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을 나선 시민들이 웃었다. 법원은 일부 시민들에 대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조치를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1심에 이어 두 번째 승소였다.

서울고등법원 행정4-3재판부(재판장 정선재)는 27일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처분 무효확인’ 소송 판결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항소를 기각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시민들의 정원 출입을 막은 것은 위법하다는 1심 판결을 유지한 것이다.

재판부는 “용산어린이정원은 공공용으로 사용하는 행정재산이고, 국민들에겐 출입을 신청할 권리가 있다”며, “LH가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입장을 제한한 것은 위법하므로, 무효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은희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 사진을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올리며 대통령실이 주최한 ‘특별전시’를 비판했다 ⓒ셜록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용산시민회의) 대표는 2023년 7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소셜미디어에 최초로 알리며 비판했다.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윤 대통령 부부 모습이 담긴 색칠놀이 도안을 어린이에게 제공하고 있었던 것. 그로부터 약 10일 뒤, 그는 정원 출입을 거부당한 사실을 인지했다.

대통령 부부 ‘우상화 교육’ 해프닝은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번졌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김 대표와, 그와 동행한 용산 주민 5명 외에도 최소 23명의 시민이 출입거부된 사실을 밝혀냈다. (관련기사 : <‘최소 23명 더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블랙리스트’>)

김 대표 등 4명은 2023년 10월, LH를 상대로 ‘출입거부처분 무효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23년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열린 ‘특별전시’ ⓒ셜록
윤석열 대통령 부부 ‘우상화 교육’ 논란이 있었던 도안 ⓒ셜록

LH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용산어린이정원을 포함한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에 관한 유지 관리 및 운영을 위탁받았다. LH는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 제5조(관람신청 및 입장) 6항에 근거한 ‘정당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 제5조(관람신청 및 입장) 6항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예약신청 또는 현장접수를 받은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

LH는 ‘출입제한 조항’을 2023년 7월 신설했다. 오직 ‘출입제한’ 조항만을 새롭게 추가하기 위해 규정을 개정했다. 출입제한 조항이 신설된 바로 그날,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환경동아리 ‘푸름’ 소속 대학생들에게 바로 적용됐다.

이는 사실상 ‘블랙리스트 조항’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정 행위나 물품을 금지한 게 아니라, 특정 인물의 출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을 막을지 그 사유도 명확하지 않다. 관련기관의 요청만 있으면 특정 인물의 출입을 제한할 수도 있다.

지난 5월에도 용산어린이정원 입장을 거부당한 김은희 대표 ⓒ셜록
2023년 11월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중단 문화제에 참석한 대진연 환경동아리 ‘푸름’ ⓒ셜록

출입이 가로막힌 시민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비판한 사람들이라는 것. 김은희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소셜미디어에 알렸고, 대진연 환경동아리 ‘푸름’ 소속 대학생들은 정원의 토양 오염 문제 등을 알렸다.

LH는 출입 제한을 요청한 기관을 밝히지 않았지만, ‘관련기관’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실토하기도 했다. 셜록 보도 이후, 대통령경호처는 용산어린이정원에 출입금지 조치를 요청한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대통령경호처장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다만, 출입을 제한한 구체적인 사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관련기사 : <대통령경호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우리가 요청했다”>)

용산어린이정원에서 바라본 대통령실 ⓒ셜록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LH의 정원 출입거부 조치에 대해 “법률상 근거 없는 국민의 기본권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대통령경호처가 출입거부의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은 점도 함께 지적했다. 그러나 LH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시민들의 권리가 재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정원 출입이 막힌 지 2년. 법정을 나서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27일 법정 앞에서 승소 소감을 밝히는 김수형 씨 ⓒ셜록
김은희 대표와 용산어린이정원에 방문했다가 출입을 거부당한 용산 시민 김교영 씨(왼쪽)와 이들의 소송을 대리한 서창효 변호사(오른쪽) ⓒ셜록

행정소송에 나선 김수형 씨는 이날 법정 앞에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자기들(정부)한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출입을 제한하는 일이 너무 위협적이었다”며, “사법부에서 정당한 판결이 나와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권리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이날 용산어린이정원 출입 현장등록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예약신청이 불가하다’는 안내 문구가 떴다.

시민들을 대리한 서창효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오늘 항소심 판결은 당연한 판결”이라며, “1심과 항소심 판결에도 (여전히) 출입이 제한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피고(LH) 측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고, 국민들이 기본권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도록 (출입제한) 조치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희 대표는 항소심 선고가 있던 27일 용산어린이정원 방문 예약을 신청해봤다. 결과는 역시나. ⓒ셜록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시민들은 2023년 10월 헌법재판소에 출입 제한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헌재는 “행정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제기된 헌법소원은 부적합하다”며 각하했다. 이에 소극적인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시민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도 넣었다. 셜록은 이들을 대리해 진정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2월, 대통령경호처의 과도한 소지품 검사에 대해 “경호에 필요한 통상적인 보안 검색 수준을 넘어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인권침해 여부 판단 요청 자체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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