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개농장 20마리, 남양주 개농장 60여 마리, 신길동 할아버지네 4마리, 트랙터에 묶였던 누렁이 7마리, 서산 투견 6마리…

개는 떼로 죽어도, 박소연 대표는 살아 남았다. 같은 조직에서 ‘넘버 원’ 대표만 17년째,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장기 집권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장기 집권자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 법. 박소연 <케어> 대표는 19일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했다.

“<케어>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대표직에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안락사 사실을 숨기고 시민들을 기망했다는 비판에도 박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박 대표의 일관성에 대해 한 동물권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박 대표가 자기의 인생을 걸고 동물판에 뛰어든 건 맞습니다. 30대 초반부터 <케어>를 운영했던 그가 대표직을 내려놓는다?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동물보호소에서 홍보 사진을 찍는 박소연 <케어> 대표. ©케어

박소연은 2002년 <케어>의 전신 동물사랑실천협회를 설립할 때부터 대표를 맡아왔다. 2013년 7월부터 약 9개월간 대표직을 사임했을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20년 가까이 ‘리더 1인 체제’를 유지한 사례는 시민단체 중 동물판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실제 국내 3대 동물권단체는 모두 2000년대 초반부터 리더 1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박소연 대표의 1인 체제는 독재로 평가된다. 지난 12일 ‘케어 대표 사퇴를 위한 직원연대’의 기자회견에서 직원연대는 “많은 결정이 대표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나 좀 믿어라’ ‘나 여기서 20년간 일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박소연 대표에게 찍힌 사람의 의견은 쉽게 묵살됐습니다. 대표한테 찍히면 내 의견도 묵살될까 싶어 시키는 대로 따랐습니다.”

<케어> 현직 직원 A씨의 말이다. 대표의 독단 탓일까. <케어>에는 4년 차가 넘는 장기근속 직원이 드물다. 현재 <케어> 직원들의 연차는 대부분 1년~3년 차 정도다. 박소연 대표의 안락사 은폐에 직원들은 쉽게 속을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이 안락사 사실을 몰랐다는 건 다른 의미를 뜻하기도한다. 바로 시스템 부재다.

<케어> 전직 직원 B씨는 “평소 단체의 동물 개체 수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면, 직원들도 보호소 개체가 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라 지적했다.

<케어> 보호소에 있는 동물 600여 마리를 사실상 내부고발자 혼자 관리했습니다. 사무국 직원 22명 모두 보호소에 달라붙어도 감당하기 힘든 규모입니다. 내부고발자가 개체 수를 투명하게 정리할 수 있게끔, 진작 다른 사무국 직원들이 움직였어야 했습니다.”

시스템 없이 대표의 지시와 결정으로 단체가 운영돼 왔기에 이번 사태가 터졌다는 이야기다.

전직 직원 B씨는 “동물 구조의 기준도 박소연 대표의 주관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 대표는 매번 끔찍한, 불쌍한, 참혹한 같은 굉장히 모호한 단어를 써서 직원들에게 구조의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현직에 있는 A씨도 같은 점을 지적했다.”

“<케어>가 구조한 사건 중 절반 이상이 박 대표의 결정이었습니다. 동물을 구조할 때 학대동물, 위기동물 등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있는데, 박 대표는 ‘케어에 이익이 될 것 같다’는 식으로 구조 사건을 선택해 통보했습니다.”

그는 “‘<케어>는 한다’는 외부의 인식 때문에 박 대표가 구조에 더 적극적이었다”며 “이해할 수 없는 구조가 많았지만, ‘힘 있는 사람(박소연 대표) 눈에 띄어서 넌(동물) 살았구나’라고 생각하며 참아왔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구조는 결국 살처분에 가까운 무분별한 안락사로 이어졌다. 내부고발자가 제공한 ‘개체 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37마리, 2016년 152마리, 2017년 281마리, 2018년 535마리가 <케어> 동물보호소로 입소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물 사체 처리비도 비례해 증가했다. 2015년 약 420만 원, 2016년 약 630만 원에서 2017년 약 920만 원, 2018에는 약 1530만 원까지 늘어났다. 감당할 수 없는 구조라는 걸 수치가 증명한다.

박소연 대표는 왜 무리한 구조를 강행했을까. 내부제보자와 다른 동물권단체 관계자는 비슷한 말을 했다.

“무리한 구조라는 걸 박 대표도 알아요. ‘구조는 옳다’고 믿으니까 포기를 못하는 겁니다. 게다가 열악한 환경에 있는 동물을 구조하면 사람들이 환호하고, 후원금이 몰려요. 여기에 심취하면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동물구조활동은 동물권단체의 진정성을 검증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하지만 ‘구조의 여왕’으로 통하던 박소연 대표가 구조만큼 안락사도 쉽게 했다는 사실이 폭로된 뒤 그 진정성의 신화는 무너졌다.

‘케어 대표 사퇴를 위한 직원연대’는 19일 입장문을 통해 “어떤 생명은 덜 중요하다는 생각, 이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라는 폴 파머의 격언을 인용하며 박소연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케어>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문제의 근원인 박소연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며 “시민들의 뜻에 따라 2월 예정된 케어 총회에서 대표 해임 안건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총회가 열린다고 박소연 대표 해임이 쉽게 이뤄질까? 과정을 살펴보면 이 또한 가시밭길이다.

비영리단체 <케어> 정관에 따르면, 총회는 임원(대표 포함)의 선임과 해임을 의결할 수 있다. 올해 2월에 열리는 총회는 정기 연례총회다.

총회는 정회원의 100분의1 이상 출석과 출석정회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정회원은 매월 약정금액의 회비를 납부하는 사람이다. 1월 21일 기준 <케어>의 정회원은 약 4000명으로, 총회에는 최소 40명 이상이 참석해야 한다.

총회에 출석한 정회원의 수가 의결정족수에 미달하면, 해당 안건은 이사회에서 의결한다. 총회에서 위임받은 사항은 이사 과반수 출석에, 출석이사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케어> 이사는 정회원 중에서 추천을 받아 총회에서 선출된 이들이다. 지난 13일 <케어> 이사회 소집에서 취재진이 만난 이사 대부분은 10년 이상 정회원으로 활동한 사람들이었다.

‘케어 대표 사퇴를 위한 직원연대’는 1월 12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소연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직원연대

박소연 대표는 정회원 정족수 40명 정도는 자기 사람으로 채울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이사진 상황도 다르지 않다.

내부고발자는 “나를 포함해서 한두 명을 제외하고 이사들은 박소연 대표의 측근들로 이뤄져 있다”며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앞서 말한대로, 장기집권자와 독재자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큰 조직이 아닌 골목대장도 마찬가지다. 개, 고양이가 무수히 죽어나가도 꿋꿋이 살아남은 박소연 대표는 이번에도 건재할까?

이번 사태 이후 <케어> 직원들은 고군분투 중이다. 보호소를 방문해 개체 수를 파악하고, 개체별 관리카드를 새로 만들고 있다. 보호소 개체들을 입양보내기 위해 새로운 입양처를 물색하고 있다.

직원들이 박 대표가 저지른 일을 뒷수습하는 지금. <케어> 정상화를 위해 사퇴할 수 없다는 박소연 대표는 동물보호소를 한 번이라도 찾았을까?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살 길 찾느라 바쁩니다. 동물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