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채널A 이명선 단독’이라고 쳐봤다. 단독 기사는 19개뿐이다. ‘단독 남발하는 종편 바닥에서 3년간 고작 19개의 단독을 썼다는 것은, 밥값 노릇을 했다는 뜻일지 모른다‘유대균, 소심한 목소리로 뼈 없는 치킨 주문’ 기사도 단독이 되는 마당에, 나는 얼마나 게으른(?) 기자였나. 오해하지는 말자. 우스갯소리다.

19개의 단독 기사 중 내가 직접 발굴한 단독은 몇 개 없다. 누군가가 올린 발제문을 참고해 기사만 썼거나, 다른 기자의 기사를 단순히 ‘대리 읽기’한 것들이 과반수였다. 사실 나는 단독에 욕심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어쭙잖은 단독 기사로 비웃음을 사고 싶지 않았다.

지금 와서 고백하건대, 내게는 단독을 피하기 위한 나만의 특단의 조치가 있었다. 바로 걸러서 보고하기였다. 나는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난 팩트 중, 단독 후보군에 오를 것 같은 사실은 애초에 보고하지 않았다.

단독 후보군에
오를 것 같은 사실은
애초에 보고하지 않았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데스크를 못 믿는 취재기자라니. 그것도 단독을 붙일까 무서워서 자체 검열을 해 보고하다니. 씁쓸한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유대균, 뼈 없는 치킨 주문’ 기사는 같은 팀 후배 기자가 썼다. 물론 단독 타이틀을 박은 것은 후배가 아니다. 그것은 데스크의 작품이었다. 후배는 메신저 단체 채팅창으로 보고를 올렸을 뿐인데, 데스크는 이를 단독 기사로 격상시켰다. 과욕이었다.

설령 취재 기자가 단독이라고 보고했어도, 이 기사는 그만한 가치가 없었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수많은 원인 중 청해진 해운의 비리는 그 일부에 불과했고, 더욱이 유대균이 받고 있던 횡령∙배임 혐의는 그 일부 중에서도 또 일부였다. 그러니 유대균이 뼈 없는 치킨을 주문했다고 한들 무슨 대수란 말인가? 뉴스에서 다룬다고 해도 취재 후일담 거리 정도로 충분했다.

왜 데스크는 이 기사를  단독으로 내보냈을까?

이는 종편의 남다른 단독 기준 때문이다. 타사가 보도하지 않았으면, 회사는 인심 후하게(?) 단독을 달아줬다. 사안의 경중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독 마크가 반짝 드러나는 찰나,
시청자의 이목을 끌면 그만이다

일종의 낚시질이다. 같은 울타리 안에서 비슷비슷한 기사들만으로는 경쟁이 안 되니, 단독이라도 달아서 순간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려 했다.

단독 유무를 판별하는 것은 간단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서 나오지 않으면 단독이 됐다.

“네가 메신저창에 올린 보고, 단독이야? 검색하면 나와?”

포털사이트에서 나오는 없습니다.”

“그럼 단독 달고 가자.”

부끄러움은 담당 기자와
시청자의 몫이었다

황당한 단독 기사가 나간 다음 날이면 나는 출입처로 출근하기가 꺼려졌다. 타사 동료 기자들이 속으로 날 비웃을 것만 같았다. 때로는 나의 단독 기사에 달린 비판 댓글을 보면서 나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웃기다’와 ‘슬프다’ 합쳐진 말 ‘웃프다’가 그때의 내 심경이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정을 나누는 동료들끼리 술자리판이 벌어지면, 함량 미달의 단독 기사 얘기는 늘 우리들의 안줏거리가 됐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단독이란 말인가’ ‘시청률에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인가’ 푸념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유대균, 뼈 없는 치킨 주문’ 기사의 후폭풍은 길었다.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를 수사했던 인천지검 특별 수사팀 브리핑에서의 질의응답 영향이 컸다. 어떤 기자가 팩트 체크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검찰 측에 ‘유대균, 뼈 없는 치킨 주문’과 관련해 질문을 던졌다.

“유대균이 치킨 시켜 먹은 게 맞습니까?”

“(당황하며)아니오. 유대균 씨는 치킨 좋아한다고 합니다. 해산물 좋아한답니다.”

“(대중 웃음)하하하.”

답변과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회사 동료 기자들은 되려 입을 꾹 다물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떻게든 주변 기자들의 시선을 피하려 애썼다. 내색은 안 했어도 후배 기자는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시작한 기자 생활인데, 얼마나 자괴감이 컸을까.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값싼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제발 이대로 이 기사가 수면에서 사라지기를 원했다. 기대는 깨졌다.  바람과 달리 사그라지는 논란에 다른 종편사가 다시 불을 지폈다. 이 질의응답을 리포트로 만든 것이다. 왜 이를 보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회사 보도가 틀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아니면 그냥 재미있어서?

눈에는 누가 시청자의 낯을 부끄럽게 만드나 경쟁하는 꼴로 보였다.

“대균 씨는 검찰 수사에서 ‘치킨 등 배달음식 시켜 먹은 적이 없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덧붙이자면 본인은 닭을 싫어하고, 해산물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 TV조선의 보도 내용 인용

동성애 성향 고백 단독? 가십성 기사 범람

내게도 창피한 단독의 역사는 있다. 2014년 6월의 일이다.

당시 김형식 서울시 의원이 친구를 사주해 60 재력가를 청부 살인한 혐의로 구속됐다살해의 목적은 금품 수수 사실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김 전 의원은 재력가 송 모 씨로부터 부동산 용도 변경을 도와주는 대가로 5억 원을 받았다. 하지만 변경 계획은 무산됐고, 송 씨가 돈 받은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나서자 김 전 의원은 친구를 시켜 송 씨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나는 사건의 담당 기자였다. 공직자의 청부 살인이라는 믿기 힘든 사건이지만, 내가 파고든 점은 이와 결이 달랐다. 김 전 의원에게 로비를 한 재력가와 기업이, 전방위로 정치권에 로비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주목했다. 나는 김 전 의원과 인연이 있는 국회의원들을 취재하면서, 중앙선관위 정치후원금 명단을 검토했다.

문제의 기사가 터진 그 날도 김형식 관련 보도는 넘쳐났다. 살해를 지시받은 친구의 모습이 찍힌 CCTV가 공개됐고, 김 전 의원이 재력가에게 받은 돈으로 아파트를 구매했다는 의혹 보도가 단독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점심시간 이후, 나는 기사 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팀장이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이 발제 좀 볼래? 급하게 올린 건데 제목은 김형식의 이중생활이야. 네가 좀 맡아 써줘.”

선배가 내민 발제문에는 김 전 의원의 과거 발언이 정리되어 있었다. 보도할 만한 내용이었다. 나 또한 김 전 의원의 본의회 발언을 들여다보면서, 또 다른 부정 청탁 의혹이 있는지 확인하던 차였다.

다만 선배가 발제문에는 맥락 없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의원의 동성애적 성향 발언이 그것이었다.

선배, 초등학교 동성 친구랑 성애를 나눴다는 발언은 사건과도 관계없고, 정치적 발언도 아닌데 넣어야 할까요?”

“이게 가장 특이하지 않니? 없는 말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본인이 한 말인데.”

그래도 너무 가십성인데요..”

“최대한 군더더기 없이 써. 사실이기는 하잖아. 김형식이 했던 발언 많이 넣어주고.”

멍하게 발제문을 들여다보면서 머리로는 바쁘게 딴생각을 했다.

선배는 기사를 쓰자고 하는 걸까. 혹시 본인도 원치 않은데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어쩔 없이 시키는 걸까? 그것이 민망해서 나를 회의실까지 불러낸 것인가?’

머리가 복잡했다. 평소 같았으면 ‘못 쓰겠다’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쓰기 싫다고 하면, 분명 다른 기자에게 넘어갈 것이 뻔했다. 후배가 맡을 가능성이 컸다김형식 취재는 어찌 됐든 내 담당이었고, 누군가 써야 한다면 불편해도 내가 쓰는 것이 맞아 보였다.

결국 나는 기레기가 되기를 자처했다

이 짐을 다른 사람에게 대신 지우게 할 수는 없었다.

셀프 자랑에 지나지 않은단독

지난 2013년 1월 한 프로그래머가 만든 기발한 사이트 하나가 떠오른다. 충격‘ ‘경악 클릭을 유도하는 단어를 기사 제목에 가장 많이 넣은 언론사를 통계를 내는 사이트였다. ‘낚시성 기사’를 꼬집기 위함이었다. 제작자의 센스는 대단했다. ‘충격’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쓴 회사에 순위를 매겨, 최근 가장 ‘충격’받은 언론사 1~3위를 가렸다.

2013년 1월 개설된 ‘충격고로케’ 사이트는 ‘충격, 경악, 헉, 이럴 수가’ 등 낚시 제목을 많이 쓰는 언론사들의 순위를 매겨 공개했다. ⓒ 충격고로케 사이트 캡처 화면

안타깝게 지금은 이 사이트가 문을 닫았다. 만약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면, 아마단독이라는 단어가 낚시성 키워드로 추가되지 않았을까?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단독을 너무 많이 해, 최근 가장 많이 홀로서기를 한 언론사는 어디일까’ 질문이 있었다면 말이다. 추측하건대 종편의 상위권 진입은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적어도 방송사 카테고리에서만큼은 상위권 고정이라 짐작한다.

과연 조금 빨리 보도한다고 단독 기사가 될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종편계에서는 1보(첫 번째로 보도하는 것을 지칭)와 속보, 단독의 경계가 무너졌다. 먼저 내보내면 무조건 단독이 됐다. 일례로 다음날 출입처를 통해 공개적으로 뿌려질 내용이더라도 먼저 쓰면 단독 보도가 됐다. 심지어 수만 명이 읽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도 마찬가지였다. 1보라는 말 대신 단독을 붙여 내보냈다.

과연 타사의 단독 기사에, 한 줄만 새롭게 추가해 보도한들 단독 기사가 될 수 있을까?

오래전 내보낸 단독 기사여도 상관없었다. 이미 알려진 얘기더라도, 누군가의 인터뷰가 추가되거나 작은 팩트가 발견되면 종편에서는 단독으로 포장돼 보도됐다. 우리는 이것을 ‘한 줄 단독’이라고 불렀다. 내용의 줄기는 바뀐 것이 없었다. 어떤 것이 단독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종편에는 아직도 무엇이 단독인지 모를 기사들이 생산된다.

‘남발하는 단독’은 이제 종편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에서도 시시콜콜한 내용에 단독을 붙이는 사례가 많아졌다. ⓒ 연합뉴스 캡처 화면

단독, 특종, 특보라는 단어가
이토록 신뢰를 잃은 적이 있었던가

종편 채널에서는 지금도 시뻘건 자막 위로 정신없이 기사가 선전되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눈길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거부감만 커진다. 과연 종편의셀프 자랑 언론사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있을까?

나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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