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뒤쳐진 애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애들은 수업시간에 공부하기 싫어해요.”

이영해 인천생활예술고등학교 교장은 보건실(양호실) 얘기를 하던 도중 학생들을 ‘뒤쳐진 애들’이라고 표현했다. 지난달 9일의 일이다. “왜 학생들이 보건실 침대를 이용할 수 없는지” 물어보자 교장은 “선생님 허락 없이 보건실 침대에 눕는 게 맞는 판단이냐”고 되물었다.

교장은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수업을 기피한다’고 생각했다. ‘뒤쳐진’이라는 수식어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다. “학생들에게 보건실 문을 개방하면, 너나할 것 없이 보건실에 가서 누워 있지 않겠냐”며 “지금의 규칙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식으로 답했다.

당시 주제는 보건실 규칙이었다. 인천생활예술고만의 보건실 규칙에 대해 물으면 학교 측이 답하는 자리였다. 인천생활예술고에서는 학생이 수업 중에 아파도 보건실에 갈 수 없다. 쉬는 시간에만 이용할 수 있다. 선생님 허락 없이 보건실 침대에 눕는 것도 금지돼 있다.

참고로 이 학교에는 간호과가 있기 때문에 간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여럿 있다. 이 교사들은 보건 교사 자격증이 있어 흔히 ‘양호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일을 할 수 있지만, 이 학교에서는 보건 교사로 일하는 사람은 없다. 간호를 가르치는 교사뿐이다.

인천생활예술고등학교 ⓒ주용성

학교 보건실 제도에 대해 이영해 교장과 최아무개 교감, 백아무개 교무부장은 문제 없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처럼 교사가 보건실에 상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간호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보건실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이 보건실에 상주하고 계세요. 아이들의 수업권이 침해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노는 시간을 활용해서 보건실에 가라고 해요.” – 이영해 교장.

과연 학교 측 주장은 사실일까. 보건실에는 정말 문제가 없을까.

학교 측 설명과 다르게 학생들은 보건실에 불만이 많았다. <셜록>이 제보를 받은 결과 많은 재학생이 보건실 문제를 지적했다. ‘보건증’ 없이 보건실을 가면 건강 상태조차 확인해 주지 않는 등 여러 불만이 쏟아졌다.

학생들은 담임교사에게 ‘보건증’ 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일단, 교사가 늘 교무실에 있는 건 아니다. 재학생 A 씨는 “점심시간 내내 기다렸지만 선생님이 오지 않아서 아픈 걸 참고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학생이 아픈데, 선생님께서는 수업이 있다고 제게 2교시 후에 오라고 하셨어요. 세상에 쉬는 시간과 점심 때만 이용할 수 있는 보건실이 어디 있습니까? 아픈 학생들은 보건과 선생님이 수업이 있으시면 교실에서 엎드려 참곤 합니다.“ – 재학생 A 씨.

학교 측은 “보건 선생님이 보건실에 상주한다”고 했지만 여기에 대한 학생들의 답은 달랐다. “간호 과목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보건실을 지키기 때문에 공백이 없다”는 이영해 교장 말에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보건실에 아무도 없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보건실이 보건실이 아니에요. 간호과 선생님이 보건실에서 치료해주고 계세요. 다른 학교는 양호 선생님이 계속 계시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상황이 이러니까 간호과 선생님도 학생들도 이래저래 불만이 많아요.” – 재학생 B 씨.

인천생활예술고 호텔조리과 실습 모습

보건실에 있는 침대, 조만간 다시 간호실습실로

학교 측이 설명이 거짓이라는 것은 ‘보건실 관련 공지사항’에서도 확인된다.

교사들에게만 공지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서에는 “보건실에 상주하는 보건교사가 없다”고 분명히 나와 있다. ‘왜 그런지’ 설명도 나온다. “간호과 교사도 수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수업 중에 학생이 치료를 원하면 처치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인천생활예술고 보건실 공지사항
인천생활예술고 보건실 공지사항

화상이나 베인 상처는 실습 선생이 알아서 응급처치 하라고 적혀 있다. “실습할 때 생긴 상처에 대한 응급처치는 가능한 실습 담당 선생님이 응급처리 하라”고 안내한다. 미용가위에 학생이 손이 베면 미용과 교사가, 조리기구에 손이 데이면 호텔조리과 교사가 치료하라는 뜻이다.

침대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다. “보건실에 있는 침대 2대는 조만간 다시 간호실습실로 돌려놓을 예정”이라면서 보건실에 있는 “침대는 이용하지 말라”고 적어 놨다. 이 공지글에 대해 이영해 교장은 “미용교사가 관여한 일이라 자세히 모른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간호 선생님이 7명~8명 정도 돼요. 그래서 수업 없는 선생님이 보건실에 남아 있죠. 하지만 보통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보건실로 안 내려오기 때문에 문제 없었어요. 크게 아프면 같이 병원 가고요. 여기는 병원은 아니니까.” – 이영해 교장.

학력인정학교인 인천생활예술고는 보건실을 필수로 갖출 필요가 없다. <학교보건법> 제3조에 따르면 “‘학교’의 설립자, 경영자는 보건실을 설치하고 보건에 필요한 시설과 기구를 갖추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여기 나오는 ‘학교’에 인천생활예술고는 포함이 안 된다.

<학교보건법>에서 말하는 ‘학교’란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에 따른 학교를 말한다. 인천생활예술고는 국공립도 사립학교도 아닌 학교형태의 평생교육시설이기 때문에 <학교보건법>을 피해 간다. 법으로만 봤을 때는 보건실이 없어도 된다. 따라서, 보건교사도 자리를 지킬 이유도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입학한다. 100% 지원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학력인정학교의 경우 홍보에 의존해 정원을 모집한다. 따라서 홍보 때에는 장점만을 부각해서 학생들을 최대한 끌어 모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낙후한 학교 시설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하지 않는다.

인천생활예술고는 특성화 형태의 학교여서 학과가 많다. 미용예술과, 호텔조리과, 간호과, 노래연기과 등이 있다. 미용예술과와 호텔조리과의 경우에는 도구를 자주 다루는 곳이다. 가위나 조리도구를 늘 끼고 다닌다. 일반고등학교에 비해 다치는 빈도수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이런 특수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칼을 다루는 호텔조리과, 가위를 다루는 미용과가 있는 학교인데 너무하죠.” – 재학생 A 씨.

인천생활예술고 미용예술과 실습 모습

학력인정학교의 폐해.. 보건실 필수 아니다

인천생활예술고의 보건실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올해 3월에 생겼다. 그 전까지 사정은 더욱 열악했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보건실 없는 학교를 고발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온 뒤에 학교가 부랴부랴 보건실을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보건실이 없을 때는 교무실 한 구석에서 학생들을 응급처치했다. 교무실에 마련된 처치용 의자에 아픈 학생을 앉히고, 보건 선생님이 수업 마치고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밴드를 붙이는 등의 간단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수업이 없는 선생님이 대신 맡아서 했다.

그러다 보니 위급한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바로 병원으로 이송할 상황인데도 간호 선생님이 상황판단을 즉각 하지 못해서, 응급 학생을 그대로 방치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교무실에 마련된 구급상자로 다치거나 아픈 학생들을 비전문적으로 대하는 일이 잦았다.

호텔조리과 학생이 다쳐서 피를 철철 흘리는데 교무실에서 간호 선생님이 붕대를 감고 조치를 끝냈어요. 옆에 있던 제가 지열되라고 팔을 높이 들어주고요. 피가 붕대를 뚫고 나오니까, 제가 휴지로 피를 닦아주는데 ‘이래도 되나’ 싶더라고요. 학생에게 미안했죠.” – 현직 교사 C 씨.

어떤 학생이 농구골대에 부딪혀서 양팔이 골절된 것 같은데 최아무개 교감이 병원에 안 보내는 거예요. 그 때 쇼크가 오려고 하는 거예요. 정말 위험했어요. 계속 구토를 해서 선생님들이 닦아주고 그랬어요. 간호 선생님이 뒤늦게 수업 마치고 와서 ‘이건 병원 보내야한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보내더라고요.” – 전직 교사 D 씨.

인천생활예술고 수업 모습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호과 선생님들이 이런 사정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간호 수업과 더불어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살펴야하는 보건 교사 역할을 동시에 하니 부담을 느끼고 퇴사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직 E 교사는 밝혔다.

“기존 간호과 선생님들이 모두 그만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악한 의료장비나 비품들을 개선해달라고 건의를 했음에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겁니다. 응급처치를 제대로 못해 마음의 가책도 느꼈겠죠.” – 전직 교사 E 씨

인천생활예술고와 같은 형태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은 전국에 약 1만1000여명. 이들은 학교에서 좋은 보건 혜택을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학력인정학교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 기사는 교사 관련 이야기다. 학력인정학교가 교사들을 어떻게 쉽게 해고할 수 있는지, 그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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