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김선우(가명) 씨는 몸부터 긴장한다. 이맘때면 피부가 먼저 탈이 난다. 평생 먹어야 하는 면역억제제가 피부를 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건조한 바람이 닿으면 얇아진 피부는 쉽게 트고 뒤집어진다. 가장 약한 곳은 눈 주변이다. 한번 붉게 일어난 눈가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조금씩 찬바람이 불어오던 지난 9월, 판결문이 도착했다. 선우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지 2년 1개월 만이었다.
“원고(김선우)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결과는 패소. 5년 전 열아홉 살 선우 씨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간이 녹아내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천우신조로 이식수술을 받았다. 법원은 그 일이 회사 업무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년 전 근로복지공단이 내린 결론을 법원이 되풀이한 셈이다.
“마음의 준비는 했는데, 결과를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이럴 거면 행정소송을 왜 했나, 이 소송에 의미가 있나, 그냥 받아들이고 살았어야 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우 씨는 마이스터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20년 10월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모교에서 그 회사로 취업한 ‘1호 취업생’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4조 3교대로 돌아가는 공장에서 각종 화학물질을 다뤘다.
몸은 조금씩 이상신호를 보냈다. 입사 반년쯤 지나자 피로감이 몰려왔고, 일 년쯤 지나자 부딪힌 적도 없는데 몸에 멍들이 발견됐다. 음식을 먹으면 토했고, 한번 터진 코피는 한두 시간씩 멈추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대근무에 쌓인 피로 탓인 줄 알았다.
“당장 입원 안 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흰자위가 노랗게 변한 뒤에야 병원을 찾았다. 당시 간 수치는 정상의 50배를 넘었다.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을 찾아 크리스마스이브 하루 동안 병원 일곱 곳을 전전했다.
주치의는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때 기적처럼 뇌사자의 간이 나타났다. 이식수술 성공 확률은 30%. 의료진 10명 중 8명이 반대하는 수술이었다.
2022년 1월, 혼수상태에 빠진 선우 씨가 수술대에 올랐다. 10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몸 밖으로 꺼낸 간은 완전히 녹아 형체조차 없었다. 조직검사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이 간을 녹였는지 밝힐 길도 그렇게 사라졌다.
“그전까지 제가 너무 건강했어요. (그해 4월에) 건강검진 받았을 때도 이상 없었다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진 거면, 이게(화학물질이) 쌓이다가 결국 이렇게 된 게 아닌가. 간 조직검사를 그때 못 해서 원인을 정확하게 못 밝힌 거죠.”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2024년 9월 선우 씨 이야기를 처음 보도했다.(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약 2년 만에 다시 만난 선우 씨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새벽 1시 울산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에 오른다. 목적지는 서울아산병원. 오전 6시 채혈 시간에 맞출 수 있는 건 이 막차뿐이다. 피를 뽑고 나면 9시 외래진료까지 약 3시간을 기다린다. 기다림 끝에 교수와 마주 앉는 시간은 5분 남짓. 진료가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돌아온다.
넉 달에 한 번 가는 서울. 이식수술을 받은 뒤 반복되는 일상이다. 하루 두 번 면역억제제를 먹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12시간 간격을 지켜야 해서 새벽에도 알람을 맞춰 일어나 약을 삼키고 다시 잠들곤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재판은 이어졌다.
“중간중간 재판 소식을 들었어요. 재판부에서 반응이 좋다고 해서 희망 가졌다가, 법원에서 감정 맡긴 감정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다고 해서 또 안 되겠구나 했다가… 희망 가졌다가, 안 되겠다 했다가, 계속 그랬어요.”
근로복지공단은 2024년 5월 선우 씨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선우 씨는 그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그해 8월 소송을 시작했다. 법원에서라도 다시 판단을 받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2년 넘게 기다린 끝에 돌아온 답은 같았다.
법원은 일터의 화학물질로 병이 생겼다고 보기에는 노출이 너무 적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선우 씨가 다룬 물질 중 독성간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 물질이 없다 ▲작업장에서 측정된 유해물질 노출도 기준치에 못 미쳤다 ▲화학물질 노출은 입사 초기에 더 많았는데 시기가 지난 뒤에 병이 났다’는 것을 판결의 근거라 밝혔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은 지난 10월 27일 이번 판결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반올림은 법원이 회사가 제공한 자료에만 기대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정도를 판단했다며, 이것만으로 노출 수준이 낮다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내놓은 서류만으로는 선우 씨가 실제로 무엇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다 알 수 없다는 거다.
“(공장에) 약(화학물질) 종류가 엄청 많았거든요. 6시간인가 8시간에 한 번씩 약을 바꿔줘야 되고, 제품이 바뀌면 또 다른 약 갖고 와서 바꿔야 되니까 노출이 안 될 수가 없어요. 통 색깔도 다 달랐고, 잘못 쓰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고 엄격하게 관리했어요.”
작업환경 측정 방식도 문제다. 측정은 정상가동 중 공기 중 농도를 잰다. 선우 씨는 스텐실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작업할 때의 순간적인 고농도 흡입, 찢어진 장갑 틈으로 세척액이 손에 닿는 피부 접촉은 측정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주장을 판결문에 적었지만, 감정의가 “앞선 의견을 달리할 사정이 없다”고 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우 씨는 역학조사 당일도 기억했다.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2명과 회사 관계자들, 선우 씨는 작업장에 함께 들어갔다. 작업장은 그가 일할 때보다 눈에 띄게 깔끔해져 있었다.
“불시 점검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평소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니까. 도착하기 1시간 전에 ‘측정하러 갑니다’ 하고 알려줘야죠. (연구원들은) 제 말은 안 듣고, 그냥 회사 사람들 설명만 듣고 갔어요.”

대신 재판부는 다른 원인을 거론했다. 코로나19 백신이다. 재판부는 “(발병은) 오히려 백신접종과 관련된 것으로서, 업무 외의 면역학적 요인이 관여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백신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심사 단계에서 이미 걸러진 이야기였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불승인 사유로 든 것도 ‘유해물질 노출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지, 백신 영향이 있었다는 점은 아니었다. 공단조차 꺼내지 않은 백신 이야기를 법원이 다시 꺼냈다.
선우 씨는 2021년 9월 29일과 11월 1일 맞은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바로 옆 라인에서 일한 동료들은 그해 4~5월부터 선우 씨가 벽에 기대거나 의자에 앉아 조는 모습을 자주 봤고, 코피도 자주 흘렸다고 기억했다. 백신 1차 접종보다 네다섯 달 앞선 시기였다.
선우 씨는 재판 과정에서 대학병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업무관련성평가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김선우)의 급성 간부전 및 재생불량성빈혈의 발생 원인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기는 어려우나, 업무상 노출된 화학물질이 원고의 간손상 발생에 기여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적어도 질병의 발생 또는 진행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은 인정된다.”
재판부는 이 소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업무가 원인일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는 말로는 부족했고, 백신이 원인일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는 말로 충분했다.
이번 판결은 의학적으로 원인을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산재를 쉽게 불승인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와도 거리가 멀다. 대법원은 2017년 첨단산업 노동자의 희귀질환 사건에서 이렇게 판단했다.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7년 8월 29일 선고, 2015두3867)
이 원칙은 이번 판결문 첫머리에도 적혀 있다. 재판부는 판단에 앞서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유해요인이 다른 요인과 결합해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대목까지 옮겨 적었다. 그러나 판단은 물질 하나하나의 노출 수치를 따지는 데 머물렀다.
선우 씨의 간은 조직검사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녹아버렸다. 원인을 밝힐 증거가 사라진 상황에도 원인을 규명할 책임은 여전히 그에게 있다.

“저는 아직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는 꿈이었으면 좋겠고, 하루하루 미래 건강에 대한 불안감, 미래의 꿈에 대한 불안감, 앞으로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들이 저를 짓눌러옵니다.”
선우 씨는 1심 재판부에 직접 탄원서를 냈다. 탄원서 끝에는 “적어도 이 산재처리가 승인돼 이 부분만큼이라도 불안과 걱정을 덜어내어 살아가고 싶다”고 적었다.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선우 씨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울산의 한 공장에 들어가 드럼통에 기름 채우는 일을 했다. 교대근무가 없다는 게 가장 좋았다. 약 먹는 시간을 지킬 수 있어서다. 하지만 작업장에는 유증기가 가득했다. 면역억제제 부작용으로 얇아진 피부가 결국 ‘뒤집어졌다’. 올해 6월, 아홉 달 만에 일을 그만뒀다.
“(공장) 다닐 때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은 편했는데 몸이 힘들었고, 지금은 반대예요. 몸이 편한 대신 마음이 불편해요. 친구들은 다 일하는데 저는 집에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제 스스로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특히 겨울이면 불안해진다. 처음 간이 녹아내린 것도, 이식한 간에 거부반응이 찾아온 것도 12월이었다. ‘12월 징크스’다. 그는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간 이식수술을 다시 할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산다.
선우 씨는 지난 10월 14일 항소했다. 낙담하던 그의 마음을 다잡아준 가족들 덕분이었다. 가족들은 “대법원까지 가자”며, “선우 씨의 삶 그리고 그와 비슷한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 또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항소심에서 승소) 안 될 것 같아서 안 하고 싶었어요. 진짜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고. 근데 부모님이 설득을 하시더라고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에요. 미래를 생각하면 (결과를) 뒤집어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열여덟에 반도체 공장으로 향했던 고등학생은 스물넷 청년이 됐다. 그 사이 간을 잃었고, 직장을 잃었고, 4년의 시간을 산재 다툼에 썼다.
회사는 20여 년간 같은 공정에서 그와 같은 병이 생긴 전례가 없다고 했다. 회사의 말대로라면 선우 씨는 이 공장에서 간을 잃은 첫 노동자다. 그리고 그 일을 산재로 인정받으려고 재판을 이어간다.
‘1호 취업생’이었던 열여덟 고등학생은 이제 ‘1호 판례’를 남기기 위해 싸우고 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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