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괴물이 산다. 마음을 잡아먹는 괴물.
괴물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잡아먹고자 하는 사람의 앞에만 나타난다.
모두가 일하고 있는 곳, 모두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
괴물은 한 사람 한 사람씩 마음을 잡아먹는다.

한 해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습니다(2022년 고용노동부 산업재해현황분석 기준, 2223명). 기계에 끼이고 건물에서 추락하고 전봇대에서 감전되고 장비에 깔려서 죽습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일하다 사망하는 노동자는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데 일하다 다치고 사망하는 산재 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산재가 있습니다. 정신질병 산재입니다. 한 해 4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2022년 경찰청 자살통계 기준, 404명).

노동자는 우울증과 불안장애와 같은 질병에 약을 입에 털어넣고 출근합니다. 자신을 자책하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합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매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그 이유 중에 직장 내 괴롭힘이 가장 많았습니다.

마음이 다친 상처는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정신질병에 대해 지식은 적고 편견은 많은 터라 그 아픔은 더 드러나지 않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산재를 기록하자고 모인 이유입니다.

왜 괴롭히는가. 왜 막지 못하는가.
어쩌다 직장은 일하는 사람에게 정신질병을 안겨주는 곳이 됐나.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인한 자살이라 기록된 사건들. 그 내면에는 단순히 밥벌이의 더럽고 치사함을 넘어,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이 있습니다.

삶을 쥐어짜지 않으면 안 되는 무한 경쟁사회에서,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지워집니다. 상사와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노동자들은 외롭게 일하며 자기를 잃어갑니다. 우리는 일터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일하다 마음을 다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이들의 고통을 고통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렵게 산재 승인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기간이 길고 과정이 복잡해 제대로 된 보상과 치유를 받기 어렵습니다. 산재 판정을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정신질병이 악화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신질병 산재보상제도가 과연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인지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미 서점에는 우울증 등 정신질병을 다룬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개인의 ‘마음’ 을 잘 들여다보고 다스리려는 노력들은 그만큼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신질병의 원인과 해답을 그 사람의 ‘일’과 ‘일터’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대개는 자신의 마음에 생긴 병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린다 해도 ‘일 때문에’라는 생각보다는 ‘나 때문에’라는 생각을 먼저 하기 십상입니다. ‘원래 직장 일이란 힘든 거니까’, ‘돈 벌려면 참아야 하니까’라는 생각에 혼자 견디고 버티려 하기도 합니다.

“각자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유리멘탈’을 단단히 다져서 이겨낼 문제가 아니라, 고쳐야 할 대상이자 원인인 일터 문제로 시선을 돌리자는 것입니다.” –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나름북스, 2022년) 18쪽

우리는 직장 내 괴롭힘에, 감정노동에, 과로에 시달리며 정신질병으로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이 겪는 문제는 당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 혼자 짊어져야만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존버씨의 죽음> 인용) 21세기 대한민국의 일터가 어떻게 노동자의 마음을 ‘살해’하는지 들여다보려 합니다. 우리의 기록이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드러내고, 우리 사회가 함께 그 문제를 풀어가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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