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조치에 대한 행정소송이 시작됐다. 재판 첫날의 핵심 쟁점은 출입거부를 요청한 기관의 ‘정체’였다. 하지만 이날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는 법정에서도 요청기관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용산어린이정원은 “대통령 집무실 주변에 (…) 국민 공원공간을 조성하여 임기 중 국민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하겠다”(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기자회견)는 취지로 조성된 곳. 하지만 LH 측은 용산어린이정원에 특정 시민들의 출입을 거부한 조치를 두고, “공익상 필요”, “사유적인 재산권 행사”라는 주장을 펼쳤다.

재판장은 “(일부 시민들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하도록) 요청한 기관을 명확히 밝히라”고 LH에 요구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소셜미디어에 알린 시민단체 대표와, 그와 동행한 용산 주민 5명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한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이후 출입거부 시민이 최소 23명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한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대표 등 4명은 지난해 10월, LH를 상대로 ‘출입거부 무효 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김은희 용산시민회의 대표(왼쪽)은 지난해 10월, LH를 상대로 ‘출입거부 무효 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셜록

서울행정법원 제7부(재판장 이주영)는 7일 오후 2시 40분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원고 측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처분에 대한 무효 확인과 더불어 해당 처분에 대한 취소를 요구했다. 원고 측은 “LH가 용산어린이정원 입장을 못하도록 한 건 우월적 지위에서 행한 행정처분“이라며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LH의 내부 규정만으로 특정인의 출입을 제한한 건 재량행사를 남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 LH 측은 “공익”을 언급하면서 출입거부 조치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유적인 재산권 행사”라는 주장도 펼쳤다. 용산어린이정원이 국민 모두에게 개방돼 있는 공공의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 논리다.

LH 측은 “기본적으로 국유재산에 관한 사유적인 재산권 행사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하며, “내부 규정으로 어떤 필요한 범위 안에서 기준을 정하여 일정한 경우 입장을 제한하는 건 공익상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당사자들에게 출입거부 사유를 설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단순 반복적인 경미한 처분이기 때문에, 또는 (당사자가)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어서 이유 제시 의무를 위반한 게 아니“라고 답했다.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아도 당사자가 잘 알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이다.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진행된 특별전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사진들을 전시하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대통령 사진 색칠놀이 체험을 진행했다. ⓒ셜록

LH는 지난해 7월 신설된 ‘출입제한’ 규정을 근거로 일부 시민들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막았다. LH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에 대한 유지 관리 및 운영을 위탁받았다.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 제5조(관람신청 및 입장) 6항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예약신청 또는 현장접수를 받은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

‘출입제한’ 규정은 사실상 ‘블랙리스트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정 행위 혹은 특정 물품의 반입 금지를 명시한 게 아니라, 특정 ‘인물’의 출입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 어떤 인물의 출입을 막겠다는 건지 그 사유도 명확하게 적혀 있지 않다. 그저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특정 인물을 콕 집어 입맛대로 출입을 막을 수 있는 조항이다.

용산어린이정원 측은 출입거부를 당한 당사자 모두에게 ▲출입거부를 요청한 관련기관이 어디인지 ▲출입거부 요청 사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셜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LH는 셜록의 질의에도 “관계기관 요청에 따라 시스템만을 제공하였으며, 구체적인 출입제한 현황 등을 파악하고 있지 않는다”는 형식적인 답변을 반복했다.

LH는 끝내 밝히지 않았지만, ‘관련기관’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실토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셜록 보도 이후, 대통령경호처는 용산어린이정원에 출입금지 조치를 요청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관련기사 : <대통령경호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우리가 요청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LH는 ‘관련기관이 대통령경호처가 맞는지’ 말하지 않고 있다.

김종철 대통령경호처 차장(오른쪽)은 지난해 8월 30일 국회에서, 특정 시민들에 대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조치를 요청했음을 인정했다 ⓒ국회 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캡쳐

LH 측은 행정소송 첫 재판에서도 ‘관련기관’이 어디인지 밝히지 않았다. 재판장은 LH 측에 이렇게 요청했다.

“(원고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하도록) 요청한 해당 ‘관련기관’을 명확히 밝혀줄 수 있습니까?”

LH 측 법률 대리인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한 후에 답변서를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이미 대통령경호처가 출입금지 조치를 요청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음에도, LH는 시민 당사자들에게도, 언론에게도, 심지어 재판부의 판사에게도 ‘관련기관’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

원고인 김은희 대표는 첫 재판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국회에서 출입거부 요청을 인정했잖아요. 그럼에도 LH 측 대리인이 법정에서 요청기관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게 이상해서 따지고 싶었습니다. 이번 재판에서 요청기관의 정체가 잘 밝혀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부분에 대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고 측을 대리한 서창효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피고 측의 재량권 행사에 어떠한 위법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원고들에 대한 출입 제한을 요청한 관련 기관이 어디인지, 관련 기관이 원고들에 대해 각각 어떠한 사유를 들어 출입제한을 요청했는지에 대한 확인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와 관련한 원고 측 요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김은희 용산시민회의 대표와 법률대리인 서창효 변호사가 행정소송 첫 재판 이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셜록

지난해 여름,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이 알려지면서 ‘대통령 우상화 논란’으로 시작된 사건. 하지만 현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 수십 명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한 사실이 셜록의 보도로 알려지면서, 사건의 성격은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바뀌었다.

한편,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는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관련 인권침해 진정을 각하했다. 인권위는 피해자 중 일부가 같은 취지로 제기한 행정소송을 각하 사유로 꼽았다. 지난해 여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권적 관점에서 걱정되는 바가 있다, 밝혀지는 대로 착착 진행하겠다”고 말한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의 약속과는 다른 결과였다.

인권위는 6개월 동안 두 차례나 사건처리 지연을 통보했다. 그러면서도 인권위는 출입거부를 당한 시민들을 한 차례도 직접 조사하지 않았고, 피진정기관에 대한 조사만 진행했다. 서 변호사는 “인권위에서 6개월 동안 조사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재판부에 문서송부촉탁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취소 소송 두 번째 변론기일은 5월 2일 오후 3시 20분에 열릴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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