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기관의 수장이 한날한시에 머리를 숙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지난 7월 30일 경기 시흥시 은계 공공주택지구 아파트 단지의 ‘검은물’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문제의 핵심은 LH가 발주한 아파트 단지 수돗물에서 검은색 가루로 보이는 이물질이 나오고 있다는 것.

2023년 7월 경기 시흥시 은계지구 아파트 상수도관 수돗물 거름망에서 나온 검은색 이물질 ⓒ서성민 변호사 제공

문제는 이미 5년 전부터 일어났다. 시흥 은계지구 주민들은 2018년 4월 ‘검은물’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다. 당시는 아파트에 입주한 지 5개월밖에 안 됐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발주 책임자인 LH는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LH는 약 2년이 지난 2020년 3월경에 들어서야, 시료를 채취하고 물에 떠다니는 이물질을 확인했다.

조사 결과, 이물질의 정체는 상수도관이 녹슬지 않도록 내부에 코팅한 플라스틱 계열의 물질(액상에폭시 등). 플라스틱이 상수도관에 떨어지면서 아파트 수돗물에선 ‘검은물’이 흘러나왔다.

결국 주민들이 직접 나섰다. 상수도관에서 떨어져 나온 이물질을 증거로 모으고, 입주민 연합회를 꾸렸다. 올해에 들어서는, 함께 뜻을 모아 싸워줄 전문 변호사도 찾았다.

주민들은 상수도관 업체와 관련된 새로운 ‘팩트’를 발견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미 3년 전인 2020년 3월, 상수도관 입찰 업체 13곳의 담합 문제를 발표했던 것.

공정위는 LH, 한국수자원공사 및 지자체 등이 2012년 7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구매한 230건의 상수도관 입찰(총 1300억 원 규모)에서, 13개의 업체가 사전에 담합해 서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이윤을 배분한 사실을 밝혔다. 이 입찰엔 시흥 은계지구 조성공사에 지급된 상수도관(폴리에틸렌 피복강관)도 포함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7월 30일 LH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에 참석했다. ⓒ국토교통부

그렇다면, 상수도관 입찰 업체들은 어떻게 불법 담합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당시 공정위 조사에서 공공기관-상수도관 입찰 업체의 유착을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을 발견했다. 담합 업체 중 한 곳인 건일스틸(주)의 이○○ 이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영업추진업체들은 수요기관을 통해 누가 입찰 참여사로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거나, 적어도 자신들은 입찰 참여자에 포함되도록 수요기관에 영업을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사전에 담합을 성사하기 위해 ‘수요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해왔다는 이야기. 여기서 ‘수요기관’은 LH, 한국수자원공사 및 지자체 등 공사 계약을 체결한 공공기관을 말한다.

하지만 공정위의 발표로부터 3년이 지난 최근까지, 담합 업체와 공공기관 임직원 모두 부정 청탁 문제로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더 이상의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징계나 처벌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검은 물’ 담합 기업과 수요기관 임직원들을 처벌하라” ⓒ셜록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서성민 변호사와 손을 잡았다. 서 변호사는 2021년 LH 공직자 광명·시흥 부동산 투기 문제를 최초로 폭로한 인물이다. 셜록의 ‘고위공직자의 수상한 땅따먹기’ 프로젝트에서는 농지법을 위반한 고위공직자들을 함께 고발하면서 셜록의 파트너가 된 바 있다.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는 상수도관 업체 임직원을 사기 혐의로, 그리고 이들의 부정한 청탁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성명불상의 공공기관 임직원을 뇌물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원희룡 장관은 시흥 은계지구 검은물 사태를 두고 “반 카르텔 자유·공정 정부로서 단호하게 조치하고 건설 분야에서의 이권 카르텔에 대해 전반적인 혁신 조처를 하겠다“고 말했다. 책임 기관으로서 관리 감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후속 조치도 늦었지만, 어쨌든 셜록은 국토부 장관의 바람대로 ‘이권 카르텔 혁파’에 힘을 보태려 한다.

‘검은물’을 거슬러 올라가니 ‘검은 세력’의 그림자가 보였다. 정부기관의 검은 유착은 ‘검은물’처럼 여과돼야 한다. ‘블랙워터 게이트'(Blackwater Gate)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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