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몇 건 정도 특허 출원을 했을까요? 힌트를 드리면 좀 많이 했어요. – A학원 설명회”

대치동에 위치한 A 입시 컨설팅 학원. 자기소개를 화려하게 마친 학원 원장이 학부모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바로 자신이 출원한 특허 개수를 맞혀 보라는 것.

답은 금방 나왔다. 원장이 직접 썼다는, 학생부 종합전형 관련 책을 보고 학부모가 손을 들었다. 그 책에는 ‘대한민국 특허 1위 발명가’라는 말과 함께 지금껏 400여 건이 넘는 특허를 냈다는 소개가 원장 프로필에 적혀 있었다.

얼마나 반복된 레퍼토리일까. 원장은 문제를 맞힌 학부모에게 준비된 선물을 건넸다.

“서울대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대 배지를 드리겠습니다. 응원의 박수 주세요. – A학원 설명회

특허 출원 1등 발명가가
왜 입시 학원에 있을까?

ⓒ 셜록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이 만든 기현상이다. 학종 비율이 매년 가파르게 늘어나자 돈을 써서라도 자녀의 비교과를 채우려고 하는 학부모, 또 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교육이 늘고 있다.

실제로 A 학원 원장의 주무기 발명은 비교과의 좋은 소재다. 교내 대회를 나가거나, 그 아이디어로 소논문을 작성하거나, 이마저도 안 되면 이를 동아리 활동에 기입할 수 있다.

발명가가 입시의 중심 대치동으로 터를 옮긴 사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입시 광풍이 불러온 돈 냄새가 전문가들마저 유혹하고 있다.’ A 학원의 상담료는 이를 일정 부분 입증하고 있다.

A 학원의 수강료는 90분 수업에 30만 원, 가장 비싼 과목은 900만 원에 달했다

“학원비는 평균 월 50만 원입니다. 거기서 옵션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요. 앱 개발할 때 학생이 주도적으로 하면 추가 비용 안 들고 저희 쪽에서 마무리하고 싶으면 앱 개발 전문가 들어와서 활동하기 때문에 추가 비용 있고요. – A학원 설명회”

도대체 비교과가 무엇이길래?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비교과는 ‘내신 뒤집기 한판승’이 가능한 영역으로 불린다. 꼴등을 서울대 가게 만들지는 못해도, ‘인서울’을 가능하게 하는 게 비교과다.

입시 컨설팅 학원은 ‘갈 만한 대학을 간 학생’을 홍보로 활용하지 않는다. ‘떨어질 게 뻔한 대학을 간 학생’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희망 전공에 따라 지도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동아리, 봉사, 진로, 독서 등 비교과 전방위로 사교육은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내신은 레드오션이고, 비교과는 블루오션입니다. 3,4월에 발명대회 소논문 대회 있습니다. 그때 준비하면 늦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하세요. – A학원 설명회”

대치동 학원가 ⓒ 허란

돈이면 ‘출판’ ‘앱 개발’ 살 수 있다

보통 입시 컨설팅 회사가 내세우는 제1의 법칙은 ‘전공 적합성’이다. 학생이 희망하는 학과에 맞춰 학원은 그에 걸맞은 비교과를 추천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학교생활기록부를 돈 받고 설계를 해주는 것이다.

남들이 없는 스펙을, 교수들이 좋아할 만한 스펙을 돈으로 만들어준다. A 학원 강사들의 배경이 다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특기자전형 강사는 전직 IT 개발자가, 로봇 코딩 강사는 서울대 박사 출신이 맡았다. 이 중에는 20대의 대학원생도 여럿 확인됐다.

흔하게 준비할 수 있는 항목은 소논문 쓰기, 사업 계획서 쓰기, 애플리케이션 만들기다. 관련 교내 대회가 열리기 전에 학생들은 학원에서 강사 도움을 받아 결과물을 미리 만들어 놓는다.

A 학원은 모범 사례로 사범대 지망 학생 사례를 내놓았다. 사범대 진학을 원하는 그 학생은 A 학원에서 단어 맞추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지역 아동센터에서 이를 활용했다고 A 학원은 자랑했다. 교육에 대한 적극성과 열정을 보여주는 스토리를 담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학생 혼자 한다면 3~4배(시간이) 걸린다고 보시면 되고요. 저희는 처음부터 방향성을 잡아서 쓸데없이 시간 버리지 않고 대회 위주로 준비 시켜요.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거 있죠. – A학원 설명회”

저희는 주제 선정부터 컨설팅,
컴퓨터로 실시간 답변까지 해줘요

출판도 해준다. A 학원은 연도 별로 유행하는 학생부 트렌드가 변한다는 말과 함께 올해에는 출판이 뜰 거라고 말했다. 2016년에는 특허와 사업 계획서가, 2017년에는 애플리케이션이 대세였다면 2018년에는 출판이 새로운 대세가 된다는 것이다.

원장은 출판 기획부터 검수까지 강사의 손을 거친다고 말하면서 현재 수강생 중 일부가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 내용은 학생부 기재가 목적이다. 강사진은 학생의 활동이 학생부에 기재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한다고 말했다.

“2018년 키워드 출판입니다. 공식적으로 등록이 안 돼도 자체 출판이 돼요. 인쇄 맡겨서 배부하세요. 저희가 출판 기획 다 합니다. – A학원 설명회”

어머님들. 출판, 몇 십만 원 안 해요
이 돈으로 내신이 달라집니다

대치동 학원가 ⓒ 허란

변리사가 직접 ‘교내 발명대회’ 대필

변리사가 학생의 발명 제안서를 대필해 주는 학원도 있다. 경기도 성남의 B 학원은 현직 변리사를 대동해 돈을 받고 학생의 교내 발명대회 아이디어 제안문을 대신 써줬다.

고2 학부모 최정문 씨(가명, 46살)는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말을 믿고 B 학원에 자녀를 맡겼지만 창의력 신장은커녕 제대로 된 수업 한 번 하지 않고 결과물을 받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자녀가 작성한 건 단 한 글자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리사 혼자 작성했다.

100~150만 원을 받고
변리사가 쓴 완성본을
학부모에게 내놓았다

교내 동아리 계획표도 대신 써줬다. B 학원 원장은 수강생들에게 똑같은 내용의 교내 자율동아리 계획표를 주고 동아리 이름을 다르게 써서 각자의 학교에 제출하라고 했다. 최 씨는 원장에게 “그래도 되느냐”라고 물었지만 “학교가 달라 상관없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명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 작성해 주니 결과는 걱정말라”라고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

이렇게 작성된 동아리 활동 계획서를 보면 내용은 꽉 채워져 있지만 인적 사항과 구성원 이름은 비워져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인적사항을 적고, 친구들의 이름을 적어 학교에 제출했다. 비교과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동아리 활동은 이렇듯 손쉽게 조작됐다.

B 학원에서 돈을 받고 대리해 작성한 학생의 동아리 활동 계획서 ⓒ 셜록

원장의 말대로 효과는 있었다. 수강생 중 한 명이 교내 최우수상 수상을 받고 학교 대표로 도 대회 출전을 했다. 소수 정예반 학생 4명에게 계획서 5개가 무작위로 뿌려졌지만 딱 한 명만 빛을 봤다.

최 씨는 차마 변리사가 작성한 결과물을 그대로 학교에 제출할 수 없어서 데이터 일부를 지웠었다. 자신의 자녀가 “이거 다 사기다”란 말을 한 것에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B 학원은 나중에 무등록 학원으로 밝혀져 문을 닫았지만 현재 이름을 바꿔 대치동에서 영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학원의 꼬드김에 넘어가 돈 날리고 제 아이에게 세상 더러운 짓을 먼저 배우게 했다는 분노와 자책 때문에 힘듭니다. 어린 학생 인생을 가지고 전문직 사람들까지 나서서 사기와 불법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네요. – 고2 학부모 최정문 씨 (가명, 46살)”

“‘학생 티’ 나도록 일부러 테이프 붙여요”

학생부 종합전형 컨설팅의 핵심은 오히려 전문성을 지우는 데 있었다.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면서 결과물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것이 학원의 능력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A 학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A 학원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서 “학교에서 사교육을 안 좋아하는 경우가 있어 학생이 구현할 수 있는 부분까지 다룬다”면서 “그런 게 결과가 좋다”라고 말했다.

“학생 티가 나야 해요.
테이프 좀 붙이고.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게”

지난 4년간 1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학생부를 컨설팅해온 김진석(가명, 29살) 씨도 같은 말을 했다. 교사나 주변 친구들, 특히 교수들이 의심할 수 없게 어설프게 결과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김 씨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은 설문조사였다. 설문지를 만들어 주변에 돌리고 일부러 표본을 크게 늘리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 수준의 논문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학생이 직접 했다’는 인상을 주변에 심어주기 좋은 것도 이유가 됐다.

먹힐 것 같은 주제를 미리 선정해 거기에 맞춰서 학생에게 조언을 해요. 제가 가르친 학생 중 효과 못 본 학생은 없다고 보시면 돼요. 교수가 어떻게 다 확인할 수 있겠어요. – 전직 학생부 컨설팅 과외 강사 김진석 씨(가명, 29살)”

김 씨는 소논문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비교과 전방위를 주물렀다고 고백했다. 독후감 대필은 물론이고, 동아리 활동과 대회 참가도 도왔다고 말했다. 영자신문 만들기 활동을 하는 학생을 위해 우리말로 써 둔 기사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대신했고, 영어 말하기 대회의 대본을 써주기도 했다.

면접을 앞뒀을 때는 면접관 성향까지 분석했다. 지원 학과 교수들의 논문 제목을 보고, 교수들의 관심 분야를 미리 파악해 좋아할 만한 답을 준비하는 것이다. 교사 추천서를 김 씨가 대신 써주는 일도 왕왕 있었다.

90분당 8만 원에 달하는 과외비로
대학 등급을 올리는 기회를 산 격이다

전직 학생부 컨설팅 과외 강사 김진석 씨(가명, 29살)가 만든 학습 자료. 학생이 희망하는 학교의 학과 교수진들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적혀있다. ⓒ 셜록 

“내신 대비에만 사교육비 100만 원”

내신 학원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점도 학종이 만든 풍경 중 하나다. 학종 지원을 위해서는 내신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 내 경쟁이 이전보다 훨씬 치열해졌다. 이미 학원에서 학교별로 내신반을 꾸리는 게 당연시된 지 오래다. 학교별로 자주 출제되는 문제 유형과 담당 선생님의 출제 성향을 분석한다.

서울 대치동 기준 내신 대비 학원비는 보통 월 4회 기준 25만 원에서 30만 원인데, 한 과목이어도 분야가 세분화된 수학 같은 경우에는 여러 개를 듣기 때문에 국영수만 준비한다해도 그 비용은 100만 원을 쉽게 호가한다.

분당 기준으로 제 주변 학부모들 보통 내신에만 월 200만 원 쏟아요. 고3 올라가면 수능 준비해야 하니까 400만 원까지 쓰기도 하고요. 요즘 내신 학원에서는 수행평가도 책임져 줍니다. 학교 숙제를 도와주는 거죠. – 고3 학부모 박상희 씨 (가명, 45살)”

“수능 준비가 이제는 오히려 돈 덜 들어요. 1년 온라인 수강권이 40~50만 원에 불과하고, EBS 강의도 있으니까요. 비교과는 정보도 돈 주고 사야하는데, 그런 점에서 수능 준비가 차라리 싸요. -고1 최동빈 학생 (가명, 17살)”

통계에서도 사교육비 증가는 확인된다. 학종이 늘어난 취지 중 하나가 사교육비 절감이지만 학생부 종합전형이 늘어난 이후 꾸준히 사교육비는 늘어났다.

통계청이 지난해 3월에 발표한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교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 26만2000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전신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2007년에 학생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가 19만7000원었던 것과 비교하면 물가 인상분을 고려해도 이 전에 비해 사교육비가 줄지 않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입학사정관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사교육은 그 모습만 조금씩 달라질 뿐 오히려 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 수시 전문 입시 학원의 홍보 전단지 ⓒ 셜록

학생부 종합전형은 ‘금수저 전형’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모르는 바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알고 지껄이지? 엉? – A학원 관계자”

잠입 취재차 방문했던 A 컨설팅 학원은 취재 사실이 밝혀지자 기자에게 반말로 강하게 엄포를 놓았다. “전근대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급박하게 바뀌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라며 “학교 폭력도 점수로 줄세우기한 결과”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A 학원 원장이 설명회에서 자랑용으로 내보인 언론 보도는 절반만 맞다. 해당 기사는 학생부 전형의 어두운 이면을 꼬집는 내용이었는데 내용은 거두절미고 ‘자신이 방송사에도 소개됐다’는 점만 학부모들에게 선전했다. 눈 가리고 아웅인 격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학생부 컨설팅 사교육이 얼마만큼 관련이 있을까? 분명한 것은 돈 없는 학생들은 이런 기회조차 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취임식 자리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축소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하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공평한 학습사회를 구현해 나가겠다”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학생부 종합전형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파워게임’이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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