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일이 터진 건 학생들에게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가르칠 때였다. 교장 선생님이 교무회의 시간에 마이크를 잡고 전체 교사에게 말했다.

“수업 변화 마지막 단계로 학기말에 ‘수업축제’를 열었으면 합니다. 어떤 형태든 좋습니다. 수업 결과물을 전시, 공연, 체험 등으로 다양하게 공개하고 함께 나누는 축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교사들은 ‘우리가 뭘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교장 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학부모, 교육청 장학관, 장학사는 물론이고 다른 학교 교직원들도 초청할 예정입니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흐르지 않으면 썩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선전포고에 교사들은 충격을 받았다. 일명 명문 고등학교나 특정 목적을 지닌 연구학교에서 수업 성과 보고회를 연다는 소식은 종종 들었다. 그런데, 지방 사립 공업고등학교에서 수업축제라니.

교무회의가 끝난 뒤 교사들의 교과별 혹은 학년별, 주제별로 모여서 이 사태에 대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자는 아이들과 사투를 벌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걱정과 우려가 터졌다.

공고에서 수업축제라니! 이건 자는 아이들과 사투를 벌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AI 이미지. ⓒ셜록

“수업축제? 우리 공고에서는 수업장례를 치르는 게 맞지 싶은데.”
“공부가 싫어서 공고에 온 아이들인데, 수업이 잘 될 리가 있습니꺼?”
“아이고, 뭐 보여줄 게 있어야 보여주지예.”

일반계 고등학교 교실은 ‘체력단련실’, 수업은 ‘체력보충시간’이라 말까지 들리는 요즘이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수면으로 체력을 다지는 곳이란 자조적인 표현이다.

직업계고는 더 심각하다. 중학교 시절 성적 경쟁에서 밀렸다는 패배감 탓인지 우리 학교 아이들은 대체로 자존감이 낮다. 수업 진행 자체가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이런 공고에서 수업축제를 한다? 솔직히 내 고민도 동료 교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내 담당인 국어수업을 이어갔다. 나는 아이들에게 윤동주의 시 ‘자화상’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며 모방시를 써보자고 했다. 시를 바탕으로 각자의 슬픔, 자부심, 내면의 부끄러움 등을 성찰하는 게 수업의 목표였다. ‘자화상’ 전문은 이렇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모방시를 쓰기 시작했고, 지난밤 늦게까지 게임을 했거나 당장의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누군가는 졸기 시작했다. 나는 내 앞의 공고생들을 보면서 교장 선생님의 ‘선전포고’를 곱씹었다. 오래전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영화 ‘동주’ 포스터. 나는 윤동주의 시를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내면의 부끄러움을 성찰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찰이 필요한 건 아이들 쪽이 아니었다. ⓒ루스이소니도스

약 7년 전 그날,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호통에 이르렀다.

“안 된다 안 카나! 우리 학교는 우사다, 우사!”

교감 선생님의 호통을 듣고 나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벌써 두 번째 거절이었다. 교무실의 선생님들은 각자의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16년 제18화 교실수업개신 실천사례 연구발표대회에서 나는 운 좋게 2등을 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직업계고 대표 교사로서 공개수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교감 선생님은 공개수업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우사’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그 자리에서 검색을 해봤다. ‘우사(牛舍)’. 소나 말을 키우는 장소를 뜻하는데, 교감 선생님은 말은 맥락상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동료 선생님의 조언과 검색으로 마침내 말뜻을 이해했다.

우사 : ‘우세스럽다’의 방언. 남에게 놀림과 비웃음을 받을 듯하다.

교직원 스스로, 우리가 일하는 학교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남에게 절대로 보여주면 안 되는 곳으로 여기다니. 너무 참담한 나머지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의 자화상은 그러했다.

세월은 흘렀다. 호통과 감추기로 막을 수도 없는 큰 파도가 학교를 덮쳤다. 학령인구 감소에 사립학교 비리까지 터져 우리 학교는 한 학년당 19개 학급에서 13개 학급으로 줄었다. 교사 수십 명이 학교를 떠났다. 신입생 모집에 실패하면 또 누군가 학교에서 짐을 싸야 했다.

변화는 생존의 문제였다. 학교 정상화를 위한 새 이사진이 꾸려졌다. 이전과는 다른 비전을 가진 교장 선생님이 2023년 부임했다. 교장 선생님은 교장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시간마다 복도를 순회하며 자는 학생을 직접 깨웠다. 새 정책도 수립됐다.

패배감과 무기력에 시달리는 공고생을 위해 ‘수업활력반’을 만들어 요리, 관람 등 체험 학습을 강화했다. 학업 중단율이 높은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기성장 프로젝트’ 과목을 편성해 아이들이 원하는 수업을 듣도록 했다.

이 모든 게 순조로웠다면 혁신이 아니다. 교실에선 종종 험악한 일이 벌어졌고, 교사들의 볼멘소리도 나왔다.

“진짜 미치겠네예. 수업 하면 자고, 깨우면 승질 내고, 뒤로 나가라면 안 가는 아(이)들에게 뭘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네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중학교 학업 성적 낮은 아이만 공고에 오는 게 아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꼭 해야만 해서 정말 수면이 필요한 아이, 무기력과 불안은 물론 우울증을 앓는 학생도 있다. 재밌는 배움 이전에, 수업을 꾸려가는 것 자체가 버거울 때가 실제로 있다.

그런데, 수업축제라니… 공고에서 수업축제라니!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터졌다. ‘자화상’을 토대로 모방시를 쓰던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순간 나는 움찔했다. 마치 학생들이 “선생님도 우리를 ‘우사스럽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듯해, 나는 거짓말을 들킨 사람마냥 아이들의 시선을 피했다.

7년 전 떼를 써가며 공개수업을 주장하던 내가, 이젠 수업축제라는 판을 깔아줘도 부담스러워하다니. 그동안 학교보다 더 많이 변한 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교장 선생님은 뜻을 꺾지 않았다. 학교는 수업축제 관련 공문을 교육청 등에 발송했다. 장학관, 장학사는 물론 저 멀리 전라도에서도 선생님들이 팀을 꾸려 우리 학교를 탐방한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수업축제에 대해서 설명했다. 누군가는 ‘국어과목’ 부스를 운영해야 하고, 우리의 작품이 강당에 전시될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든 함께 노력해보자고 아이들을 다독였다. 나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고 드디어 수업축제 날이 되었다. 강당에 들어서자 저쪽에서 기계과 아이들이 모여 불을 지피고 뭔가 구워 먹고 있었다. 학생들이 실습실에서 몰래 삼겹살을 구워 먹다가 선도위원회에 회부됐다는, 우리 공고에서 전설처럼 구전되는 이야기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스통을 재활용해 캠핑용 화로를 만든 기계과 학생들. 수업축제 현장에서 마시멜로를 직접 굽기도 했다. ⓒ지한구 제공

“야! 느그 여서 불 피우고 뭐하노? 오늘 중요한 날인 거 모르나!”
“샘요, 여는 캠핑장입니다. 하나 드실래예?”

한 아이가 구운 마시멜로를 내밀었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기계과 학생들답게 아이들은 다 쓴 가스통을 재활용해 캠핑용 화로를 만들었다. 작품이 그럴 듯했다.

“느그들, 그거 샀제?”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과정을 담은 사진을 보여줬다. 직접 용접하고, 그라인더로 가스통 표면을 다듬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구입 의혹(?)을 제기하는 내게, 학생들은 재활용 화로 제작 과정 사진들을 보여줬다 ⓒ지한구 제공

기계과 아이들의 캠핑장을 포함해 강당에는 약 60개의 부스가 마련됐다. 전자과 등 전문 교과 부스에선 전자회로 기판 수제 제작, 전자기기 DIY, 미니카 체험, 협동 로봇 체험, 3D 모델링 등을 전시·운영했다. 그야말로 공고다운 기획이었다.

부스 운영을 맡은 학생들은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방문객이 나타나면, 프로젝트 수행 배경부터 실천, 제작까지 직접 설명했다. 자기성장프로젝트 프로그램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아이들은 현장에서 보디빌딩을 선보였고, 통기타반 아이들은 음악공연도 했다. 환경에 관심 많은 아이들은 ‘멸종 위기종 블록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

십여 년간 공고에서 일했지만 그동안 나의 직장 동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어떤 수업을 받으며 성장하는지 잘 몰랐다. 다른 수업, 학과의 성과물을 자세히 본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공고에서 진행된 수업축제 현장. 학생들이 직접 부스를 운영하고 손님을 맞았다 ⓒ지한구 제공

무엇보다 아이들이 용접을 하고 그라인더를 조작해 무언가를 뚝딱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목장갑 낀 손으로 문제집 대신 공구를 들어도 타인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준 게 눈물 겹게 고마웠다.

이젠 내가 담당했던 국어과목 부스에 대해서 말할 차례다. 아이들은 전통책 만들기, 시화, 직접 쓴 이야기 책 등을 전시했다. 박수영(가명) 학생은 윤동주의 ‘자화상’을 바탕으로 ‘어스름’이란 모방시를 써서 전시했다. 전문은 이렇다.

학교 복도 끝에 있는 우리반에 들어가 벽에 붙어 있는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거울 속에는 밝게 웃고 있는 우리반 친구들과 예쁜 비가 내리는 창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소녀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소녀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해보니 그 소녀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그 소녀는 서럽게 울고 있습니다.

그 소녀가 많이 슬퍼 보이지만 너무 미워서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소녀가 그리워집니다.

거울 속에는 밝게 웃고 있는 우리반 친구들과 예쁜 비가 내리는 창문이 있고 추억처럼 소녀가 있습니다.

나는 시를 읽으며, 수영이가 ‘거울 속의 소녀와, 친구들과, 예쁜 비가 내리는 창문이’ 있는 공고의 교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길 바랐다. 수업축제를 구경한 교육청 관계자들과 타 학교 교사들은 공고생들에게 연신 ‘엄지척’을 해줬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수업축제는 2024년 연말 4회를 맞았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으로 모방시를 쓴 학생의 시화. ⓒ지한구 제공

올해도 우린 수업축제를 열 계획이다. 누군가를 시를 쓰고, 목장갑을 낄 것이며, 어떤 학생은 공구로 쇠를 잘라 물건을 만들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것들이니까.

‘재미 없는 수업은 가라’는 우리 학교의 슬로건이다.

영남공고 지한구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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