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앞두고 분주해 보였다. 직원들은 행사용 풍선을 옮기거나, 간이 구조물들을 설치하고 있었다. 기자는 2일 오전 9시,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했다.

미국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벽돌색 건물들 사이에서, ‘어린이환경·생태교육관'(이하 교육관)부터 찾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의 사진이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 박사와 함께 ‘쌩뚱맞게’ 걸렸던 그곳이다.

지난해 6월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침팬지를 연구하는 제인 구달 박사의 사진이 8장 전시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김건희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 두 장이나 전시돼 있었다.(관련기사 : <마당엔 윤석열 실내엔 김건희… 1년만에 가본 용산정원>)

윤석열 파면으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현재, 아직도 그 사진이 걸려 있을까?

첫 번째 사진은 2023년 7월 김건희 씨와 제인 구달 박사가 함께 산사나무를 기념식수 하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은 현재 제인 구달 박사가 은퇴 안내견 ‘새롬이’와 함께 정원 내 ‘용산서가’에서 찍은 사진으로 교체됐다.

김건희 씨와 제인 구달 박사가 함께 기념식수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위). 윤석열 대통령 파면 후 구달 박사 독사진으로 바뀐 사진(아래)ⓒ셜록

두 번째 사진은 정원 내 ‘용산서가’에서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 역시 제인 구달 박사가 산사나무를 기념식수 하는 독사진으로 바뀌었다.

김건희 씨와 제인 구달 박사가 함께 ‘용산서가’에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담은 사진(위). 윤석열 대통령 파면 후 구달 박사 독사진으로 바뀐 사진(아래)ⓒ셜록

김건희 씨 모습이 들어 있던 두 사진 모두 철거되고 ‘김건희 씨가 없는’ 사진으로 교체된 것. 교육관을 지키고 있는 담당자에게 물었다.

(윤석열 파면 이후에) 사진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전달이 와서 바꿨습니다. (사진 교체)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대통령과 아무 상관없는, 어린이들에게 환경·생태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한 곳. 이곳에 있던 김건희 씨 사진을 윤석열 파면 직후에 철거했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사진을 게시한 목적이 ‘정권 홍보’, ‘영부인 홍보’였다는 걸 자인하는 셈이다.

교육관에 걸려있던 김건희 씨와 제인 구달 박사 사진(위). 윤석열 대통령 파면 직후, 교체된 구달 박사 독사진.(아래)  ⓒ셜록

이곳은 정권 홍보, 영부인 홍보 논란 외에도, 제인 구달 박사의 이미지를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반환된 미군기지 부지에 조성된 용산어린이정원은 토양오염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을 중단하고 오염물질 정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도(2일), 정치하는엄마들 등 시민단체가 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원 폐쇄를 요구했다.

정치하는엄마들 등 시민단체는 2일 용산어린이정원 앞에서 정원 즉각 폐쇄를 요구했다 ⓒ셜록

교육관을 나와 잔디마당에 있는 ‘특별전시장’도 살펴봤다. 대통령실은 2023년, ‘국민과 함께 시작한 여정’이란 제목의 특별전시를 주최했다. 윤 전 대통령 부부 모습이 담긴 색칠놀이 도안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한 사실이 알려져 ‘대통령 우상화 교육’ 논란을 만들었던 곳이다.

마당 위 전시 구조물 색깔은 노란색에서 하늘색으로 바뀌었다. 윤석열 부부 사진도 모두 철거됐다. 이들 부부 사진이 있던 공간에는 용산어린이정원 내부 사진과 학생들이 그린 그림이 자리했다. 군데군데 빈 공간이 많았다. 전시장엔 관람객 대신 시설물을 정리하는 직원들밖에 없었다.

윤석열 부부 사진이 걸려있던 ‘특별전시장’ 모습(위). 윤석열 부부 사진이 모두 철거된 모습(아래) ⓒ셜록

셜록은 2023년 8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소셜미디어에 알린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용산시민회의) 대표와, 그와 동행한 용산 주민 5명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한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이후 출입거부를 당한 시민이 최소 23명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 모두 용산어린이정원 토양오염 문제 등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비판해온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이 걸려있던 ‘특별전시장’ 모습(위). 윤 전 대통령 부부 사진이 모두 철거된 모습(아래) ⓒ셜록 ⓒ셜록

국토교통부로부터 용산어린이정원 유지 운영을 위탁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급조된 ‘출입제한’ 규정을 근거로 일부 시민들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막았다.

‘출입제한’ 규정은 사실상 ‘블랙리스트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정 행위 혹은 특정 물품의 반입 금지를 명시한 게 아니라, 특정 ‘인물’의 출입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저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특정 인물을 콕 집어 입맛대로 출입을 막을 수 있는 조항이다.

셜록 보도 이후, 대통령경호처는 용산어린이정원에 출입금지 조치를 요청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기자는 2일 정원 앞에서 김은희 대표를 만나 온라인 방문예약을 시도했는데, 여전히 “예약신청이 불가하다”는 문구가 떴다. ⓒ셜록
김은희 대표는 지금도 용산어린이정원 방문 예약을 시도하면, “예약신청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는다. ⓒ셜록

출입거부를 당한 시민들은 지금도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하고 있다. 기자는 2일 정원 앞에서 김은희 대표를 만나 온라인 방문예약을 시도했는데, 여전히 “예약신청이 불가하다”는 문구가 떴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한 시민들 중 4명은 2023년 10월, LH를 상대로 ‘출입거부 무효 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시민들이 1심을 승소했지만, LH의 항소로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LH 홍보실은 지난 17일 기자에게 “항소심이 결정 날 때까지는 항소 취하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출입거부 취소 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취소 소송 항소심 첫 번째 재판은 오는 28일 오후 2시 40분에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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