문 근처에 앉고 싶어요.”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해도 양훈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워낙 강하게 요청한 탓에 양훈이 뜻대로 자리를 옮겨 줬다. 양훈의 위태로운 모습은 나아지지 않았다. 부모님께 상황을 알리고 양훈이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다시 양훈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아이들이 제 옆에만 오면 킁킁거려요. 제 몸에서 냄새가 나서 그러는 것 같아요.”

나는 다시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양훈이를 위로했다. 혹시 반 친구들의 괴롭힘이 있다면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양훈이의 눈에서 분노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어제 저를 보면서 킁킁거리셨잖아요!”
“선생님이?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분명히 샘은 킁킁거리셨어요! 어제는 제가 교실에 들어가니까 바로 코를 막았잖아요!”

교무실에 있던 교사들의 눈은 내게로 쏠렸다. 양훈이는 한동안 날카롭게 날 노려보다가 교실로 돌아갔다. 내가 속한 부서 회의가 코앞이어서 양훈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교무실 한쪽에서 회의를 하는데, 저쪽 문으로 양훈이가 다시 들어왔다. 나는 눈빛과 입모양으로 잠시만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부서 회의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양훈이는 보이지 않았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으니, 교실로 돌아간 듯했다.

교실에도 교무실에도 양훈이는 없었다 ⓒpixabay

회의가 마무리 될 즈음, 양훈이 대신 반장이 나를 찾아 왔다.

“선생님, 양훈이 보셨어요? 수업 시작하고 20분이나 지났는데, 교실에 없어요. 수학샘이 내려가 보라고 해서 왔어요.”

양훈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뭔 일이 터질 듯이 불안했다. 우리 반에서 진행 중이던 수학 수업은 중단됐다. 반 아이들은 흩어져 양훈이를 찾아 나섰다. 약 30분간 강당, 운동장, 체육관 곳곳을 뒤지며 뛰어다녔지만 양훈이는 보이지 않았다.

입이 마르고 손에서 땀이 났다. 부모님께도 소식을 전했다. 반장이 급하게 내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왔다.

“선생님! 지금 양훈이 ○○학과 옥상에 있다고 문자 왔어요. 너무 힘들대요.“

전속력으로 ○○학과를 향해 뛰었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교무실에서도 100m 넘게 떨어진 곳이다. 나는 덜덜 떨면서 ”안 돼, 죽으면 안 돼…“라고 되뇌며 뛰었다.

옥상으로 이어진 계단 끄트머리 창문턱, 양훈이는 몸을 절반쯤 밖으로 내놓은 채 앉아 있었다.

“야, 김양훈!!!”

정신없이 고함부터 터져 나왔다. 양훈이는 움찔하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저 너무 힘들어요… 흑흑.”

몸을 날려 양훈이 팔 하나를 겨우 잡아 당겼다. 양훈이와 나는 학교 건물 안쪽으로 떨어졌다. 숨은 막히고, 귀에서는 ‘삐~’ 소리가 들리고, 눈앞은 캄캄하고… 그런 내 앞에서 양훈이는 엉엉 울었다. 학교를 흔드는 통곡이었다.

몸을 날려 양훈이 팔 하나를 겨우 잡아 당겼다. 양훈이는 엉엉 울었다. 학교를 흔드는 통곡이었다. ⓒpixabay

며칠 뒤, 교장 선생님이 나를 호출했다.

“지 선생, 양훈이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는가?”
“일단 며칠 쉬면서 병원을 좀 다녀보겠다고 합니다. 양훈이도, 부모님도 많이 놀란 것 같습니다.”
“다른 말은 없었나?”
“어떤 말씀 말인가요?“

교장 선생님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우리는 한동안 어색하게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자퇴, 뭐 그런 거 말이야. 생각해보게. 만약 양훈이가 그날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면 우리 학교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야말로 언론 1면에 대서특필됐겠지! 옥상이 잠겨 있었으니 다행이지, 만약 열려 있었다면 우리 학교는 끝장났을 걸세!’

나는 교장 선생님을 멍하게 바라봤다. 더 묻지 않아도 의도는 분명했다. ‘양훈이를 학교에서 내보내라, 자퇴를 유도하라.’ 그거였다.

“아직, 휴학이나 자퇴 같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중간고사 이후로 아이에게 약간의 불안 증상이 있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교장 선생님은 속내를 밝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지 선생, 양훈이는 살아있는 시한폭탄 같은 거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작 시험 하나 망쳤다고 옥상에서 뛰어내릴 아이를 어떻게 학교에서 데리고 있겠나? 안 그래? 부모님을 잘 설득해보게. 그게 자네도 살길이고 학교도 살길이야. 잘 알겠나?”

교장 선생님의 말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처럼 느껴져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셜록

교장실을 나와서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면담에서 학생 보호와 심신회복, 학교의 문제점 파악, 담임인 내 역할에 대한 조언을 들을 줄 알았다. 그런 기대가 빗나가서 슬펐다. 초임 교사에게 교장 선생님의 말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처럼 느껴져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며칠 후, 양훈이 집 방문 약속이 잡혔다. ‘어떻게든 자퇴서를 받아오라’는 명령이 우회적으로 떨어졌다. 교사가 된 게 형벌 같았고, 제자의 집으로 가는 길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끝내 양훈이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양훈이는 병원에 있었고, 어머니가 나를 맞았다. 양훈이의 롤 모델과 꿈과 희망과 좌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양훈이에게는 형이 하나 있는데, 서울의 A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양훈이의 롤 모델이에요. 그런데 본인은 공부 머리도 없고, 노력해도 안 돼서 공고에 갔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나봐요. 공고에서 내신과 스펙 관리를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는데….”

이렇게 누군가에게 공고에 다닌다는 건 견디기 어려운 형벌이고, 학력에 따른 차별은 고교 1학년을 학교 옥상으로 밀어 올린다. 양훈이가 공고를 떠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내면은 이미 상처투성이여서 다른 학교에 다니거나, 독학을 한다고 해결될 거 같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의 판단은 물론이고 병원 측의 진단도 그러했다.

“제가 아이를 잘 못 키워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양훈이가 잘 극복해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어머니와의 대화 중 지금이 자퇴를 이야기 할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느꼈다.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도 환청처럼 들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래 보여도 군대에서 조교 생활을 했습니다. 더 극한의 어려운 일도 많았는데, 어떻게든 해결한 경험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제가,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우리 힘을 합쳐서 양훈이를 한번 잘 돌봐보시죠.”

이게 아닌데… 말이 헛나오고 말았다. 되돌릴 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다 말해버린 탓인지 속이 후련했다. 교장 선생님의 얼굴과 목소리가 자꾸 떠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양훈이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병원 치료를 시작했다. 자료사진 ⓒpixabay

약 열흘 뒤, 양훈이는 학교로 돌아왔다. 약을 먹으면 몽롱한 상태로 늘 축 처져 있었고, 여전히 “아이들이 킁킁거린다”는 말도 종종 했다. 불안과 고통이 이어지는 상태에서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양훈이 어머님이 학교를 방문했다.

“아이가 기말고사 치를 상태가 아닌데… 이러다 영원히 학교를 못 다니면 어쩌죠?”

양훈이는 출입문이 있는 교실 맨 뒷자리를 벗어나면 불안해했다. 하지만 시험을 볼 때 자리 이동은 불가피했다. 번호 순으로 앉아 낯선 교사의 감독 하에 시험을 치는 건 공고에서도 불문율이다.

결국 기말고사 내내 어머님이 학교에 상주해야만 했다. 원하는 뒷자리에 앉을 수 없는 양훈이는 쉬는 시간엔 어머니의 차에서 머물렀다가, 시험 시작 종이 울리면 교실로 들어가 힘들게 시험을 치렀다. 그동안 어머니는 복도에서 대기했다.

이렇게까지 굳이 공고에 다녀야 했냐고? 당시 양훈이와 부모님의 선택, 의사의 진단은 그러했다. 정답은 없었지만, 각자의 의지와 해법은 그랬다. 양훈이도 처음엔 형별로 여긴 이 학교를 어떻게든 다니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하찮게 여기는 그 학교가, 어떤 이에겐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 보루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 와중에도 교장 선생님은 학교에서 마주치면 잊지 않고 물었다.

“가는(그 아이는) 어떻게 됐노?”

안부를 묻는 게 아니라, 아직도 폭탄을 제거하지 않았느냐는 질타와 압박이었다. 그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이제부터 밝히겠다.

양훈이의 마음은 조금씩 치유되고 안정을 찾았다. 병원 치료로 결석이 잦았지만 학교를 떠나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2학년, 3학년이 되어서도 병은 완치되지 않았지만 학교를 병원만큼이나 꾸준히 다녔다.

누군가는 하찮게 여기는 그 학교가, 어떤 이에겐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 보루를 지켜주고 싶었다. 자료사진 ⓒpixabay

당사자, 부모님, 여러 교사들의 노력으로 양훈이는 우리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2년인가 흐른 뒤에 이런 문자메시지와 함께 사진 하나가 날아왔다.

“건강하시죠? 제가 이번엔 대구창의재단에서 주관하는 대학생 발명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기쁜 마음에 연락드립니다.”

시상식 사진에서 양훈이는 친구들과 웃고 있었다. 그의 미소만큼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양훈이는 입학 첫날에 밝힌 연세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구의 한 대학교에 들어갔다. 이후에 양훈이는 대학 졸업식 사진을 보냈고, 취업한 회사 소식을 전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승진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만큼 많은 게 변했다. 변함 없이 공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나는 악몽을 종종 꾼다. 꿈속에서 양훈이는 옥상에 앉아 울고 있고, 나는 어느 날엔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하고, 어느 날엔 실패를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소리 치며 꿈에서 깨어나고.

대한민국 학교 관련 뉴스에서 좋은 소식을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온통 안 좋은 소식뿐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무언가를 실패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한 가지 소식을 더 전하고 싶다. 양훈이를 시한폭탄으로 표현한 그 교장 선생님은 몇 년 전 구속됐다. 학교에서 비위를 저질렀고, 끝까지 반성하지 않다가 법정에서 구치소로 끌려 갔다.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학교를 위기에 빠트린 건 그분이었다.

그분 역시 무언가를 실패한 게 분명하다.

영남공고 지한구

글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그래픽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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