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로부터 123일. 시민들의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헌법재판소는 4일 오전 11시 윤석열의 대통령직 파면을 선고했다. 

시민들이 되찾은 새날. 헌재 앞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시민들은 눈물을 보이거나 서로 끌어안으며 저마다 기쁨을 나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순간을 카메라에 포착했다. ‘촛불 사진가’ 이호(55) 작가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카페에서 이호 작가를 만났다 ⓒ셜록

이호 작가가 촛불시민들을 처음 만난 건 2022년 3월이었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으로 아내와 나들이 갔던 날, 그곳에서 한 행진 대열을 만났다. 촛불행동(촛불승리전환행동)은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비판했다. 당선 16일 만에 열린 윤석열 규탄 촛불집회였다.

“집회에 온 사람들은 보통 분노하고, 실망하고, 답답해서 나오잖아요. 그런데 사진을 보면 다들 웃고 있는 거예요. 그 눈빛이나 모습들이 되게 감동적이에요. 그걸 사진에 잘 담고 싶더라고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이 작가도 다짐했다. 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내가 사진을 찍으면 이걸 본 누군가도 이곳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집회 현장을 찾았다. 곧 ‘다른 세상’이 올 거라는 기대였다. 그렇게 길 위에 선 지 3년이 흘렀다.

사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잡으면서 영어학원 운영을 접었다. 사실상 ‘백수’ 사진작가인 셈이다. 그를 대신해 아내가 다시 일터로 나갔다. 면목이 없었다. 몇 번이고 카메라를 놓을까 고민도 했다.

“결국 시민들 덕분이죠. 가족처럼 돼버렸으니까요. 밖에서(촛불집회 현장에서) 사진 찍고 돌아오면 주머니에 초콜릿부터 간식, 핫팩, 뭐가 계속 나와요. 그리고 그분들도 경제적으로 안정돼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몸이 불편하거나 아파도 나오고, 형편이 어려워도 나와요. 그러니까 저도 포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가방에는 늘 카메라 2대, 렌즈 5개, 플래시가 있다. 그리고 넥워머와 모자, 장갑도 챙긴다. 시민들이 무장시켜준 이호 작가의 ‘무기’다.

칼바람이 파고드는 날이면 시민들은 방한용품을 건넸다. 그들이 나눈 온정 덕분에 인천 집에서 서울 집회 현장까지 왕복 세 시간 거리를 기꺼이 오갈 수 있었다.

이호 작가가 가방에 든 물건들을 소개했다. 시민들이 선물해준 방한용품들. 어딜 가든 꼭 챙긴다. ⓒ셜록

그에게도 2024년 12월 3일 밤은 잊지 못할 순간이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

“저는 그날 바로 국회로 갔어요. 사람들이 몰려 있는데, 무장한 군인들도 있더라고요. 그때 생각났죠. 군 복무 중인 아들 생각이. 그게 너무 화나고 속상하더라고요. 아빠하고 아들이 그렇게 만날 수도 있게끔 한 거잖아요.

다행히 그곳에서 아들을 만나진 않았다. 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민간인은 건드리지 말라는 당부였다. 아들은 그날 부대에서 완전군장을 한 채 잠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잘 잤다”며 되레 아버지를 위로하는 아들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이 작가도 그날부터 매일 집회 현장을 찾았다. 비상계엄 선포로 촛불집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늘었다. 집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K-POP이 울려퍼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민중가요가 외면받진 않았다. 오히려 민중가요를 배우고 싶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집회에서 나오는 노래(K-POP) 가사들을 제가 책 읽듯이 봤어요. 그랬더니 그 가사 속에 이미 평등, 민주 이런 게 녹아 있는 거예요. 그때 알았죠. ‘다들 배우고 있었구나, 그동안 표현하지 않았던 것뿐이구나’ 하고요.”

가수 이승환 씨는 지난해 12월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촛불문화제에서 공연을 했다 ⓒ이호
겨우내 광장을 지킨 촛불시민들 ⓒ이호

이호 작가는 탄핵 국면에서 새로운 불빛들을 만났다. 이전까지 잘 보이지 않던 ‘응원봉’ 세대. 그들은 ‘말벌 동지’로 불리며, 여러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 현장을 찾기도 했다. 한 TV프로그램에서 언제 어디서든 말벌이 보이면 바로 뛰어가 꿀벌을 구해주던 한 출연자의 모습이 화제가 됐는데, 꼭 그 모습을 닮았다 해서 ‘말벌 동지’가 됐다.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상징물(응원봉)을 들고 나와서 외치는 거잖아요. 그 사람을 위해서일 수도 있고, 나를 위해서일 수도 있는데, 얼마나 멋있어요. 함께할 수 있는 세대가 등장하고, 서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소외받던 계층들이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고요.”

이호 작가는 집회 현장에서 사진 찍는 일 말고도 하는 일이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일이다. 그는 집회 현장에서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만났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이들은 그곳에서 ‘다시 만날 세계’를 그렸다.

이호 작가는 인터뷰를 마치고 바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현장으로 갔다. 역시나 카메라를 들고. ⓒ셜록

촛불 사진작가가 된 지 햇수로 4년째. 어느덧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사진 촬영을 요구하거나 포즈를 취하는 시민들도 있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고 싶은 그에게 얼굴이 알려지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식당을 못 가겠더라고요. 밥 먹고 나갈 때 계산을 하려고 하면, ‘다른 분이 계산하셨어요’ 이런 경우가 많아요. 너무 죄송한 마음이죠.”

식당에 들어가기 전 유리창 너머로 아는 얼굴이 있는지 살펴보는 버릇은 그때부터 생겼다. 확인하고 가게에 들어가도 결제할 때면, 또 누군가 먼저 계산을 하고 조용히 사라진 뒤였다.

“사실 자연스럽게 사진 찍으려면 옆에 편하게 있어야 해요. 그래서 같은 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오래 했던 것뿐이에요.

지난해 12월 여의도에 모인 촛불시민들. 이호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사진이다. ⓒ이호
2023년 3월 행진하는 촛불시민 ⓒ이호
지하철에서 피켓을 들어보이는 촛불시민 ⓒ이호

그는 오랜 시간 현장에서 셔터를 눌렀다. 때로는 빌딩 옥상에서, 때로는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서 찍기도 했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았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진은 촛불시민들이 한눈에 보이는 사진이었다. 점처럼 무수한 사람들. 거기에는 식별도 안 될 만큼 작은 사람들과 나부끼는 깃발만 보인다. 그 안에 이호 작가가 사진에 담고 싶었던 평등과 행복이 있었다.

그는 2023년 11월 사진집 <촛불 그리고 사람들>(내일을여는책)을 발간했다. 지난여름에는 개인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시민들의 항쟁 사진, 작가의 시선을 보여주는 사진 등 100여 점을 전시했다.

“제가 촬영하면서 울었던 최초의 순간이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예요. 이번(헌재의 파면 선고)에도 사람들은 같은 모습일 거예요. 서로 끌어안고 펑펑 울겠죠. 저도 울면서 찍겠지만, 그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인터뷰 당시 그는 탄핵이 기각 또는 각하돼도 촛불시민 곁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잘못되는 한이 있어도’ 현장에 있겠다는 다짐.

“집회를 하는 게 단순히 저희 잘 살자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 다음 세대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나오니까요. 다른 분들은 이런 말씀도 하세요. ‘피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주겠다. 대신 너희들이 이길 수는 없다.’

그는 촛불시민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촬영하며 엄지를 들어올리기도 했다 ⓒ셜록

법과 상식이 무너진 세계를 잘 버텨냈다. 이호 작가 역시 힘겹게 살아남았다. 그는 최근 약을 한 움큼씩 먹는다. 생존을 위한 일이다. 매일같이 왕복 세 시간 거리를 오가며 겨울을 보내니 체력적으로도 한계를 느꼈다. 끝날 것 같으면서 끝나지 않는 일. 희망고문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이상하게 요즘 눈물이 많아져서 사진 찍으면서 자꾸 울더라고요. 전체적으로 보는 거랑 렌즈로 세상을 보는 건 달라요. 그 속에 보이는 사람들 표정, 몸짓, 정말 예쁘거든요. 그런데 (내란 정국이) 장기화되면서 그런 것도 보이더라고요. 사람들 마음이 조급해지는 모습, 슬프고 화나고 답답한 감정들을 참아내는 모습이요. 그게 되게 마음 아파요.”

비상계엄이라는 명백한 위헌·위법 행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파면은 123일 만에야 이뤄졌다. 그 사이 구속됐던 윤석열이 다시 풀려나고,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이 기각되기도 했다.

암울한 순간들을 넘겨온 만큼 그에게 찾아온 변화도 컸다. 심적인 여유가 생겼다. 광장에서 두 눈으로 목격한 경험이 생각의 변화를 안겨줬다.

집회 시작 전, 시민들이 생각보다 적게 모여 걱정을 하던 날이었다. 사진에 적은 인원이 담기는 게 아쉬웠다. 그렇게 촬영에 열중하다 보면 금방 시민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시간이 걸려도 결국에는 그 자리가 다 찼던 날. 그런 일들을 경험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우리 길을 가면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

“(윤석열 파면 이후에도) 촛불시민들이 갑자기 썰물처럼 빠져나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정부가 탄생한다고 하더라도 계속 비판하고, 견제하고, 사회적인 개혁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세력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그는 ‘박근혜 탄핵’이 남긴 교훈을 떠올렸다. 문재인 정부 탄생 이후 촛불시민들이 뒤로 물러나면서 개혁 과제들을 완수하지 못한 데 아쉬움을 표했다. 한 번 ‘실수’를 경험한 촛불시민들이 이번에는 ‘견제세력’으로 자리를 지킬 거라고 믿었다.

초기 윤석열 탄핵 집회가 열린 청계광장에 다시 선 이호 작가. 그는 4년 전 가장 처음 촛불이 켜지는 순간, 그리고 마지막 촛불이 꺼지는 순간을 기록했다. ⓒ셜록

시민들이 광장에 있는 한, 그 역시 “쉽게 카메라를 놓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 작가가 그리는 ‘다시 만날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촛불 사진작가’라는 수식을 떼어내는 게 쉽지 않겠죠. 그래도 다른 수식을 붙일 수 있다면 ‘삶을 보여주는 이호’로 살고 싶어요. 사진 한 장이 굉장히 힘이 셀 때가 있거든요. 저는 약자들 옆에 있으려고요. 그 사람들 목소리에 힘이 되는 사진들을 찍어드리고 싶어요.

취재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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