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다단계 할배’는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 1번 출구에 나타나지 않았다. 약속한 시각보다 1시간 늦게 연락한 노인은 버럭 짜증부터 냈다.
“1번 출구에서 기다리는데, 왜 안 와요! 젊은 사람이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닌가?”
노인의 화난 목소리는 전화기보다 주변에서 더 크게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보라색 재킷에 버버리 무늬 모자를 쓴 키 150cm의 체구 작은 노인이 보였다.
“우리한테 1번 출구는 저기야!”
그가 가리킨 쪽을 보니 노약자용 엘리베이터 출구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기다린 곳은 계단으로 연결된 출구였다. 우린 각자가 생각한 ‘선릉역 1번 출구’에서 서로를 기다린 셈이다. 노인의 타박이 이어졌다.
“내 말을 계단으로 된 출구로 이해하면 어쩝니까. (한숨) 아이고 정말, 그렇게 말길을 못 알아먹어서 참…. 쯧.”

박대복(82세, 가명) 씨는 벌써 지쳤는지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숨부터 골랐다. 약 10분의 휴식이 끝나자마자 노인은 재킷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의 코인지갑을 보여주며 즉석 교습을 시작했다.
“설명회 전에 먼저 알려줄 게요. ○○코인에 100달러를 넣고 1년만 기다리면 돼. 돈 많으면 더 넣어도 좋고. 저절로 돈이 쌓이거든. 나도 한 2000만 원 넣었는데, 이 원리가 뭐냐면….”
박 노인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급해 보였다. 버스와 사람으로 붐비는 정류장은 특강 장소로 적합하지도 않았다. 화제를 돌려 그의 말을 끊었다.
“오늘 5월 8일 어버이날인데, 카네이션이나 용돈은 좀 받으셨어요?”

노인은 ‘이 말을 할까, 말까’ 하는 멋쩍은 얼굴로 잠시 날 바라봤다.
“그런 거 챙겨 받을 나이도 지났고.. 가정 형편도 그럴 분위기는 아니고. 아들 둘이 있는데, 서로 연락 끊고 지낸 지 한참 됐지. 근데, 그런 걸 왜 자꾸 물으실까?”
이번엔 내 말문이 막혔다. “그냥 궁금해서요”라고 얼버무리자마자, 노인은 이때다 싶은 기세로 훅 들어왔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 저번에도 그러시더니, 오늘도 쓸데없는 걸 캐물으시네. 코인에는 관심도 안 보이고…. 혹시 기자예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지난달 4일, 나는 강남 테헤란로 한 빌딩에서 열린 의류 다단계 설명회장 잠입취재 중이었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탄핵선고 생중계를 시청하는데, 박 노인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주문 낭독을 이렇게 이해했다.
“대통령 윤석열을 사면한다.”
일제 해방 이전인 1943년에 태어났으니 박 노인의 귀가 ‘파면’을 ‘사면’으로 듣고, 그의 무릎이 지하철역 계단을 거부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82세 노인의 기이한 모습은 이후부터 이어졌다.
“나랑 꾸준히 비지니스를 해보는 게 어때요? 일단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나를 ‘다단계 새내기’로 인식한 그는 첫 만남에서 동업을 제안했다. 이후부터 박 노인은 ‘다단계 성지’로 통하는 강남 테헤란로 쪽으로 날 불러내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다. 노인의 유혹은 한결 같았다.
“내가 돈 벌게 해줄게. 나랑 같이 ○○코인 설명회 갑시다. 응?”
“이번 ○○코인은 다단계가 아니야. 아주 국제적이고 유망한 사업이야.”
유혹에 넘어간 척, 어버이날에 그를 만났지만 박 노인은 내 신분과 의도를 간파했다. 그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날 앉혀 놓고 단단히 경고하듯 말했다.
“일단, 약속한 대로 오늘은 나랑 ○○코인 설명회장에 가는 겁니다! 알았어요? 기자님께서 직접 들어보고 ‘이거 된다’ 판단이 서면 돈 넣는 거야! 싫으면 여기서 헤어지고!”
코인 다단계를 향한 불굴의 의지. 박 노인은 포기를 몰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세요!”

이렇게 거래가 성사됐다. 나는 코인 투자 설명을 듣고, 노인은 내 취재에 응하고. 내가 설득당하면 그의 하위조직으로 들어가 100달러를 투자하고, 대신 박 노인은 설명회장에서 내 신분을 조직원으로 소개하고. 새 조직원을 확보했다는 믿음이 자양강장 효과를 내는지, 박 노인은 성큼성큼 걸으며 테헤란로 뒷골목으로 날 이끌었다.
그는 젊은 시절 약 20년간 한 사립대학에서 경비로 일했다. 지금은 사학연금으로 월 120만 원 정도를 받는다. 그의 아내는 기초연금으로 약 30만 원을 받는다. 80대 노부부는 월 150만 원으로 살아간다.
“이 나이에 코인을 왜 하냐고? 돈 벌려고 하는 거지! 월 150만 원으로 월세까지 내면서 한번 살아봐요. 얼마나 힘든지. 내 자식들이 왜 부모랑 인연을 끊었겠어. 돈 없으면 가족이고 뭐고 다 필요 없는 거야. 새겨 들어! 하루라도 일찍 코인에 투자하라고!”
박 노인은 경기 성남시 중원구의 10여 평 다세대주택에서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산다. 은퇴 즈음엔 30평대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었지만, 일명 기획부동산에 투자하는 바람에 집을 날렸다. 그때 산 강원도의 땅은 여전히 처분이 안 돼 “매달 은행 대출 이자를 내느라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박 노인은 가난한 노년의 탈출구로 코인을 선택했다.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로 어느 정도 주류 자산으로 여겨지는 비트코인 등이 아니다. 박 노인이 손을 댄 건, 혹은 그의 발목을 잡아챈 건 테헤란로의 코인 다단계 생태계다. 박 노인은 2020년부터 출근도장을 찍듯이 테헤란로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돈 좀 벌었냐고? 개뿔…. 말아먹은 돈만 한 5000만 원 되지. 그래도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이젠 힘들어서 경비도 못해. 폐지도 리어카 끌 힘이 있어야 줍는 거야!”
비록 무릎은 약해도 코인부터, 건강식품, 의료기기까지 온갖 다단계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테헤란로 생태계에서 박 씨 같은 노인은 시장을 순환시키는 강력한 심장이다. 테헤란로의 어느 다단계 설명회장이든 객석을 메우는 건 60대 이상의 노년이다. 젊은 다단계 설계자들은 이들을 ‘다단계 낭인’ ‘다단계 할배-할매’라 부른다.
이미 숱하게 발도장을 찍었는지 박 노인은 한 번도 헤매지 않고 코인 설명회장으로 직행했다. 한 건물의 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박 노인은 한 번 더 확인 도장을 받았다.
“마음에 들면 오늘 바로 투자하는 겁니다. 100달러라도. 알았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눈앞에 ‘노인 세상’이 펼쳐졌다. 누군가는 알록달록한 패션으로 치장했지만 흰 머리와 텅 빈 정수리, 얼굴의 주름까지는 어찌하지 못했다. 다들 다단계 생태계에서 오래 활동했는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박 노인은 그곳에서 “박 선생”, “박 사장”으로 불렸다. 이들 사이에서 나는 박 노인의 하부 조직원으로 소개됐다.
코인 투자 설명회는 오후 2시부터 열렸다. 자신을 전직 공무원으로 소개한 50대 남성 강사는 70~80대 노인이 다수인 청중 앞에 ‘성공하는 삶을 위한 인생 격언’을 PPT로 소개했다. 제목은 ‘인생을 바꾼 명언’.
- “할 수 있다고 믿어라. 그러면 반은 이루어진 것이다.” – 루즈벨트
- “항상 햇빛을 향해 고개를 돌려라. 그러면 그림자는 뒤에 생길 것이다.” – 월트 휘트먼
- “기회를 놓치지 마라. 그것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 미셸 오바마
-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 루즈벨트
- “성공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 출처 미상
노인에게 “성공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한 강사는 이어 ○○코인의 특별한 경제학을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100달러(약 15만 원)를 투자해 OO코인을 사서 1년간 갖고 계십시오! 그러면 최대 얼마로 불어나는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2436만 원! 무려 2400%의 수익입니다. 만약에 1만 달러(약 1500만 원)을 투자면 어떻게 되느냐, 무려 24억 3600만 원! 여러분, 이렇게 좋은 투자 안 하면 그거 바보 아닌가요?”

이어 강사는 일명 ‘다단계 피라미드’ 구조의 그림을 화면에 띄웠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다른 다단계와는 차원이 다른 회사”라고 강조했다. 내 옆에 앉은 ‘박 사장’ 박 노인은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2400%라는 기적의 수익률을 약속하는 강연은 1시간 만에 끝났다. 잠에서 깨어난 박 노인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어때요. 끝내주지?”
내가 멋쩍게 웃자 그는 “커피 한잔 하자”며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믹스커피를 타면서 박 노인은 “젊은 사람이 1시간 동안 설명을 듣고도 이해 못하느냐”며 날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하부 조직원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합동작전’이 펼쳐졌다.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나서 날 다른 테이블에 앉혔다. 그 역시 스마트폰을 꺼내 코인지갑을 보여줬다.
“자 이 숫자 보이죠? 이게 회사의 잉여금인데, 최소 200일은 투자자들에게 이자를 보장할 수 있어요. 망해도 200일 동안 날마다 이자를 지급한다니까요!”
망해도 이자를 날마다 준다니. ‘1년 만에 수익률 2400%’ 만큼이나 허황돼서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그러자 박 노인이 다시 버럭했다.
“믿음이 부족하구만! 아까 강사가 루즈벨트 대통령이 했다는 말 들려줬잖아. ‘할 수 있다고 믿어라. 그러면 반은 이루어진 것이다!’ 벌써 까먹었어?”
박 노인의 얼굴은 실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신의를 지켰다. 현장에서 다른 노인들에게 내 신분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박 노인은 한 가지 약속은 스스로 폐기했다. 애초 우린 코인 설명회 현장 두 곳을 함께 돌기로 했다. 내가 투자 의사를 밝히지 않자, 그는 “두 번째 현장은 혼자 가겠다”고 선언했다.
○○코인 설명회장을 떠나는 길, 박 노인은 1층까지 날 배웅했다. 함께 저녁을 먹자는 나의 제안을 그는 거절했다.
“다음 설명회장에선 저녁을 주거든. 거기서 먹을 거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요. 100달러만 넣으면 된다니까. 그러면 내가 다음 설명회장 델구 갈게. 거기서 공짜밥도 먹고, 얼마나 좋아. 떡도 주고, 고기도 있을 거야. 진짜 싫어?”
고개를 끄덕이지 않자 그는 끝내 ‘공짜밥 주는 현장’으로 날 초대하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돌아섰다. 82세 노인 박대복에게 어버이날 만찬과 믹스커피 제공을 약속한 건 코인 다단계 설계자들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박 노인은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그는 이미 다단계 생태계에 5000만 원을 헌납(?)했으니까. 테헤란로의 숱한 ‘다단계 할배-할매’처럼 그 역시 수년간 꾸준히 따박따박 털리고 또 털렸으니까.
논현역 일대 테헤란로에 모이는 ‘다단계 노인들의 행로’는 빅데이터로도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KBS ‘시사기획 창’은 KT가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가난한 노인들이 논현역으로 많이 모인다는 유의미한 사실을 보도했다.

빈곤 노인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예상대로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일대였다. 이곳에선 봉사단체가 무료 점심을 노인들에게 제공한다. 논현역 일대에선 다단계 꾼들이 코인 대박을 미끼로 노인들을 모아 종종 밥-떡-고기-믹스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5월 8일 저녁 코인 설명회장에서 식사를 마친 박 노인이 다시 전화를 해왔다.
“정말 투자 안 할 겁니까?”
좀처럼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노년. 테헤란로 다단계의 심장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뛴다. 다단계 꾼은 “가난한 노인들이 계속 수혈되기에 테헤란로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관련기사 : <“날백 날천 찍어봤어요?” 테헤란로의 설계자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한국의 SDG(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현황 202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약 40%에 이른다.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