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9개월 넘게 인천공항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앙골라 국적의 루렌도 가족의 난민 심사 관련 재판에 허위 증거를 활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루렌도 가족의 난민 심사를 막기 위한 적극적 조작인지, 단순 실수인지 사실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문제의 증거는 인천공항 출입국 입국인청(이하 출입국)의 요청으로 앙골라 주재 한국대사관이 작성한 문서다. 이 문서에는 루렌도 가족의 현지 생활이 난민을 신청할 만큼 위급했는지 등을 조사한 내용이 담겨있다.

출입국 쪽은 한국대사관이 작성한 문서를, 루렌도 가족이 청구한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을 맡은 인천지방법원 재판부에 올해 봄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증거 등을 바탕으로 루렌도에게 패소 판정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9월 27일 1심 결과를 뒤집어 루렌도 가족의 손을 들어주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2심 재판부는 한국대사관이 작성해 1심 법원에 제출한 문서 내용으로는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루렌도 가족의 좌절과 희망, 법원에서 일어난 반전의 내용은 이렇다.

ⓒ 주용성

주 앙골라 한국 대사관 조사, 루렌도 1심 패소 판결에 영향

루렌도의 부인 바체테는 지난 4월 4일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 1심 제3차 공판이 열린 인천지방법원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경찰에게 강간을 당한 2018년 11월 25일부터 앙골라를 탈출할 때까지 집에 방문한 적 없습니다.”

자신은 강간 피해를 겪고, 남편 루렌도는 콩고 출신이란 이유로 앙골라에서 불법구금을 당한 이후 두려움으로 집에 갈 수 없었다는 바체테의 주장. 그는 대한민국으로 이주를 결정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루렌도 가족에게는 난민심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출입국 측은 ‘2018년 11월 25일’ 날짜에 주목했다.

루렌도 부부가 앙골라 집을 최초로 내놓은 시기가 11월 25일 이전으로 확인된다면, 루렌도 가족이 거짓말로 난민을 신청했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출입국 측은 곧장 주 앙골라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루렌도 가족 주장대로 11월 25일 이후에 계속 집을 비웠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사실 확인에 나섰다.

대사관 직원들은 루렌도 가족이 살던 집 주인 A 씨를 만났다. 출입국 측은 대사관 측의 조사 결과 문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 앙골라 한국 대사관이 조사보고서 주요 내용>

– 부인 바체테가 구직 등의 이유로 대한민국으로의 이주를 희망한다고 임대인(집주인) 부부에게 여러 차례 언급했다.

– 2018년 11월 25일 이후로 임차 주택에서 거주하지 않았다는 원고들(루렌도 가족)의 위 주장과 달리 원고들이 2018년 12월 27일까지 임차 주택에서 거주하였다고 임대인 측이 진술했다.

주 앙골라 한국 대사관의 조사 결과는 재판부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루렌도는 “2018년 11월 25일 이후 박해를 피해 집을 비우고 기독교 단체가 마련해준 임시 거처에 머물렀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대사관의 조사대로 루렌도 부부가 구직 등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에 온 것이라면, 출입국 당국의 주장대로 루렌도 가족은 난민 자격을 획득하기 어렵다.

1심 재판부는 대사관이 제출한 이 자료를 토대로 “루렌도 부부가 콩고 출신의 앙골라 국적자라는 이유로 불법구금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는 등의 박해를 받았다는 주장을 쉽사리 믿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한국대사관의 조사 결과가 1심 판결의 주요 근거가 됐다.

난민과함께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4월 4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루렌도 가족에게 난민심사 기회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주용성

조사 대상자였던 A 그런 말 한 적 없다

과연 대사관의 조사는 믿을만한가.

루렌도 가족의 대리인단은 1심 패소 이후 즉각 항소했다. 그 후 대리인단은 2심 준비과정에서 주 앙골라 한국대사관이 접촉한 집주인 A 씨에게 직접 연락했다. 대사관의 보고서와 실제 내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출입국 당국이 제출한 보고서에 나온 내용을 재차 물었지만, A 씨는 보고서 내용 상당 부분을 부인했다. 그는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대사관 직원에게 ‘루렌도씨 가족이 2018년도 12월 27일까지 집에서 계속 거주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적이 있나요?”

“말한 적 없어요. 그날 루렌도 가족이 집과 방 열쇠를 반납하러 온 것만 알았어요.”

A 씨는 한국대사관의 조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한국대사관 사람들은 루렌도 가족의 출국 준비 관련 문제는 물어보지 않았다“면서 대사관 직원이 자신에게 묻지 않은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대사관 직원들에게 루렌도씨가 평소부터 한국으로 가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루렌도 가족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대사관 직원들도 그 질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루렌도)가 집 열쇠를 놓고 간 날만 알고 있었죠. 출국 예정이었던 것은 몰랐죠. 준비 관련 해서는 하나도 몰라요.”

주 앙골라 한국대사관의 증거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생기자 2심 재판부는 판결을 뒤집었다.

2심을 맡았던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9월 27일 “임대인 측이 (주 앙골라 대사관과 대리인단에) 엇갈린 진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루렌도 부부가 사실에 반하는 명백한 허위 진술을 한 것이라고 볼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난민면담 과정에서 루렌도 가족이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발언을 했더라도 진실의 신빙성 여부는 난민인정 심사에 회부된 이후 과정에서 신중하게 검토하여야 할 사항이다” 밝혔다.

2심 재판부는 원심 취소 판결을 하고, 루렌도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 주용성

출입국 당국, ‘대사관 조사사실 입증 거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간첩 조작 사건’ 당시, 유 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유 씨의 출입국 기록 등을 허위로 만들어 제출한 국정원 간부들은 지난 2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공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용을 훼손시키고 정당한 형사사법 절차를 방해해 국정원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유우성 사건’을 재조사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2월, 검찰이 사실상 증거 조작을 방치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과거사위는 국정원의 증거 조작으로 간첩으로 몰려 피해를 입은 유우성 씨와 동생 유가려 씨에게 문무일 검찰총장이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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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앙골라 한국대사관이 제출한 증거가 허위라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할까. 사실과 다른 보고서는 실수일까, 의도한 조작일까.

출입국 당국은 앙골라 한국 대사관이 제출한 보고서와 실제 대화 내용이 일치하는지에 대해 입증하지 않고 있다. 녹음파일이 있는지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출입국 측은 증거 입증과 관련이 없는 정보만 공개했다. 주 앙골라 한국대사관은 직원 중 누가, 그리고 언제 A씨를 만나러 갔는지만 밝혔다. ‘적극적인 조작인지, 단순 실수인지’를 밝히는데 있어 출입국 당국은 능동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사실 출입국 당국은 난민 인정심사 과정 자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1심 재판부는 ‘루렌도 가족의 난민인정심사 회부 여부에 관한 심사보고서’의 제출을 명령했지만, 출입국은 “난민심사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제출을 거부한 바 있다. 심사 기준도 제출하지 않았다.

이번 항소심 결정으로 인천공항에서 9개월 넘게 노숙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루렌도 가족은 적어도 2주 안에 인천공항에서 나올 확률이 크다고 전망됐다.

루렌도 가족의 대리인 이상현 변호사는 2심 판결 직후 ”전례에 비추어보면 상대방이 상고를 해서 판결이 확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입국은 시켜줄 것으로 보인다“면서 “1주일 이내에 입국을 시켜줄 가능성이 크고, 늦어도 2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출입국 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루렌도 가족은 2심에서 이겼음에도, 승소 판결이 난 지난 27일부터 열흘 넘게 인천공항에서 노숙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정식 난민심사 회부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판결이 확정되어야 불회부 결정이 취소되기 때문에, 출입국 당국이 상고를 한다면 대법원 판결 때까지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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