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의 분위기는 참 묘했다.
실내로 들어설 때부터 느껴지는 위화감. 대개의 카페들은 손님들이 편안히 쉬고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곳은 음악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들리는 소리라곤 뭔가 분주히 오고가는 ‘업무’ 이야기뿐. 40~60대로 보이는 사람 네댓 명이 노트북으로 일을 하거나 전화를 하거나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커피를 내리는 직원을 향해서도 반말을 했다. 아무리 봐도 손님은 아닌 것 같고, 그럼 누굴까?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그들은 손님처럼 조용히 방문한 기자를 눈에 띄게 경계했다. 그들 중 하나는 창밖에 서서 우리가 뭘 하는지 조용히 지켜봤다. 우리가 카페에서 나왔을 때는, 길 건너편까지 가는 동안 계속 우리 쪽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었다.
서울 동대문 신설동에 있는 카페 하타○○. 카페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곳은 사실 ‘사채왕’의 아지트였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자. 하얗게 센 머리, 불뚝 나온 배, 강한 전라도 말씨. 이쪽저쪽 카페 안을 오가며 뭔가를 분주히 지시하던 남자. 바로 우리가 찾던 사채왕 김상욱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그가 식구처럼 여기는 사람에게는 ‘작은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허락했다. 스스로를 “목포 오거리파”라 소개하는 사람.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사채업자”이며, “우리나라 경제를 흔드는 사람”이라 목소리 높이는 사람.
그의 말은 완전히 허풍은 아니었다. 지난해 한국 경제의 빅이슈였던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그 중심에는 청구동새마을금고의 1500억 원대 대출사기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이 바로 사채왕 김상욱의 ‘작품’이었다.
김상욱 일당은 우선 대출 명의자를 모집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뒤 감정평가액을 최대로 부풀려 실거래가 이상의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은 김상욱 일당의 손으로 흘러들어갔다. 명의자들에게는 수억 원의 빚만 남았다.
김상욱을 중심으로 신탁사 직원과 새마을금고 직원이 삼각편대를 이뤘다. 그리고 지역별 모집책-감정평가사-법무사사무소 사무장 등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어느 한 곳에서라도 삐끗했다면 ‘작업’을 성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대출한 돈만 약 150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경남 창원의 중고차 매매단지인 KC월드카프라자 건물 하나를 가지고도 약 800억 원의 대출사기에 성공했다. 결국 부실화된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고 이웃 금고로 합병됐다. 깡통이 된 새마을금고를 정상화하는 데는 결국 국민의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내가 (금융기관 직원에게) 쇼핑백으로 돈 3000만 원을 담아서 줬어.”(김상욱 녹음파일 중)
김상욱은 공범들을 매수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현금은 물론 최고급 해외여행을 보내주거나,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겠다고도 했다.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해 승진을 시켜주겠다, 애인을 국회 보좌관으로 ‘꽂아’주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명의만 빌려주면 현금을 주겠다, 아니면 꼬박꼬박 월세를 받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김상욱 일당에게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수억 원의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다.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고 부동산이 압류되거나, 일부는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기 돈으로 연 11%나 되는 이자를 갚고 있었다.
힘을 합쳐 김상욱 일당을 고소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는 1년이 다 되도록 지지부진. 오히려 이들을 ‘공범’으로 의심하는 경찰의 시선에 더 위축되기만 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해, 남몰래 속앓이만 할 뿐이었다.
우리가 하타○○ 카페를 찾아간 그날도 사채왕 김상욱은 ‘본업’을 하느라 열심이었다. 고소가 이뤄졌고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 했는데, 그의 일상은 너무나 평온했다. “내가 밀어주는 정치인만 해도 30명 된다”, “검사도 나 한번 만나고 싶어서 환장한다”는 자기 말처럼, 정말 든든한 뒷배라도 있는 걸까.
하지만 ‘깡패의 의리’라는 게 참 허무하더라. 결국 ‘새끼 사기꾼’인 공범은 ‘늙은 사기꾼’ 김상욱의 뒤통수를 쳤다. “죽더라도 혼자 죽을 수 없어서” 몇 달간 녹음해둔 통화 파일을 무기로 김상욱에게 반기를 들었다.
‘꼬맹이’의 배신에 김상욱은 진노했다. 폭로를 막으려고 밧줄과 망치를 든 건달들을 동원해 겁을 주고, 거꾸로 감금·폭행 사건을 조작해 제보자 한 사람을 감방에도 보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악행이 세상에 알려지는 일은 막지 못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김상욱의 사기 행각이 ‘자신의 입으로’ 낱낱이 기록된 녹음 파일 900여 개 등 모두 2000여 개의 녹음파일을 입수했다. 200부에 가까운 신탁원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전국 팔도를 오가는 한 달간의 취재로 범죄의 흔적들을 수집했다. 정말 김상욱이 ‘말하는 대로’ 사기는 이뤄졌다. 그는 일개 사기꾼이 아니라, 금융기관 직원까지 포함된 전국적 대출사기 조직의 수괴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취재 중 기자들이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피해자라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금융기관도, 공범들도, 심지어 김상욱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번 만져보지도 못한 돈 수억 원을 대신 갚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이들에게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제 김상욱 일당들과 무책임한 금융기관들이 이 말을 알아야 할 차례다.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김상욱의 일당의 구속 처벌과 범죄수익 환수,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목표로 한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