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차별의 문턱을 뛰어넘어 신한은행에 입사한 성공신화 주인공을 소개한다.

이 주인공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전문대에서 예체능을 전공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입사할 수 없는 스펙이었다. 그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신한은행이 몰래 시행하는 ‘필터링컷’에 걸린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박○○은 신한은행 2013년 상반기 입사에 성공했다.

박○○을 뽑으려는 신한은행의 간절함은 서류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를 얼마나 뽑고 싶었으면, 신한은행은 그의 전공까지 바꿔치기 했을까.

신한은행은 박○○의 서류전형 점수를 올리기 위해 그의 전공을 디자인에서 어문·수학 계열로 조작했다. ‘1등 금융그룹’이라 홍보하는 은행이 별 일을 다 한다.

“다양한 인재를 뽑겠다”는 신한은행의 의지였을까. 아니다. 그는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스펙(?)을 가졌기에 붙었다.

신한은행은 박○○의 스펙이나 능력이 아닌 그의 아버지를 봤다. ‘아빠 찬스’가 그를 신한은행 직원으로 만들었다.

박○○의 아버지는 신한은행에 돈을 벌어다 줄지도 모르는 ‘그곳’에서 일했다.

박○○ 아버지는 국민연금공단에서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국민연금공단

박○○가 신한은행 RS 직군 공채에 지원한 것은 2013년 상반기. 당시 일반직에 1만323명, RS직에는 4835명이 지원했다. 신한은행은 직군별로 100명씩 채용할 예정이었다. RS직은 영업점에서 창구업무를 맡거나 본부 부서에서 일반 사무업무를 하는 직군을 말한다.

“연령, 학력 및 전공에 따른 제한 없음”

신한은행은 공채 공고를 내면서,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가유공자거나 공인회계사 등의 특별한 자격이 있으면 우대하겠다고만 했다. 거짓말이었다.

‘아빠 찬스’를 쓰면 전공도 알아서 바꿔주는 게 신한은행이었다. 신한은행은 박○○ 아버지가 국민연금공단 노조위원장인 걸 서류전형 과정에서 인지했다.

신한은행이 은밀하게 작성한 ‘2013년 상반기 RS 특이자 명단’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Filtering cut 해당(전문대 Cut 기준 연령: 90년) 향후 퇴직연금 마케팅 측면 고려”

한마디로, ‘향후 퇴직연금 마케팅 측면을 고려’해 채용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박○○은 서류전형, 그것도 나이에서 딱에서 딱 걸렸다. 신한은행 공채에서 젊음은 곧 스펙이었다. 2013년 상반기부터 2016년 하반기 공채 당시 신한은행은 나이로 먼저 사람을 걸러냈다. 남자는 만 27살까지, 여자는 만 25살까지만 뽑았는데, 전문대 출신이면 만 23살을 넘기면 탈락시켰다.

박○○ 만 24세였지만 무사히 서류과정을 통과했다.

ⓒ남궁현

다른 지원자들과 달리, 박○○는 금융권 취업 준비는 미흡했다. 박○○의 서류를 살펴본 후 평가위원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서류전형 피드백으로 남겼다.

“금융권 취업준비 매우 미흡” – 신입행원/RS 서류전형 피드백

그의 디자인 전공이 합격에 큰 걸림돌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박 씨는 학과 점수 30점에서 10점만 챙길 수 있었다. 신한은행 인사팀은 박○○이 어문이나 수학 계열을 전공했다고 마음대로 고친 뒤 18점을 줬다.

지난 1월, 신한은행 채용비리 관련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한 서울동부지법 재판부의 판결문에는 이렇게 나온다.

“박○○은 디자인학과 전공으로 서류전형 점수 중 학과 점수가 예체능 학과 10점을 부여해야 함에도 어문 계열, 수학과에 적용되는 18점을 부여하여 서류평가 총점 75.711점으로 서류전형에 합격하였고, 이후 최종 합격하였다.”

신한은행 채용비리 사건에 대한 1심 판결문 일부

당시 법정에서 인사팀 직원들은 “은행장이 시켜서 합격시켰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김인기 신한은행 인사부장이 박○○의 이름이 담긴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명단을 서진원 신한은행장에게 보고했고, 서 전 은행장이 명단에 있는 지원자들을 합격시키라고 해서 뽑았다는 게 1심 재판부 결론이다.

“위 지원자들에 대한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명단에 기재되어 있는 인적관계에 관한 정보가 서류전형이나 1차 면접에서 서 전 신한은행장이 이들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 반영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 2020년 1월 22일, 서울동부지법

박○○을 신한은행으로 끌어준 사람은 안○○ 전 국민연금공단지점장으로 보인다. ‘2013년 상반기 RS 특이자 명단’ 문서에 “안○○ 지점장”이 등장한다. 신한은행은 특이자에 관한 전형 결과 등을 알려줘야 하는 사람을 ‘경로’에 표기했는데, 거기에 안 씨 이름이 등장한다.

ⓒ남궁현

신한은행이 조작을 해서라도 국민연금공단 노조위원장 출신의 자녀를 뽑으려는 이유는 뭘까. 그게 다 돈 때문이다.

당시 신한은행은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의 퇴직연금 유치를 위해 노력했다.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을 상대로 퇴직연금 마케팅을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박○○을 채용한 후에도 그를 어떻게 활용할지 잊지 않았다. 인사 DB(데이타베이스)담당자는 ‘인비직원세평(인사 비밀 직원 세평)’ 문서에는 박○○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입행시 특이자] 국민연금공단 박OO 現 노조위원장 자녀 (145억 퇴직연금 유치 관련)”

박○○ 정규직 채용은 국민연금공단 노조위원장 자녀로, 퇴직연금 145억 원 유치와 관련 있다는 뜻이다.

신한은행 채용비리 사건에 대한 1심 판결문 일부

기자는 15일 부정 채용자 박 씨를 직접 만났다. 현재 박 씨는 서울의 한 지점에서 재직 중이다. 기자가 청탁 의혹에 대해 묻자 그는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부인했다.

그는 아버지가 과거 국민연금공단에서 노조위원장을 지냈으며, 전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저희 아버지가 맞지만, 채용 청탁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해서 어디에서도 연락 오지 않았어요.”

<셜록>의 기사를 접하고 국민연금공단 노조에서는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라고 연락을 해왔다. 공소장과 판결문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 만약 박 전 국민연금공단 노조위원장의 채용 청탁이 사실로 확인되면 엄중하게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국정감사에선 은행권 채용비리가 주요 이슈로 등장할 듯하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은행권 채용비리 폭로 2년 과연 무엇이 변했나’란 주제로 국감을 준비 중이다.

배 의원은 “채용비리 관련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 해당 은행들이 피해자 구제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면서 관련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부정채용자에 대한 채용 취소, 피해자 구제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부정채용자는 채용을 취소하도록 하고, 피해자 구제책 마련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채용비리 특별법’ 제정을 정의당 차원에서 추진 중입니다.”

차별이 만연했던 신한은행 공채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성공신화를 이룬 박○○. 그는 부정 채용을 부인하지만, 그런다고 팩트까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박○○의 성공신화는 조작됐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