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과 고려대학교가
법정에서 맞붙은 적이 있다

고려대가 2009학년도 수시 2-2 일반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의혹이 언론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직후였다. 원고는 이 전형에서 떨어진 수험생의 부모들이었다. 24명의 원고는 ‘고려대의 부정 행위 때문에 학생들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받았다’면서 고려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사실 배상이 소송의 주목적은 아니었다. 법정에 나섰던 학생들은 이 싸움을 통해 ‘도대체 자신이 무슨 기준으로 떨어졌는지’ 알고 싶어했다. 질 때 지더라도 패배 요인을 알아야 깨끗이 승복할 수 있는 법이니까. 지지부진 싸움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학생들이 법정행을 주저하지 않은 것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학생들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당시 1단계 합격자 중에는 외고생들이 일반고 출신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다. 수치가 이를 입증했다. 이 전형에 지원한 총 4295명의 외고생 중 58.4%에 달하는 2508명이 1단계 문턱을 넘었다. 내신 등급이 우위에 있는 일반고 학생은 떨어지고 외고생이 붙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2009학년도 고려대 수시 2-2 일반전형에서 내신 등급이 우위에 있는 일반고 학생은 떨어지고 외고생은 붙은 사례 비교 ⓒ 민주노동당 권영길 전 의원

이름값하는 외고일수록
합격률이 더 높아졌다

대원외고의 경우 지원자 212명 가운데 89.6%인 190명이 1단계 전형에서 합격했고, 안양외고와 외대부고의 경우 각각 88,7% 84.6%의 합격률을 보였다. 학생의 능력차가 아니라 고교의 실적과 특성, 소재지에 따라 차등 대우하는 것을 고교등급제라 정의한다면, 이 수치는 분명 의혹을 제기할 충분한 근거가 됐다. ‘일반고에서 아무리 날고 기었다 한들 외고 간판을 꺾지는 못한다’는 세간의 우스갯소리가 딱 맞아 보였다.

과연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고려대가 승소했다

1심에서는 ‘고려대가 법으로 금지한 고교별 학력차를 점수로 반영했으니 피해 학생들에게 각각 위자료 700만 원을 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항소심에서 뒤집어졌다. 2심 재판부는 ‘고려대가 출신 학교에 따라 점수를 조정한 것이 아니라 지원자가 이수한 과목 석차를 같은 고교 내에서 보정한 것일 뿐’이라며 고려대 편을 들어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비교과 평가항목 공개에 대한 재판부의 입장이었다. 고려대는 논란 직후부터 재판 과정까지 비교과 영역의 평가항목과 방법, 배점 등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재판부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사전에 비교과 평가 기준을 공고하지 않은 것을 예측 불가능한 자의적인 선별 방법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며 고려대의 영업 비밀(?)을 끝내 지켜줬다.

이로 인해 외고 합격생들의 합격 비결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들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비교과 능력자였던 건지, 아니면 내신의 실질 반영률이 낮아 수혜를 받았는지는 영영 비밀에 부쳐졌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학생과 선생, 학부모들은 지금까지도 ‘알음알음 통용된다는 입시 기준’을 알고자 카더라 통신에 여전히 귀 기울이고 있다.

 ⓒ 허란

학종 때문에 힘들어 자퇴했어요

9년이 지난 지금,
‘깜깜이 대입’ 다 사라졌을까?
아니다

오히려 더 모호해지고 복잡해졌다. 학생부를 중심으로 대입 지원자의 가능성을 판가름하는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이 크게 늘면서 입시판은 더욱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교과는 교과대로 준비하면서 틈틈이 비교과까지 챙겨야 하지만 비교과 평가 기준이 주관적이고 모호한 것은 9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게다가 학생부에 담기는 비교과 항목 자체가 크게 늘었다. 자율활동(교내 행사 참여 등),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교내 수상 경력, 독서활동에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까지 포함시키면 7가지에 이른다. (세특의 경우 교과 활동의 일종이기는 하나 수행평가 활동 기록이 적혀 비교과로 분류되는 편이다.)

<한겨레>는 이런 학종을 ‘죽음의 헥사곤(육각형) 전형’이라 명명했다. 부모, 사교육, 학교 등의 조력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고소득층 출신 학생들이, 모호하고 복잡한 학종 준비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선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말이다. 실제로 이은샘(19살, 가명)양은 정시문이 좁은 걸 알면서도 이러한 학종의 특성 때문에 고2 겨울방학을 앞두고 자퇴를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학종 때문에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소논문 쓰기 도와줄 교수님 섭외하고, 봉사도 하고, 독후감 대회도 준비하고. 문제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붙는다는 확신도 없는데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자퇴한다고 했을 때 다들 말렸는데 준비할 게 간단한 정시가 나아 보였어요.  – 경기도 부천 소재 일반고를 자퇴한 이은샘(19살, 가명)”

 ⓒ 허란

부자 학교, 비교과 챙기기 유리하다

특목·자사고가
여전히 우위에 선 것도
9년 전과 같다

9년 전에는 뾰족한 이유 없이 특목·자사고(특수 목적고·자율형 사립고)의 명문대 합격률이 높았던 반면, 현재는 그 차이를 벌려 놓는 확실한 이유가 생겼다는 게 그때와 다른 점이다. 돈의 규모가 달랐다. 특목·자사고가 비교과에 투자하는 돈이 일반고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 즉, 부자 학교일수록 비교과 챙기기가 유리한 것이다.

외고에 다니는 제 학생부는 34장이었는데, 일반고 친구는 17장이더라고요. 세특, 동아리, 봉사 등 적혀 있는 양이 달랐어요. 저희 학교에서 진로관련 행사 주최하면 전문직인 학부모들이 와서 자주 강연하고 그랬거든요. – 부산 소재 외고를 졸업한 이태윤(20살, 가명)”

차이는 두 자리 배수를 넘겼다. 이현 <우리교육연구소> 소장이 학교알리미에 올라온 2015년 학교별 예산표를 분석한 결과 서울 시내 일반 공립고의 1인당 창의적 체험활동비는 6만 5천원에 그치는 반면, 국제고는 105만 원(일반고의 16.2배), 영재고와 과학고는 98만원(일반고의 15배), 자사고는 60만원(일반고의 9.2배), 외고는 30만원(일반고의 4.6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을 내자면, 특목·자사고의
1인당 창의적 체험활동비가
일반고의 11배였다

학교 알리미 2015학년도 예산 기준 학교별 자료 재구성. 영재고 + 과학고, 외고, 자사고는 모두 각각의 유형의 학교에서 서울대 합격자 배출순위로 10위까지 학교의 예산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했다. 단, 국제고는 7개 학교의 평균값이다. 일반고 상위 10개교는 일반고 중에서 서울대 합격자 배출 순위 10위까지 학교의 예산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했다. 서울 시내 일반 공립고는 서울시내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10개 공립 고등학교의 예산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했다. 한국 과학 영재학교는 자료가 공개되어 있지 않아 제외했다. ⓒ 이현 <우리교육연구소> 소장

특목고와 자사고의 학비가 대학 등록금에 버금가는 연간 1000만원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의 학생일수록 앞선 출발선 위에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현 소장은 “특목·자사고-일반고 간의 학생부 차이가 흔히 생각하듯이 ‘사교육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기 보다 ‘공교육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학종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재래시장의 길거리에서 파는 옷과 백화점 명품관에서 파는 옷을 내다 놓고 어떤 옷이 더 좋아 보이느냐의 평가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학생부 종합 활동 관련된 공교육비의 차이는 선택적 교육활동(방과후 학교운영, 직업교육, 국제교육, 독서활동 등)에도 나타나요. 자사고 특목고가 일반고 대비 평균 8배를 사용합니다.  – 이현 <우리교육연구소> 소장”

‘학종, 일반고에게 유리하다?’ 통계의 장난

‘학종, 일반고에 유리하다’는
해석도 절반만 맞는 말

지난해 3월, 서울 소재 10개 사립 대학(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여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의 학생부 종합전형 결과를 공개하면서 ‘학생부 위주 전형(학종·학생부 교과전형)은 일반고와 지방에 유리한 전형이다’이라고 했지만 이는 합산에 따른 통계의 눈속임에 불과했다.

실제로 같은 자료를 대학별로 뜯어보면 결과는 달라졌다. 일례로 서강대학교가 그랬다. 2017학년도 서강대학교 학종 최종등록자 중 일반고의 비율은 42.6%였던 반면, 특목고와 자사고의 비율은 각각 32.1%, 22,7%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목·자사고의 합격 비율(54.8%)이 일반고 합격 비율(42.6%)를 넘어선 것이다.

‘서강대가 특목·자사고 출신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게 아니냐’ 교사 증언에서도 나왔다

“지방에서 학종으로 합격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운 곳으로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이 꼽히는데요. 서울대나 카이스트, 포항공대, 고려대 등에는 합격하는 학생부가 왜 유독 저 대학들에는 안먹히는 건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 지방 소도시 현직 사립고등학교 교사 이진성”

2017학년도 서강대학교 학종 최종등록자 중 일반고의 비율은 42.6%였던 반면, 특목고와 자사고의 비율은 각각 32.1%, 22,7%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특목·자사고의 합격 비율(54.8%)이 일반고 합격 비율(42.6%)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 ‘학생부종합전형 3년의 성과와 고교 교육의 변화’ 심포지엄

서울대 또한 통계의 허점을 걷어내면 결과는 서강대와 비슷했다. 지난해 12월 서울대가 2018학년도 수시모집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반고 출신 합격생이 수시 전체 선발 인원의 50.5%를 차지했다’고 밝혔지만 수시 ‘일반전형’만 놓고 보면 결과는 달라졌다. (수시 ‘일반전형’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전형으로 서울대 전체 정원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큰 전형이다.)

서울대 2018학년도 수시 일반전형에서 일반고·자공고(자율형 공립고) 비율은 35.6%였던 반면, 특목·자사고 비율은 62.9%에 달했다 ⓒ 서울대학교 입학처 보도자료

역시 특목·자사고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18학년도 수시 일반전형에서 일반고·자공고(자율형 공립고) 비율은 35.6%였던 반면, 특목·자사고 비율은 62.9%에 달했다. 지난 5년간 이 비율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자공고는 선발 방법이나 학교 유형상 특목고·자사고보다 일반고에 가까우므로 일반고와 함께 분류한다)

서울대 학종에서 일반고가
강세를 보인 것처럼 나온 것은
학종에 ‘기균’과 ‘지균’을
합산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이 많은 ‘기회균형전형(기균)’과 지방 일반고를 배려한 ‘지역균형전형(지균)’은 학종의 전신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기 전부터 존재했다. 특히 ‘지역균형전형’은 내신 반영이 높기 때문에 일반고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전형을 학종에 편입해 계산하면서 마치 학종이 일반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전형처럼 보이도록 했다.

일종의 통계 왜곡입니다

”학종에는 매우 이질적인 여러 전형들이 합쳐져 있는데, 입학처장들은 세부적인 통계는 공개하지 않고 ‘학종 전체’로 뭉뚱그려 발표합니다. 우리나라 전체 고등학교들 가운데 서울대 수시 일반전형에 합격자를 배출한 학교는 1/5에 불과합니다. 이러고도 학종이 공공적 가치에 부합하는 전형인가요? – 교육평론가 이범”

 서울대학교 ⓒ 허란

10명 중 8명, ‘깜깜이’ 학종 신뢰 안 해

2017년 기준 전국의 일반고·자공고 개수는 1,667개(학생수 129만명). 같은 기준 특목·자사고의 개수는 201개(학생수 10만명). 서울대의 발표처럼 학종으로 일반고 학생들이 절반 가량 뽑힌다 해도 일반고- 특목·자사고 간의 학생수 차이를 비교하면 ‘반반씩 공평하게 뽑혔다’고 볼 수 없다. 일반고의 10분의 1수준의 특목·자사고가 대다수를 선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여론조사에서도 학종에 대한 여론의 불신은 확인됐다.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광주 서구갑)이 여론조사전문기관인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월19일부터 21일까지 전국의 만 19세 이상 69세 이하 성인남녀 1022명에게 물어본 결과 10명 중 8명(77.6%)이 ‘학종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합격·불합격 기준과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깜깜이 전형”이라고 답했다.

만약 학생들이 돈과 지역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치열한 경쟁을 뚫어서라도 어떻게든 특목·자사고에 들어가 다른 출발선에 서려고 할 것이다. 학종에서는 학교와 선생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태어난 곳에 따라, 운에 따라 학교와 선생님을 배정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9년 전 고려대 고교등급제 소송에 참여한 원고 학생들과 같을지 모른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기준으로 떨어졌는지’라도 알려달라.

질 때 지더라도 패배 요인을 알아야
깨끗이 승복할 수 있는 법이니까

▼청와대 청원 참여하기

‘학종 바로잡기’ 청와대 청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아래 이미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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