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순천시보건소로 찾았다. A 씨는 순천 성가롤로병원 응급구조사였다. 환자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벌이는 듯한 병원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2019년 9월 보건소로 향했다.

성가롤로 병원은 오랜 기간 환자와 보건당국을 속이며 간호사와 응급구조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시켰다.

병원이 반짝 도박을 멈추는 날이 있다. 공무원이 병원에 행차하는 날이 그렇다.

평소에는 동맥혈가스검사(ABGA)와 같이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간호사와 응급구조사가 대신 하도록 시키다가, 보건당국이 뜨는 날에는 급히 가면을 바꿔 쓴다. 공무원이 병원을 점검하러 들어오면, 윗선은 잠깐 무면허 의료행위를 멈추라고 지시했다.

병원의 이런 선제 대처는, 보건소가 방문을 예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보건소는 의료기관을 점검하기 앞서 친절하게 “언제 어디로 점검을 간다“고 병원에 공문을 보냈다. 2018년 6월도 그랬다.

당시 순천시보건소는 응급의료기관 점검 명목으로 성가롤로병원을 방문하면서 가면을 바꿔 쓸 시간을 줬다.

순천시보건소는 2018년 6월 지도 점검에 앞서 성가롤로병원에 지도 점검 방문을 예고했다. 보건당국의 지도 점검 일정에 맞춰 성가롤로병원은 응급구조사 등에 무면허 의료행위를 잠시 멈출 것을 지시했다.

보건소 조사는 엉터리로 진행됐다. 공문으로 예고한 사항마저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업무지침을 점검하겠다고 해놓고, 응급구조사의 업무지침이 적힌 직무기술서는 살펴보지도 않았다. 응급구조사 직무기술서에는 무면허 의료행위가 가득 적혀 있다.

고의인지 무능인지, 순천시보건소는 병원 측의 “문제 없다“는 말만 믿고 지도 점검을 마쳤다.

순천 성가롤로 병원 응급구조사의 직무기술서. ‘직무 내용 및 책임’에 무면허 의료행위가 다수 적혀있다.

A 씨는 이런 실망감 때문에 2019년 9월 순천보건소를 방문하면서 녹음기를 켰다. 보건소가 병원을 바로잡을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의사와 병원이 합당한 처분을 받길 바랍니다. 내부에서 바꾸려고 몇 년간 노력했지만,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오히려 뻔뻔함으로 일관했습니다.” – A 씨, 2019년 9월 2일

A 씨의 요구사항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의사와 병원이 잘못에 책임을 지고 면허정지나 업무정지 등 적절한 행정처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병원이 정신을 차리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경기도 동탄의 한 병원은 응급구조사에게 ABGA를 시켰다가 벌금을 낸 후로 더는 응급구조사에게 ABGA를 시키지 않는다. 

충청도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한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응급구조사에게 ABGA를 시켰다가 자신은 자격정지 3개월, 병원은 영업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2017년 5월의 일이다. 그 후 병원이 보건당국에 억울함을 표시해 처분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전해지지만, 불명예는 피할 수 없었다.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에서도 2017년 6월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의사 지시에 따라 응급구조사가 봉합된 실을 제거하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다가 환자에게 고발당했다. 이 일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전공의는 면허정지 45일, 병원은 벌금 2,000만 원의 행정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A 씨는 위 내용을 근거로 “법에 따라 의사와 병원이 합당한 처분을 받아야한다“고 보건소에 주장했다.

성가롤로 병원 간호사가 동맥혈가스검사(ABGA)를 하는 모습. 원래 응급구조사 업무였다가 현재는 간호사들이 이 일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맥혈가스검사는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다.

A 씨는 대화를 이어갈수록 순천시보건소가 병원 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저희야 위법사항이 발견되면 처벌하면 그만인데, 지역 사회 응급구조체계를 생각하면 단순한 시각으로 접근하기 어렵더라고요.” – 보건소 직원, 2019년 9월 2일

순천시보건소 직원은 행정조치보다 고발 이후 벌어질 일을 먼저 걱정했다. 성가롤로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로서 여수·순천·광양 등 전남 동부권의 중증 응급 환자의 치료를 책임진다. 그 때문인지 보건소 직원은 성가롤로병원에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전남 동부권의 응급 의료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보건소 직원은 성가롤로병원과 관련해 보건소가 추진하는 사업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2019년 1월 작성된 ‘순천시 지역보건의료계획 요약서‘에 따르면 공공의료 체계 강화 방안으로 “전남동부권역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성가롤로병원의 기능을 강화하는데 힘 쓰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성가롤로병원과 관련해서 저희 보건소가 추진하는 사업이 있는데요. 만약 병원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대안이 없거든요. 성가롤로병원이 겨우 응급의료센터 기준을 마련했던 걸로 아는데, 만약 잘못되면 주민들 응급 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까 봐요.”  – 보건소 직원, 2019년 9월 2일

무엇보다 A 씨는 보건소의 병원 조사 방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보건소 직원은 병원 측 말만 듣고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조사를 멈춘 것을 시인했다. 성가롤로병원으로 점검을 나갔을 때 “ABGA는 의사들이 직접 하고 있다“는 병원 측 설명을 그대로 믿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즉, 무면허 의료행위가 진행되는지 제대로 실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순천시보건소가 성가롤로병원으로 점검을 나간 2018년 6월, 간호사와 응급구조사들은 어김없이 의사를 대신해 ABGA를 실시했다.

ⓒ순천시

보건소 직원과 A 씨의 대화는 1시간 남짓 이어지다 끝났다. 보건소 직원이 “다시 점검을 해보겠다“고 말했고, A 씨는 다시 한번 보건소를 믿어보기로 했다. A 씨는 자기 신분이 드러날지 몰라 국민신문고에 올린 민원을 취하했다.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보건소의 약속이 이뤄지길 기도했다.

약속은 또 지켜지지 않았다. 보건소는 성가롤로병원에 대한 점검에 나서지 않았다. 순천시보건소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순천시보건소가 주춤할 때도 성가롤로병원은 여전히 무면허 의료행위 지시했다. 이를 못 견디고 떠나는 응급구조사들이 속출했다.

순천시보건소가 불신을 키운 것은 더 있다. ABGA가 의사의 업무라는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보건소 측은 2019년 6월 “의사 지도 하에 간호사가 ABGA를 실시할 수 있다“라고 답했지만, 3개월 만에 입장을 바꿨다. A 씨가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보여주자 그때서야 “위법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간호사가 동맥혈가스검사(ABGA)를 수행하는 동안, 응급실 의사들이 이를 지켜보는 모습.

순천시보건소는 관리·감독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억울하다는 견해다. 보건소 측은 “민원인이 민원을 취하한 상황에서 적극 조사를 벌일 수 없었다“면서 “수사기관처럼 강제권이 없기 때문에 조사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2018년 6월 성가롤로병원을 조사에 대해선 “민원인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보건서 측은 ABGA에 대한 유권해석을 틀리게 한 점은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그들은 “보건복지부로부터 답변을 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당시 가지고 있던 자료로 간호사도 ABGA를 해도 된다고 틀리게 답변했다“면서 “1년에 180건에 달하는 민원을 일일이 챙기기 어려워서 실수가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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