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가 흩뿌리듯 내리는 날이었다. 대전 산성동에 있는 박지은(43, 여, 가명)의 집을 찾아가는 날.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빗방울들이 바람을 따라 어지럽게 날렸다. 우산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느새 옷자락이 눅눅하게 젖었다.

박지은을 향한 그들의 괴롭힘도 그랬다. 박지은의 하루에는 매일같이 비가 내렸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먼지 같은 비.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 정도는 다들 견디며 살아.’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좀 융통성 있게 굴었어야지.’

무심한 생각들이 박지은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출근하는 아침부터 퇴근하는 저녁까지 내리는 비를 꼼짝없이 맞았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박지은의 일상이 고통으로 축축이 젖어버렸다. 일상을 잠식하던 고통은 그의 마음을 결국, 집어삼켰다.

박지은이 현관문을 열고 문 앞에 서 있다. 억지로 지은 웃음이 입가에만 묻어 있다. 뺨에는 벌써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그의 집 안으로 한 발짝 걸음을 들여놓는 것도 미안했다. 내 얄팍한 호기심이 그의 상처를 헤집어놓지는 않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그와 마주 앉았다.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 상담사 박지은(가명). 지난 3월 5일 그를 처음 만났다. ⓒ셜록

박지은은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 일하는 공무직 직업상담사다. 공무직. 공무원은 아니지만 국가 중앙부처나 공공단체의 일을 하는 근로자. 하지만 그는 일터가 아닌 집에 있었다.

“저희 사무실이 5층인데 창문을 이렇게 밀면 (아래로) 반 정도만 열리는 구조거든요. 근데 제가 신발을 벗고 거기 올라가서 앉아 있더라고요. 미끄러지듯이 몸을 기울이면 떨어질 수도 있는 곳인데…. ‘아, 내가 여기를 더 다니다가는 정말 어떻게 될 수도 있겠다….’”

지난 2월, 그는 두 달간의 긴 무급 병가를 냈다. 진단명은 ‘중증도의 우울 및 수면장애’.

그의 마음을 잡아먹은 ‘괴물’은 회사에 있었다.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퇴근 후 집에 오면 반대로 폭식을 했다. 맛이 있어서 먹는 게 아니다. 내일 출근하면 또 하루 종일 굶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전날 밤 “토하기 직전까지” 음식을 밀어넣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는 게 너무 두려워서, 회사 주차장까지 갔다가 울며 돌아온 날도 있었다. 하루에 네 번 정신과 약을 먹으며 버티는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나는 죽은 자처럼 출근하고, 투명인간처럼 존재하다가, 수증기처럼 퇴근한다.” (박지은 비망록)

박지은은 2021년 5월 ‘공채 1기’로 입사했다. 대전지방보훈청 산하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에는 공무원 3명과 공무직 12명이 일하고 있었다. 박지은이 입사하기 전부터 일하던 상담사들은, 과거 용역업체 소속으로 있다가 2019년 공무직으로 일괄 전환된 사람들이었다.

박지은은 민간 회사에서 7년간 일한 경력이 있었다. 민간에서는 직업상담사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무직으로 입사하면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일자리를 갖게 된 게 기뻤다. 그런데, 회사 분위기가 좀 이상하단 걸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가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하니까 ‘어, 왔어?’라고 반말을 하는 거예요. 센터장님도 존댓말을 하는데, 저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고 경력도 더 짧은 직원이….”

과거 용역업체 시절부터 일해온 직원들은, 박지은과 같은 공채 입사자들의 ‘군기’를 잡으려 했다. ‘제대군인’지원센터인 만큼 군인 출신 직원들도 있었다. 박지은에게 반말을 한 직원도 그랬다. 그는 “내가 짬밥이 얼만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 7년 경력의 경력직인 박지은을 “내 밑으로 들어온 신입”이라 불렀다.

그는 자신보다 열 살쯤 많은 공채 입사자에게도 반말을 했다. 반말을 못하게 해달라고 박지은이 회사에 요청하자, 오히려 ‘조직에 화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이 돌아왔다.

‘짬밥 있는’ 직원들은 점심 보안근무도 피해갔다. 점심시간 동안 민원 응대를 위해 당번제로 사무실을 지키는 일. 당번 근무자는 점심시간을 30분밖에 못 쓰는 불편함이 있었다.

“사실 누구나 하기 싫잖아요. 근데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한 달에 한두 번만 하면 되거든요. 그분들은 자기가 하기 싫은 거죠. (회사가) 그걸 암암리에 묵인해주는 거죠.”

박지은은 당번 근무를 대신해줄 것을 요구받았다. 항의도 해봤지만 ‘그 정도도 못해주냐’, ‘이기적이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는 국가보훈부와 대전지방보훈청 산하에 있다 ⓒ셜록

‘짬밥 있는’ 공무직들의 몽니가 센터장의 권고를 뭉개버리는 일도 있었다. 회사는 내부 강의에 굳이 외부강사를 부르지 말고, 되도록 내부 직원들이 직접 강의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다른 직원들은 회사의 강의 요청을 ‘보이콧’해버렸다. ‘그동안 외부에 맡기던 일을 한번 내부에서 맡으면 앞으로도 계속 업무가 늘어난다’는 게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박지은은 회사의 권유대로 강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집합’이 걸렸다.

“우리는 다 (강의) 안 한다고 했는데 박지은 상담사 혼자 한다고 했으니까, 앞으로 (강의 요청 들어오면) 혼자 다 하고. 혼자 다 책임져요. 민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박지은 한 사람을 향한 압박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결국 박지은도 강의를 하지 못했다.

박지은은 ‘미운 오리 새끼’였다. 치졸한 따돌림. 직원들은 박지은만 빠진 단체채팅방을 만들어서 점심 메뉴를 정하고 같이 배달을 시켜 먹었다. 채팅방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도 박지은을 빼고 다른 직원들끼리만 대화하는 일이 많아졌다.

‘정말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내가 조직문화에 적응을 못하는 게 문제인가?’

박지은의 마음에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따돌림 수준에서 그쳤다면 그냥 묵묵히 견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수준은 사적인 차원을 넘어섰다.

박지은은 2019년에 낳은 딸을 혼자 키우고 있다. 육아시간을 확보하는 게 절실했다. 마침 회사에는 먼저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는 직원이 있었다. 박지은도 유연근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황당했다.

“팀원 모두에게 허락을 받아 오세요.”

하지만 팀원들의 의견은 ‘반대’. 어째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느냐 물었다. ‘박지은을 그 직원과 똑같이 대우해줄 순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답변 앞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제대군인지원센터 공무직 인사 등 관리규정’에는 ‘육아시간’ 제도가 있다. 모성보호 차원에서, 5세 이하 자녀를 키우는 직원에게 하루 2시간까지 근로시간을 줄여주는 제도. 당시 두 돌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혼자 키우던 박지은에게 꼭 필요한 제도였다. 그가 이 제도를 쓰겠다 했을 때 어떤 대답들이 돌아왔을지는 짐작 못할 바가 아니다.

육아시간 쓰면 성과평가 때 최하위 등급 받는 건 감내해야 한다고 봐요.”
“공무직이 아닌 공무원도 육아시간을 2시간 다 쓰는 사람은 없어요.”

죄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민간 회사에서 보장되지 않는 모성보호 제도가 있다는 점은, 그가 공무직으로 이직한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 2021년 11월 육아시간 사용을 승인받았다.

책장에 놓인 정신과 약 봉지. 하루에 네 번, 시간마다 잊지 않고 먹기 위해서 집 안 곳곳에 약을 나눠뒀다. ⓒ셜록

이때가 처음이었다. 박지은이 정신과 병원을 찾아간 게.

“잠을 너무 못 잤어요. 밤에 잠을 못 자고 악몽을 꾸고, 회사에서는 계속 신경을 쓰고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아이한테, 그 약한 존재한테 그러더라고요(스트레스가 옮겨간다는 의미). 그래서 잠이라도 좀 잘 자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과에) 가게 됐어요.”

2021년 1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간헐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수면제 등을 처방받았다. 그때만 해도 박지은은 ‘정말 나한테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쪽이 더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원인이 나한테 있으면 내가 고치면 되는 거니까.

육아시간 제도를 쓰기 시작했지만 업무량은 똑같았다. 잡담 한번 나눌 시간 없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주중에 다 처리하지 못한 일들은 주말 초과근무로 해결했다.

그렇게 반년쯤 지났을 때, 위기가 찾아왔다. 회사가 ‘행정전담’에서 ‘민원상담’으로 박지은의 업무를 전환한 거였다. 할당량에 따라 담당 고객이 배정되고 개인 직통번호도 부여됐다. 원래부터 직업상담사로 일해왔으니, 상담업무 자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육아시간 제도를 쓰고 있다는 것, 오후 6시 전에 퇴근한다는 게 큰 문제였다.

“(행정전담 업무는) 육아시간을 써도 다른 사람한테 영향을 안 줬거든요. 상담업무로 갈 때 부담이 컸어요. 왜냐하면 이제 내가 퇴근한 뒤에 전화가 오면 다른 사람이 불편하거든요. 전화 건 사람도 ‘왜 자꾸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 하고 민원을 넣으면 문제가 돼요.”

동료들의 불만은 당연한 거였다. 박지은에게는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 동료들의 불만 어린 시선을 계속 견디거나, 육아시간 제도를 그만 쓰거나.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회사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해주지 않았다.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려면 업무시간에는 잠깐 숨 돌릴 틈도 없이 일을 해치워야 했다. 주말에 출근해서 ‘나머지’ 일을 처리하는 날도 더 늘었다.

어느덧 연말이 됐다. 2022년 성과평가 기간. 박지은에게는 ‘최하위’ 등급이 내려졌다. 그는 혹시 육아시간 제도를 쓴 것 때문에 ‘최하위’ 등급을 받은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박지은 : “육아시간을 쓰는 게 성과급 평가등급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씀이신 거죠, 지금?”
A 팀장 : “응. 어쨌든 이거는, 육아시간이라는 개념, (…)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좀 더 일할 수 있는, 근무시간에, 난 그렇게밖에 판단할 수가 없었거든.”(2022. 12. 22. 대화 녹취록)

착잡했다. 모성보호 제도라 해놓고는, 동료 직원들의 불만도 알아서 감당하고, 성과평가 불이익도 알아서 감당하라는 건가.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착잡함은 억울함으로 바뀌었다.

착잡했다. 모성보호 제도를 썼다고 최하위 평가를 받아야 하다니. 그 다음 순간, 착잡함은 억울함으로 바뀌었다. ⓒ셜록

제대군인지원센터는 일자리가 필요한 제대군인들을 기업과 연결시켜주는 일을 한다. 나이가 많거나 전역 당시 계급이 높은 구직자는 취업시장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당연히 취업률 실적을 올리기에도 불리하다. 그런데 60세 이상 구직자 중 32%, 대령 이상 구직자 중 28%가 유독 박지은 한 사람에게 몰려 있었다(2023년 1월 기준).

“정말 말도 안 되게 (배정이) 돼 있더라고요. 이게 정말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는) 고의도 아니고, 불공평한 게 아니래요.”

나이가 많거나 계급이 높은 구직자를 많이 담당하는 건, 또 다른 단점도 있었다.

“제가 다른 데에서도 직업상담사로 일했잖아요. 여기는 좀 달라요. 보통은 구직자들이 부탁하는 태도로 많이 말씀하시는데, 여기는 ‘아가씨’, ‘미스 박’ 이렇게 부르면서, ‘커피 좀 타와 봐’, ‘내가 불러주는 대로 써봐’ 이런 게 기본이에요. 나이가 많고 계급이 높으신 분들일수록 더하죠. 그러니까 (상담사들이) 다들 안 맡으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실적을 내기에 까다로운 구직자들만 ‘이상하리만큼’ 자신에게 배정됐다. 그런 상황에서 모성보호 제도 사용을 이유로 성과평가에서 불이익도 겪었다. 내년에도 육아시간 제도를 써야 하는데, 그러면 또 성과평가에서 최하점을 받고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말에 죄책감을 느끼며 주중이고 주말이고 아등바등 버텨온 것들이 다 헛수고처럼 느껴졌다. 박지은은 대전지방보훈청에 갑질(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

☞ 다음 이야기 <싱글맘 직원에게 “아이 업고 김밥 팔아봐” 조롱한 팀장>으로 이어집니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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