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마을버스 기사에게 성희롱을 당했고, 지난 한 달을 싸웠다. 경찰서를 찾아갔고, 구청과 마을버스 운임회사와 다퉜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있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대중교통 기사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왜 경찰과 구청은 별다른 조치를 못 하는지, 이 사건을 통해 깨달았다.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나는 졌다. 지지 않았으면 이 글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연재가 우리 사회의 이면을 진단하는 문진표가 되길 바란다.

서울 신촌역에 정차한 마포 13번 모습. ⓒ이명선

사건은 지난 3월 1일에 벌어졌다. 오전 7시 50분,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마을버스 ‘마포 13번’이 도착했다. 마포 13번은 신촌역에서 홍익대학교 후문 쪽에 위치한 와우산 꼭대기까지, 비교적 짧은 코스를 돈다. 이 버스 이용객들은 운전기사와 비교적 가깝게 지낸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마포 13번 버스는 내게 반가운 존재였다. 홍익대 쪽으로 이사 후, 동네에 정을 붙이는 데 마을버스 덕이 컸다. 특히 A 기사는 내게 자주 간식을 건넸고, 나도 보답했다.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자주 웃었다. 동네 꼬마들도 살가운 A 기사를 반갑게 대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삼일절 아침의 마포 13번은 한적했다. 승객은 나뿐이었다. 출근과 등교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신촌역 앞은 휴일이라 오가는 사람이 적었다. 나는 차가운 바람을 피해 일찍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기사는 버스 주변에서 스트레칭 중이었다. 사건은 그 때 터졌다.

 “이봐요. 물어볼 게 있는데, 친구가 휴대폰으로 이상한 걸 보내고 나서 문자판이 안 보여요.”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1년 넘게 마을버스를 탔지만, A 기사가 승객 좌석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를 본 적 없다. 몸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자동으로 어깨 근육이 수축했다. 시선은 한 곳으로 모였다. 그가 내게 내미는 휴대전화에 과연 어떤 화면이 뜰지 바라봤다.

그가 화면으로 보여준 사진은 음란물이었다. 10대로 추정되는 작은 체구의 여성이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고, 덮여 있는 흰 이불보를 누군가 손으로 겉어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 몰래 촬영한 사진 같았다. 사진 속 여성은 성범죄 피해자로 보였다.

대부분 여성들은 성범죄 피해를 한 번쯤은 겪어봤을 터. 나도 마찬가지다. 여중 여고 앞에서 숱하게 바바리맨을 봤고, 어떤 피해는 지금까지 씻지 못할 상처로 남았다. 신고는 어려웠다. 어른들은 사건을 덮기 바빴다. 그 때의 트라우마는 지금까지 따라다닌다.

마포 13번 내부 모습. 성희롱 사건이 벌어진 후에도 가해 기사는 여전히 버스를 운행 중이다. ⓒ이명선

정신을 차려보니 마을버스를 내린 후였다. 기사는 내가 내리자마자 문을 닫고 급하게 출발했다. 정류장 앞에서 얼마나 멍하게 서 있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성범죄 피해 여성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나는 두려움에 자리를 피했다. 신고보다 공포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사진이 아저씨 휴대전화에 있을까.’

A 기사는 “자신의 친구가 문제의 사진을 보냈다”고 말했다. 성희롱 사건 자체를 차치해 생각해보더라도, 기사는 문제의 사진을 친구가 보냈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자주 이런 사진을 공유했던 건가.’ 순간 연예인 정준영이 떠올랐다. 동료 연예인들과 성범죄 영상물을 공유하며 ‘희희낙락’한 그 사건이 떠올랐다.

‘일단 마을버스 회사 사장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마음이 가라앉자마자 휴대전화로 마을버스 회사 이름을 찾았다. 사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휴일이어서 전화는 연결이 안 됐다. 그러던 중 같은 회사의 또 다른 마을 버스가 도착했다. 다행히 그 기사는 사정 설명을 듣고 내게 운임회사 사장 번호를 줬다.

 ‘증거가 있어야 해.’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증거였다. 성범죄 2차 피해 중 상당수가 가해자로부터 무고로 역고소를 당하면서 발생한다. 성폭력 2차 피해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녀는 두 번 죽었다> 프로젝트를 취재를 하면서 수많은 무고 피해자들과 직접 대면했다.

증거가 없으면 나도 무고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배운 피해자의 노하우(?) 같은 것이었다. 나는 다시 가해자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마포 13번은 20분에 한 번씩 같은 장소로 돌아오기 때문에 다시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전 8시 10분, 정확하게 그가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마을버스는 한적했다.

나는 휴대전화 동영상 기능을 켰다. 녹화버튼을 누르고, 몰래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까 상황을 다시 묻고, 문제의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면 증거가 확보되리라 생각했다. 가해 기사가 시치미를 떼지 않길 바라며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버스에 올라 탔다.

“아저씨. 아까 뭐라고 하신 거예요?”

“아니, 문자판이 나와야하는데 이상한 게 나와가지고.”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기사는 내게 똑같은 말을 하며 문제의 사진을 내밀었다. 불쾌함이 다시 밀려왔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그 상황을 영상으로 담았다. 어떤 음란물을 보여줬는지 영상에 담겼다. 증거 확보에 성공했다.

“아저씨. 지금 저에게 성희롱 하신 거예요. 아세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니까 물어보는 건데, 설마 고발하시려고요?”

성희롱 가해 기사가 보여준 음란물 사진. ⓒ이명선

휴대전화를 들고 버스에서 내리자 A 기사는 날 따라 내렸다. 여전히 버스와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택시를 잡기로 했다. A 기사는 내 뒤통수를 향해 “억울하다”고 외쳤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오해하지 말라”며 나를 붙잡았다.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120 다산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성희롱 가해자가 대중교통 기사로 일하는 건 문제라 판단했다. 처벌이 이뤄지기 전까지라도 운전을 못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서울지버스가 다니는 곳에는 어린이집과 대학이 있어 아이와 학생이 많다.

마을버스 회사 사장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피해 사실을 직접 전달하고,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기 않도록 형사 처벌 전까지 조치를 취해달라고 협조를 구했다. 사장은 상황을 듣고 사과의 말을 건넸다.

다음 순서는 경찰서를 찾는 일. 경찰에 그를 신고하고, 버스 기사 일을 못 하게 하는 게 ‘순리’라 여겼다. 그 생각은 틀렸다.

경찰서를 찾아간 후, 내가 생각한 순리가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중요한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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