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빈(가명) 씨는 지난해 열두 살 난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이혼한 아빠에게 보낸 지 5년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든 채 누워 있는 시우를 그제야 만났다.

피가 묻어나는 여린 몸을 끌어안고 다짐했다.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이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엄마는 아직 무너질 수 없었다.

“우리 아들 납골당에서 마음껏 슬퍼하기도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시우한테 너무 미안하고 염치없는 엄마가 돼버렸는데….”(2024년 1월 31일 김정빈 씨 인터뷰)

편의점 CCTV에 남은 시우의 마지막 모습 ⓒ김정빈(가명) 제공

지난해 2월 계모 A와 친부 B의 학대로 열두 살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이른바 ‘인천 초등학생 아동학대 사망 사건’.

오랜 학대로 아이의 몸무게는 초등학교 2학년 남아 평균 몸무게에도 못 미치는 수준(사망 당시 29.5㎏)이었고, 온몸에 멍과 상처가 가득했다. 가해자 두 사람은 지난 2월 항소심 재판에서 계모 A 징역 17년, 친부 B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기자님, 저 교육청 상대로도 소송하고 있어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더 하고 싶어요.”(2024년 2월 21일 김정빈(가명) 씨가 기자에게 전한 메시지 일부)

정빈 씨는 지난해 10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 대상은 인천광역시교육청. 시우의 죽음에 국가의 책임은 없는지 묻는 소송이다. 그동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나온 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인정 결석 아동을 주의 깊게 관리 감독하고 학대 아동을 조기 발굴할 의무가 있으나, 인천광역시교육청은 장기 미인정 결석을 하고 있는 망 이시우의 상황을 전혀 점검하지 않았고, 결국 망 이시우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소장 일부)

당시 시우는 겨울방학 기간을 제외하고도 29일간 등교하지 않았다. 대신 이른 아침 6시부터 집에서 성경 필사를 하고, 이를 못하면 방에 감금을 당하거나 장시간 벌을 받았다. 학교는 시우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 대응했을까.

정빈 씨가 마지막으로 시우를 만난 2018년 6월, 시우는 한눈에 보기에도 작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김정빈(가명) 제공

시우가 학교에 결석하기 시작한 건 2022년 11월 24일이었다. 담임교사는 당일 미인정 결석아동 관리 매뉴얼에 따라 학생의 출석을 독려하며 계모 A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 A는 ‘시우가 필리핀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홈스쿨링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튿날에도 시우가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담임교사는 A에게 학교에 방문할 것을 요청했다.

시우는 결석 일주일 만에 학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는 A도 함께 있었다. 담임교사는 “시우가 학교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으니 학교에 출석하며 유학 준비하는 것”을 권유했다. A는 담임교사의 권유를 거절했다.

담임교사는 계속해서 학교에 출석하지 않는 시우를 집중관리 대상자로 선별하고 교육(지원)청에 보고했다. 이후 한 달에 한 번 A에게 전화해 시우의 안전을 확인했다.

담임교사가 A에게 전화를 걸어 시우의 안전을 확인한 날짜는 2023년 1월 30일.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시우가 사망했다. 200회가 넘는 학대 흔적이 아이의 몸에 남아 있었다. 오랜 시간 이어진 폭력은 시우가 죽은 뒤에야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인천교육청은 “해외유학 준비를 위하여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한다면, 교육청이 시우를 강제로 학교에 출석시킬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미인정 결석아동’인 시우를 ‘매뉴얼에 따라’ 관리해왔다는 항변. 그렇다면 그것으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이와 만남을 차단당한 정빈 씨는 2020년 시우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찾아갔다. 당시에도 이미 시우의 자리는 다른 아이들에게서 떨어진 교실 뒤편에 있었다. 담임교사는 “2학기에 한 번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김정빈(가명) 제공

초·중등교육법상 초·중학교 교육은 의무교육으로 진행된다. 의무교육 대상이 학교 밖에 있는 경우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한다. 교육청은 매뉴얼 등을 마련해 미인정 결석아동을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다.

미인정 결석아동 관리 매뉴얼(2022)은 이렇다. ▲결석 1~2일차에는 지속적인 유선 연락을 통해 학생의 결석 사유를 확인한다. ▲3~5일차에는 유선으로 출석을 독촉하고 소재·안전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 가정방문을 실시한다. ▲결석 6일차에는 학부모에게 학생과 동행해 학교에 방문할 것을 요청하고, ▲7~8일차에는 결석 학생 및 보호자와 교내 면담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석이 계속되면 ▲9일차에 결석 아동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등록해 교육청에 보고하고, ▲이후에는 매월 1회 이상 학생의 안전 소재를 유선으로 확인하는 것. 이 과정에서 학생의 소재·안전이 확인되지 않거나 학대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피해 학생(이시우)은 집중관리 대상 학생으로 내교 요청하여 학생과 학부모를 대면 면담하였으며 인천시교육청 매뉴얼에 따라 월 1회 유선으로 소재·안전 관리를 하였기 때문에 가정방문을 별도로 하지 않음.”(인천광역시교육청 회답자료 일부)

교육청은 이러한 매뉴얼에 따라 시우를 관리·감독할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했다. 매월 유선으로 학생의 안전과 소재를 확인했기 때문에, 읍면동 장이나 경찰서장의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

정빈 씨는 이혼 과정에서 친부에게 친권과 양육권을 넘겼다.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정빈 씨와 어린 시우의 발. ⓒ김정빈(가명) 제공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서 아이가 죽는다면 그건 당연히 문제다. 그런데 만약 매뉴얼을 충실히 지켰는데도 아이가 죽는다면? 어쩌면 그건 더 큰 문제다. 매뉴얼 자체에 큰 ‘공백’이 있다는 뜻 아닌가.

전문가들은 시우 사례에서 미인정 결석아동 관리·대응 매뉴얼에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차진태 변호사(법률사무소 열)는 “미인정 결석 아동에 대한 관리·감독이 어느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다시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 방문을 단 한 번이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거예요.”(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홈스쿨링 가정에 정기적으로 학습 진도를 보고하도록 하고, 정기적으로 학교에 출석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학생이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거나 선생님이 가정을 방문하는 방법을 통해 학대를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시우가 숨진 뒤 교육 당국은 장기결석 학생 7000명을 조사했다. 이 가운데 20명에게서 학대 정황이 확인됐다.

“시우처럼 홈스쿨링 하는 아이들 중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학대 피해 아동들이 많을지도 몰라요. 홈스쿨링 하는 아이들도 분명히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에 배정이 됩니다. 그 학교, 그 반 아이라고요. 그럼 학교에서 분명히 아이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되는 거예요.”(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정빈 씨는 지난 5월부터 대법원 앞에서 계모와 친부에 대한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재개했다 ⓒ김정빈(가명) 제공

언제나 사건은 빠르고 대책은 늦었다. 우리 사회의 익숙한 모습. 시우가 목숨을 잃기 전에도 ‘데자뷰’ 같은 사건들은 있어왔다.

2015년 12월 이른바 ‘인천 맨발 탈출 소녀’ 사건이 발생했다. 게임에 중독된 친부와 계모에게 2년 넘게 감금·학대당하던 C 양(11세)이 가스배관을 타고 몰래 탈출해 인근 상점에 들어갔다. 음식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깡마른 아이. 이를 수상하게 여긴 상점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며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C 양 역시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장기결석 아동이었다. 정부는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합동점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전국 초중고 학생 2892명이 미취학 및 장기결석 상태였다. 학대 피해 아동 35명, 의무교육 방임 아동 708명 등이 발견됐다.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아동학대예방 대책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학대 위험 가구 예측·발굴 시스템(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2017년 가동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2020년 4월에는 할머니(70세)와 손자(12세)의 시신이 장롱에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손자가 개학 이후에도 원격수업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학교과 경찰은 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손자와 할머니는 사망 두 달 만에 발견됐다. 가해자는 아이의 아버지였다.

당시 교육부는 유감을 표명하며 “학생들의 소재·안전에 대한 철저한 확인과 가정 내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학교와 시도교육청, 경찰청 등 관계 기관과 함께 적극 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정부는 장기결석 아동들이 학대받거나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들은 있었다. 시우가 그랬던 것처럼.

정빈 씨는 샤갈의 <이삭의 희생>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다.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과,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는 엄마 사라(나무 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김정빈(가명) 제공

보건복지부가 밝힌 ‘2022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들의 수는 2019년부터 해마다 40명을 넘어 꾸준히 늘고 있다. 2022년에는 50명을 기록했다. 한 달에 약 3명 꼴로 숨지는 셈이지만, 기관에서 집계되지 않는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더 커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미인정 결석아동(이 피해자인 아동학대 사건)들은 대부분 가해자가 보호자였어요. 그 외에 보호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국가배상소송까지 잘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또, 다른 보호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소송할 만한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죠. 이번 소송으로 아이의 죽음에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선례를 만들고 싶어요.”(정복연 변호사)

인천교육청을 상대로 한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정복연 변호사(법무법인 신광)는 이번 소송을 통해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일어났을 때 국가는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명시하는 판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매뉴얼대로 했다”는 교육청과 “매뉴얼대로 했어도 법령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시우 친모의 주장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과연 아동학대 사망사건에서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의미 있는 첫 판결이 나올 수 있을까. 3차 변론은 다가오는 12일 열린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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