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다시 만난 건 서울 태평로에 있는 삼성 본관 앞이었다. 1년 4개월 만의 만남. 오랜만에 본 그는 차갑게 언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을 포옹으로 대신했다. 그는 한 품에 들어왔다. 친언니와 여행 가서 찍었던 사진. 최진경 씨의 영정 사진을 안아들었다.

6일 오후 6시 30분, 황유미 씨 18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황유미 씨는 2007년 현장실습생으로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그는 근무한 지 1년 8개월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투병 중에 2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으로 세상은 조금씩 바뀌었다. 유족과 시민들은 삼성 반도체 공장 내부에 문제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거리로 나왔고 반도체 산업의 직업병 문제가 조금씩 알려졌다.

“2008년 이 자리에서 유미 씨의 첫 추모제를 할 때, 그때 저희가 알고 있던 6명의 백혈병 피해자가 제발 60명은 아니기를, 제발 600명은 아니기를 했던 그 불길한 예감이 지금 딱 맞아떨어지는 것처럼요.”(추모제에서 공유정옥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 발언 일부)
그러나 여전히 반도체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아프거나 죽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2023년 8월에 만난 최진경 씨도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였다. 최 씨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 입사한 그는 실험실에서 화학물질을 이용해 반도체·LCD 공정에 참여하고 연구하는 일을 했다.
최 씨는 2017년 8월 삼성전자에서 퇴사하며 제2의 삶을 꿈꿨다. 미래를 위해 자격증을 준비하던 2018년 7월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이었다. 치료를 받아도 상태가 호전되는 건 잠깐이었다. 암은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
4년이 넘도록 기다렸지만, 끝내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한 채 그는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48세. 결국 나는 마지막으로 그와 인터뷰한 기자가 됐다.(관련기사 : <반도체, 말기암, 불승인… 나는 홀로 ‘마지막’을 준비한다>)
“우린 잘 지내, 늘 셋이서 투닥투닥거리면서. 푸념할 너가 없어서 언니는 네가 너무 그립다.”(최진경 씨 언니 음성 메시지 일부)
이날 추모제에서 그리운 이름을 다시 들었다. 그의 언니는 처연한 목소리로 근황을 전했다. 막내딸을 잃은 아버지는 “괜찮다” 하시면서도 다른 사람을 보며 “진경이”라고 자꾸 불렀다.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이름. 애교 많고 천진하던 진경 씨를 가족들은 그렇게 애도하고 있었다.

최진경 씨를 비롯해 그 옆으로 114개의 영정사진이 세워져 있었다. 사진이 걸려 있는 피켓은 훨씬 적은 수였지만, 그 사진들에는 특징이 있었다. 영정사진답지 않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는 것.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거나, 젊은 나이에, 혹은 투병으로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이 떠나보낸 듯했다.
“어제 저는 115개의 영정사진을 정리했습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의 따뜻한 손길을 남겨두고 떠났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등졌을 것입니다. 한 장의 사진과 한 줄의 이름이지만, 그 속에는 담을 수 없는 슬픔과 억울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추모제에서 정향숙 발언 일부)
정향숙 씨는 추모제를 앞두고 영정 피켓을 제작했다. 그 역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약 18년간 근무하며 디스크 질환, 유산, 불임, 중이염, 거대세포종 등 온갖 질환으로 고통받았다. 동료들의 영정 사진을 만든 그의 속을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아픔이 없도록. 지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프지 않도록. 산 자가 죽은 자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으면 좋겠습니다.”(추모제에서 권영은 반올림 활동가 발언 일부)

한 시간가량 발언이 이어지고, 방진복을 입은 참가자들이 황유미 씨의 영정 앞에 헌화를 했다. 여전히 23살인 유미 씨의 얼굴 앞에 국화가 쌓여 갔다.
기자는 한쪽에 고정돼 있던 최진경 씨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명동역까지 최진경 씨와 ‘야간산책’에 나섰다. 삼성 본관에서 세종호텔까지 약 20분 거리를 최진경 씨와 함께 걸었다.


해가 떨어지자 찬바람이 불었다. 가방에서 장갑을 꺼내지 않은 걸 후회했다. 빨갛게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피켓을 쥐었다.
손에 들고 걷기만 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팔을 번쩍 들어 영정사진을 들어올린 채 걸었다. 그 가벼운 무게조차 들지 못하고 바람이 불면 휘청이는 내가 싫었다.

그때였다. 행진차량에 있던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권영은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가 영정사진 아래에 적힌 이름을 하나씩 호명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그들을 도와주다가 죽음을 목도했을 사람들.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단순히 피켓을 든 게 아니다. 지금 최진경 씨랑 서울 도심을 거닐고 있다는 걸 다시 상기했다.
최진경 씨는 맛집 투어를 좋아했다. 가족들과 드라이브하며 시원한 공기를 맞고 싶다고도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소박한 일상을, 두 발로 땅을 밟으며 걷는 날들을 좋아했다.
“컨디션 조금 회복하시면 그때는 저랑 커피 말고 맛있는 밥 같이 먹어요.”(2023. 9. 18. 기자가 최진경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그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돼버렸지만. 도심의 네온사인이 피켓에 반사됐다. 한식부터 양식, 야식 메뉴까지 다양했다. 눈앞에 식당은 있지만, 함께 맛있게 먹어줄 사람이 없다. 행진 대열에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아닌 국화꽃 향기가 따라왔다.

최진경 씨와 함께 걸으며, 고공농성 중인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씨(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도 만났다. 그는 지난달 13일 도로 위 10m 높이 구조물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는 행진 대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걸음은 그 앞에서 멈췄다.
이곳에서 연대발언을 듣는 것을 끝으로, 최진경 씨와 또 한 번 이별이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게 또 어떤 의미일까.
“재벌을 위한 반도체 특별법은 연일 보도하고 있지만, 반도체 노동자들의 생명 건강권을 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도체 특별법에는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적용 예외 조항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더 늘어나게 될 우려가 커졌습니다.”(반올림 제작 추모제 영상 중)
황유미 씨를 기억하는 이들은 입을 모았다. “반도체특별법이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짓밟을” 거라고. 활동가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산재 피해 유가족도 우려를 표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그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문서로도 남아 있지 않는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문제가 있던 곳이라도 ‘문제 없는 작업장’이 될 수 있잖아요.”(최진경 씨 생전 인터뷰 2023. 8. 29.)
추모제가 있었던 6일,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특별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황유미 씨의 죽음으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도체 노동자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장에서 원인 불명의 사상자가 늘어나는데도 기업은 손 놓고 있다.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화학물질을 활용하고 있는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국가는 오히려 이러한 기업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고, 보조금을 지급하고,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국가를 부흥시킬 거라는 ‘첨단’산업의 청사진에,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은 빠져 있다.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과로하며 건강을 해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권영은 반올림 활동가 발언 일부)
최진경 씨는 죽기 전까지 남을 사람들을 걱정했다.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해 “더는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날 응급실에 실려가지만 않았어도 꿈을 이뤘을 테지만. 죽은 자는 산 자를 위해 끝까지 싸웠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