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판사를 뒷조사하고 구속하려 애썼다. 죄가 있다면 누구나 처벌받아야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집요한 뒷조사와 끈질긴 구속 시도, 그것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자존심 강한 사법부에 대한 박정희의 응징이었다.

유신헌법이 선포되기 전이었다. 대법원은군인이 전투훈련 직무수행 전사, 순직, 공상으로 유족 연금을 받을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라는 국가배상법 2조에 대해 위헌 여부를 심리했다. (당시 위헌법률심판권은 대법원에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대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이나 유족이 국가배상을 청구하면 막대한 국고손실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합헌을 강력히 희망했다. 대통령은 배영호 법무장관에게 책임지고 판사들을 설득하라고 지시했다.

사법권의 독립을 해치는 일은 없습니다.”

법무장관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괜한 고집이 아니라, 삼권분립을 따른 거다. 원칙을 지켜 박정희의 미움을 받은 그는 사표를 내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법원의 위헌을 막으려는 박정희의 집념은 강했다.

당시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위헌 판결은 대법원 판사(16. 현재는 14) ‘3분의2 이상 출석과 과반수 찬성이면 가능했다. 정부여당은 이걸 ‘3분의2 출석과 3분의2 찬성으로 개정했다.

박정희에 맞선 법관들

박정희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든 대법원은 원칙대로 움직였다. 대법원은 1971 6 22 국가배상법 2조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박정희가 무리하게 개정한 법원조직법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한 법원 직원이 법원 출입문을 청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날은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서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됐다. 대법원 판결은 삼권분립에 따른 사법부의 독립을 명확히 역사적 사건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말이 이던 무서운 시절이어서 더욱 그랬다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은사법부 손보기 돌입했다. 검찰이 나서 판사 뒷조사를 벌였고 이중 일부를 구속하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법부는도주의 우려가 없다 영장청구를 기각하면서 맞섰다. 검찰은 포기하지 않았다. 사법부 탄압을 감지한 판사들은 모임을 열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럴 바에 우리 쥐약 먹고 죽어버립시다.”

당시 법관 150명이 사표를 내고 박정희 정권의 사법권과 법관 독립 침해에 항의했다. 전체 법관 31 해당하는 규모였다. 1 사법파동은 이렇게 사법부와 법관 독립을 위한 투쟁이었다. (이상 한홍구 교수의 <사법부> 참고)

박정희의 보복은 끝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72 10, 유신헌법이 선포되면서 대법원의 위헌법률심판권은 헌법위원회로 넘어갔다.국가배상법 2조는 위헌이다 의견을 대법원 판사 9명을 모두 법원에서 쫓아냈다.

이렇게 누군가는 법관의 원칙과 사법부 독립을 지킨 대가로 법원을 강제로 떠나야만 했다. 유신 체제로사법 암흑기 시작됐지만, 1971 대법관들의 용기와 결단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사법 역사는 훨씬 초라했을 것이다.

세월은 흘렀다. 제왕적 권력을 추구한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을 떠받치던 정보기관 수장에 의해 사망했다. 유신 체제 내내, 혹은 1987 민주화운동 이전까지는 사법부에게 오욕과 치욕의 시간이었다.

한홍구 교수가 <사법부> 대로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이 그토록 고문에 대해 호소했건만, 높은 법대 위의 재판관들은 끝내 바짓가랑이 한번 걷어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다시 세월이 흘러, 박정희의 딸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됐다. 영화 <1987> 보여듯이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사람이 죽고나 다쳤다. 시민들은 가슴속에 말이 가득해도, 마음에 피멍이 있어도바짓가랑이 한번 걷어보라 한마디 하지 않은 사법부를 크게 원망하지 않았다.

이젠 들고 설치는 정치군인이 없고, 뒷조사하고 감시하면서 공장처럼 가짜 간첩 찍어내 유죄를 압박하는 정보기관도 없으니 사법부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가 주길 기대했다. 시민에 의해 선출된 입법부와 행정부가 권력을 잘못 쓰면, 사법부가 법과 양심에 따라 바로 잡아주길 바랐다.

우리 사회가 헌법으로 법관의 독립을 규정해 신분을 보장한 사법살인과 오판을 낳은 판사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오직 역할을 흔들림 없이 하라는 요구였다.

최근 공개된판사 블랙리스트 모든 기대와 바람이 얼마나 허망했는지를 보여준다. 판사들마저이게 정말 법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냐 허탈해 지경이니 시민들의 감정은 오죽할까 싶다.

유신 체제 이전, 선배 법관들은 군사정권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지키려다 검찰에게 뒷조사를 당했지만, 지금 사법부는 자기 스스로 법관 독립을 훼손해 검찰 수사를 불러들인 꼴이다. 지금 드러난 내용만 봐도문건 작성자가 법원인지, 정보기관인지헷갈릴 지경이다. 내용을 압축하면 이렇다.

– 판사를 사찰하고, 자의적으로 성향을 분석해 ‘빨강, 파랑, 흑색’으로 기록했다.

– 개별 법원 판사 선거에 몰래 개입했다. 후보를 물색하고 구체적인 정책도 모색했다.

– 판사들의 합법 연구모임을 와해하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짰고, 또 실행했다.

– 정보 수집을 위해 비밀요원처럼 ‘거점법관’을 운영했다.

– 판사 여론과 동향 파악을 위해 인터넷 카페 회원 계정을 확보하고, 카페 폐쇄를 모색했다.

적과 싸우려다 적을 닮아버린 걸까, 아니면 불법을 단죄하면서 그들의 수법을 배운 걸까. 법원행정처로 상징되는 사법부 수뇌부는 권위주의 시절 정보기관처럼 활동했고, 때로는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 댓글부대처럼 움직였다. 박근혜 정권이 그랬듯이조직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계획적으로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판사들을 감시하고 배제했다.

양승태 체제 대법원의 주요 표적

양승태 체제 대법원의 주요 표적은 명확했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거나, 비판적인 판사들. 특히제왕적 대법원장체제를 반대하면서 개혁을 모색하는 판사들 말이다. 전국 3000 판사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대법원장은 그동안제왕이라 불렸다. 결국판사 블랙리스트문건 내용은 이렇게 요약할 있다.

제왕에 도전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라. 개혁과 변화를 모색하는 집단을 와해시켜라.’

박정희박근혜 정권의 악습을 그대로 따라했으니, 박정희 대통령의 압력에 맞섰다가 법복까지 멋은 선배 법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할까? 특히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와 양승태 체제의 법원행정처가 교감을 나눈 내용은 읽기 민망한 수준이다. 압력에 저항한 흔적은커녕 바람보다 먼저 누워버린 민첩함만 있다.

판결 선고 전 동향

BH(청와대) 최대 관심 현안 -> 선고 전 ‘항소기각’을 기대하면서 법무비서관실을 통하여 법원행정처에 전망을 문의.

법원행정처 -> ‘매우 민감한 사안이므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우회적-간접적인 방법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리는 한편, 재판 결과에 관하여서는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우며, 행정처도 불안해하고 있는 입장임’을 알림.

판결 선고 후 동향

전반적 분위기 -> 크게 당황하며 앞으로 전개될 정국 상황에 관하여 불안해하는 상황. 특히 우OO 민정수석이 사법부에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줄 것을 희망.

법원행정처 -> 법무비서관을 통해 사법부의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을 설명함.

권력에 굴하지 말라고 법으로 신분을 보장했건만, 바람보다 먼저 누운 사법부는 풀보다 늦게 일어났다. 사법부가 청와대에 불쾌감을 표시하고사법권을 침해하지 말라 경고할 만한 사안이지만 문건에 그런 내용은 없다.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위원가 법원행정처에서 발견한 문서. 사법부와 청와대 사이의 교감(?) 내용이 담겨 있다. ©대법원

우병우 민정수석의 희망 대로 대법원은 사안을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체에서 신속히 논의했다. 결과는 ’13:0’, 대법관 전원이 원장의 선거법 위반죄 근거의 모든 증거력을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2 선고 5개월 만인 2015 7월의 일이다. 원장은 석달 보석으로 석방됐다.

판사 블랙리스트와 함께청와대 사법부 교감 공개된 하루 만인 23, 김명수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은 유감을 밝혔다. 이들은대법관들은 재판에 관해 사법부 ·외부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말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했다는 이야기다.

많은 판사와 시민은 다시 허탈해 하며 분노했다. 류영재 춘천지방법 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목을 보자.

대법관도 사법행정권자다. 대법관 회의를 통해 사법행정권한을 일부 담당한다. 나아가 사법부의 최고 법관들이다. 그러한 대법관들이 ‘긴급 간담회’를 연 후 발표한 입장문에 작금의 사법행정남용 사태 및 원세훈 문건의 존재에 대해 일말의 언급이 없다. 남 일이라 생각하신 건가, 별 것 아니라 생각하신 건가.

둘 중 어느쪽인진 모르겠지만, 수많은 후배법관들이 충격과 모욕감을 느끼고 당장 내일 재판은 어떻게 하냐며 하소연하는 이 상황에 어울리는 인식은 아니다. 남 일이라 생각해도 문제고 별 것 아니라 생각했다면 더 문제다. 사법행정권자이자 최고법관으로서의 인식 수준에 슬픔을 느낀다.

판사의 지적 대로 최고 법관인 이들은 최근 사태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법관 13 1명인 고영한 대법관은 유감을 표명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현 대법관). ©오마이뉴스

그는 판사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시점,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를 목적으로 구체적인 실천에 들어갔을 법원행정처장으로 일했다. 법원 수뇌부가 비밀문건을 토대로 밀실에서 회의를 열었을 수장이 바로 고영한 대법관이다. 그런 그가 책임지는 자세 대신 불쾌감을 표시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기에 ,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작년 9 임기를 마치고 법원을 떠난 양승태 대법원장은 아무런 말이 없을까. 과연 당시의 모든 일을 양승태 대법원장은 몰랐을까? 가능성은 낮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을 보좌하면서 한몸처럼 움직이는 기관이다. 실제로 대법원장은 작년 이맘때 관련 내용 일부를 법원행정처 간부에게 보고를 받았다

이쯤에서 김기춘조윤선에게 23 유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장판사 조영철) 판결문 대목을 곱씹어 보자.

“국가권력 최고 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측근 보좌관들이 직접 나서서 조직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계획적으로 지원 배제 행위를 했다. 이는 문화예술뿐 아니라 국정 전 분야를 통틀어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법부에서 벌어진 전례가 없는 일은 많은 시민을 슬프게 한다. 무엇보다 허탈한 , 사회 분야에서 분권을 통한 견제와 균형으로 나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오늘날, 정작 법원 수뇌부는 권력의 정점인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을 지키려 비밀요원처럼 움직이면서 법과 원칙을 어겼다는 이다.

사법부, 특히 법원행정처 구성원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통한다. 공부를 많이 똑똑하다는 이들은 정작 견제가 없는 권력(박정희) 다른 목소리를 탄압한 인물(박근혜) 몰락한다는 역사적 교훈은 배우지 못한 같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사법부>에는 대목이 나온다.

“한 사회가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그에게 높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의해 판단할 뿐 어떠한 내외의 압력에도 굴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의 법관들은 너무 쉽게 압력에 굴복했다. (중략) 사법부에 대한 ‘중정-안기부’의 부당한 압력과 개입 문제를 조사하면서 조금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중정-안기부가 그 험한 시절에도 시국 사건과 관련해 현직 법관을 잡아가거나 고문을 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여당 실력자나 현역 국회의원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모욕을 주고 수염까지 뽑았어도 현역 법관을 잡아다가 압력을 가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딱 한 번 1980년 김재규 사건 재판 당시 신군부의 요구사항을 거절한 양병호 대법원 판사가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차라리 중정-안기부가 법관들을 잡아다 협박하고 고문해서 사법부가 저 지경이 되었다면 덜 슬펐을 것이다.”

정말이지, 누군가 견딜 없는 외압을 줘서, 법으로 신분을 보장해 주지 않아서 사법부가 지경이 되었다면 국민들은 슬펐을 것이다.

우병우 수석의 말에사법부 독립을 흔들지 말라 따진 고위 법관이 있었다면, 지금 사태에부끄러워 수가 없으니 쥐약 먹고 죽어버립시다라고 말한 대법관이 명이라도 있었다면 허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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